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25화 (125/353)

서울 인왕산 필드.

그 중간부에 자리한 고위 던전, 뱀이 뒤덮은 숲.

한때 사냥 5팀에서 대형 프로젝트로 계획하며 최초 공략을 시도했던 미발견 던전이었지만, 깔끔하게 공략이 마무리된 지금은 <불의 심판> 내 수익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던전이었다.

주말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그 아침부터, 강주연은 던전 초입에 와 있었다.

클랜에서 최근 진행 중인 <하반기 신규 클랜원 공개채용>에 관한 프로젝트.

그중 사냥팀 지원자들의 실무 면접에 참관하기 위함이었다.

“…조금 늦었어요.”

그녀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가 말했다.

사냥 5팀 팀장 권오준, 스카우트 팀장 조규혁 등 강주연과 꽤 친분이 있는 클랜원들도 한데 모여 있는 무리.

그들은 모두 이번 실무 면접의 면접관들.

사냥의 준비부터 진행, 결과, 파티원 사이의 팀웍 등 지원자들의 평가 요소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었다.

“오! 오셨습니까, 아가씨.”

강주연과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조규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강주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하하하. 아가씨는 계속 아가씹니다. 마스터나 부마스터 되시기 전까지 말이죠.”

권오준도 호탕하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워낙 강주연이 어렸을 때부터 클랜 생활을 했던 아저씨들이라 그런지, 이들은 꿋꿋이 호칭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포기하는 게 더 빨랐다.

강주연은 살짝 한숨을 내쉰 후.

다른 면접관들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그녀와 딱히 친분이 없는 탓에, 정중히 예를 갖추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지원자들은 어때요?”

강주연이 다시금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권오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휴. 말도 마십쇼. 도무지 인재가 없습니다, 인재가. 제가 그동안 하도 징징대서, 이번에 특별히 마스터께서 면접 참관까지 허락해주셨는데… 이건 뭐, 파리만 날리게 생겼습니다.”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그의 표정.

그에 강주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면접 대상자들은 전원 B급 홀더 아닌가요?”

홀더들마다 모두 등급의 차이가 있듯, 클랜에서 신규 클랜원을 뽑을 때 또한 등급을 구분해 모집한다.

그중 강주연이 지금 참관한 면접은 신규 B급 클랜원 대상의 면접.

면접 장소가 ‘뱀이 뒤덮은 숲’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권오준은 그녀의 질문에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B급도 B급 같아야 쓸만하죠. 죄다 무늬만 B급인 홀더들에, 자기 룬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녀석들이 태반입니다.”

B급 홀더라고 다 같은 B급 홀더가 아니다.

그 사이에서도 분명한 격차가 있다.

강주연 역시 아카데미 입학 당시엔 그런 풋내기 B급 시절을 보냈었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완숙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선발된 지원자들은, 그러한 풋내기 B급 홀더가 대부분인 모양이었다.

“아가씨. 어디 또 도재현 같은 녀석 없습니까? 그놈도 나가고, 아가씨까지 나가니까 도대체 사냥 5팀이 제대로 굴러가지를 않습니다. 하아, 진짜….”

<불의 심판> 사냥 5팀은 지금 인원 부족이었다.

권오준이 야심차게 직접 키우는 신유나는 아직 C급에 머물러 있었고, 선임 클랜원으로 충원됐던 강주연은 임시직이었기에 자연히 물러났다.

심지어 유일한 궁수 계열, 민채환마저 <빌런> 측의 스파이였으니….

너무도 부족한 B급 홀더 인원.

그게 사냥 5팀의 현실이었다.

그 푸념에 강주연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도재현이 팀원으로 활동했던 두 달.

비록 인턴이었다 해도, 그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 같아서.

그 시간들이 사냥 5팀에도 꽤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아서.

그를 추천했던 사람으로서 살짝 뿌듯했다.

“어차피 재현…이는 C급이잖아요.”

강주연은 순간 자신이 말한 호칭에 당황했지만…

다행히 이를 눈치챈 클랜원들은 없었다.

“그 녀석은 그냥 C급이 아니잖습니까. 성과만 부족할 뿐이지, 실력은 웬만한 초기 B급들보다 뛰어나요. 일 처리도 부족한 게 없었고.”

그러자 같이 듣던 조규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1명은 건졌잖아? A급까지도 금방 갈 것 같은 인재던데.”

“걔는 너무 압도적이잖습니까. 다른 사냥팀에서도 다 탐낼 텐데. 전 짬에서 밀려서 영입 못 합니다….”

그런 대화에 강주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걔…가 누군데요?”

“아. 아가씨도 아마 아실 겁니다. 윤지아라고, 아카데미 3학년으로 졸업예정자인데….”

‘…윤지아?’

익숙한 그 이름에 강주연이 기억을 더듬으려던 찰나.

쏴아아아-!!

우우우웅!!

던전 초입부, 강가에서 사냥을 준비 중이던 지원자들 앞에 괴수가 나타났다.

일전에 사냥 5팀이 경험한 적 있던 번개속성의 뱀장어.

B급 괴수, 일렉트로포러스였다.

“1조, 전원 전투 준비!”

