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높은 마력이 한데 모인 나무.
정확히는 그 나무 꼭대기쯤에 자리한, 작은 둥지.
우리가 지나쳐 온 초입부에 꼭꼭 숨겨진 장소였고, 방금 사냥한 하피의 마력석이 유독 상태가 좋은 이유였다.
아마 그 하피는 이곳에서 오래 머물며 양질의 마력을 축적한 모양이었다.
마력이 축적된 그 하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쳐 버렸을 장소.
이는 그 하피를 만나야만 찾을 수 있는 미발견 던전이었다.
나는 나무 앞에서 위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가봐야겠지?”
우연히 발견한 미발견 던전이지만, 나에겐 이곳 속리산 필드에 온 근본적인 이유다.
잊혀진 아룡에 대한 단서.
실마리 하나라도 잡으려 무작정 던전을 찾은 건데…
그걸 문가은의 날카로운 직감과 [마력 추적]을 사용한 과감한 행동으로 발견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있을 수 없었다.
“응. 그렇긴 한데….”
문가은이 대답을 하다 말고 뒤편을 바라봤다.
거기엔 우리의 호위를 맡던 A급 홀더.
성나연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두 분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끼어들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호위의 명목이 전부입니다. 던전 보상, 사냥 결과 등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성나연도 대충 상황을 파악했을 거다.
평범하게 하피를 사냥하던 우리가, 우연히 미발견 던전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찾아냈다는 걸.
호위의 역할을 맡은 이상 그녀 역시 미발견 던전으로 따라오긴 하겠지만, 관련된 보상에 대해서는 모두 포기하겠다고 다시 강조하고 있었다.
‘스승님 때와 비슷하네.’
일전에 ‘얼룩진 암석 더미’를 사냥할 때의 유은설과 유사한 포지션이다.
다만 다른 게 하나 있다면…
그때는 공식적으로 유은설의 버스를 받았었고, 이번엔 뒤에서 성나연의 호위만 받는다는 점 정도?
사실 그것만 해도 우리로선 손해 볼 게 전혀 없었다.
“그럼 가는걸로?”
“응. 미발견 던전 찾았는데 안 가는 게 바보지. 근데…”
문가은의 시선이 이번엔 저 나무 위로 향했다.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로.
“저거… 어떻게 올라가지?”
아.
그…렇네?
나는 가만히 나무 위를 올려다봤다.
적당한 높이라면 [마력제어]를 통한 마력 활용으로 어떻게든 파쿠르를 했을 텐데, 이건 솔직히 높아도 너무 높다.
얼핏 봐도 10M는 넘는 것 같은데…
공중을 부양할 수 있는 바람속성 마법이 아니고서야 올라가기 힘들어 보였다.
‘어? 바람속성?’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문가은을 바라봤다.
“너 궁술 관련 룬 바람속성 아니야? 어떻게 위로 못 올라가?”
그러나 문가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 공격이나 궁술에 바람속성이 부여되는 거지, 바람속성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아, 맞다….”
문가은의 [윈드 아쳐]는 어디까지나 바람속성이 가미된 [활]의 상위룬일 뿐, 바람속성 마법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룬이 아니었다.
그에 잠시 아쉽다는 듯 생각에 잠긴 문가은과 나.
그리고 우리 둘은 미리 말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 성나연 홀더님?”
“…팀장님?”
뚜벅이인 우리를 위로 올려줄 바람속성의 마법.
이를 다룰 줄 아는 홀더가…
이곳에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 * *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던전의 광활한 기운이 홀더의 속력을 약간 저하시킵니다.]
우리는 편안하게 ‘구름을 가린 둥지’에 입장할 수 있었다.
수준급 검술과 함께 바람속성 마법도 국내에서 겨룰 자가 별로 없다고 평가받는 멀티 홀더, 성나연.
그녀의 [레비테이션] 스킬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이었다.
숙력된 실력자답게, 바람속성 마력룬이 상당히 고레벨인 것 같다.
우리 둘을 부양시켜 나무 위로 올려놓는데도 전혀 위화감이나 거부감이 없었다.