날카로운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후미에서 스태프를 들고 마법을 준비 중인 한 여성 홀더였다.

그리고…

강주연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써클 부회장.’

윤지아.

<염무> 써클의 회장 출신이자, 지금은 <안티 빌런> 써클의 부회장을 맡은 아카데미 선배였다.

본래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실력 있는 홀더로 유명한 모양이었지만, 강주연에겐 딱히 관심 가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도재현이 새로 창설한 써클.

<안티 빌런>에 홀리듯이 가입한 후 알게 된…

아는 선배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조를 이룬 클랜 지원자들 사이에서 침착하게 오더를 내리고 있었다.

“마법사 계열이….”

강주연은 그를 보며 가만히 읊조렸다.

파티장 역할을 맡은 마법사 계열.

일반적인 홀더 파티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런 그녀의 의문에 조규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일이죠. 윤지아 홀더는 실력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지원자지만,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과 파티를 이끄는 리더쉽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하반기 지원자 중 단연 눈에 띄는 홀더예요.”

권오준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며 말을 받았다.

“잘 봐두십쇼, 아가씨. 저 친구가 불 하나는 아가씨보다 더 잘 다룰 수도 있습니다.”

쏴아아아-!!

우웅, 우우우-!!

총 네 마리의 일렉트로포러스가 윤지아의 조에 달려들었다.

“전사 두 분은 측면 괴수들을 맡습니다! 후방 지원 인원 전원은 전방의 괴수에 총공격 준비!”

괴수들이 다가올수록 윤지아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신성 계열은 감속 디버프 걸어주세요!”

“저, 저요?”

“네! 가장 뒤쪽의 괴수에게!”

정확한 오더에 파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각자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하게 임했고, 후방 지원 인원의 전력이 담긴 공격도 전방의 일렉트로포러스에게 쏟아졌다.

덕분에 파티원들은 탱커보다 많은 숫자의 괴수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잘하네.’

강주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리더십이 뛰어났다.

마법사 계열이 파티장을 맡은 건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파티원들이 군말 하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른다.

이미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팀원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것만으로도 면접관들의 합격점을 살 만한데, 본연의 능력 또한 출중했다.

‘…불의 색깔이 짙어.’

불속성.

마법사 계열 홀더들이 활용하는 속성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지만, 그만큼 가장 흔한 속성이기도 했다.

한 해에만 무수히 많은 불속성 마법사들이 탄생했고,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홀더들이 도태되곤 했다.

그 서바이벌 같은 틈에서…

윤지아는 고고하게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쏘아내는 불의 색은 그 어떤 불보다 짙었고, 방법에 구애받지 않는 활용도는 더없이 능숙했다.

B급 홀더 중 최고의 실력자.

A급의 문턱에 와 있다는 평가가 곧장 와닿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쏟아져라.”

윤지아의 입에서, ‘언령’이 흘러나왔다.

궁극스킬을 시전하는 데에 필요한 선결조건.

B급 홀더 윤지아는, 이미 궁극스킬까지 활용할 줄 아는 완성형 홀더였다.

커다란 불덩이들이 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지자…

이미 정리되어가던 상황은 그대로 끝이 났다.

별다른 부상자 없이 일렉트로포러스 네 마리를 완벽히 사냥하는 데에 성공한 면접 1조.

그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조장인 윤지아였다.

“캬. 역시 잘합니다, 잘해.”

권오준이 손뼉을 치며 극찬했다.

확실히 방금 전투는 만점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완벽한 전투였다.

“어떻습니까, 아가씨. 저 정도로 불을 잘 다루는 마법사 계열이라니… 막 자극되지 않으십니까?”

은근하게 물어오는 권오준.

어떻게든 자신을 자극하고 싶은 모양인데…

솔직히 큰 감흥이 들지 않았다.

고위 홀더에게 열등감을 느꼈다면, 이미 아버지에게 먼저 느꼈어야 했다.

강주연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뛰어난 클랜원이 들어오면 좋은 거죠.”

“그…렇긴 하죠. 흠흠.”

권오준의 시선이 다시 전투가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 그는 또 한 번 감탄이 나오는 모양인지, 턱을 부여잡으며 조잘조잘 말을 이었다.

“캬… 갑자기 저 친구랑 도재현 그 녀석이랑 같이 싸우는 거 보고 싶네. 둘이서 파티로 싸우면 정말 기가 막힐 텐데. 아깝다, 아까워. 두 사람 다 사냥 5팀에 있었으면, 우리 팀이 실적 원탑일 텐데.”

멈칫-.

무심하게 지원자들을 보고 있던 강주연이…

이번에는 권오준의 말에 반응했다.

‘…둘이?’

그의 입장에선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겠지만…

실제로 둘은 공적으로 가까운 관계였다.

<안티 빌런>의 회장과 부회장.

한 써클의 수뇌부를 맡은 학생 홀더들이니까.

그래서인지 둘이 함께 힘을 합치며 <빌런>과 싸우는 모습이, 강주연의 머릿속에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의외로…

꽤 잘 어울렸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갑자기.”

“…….”

그리고 조용하던 강주연의 마음에.

작은 불씨 하나가 지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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