‘빨리 관련 룬을 얻어야겠네.’
나는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속으로 다짐했다.
서둘러 바람속성 마력룬을 얻어야겠다고.
그동안은 워낙 물리 공격에 치중하느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정작 중요한 상황이 오니 해당 룬이 절실했다.
막말로 성나연이 없었다면, 기껏 미발견 던전을 찾아놓고 못 들어갈 수도 있었다.
게다가 바람속성 마력룬은 [고속비행]… 지금은 [천하제일 경주마]로 편입된 ‘공중 돌격’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솔직히 써먹을 데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룬은 일단 얻기만 하면 언젠가 써먹는다.
이는 그간의 경험이 증명하는 일이었다.
“와… 엄청 넓네.”
“그러게.”
구름을 가린 둥지는 평야 형태의 던전이었다.
그 크기가 워낙 광활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보스룸으로 가는 건지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로서도 처음 보는 던전 형태다.
원작에서도 언급만 됐던 던전을 기어코 찾아낸 거니까.
때문에 탐험, 사냥, 공략…
모든 걸 직접 부딪히며 해봐야 했다.
“일단 탐색부터 하자.”
“응.”
문가은이 무릎을 구부리며 땅에 손을 짚었다.
그녀의 주력 탐색류 룬.
[돌고래의 음파]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는 문가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이 바로 떠졌다.
“온다.”
“지금?”
“응! 오른쪽 대각선! 수는… 세 마리!”
커흐으으-!!
끼이이-!!
재빨리 문가은이 말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괴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딱 세 마리의 괴수가 날아들고 있었다.
“저건….”
그 징그러운 생김새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하피처럼 사람을 닮은 얼굴, 사자와 같은 외양,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허름한 날개, 전갈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꼬리….
멀리서만 봐도 괴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만티코어.”
A급 괴수, 만티코어.
사람과 새를 합친 듯한 하피에서부터 더 진일보해, 사람과 사자, 박쥐, 전갈 등 흉악한 동물을 모두 섞은 생김새의 괴수였다.
공격 성향 역시 하피처럼 신체강화 형태.
당연히 그 능력은 하피보다 훨씬 앞섰다.
“가은! 자율 지원 사격으로!”
“응!”
문가은과는 이제 전투에서의 호흡이 꽤 잘 맞았다.
상황에 따른 플랜도 많이 세워뒀고, 변수에 대한 대처도 서로 이야기가 많이 오갔기에…
이제는 짧은 대화만으로 서로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문가은이 재빨리 활시위를 당기고, 나도 무기를 꺼냈다.
‘신체강화 형태는 오히려 쉬워.’
지금의 우리 파티에 가장 위험한 괴수.
그건 마력을 주로 사용하는 괴수다.
원탱원딜 조합에서 딜러에게 원격으로 타격을 가하는 마력 공격은, 대처하기도 반격하기도 쉽지 않았다.
반면 신체강화 형태로 물리 공격을 활용하는 괴수들은 일단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직접 부딪히며 시간을 벌 수도 있었고, 딜러에게 다가가기 전 대처할 방법도 많았다.
특히 근접 괴수들은 마력 공격에 약하다는 점.
그래서 내 마력 공격이 효과적으로 들어간다는 점.
이게 가장 매력적이었다.
‘일단 쿼터 나이프.’
네 자루의 단검을 선두의 만티코어에게 던진다.
콰아앙-!!
커흐으으-!!
당연히 ‘비도 폭탄’이 가미된 특제 스킬.
하피를 사냥할 때 스킬의 확실한 효과를 본 이상, 이젠 이걸 안 쓰는 게 바보였다.
“흐읍…!!”
이후 힘껏 땅을 박차고 도약한다.
[마력증폭]과 [마력제어]를 활용하면,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점프로 좁혀낼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두 번째 만티코어에게 달려들었다.
선두의 만티코어는 문가은에게 후속 타격을 맡겼다.
비도 폭탄이 담긴 [쿼터 나이프]로 한 번 타격을 줬기에, 문가은의 후속 타격이 들어가면 적어도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계단 베기.’
내 양손엔 소검이 쥐어져 있었다.
활용하는 룬은 단검술 전용 검법인 [매화검법].
사용하는 스킬은 [계단 베기].
원류인 [이십사수매화검법]에 비하면 위력이 많이 약한 룬 활용이지만, 소검을 쓰기에 이보다 적절한 룬은 없었다.
커흐으으-!!
슥- 카앙!!
소검을 사용하면, 장검을 사용할 때보다 속력이 극대화된다.
게다가 [쿼터 나이프]와 마찬가지로, [계단 베기] 역시 폭발의 성질을 추가할 수 있다.
사용하는 검에 마력만 담을 수 있다면, [폭발하는 검의 기세]는 어디에든 활용 가능했다.
나는 맹렬한 속도로 만티코어에게 달려들어 [계단 베기]를 먹였다.
‘마지막 타격에만 폭발을…!!’
[계단 베기]는 첫 번째 계단과 마지막 계단에만 마력이 들어간다.
이에 나는 첫 공격에는 폭발의 성질을 넣지 않고, 마지막 공격에만 첨가했다.
빠른 속도로 연결되는 스킬을 더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스킬의 마무리를 더 효과적으로 매듭짓기 위해.
콰, 콰아앙-!!
커흐으으-!!
순식간에 연결된 물리 및 마력의 연쇄 공격.
그 압도적인 속도에, 만티코어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괴성을 질러댔다.
지나쳐 온 선두의 만티코어도 잠시 움직임이 제약된 걸 보면, 문가은의 지원 사격이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었다.
‘아직 안 끝났어.’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큰 타격을 주긴 했지만, 이걸로 사냥이 종료된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무려 A급 괴수다.
아무리 쉽게 공격을 허용했어도, 만티코어는 반격할 저력이 있는 괴수였다.
방심하면 오히려 위험해진다.
그런 점을 뇌리에 각인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때.
“흐읍?!”
커흐으으-!!
촤르르- 파악!!
잠시 시야에서 놓친 세 번째 만티코어.
녀석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며, 잠깐 틈이 생긴 내게 공격했다.
공격 방식은 육탄 공격.
정확히는 전갈처럼 기다란 꼬리로 찌르는 형태의 공격이었다.
‘꼬리?’
팔뚝 한쪽에 징그럽게 다가와 찔러 드는 꼬리.
놈의 높은 근력이 내 내구 수치를 뚫고 들어와 상처를 냈지만, [야만왕의 후예]의 하위 방어룬들과 [육탄방어] 덕에 그리 큰 타격까진 아니었다.
오히려 직접 부딪치며 물어뜯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 왜 꼬리 공격을 가한 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베놈 스팅’을 정면에서 막아냈습니다. 견디기 힘든 독의 성분이 온몸을 타고 흐릅니다.]
[‘맹독’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독 내성을 1 획득합니다.]
[‘맹독’ 룬의 파생스킬, ‘포이즌 클로우’가 ‘포이즌 어택’으로 변환됩니다.]
무수히 떠오른 정보창을 보고야 깨달을 수 있었다.
‘맞다. 이 새끼, 독 쓰는 괴수였지.’
만티코어는 전갈의 꼬리를 지닌 특수 형태의 괴수.
그 꼬리에는 매우 강력한 수준의 유독 성분이 담겨있었다.
당연히 녀석이 가진 최고의 공격 역시…
꼬리를 활용한 독 공격.
아마 [베놈 스팅]이라는 스킬도 관련 룬의 파생스킬로 보였다.
‘…내 입장에선 땡큐인데?’
하지만 그 공격이.
누구에게든 효과적일 거라는 건 큰 착각이다.
나는 무구 교체술로 빠르게 [참회자의 검]을 든 후.
잠시 무방비 상태가 된 만티코어의 목덜미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곤 짤막하게 말했다.
“내 독 내성이 10이 넘는다, 이 새끼야.”
지하 던전의 톡신 이구아나.
뱀이 뒤덮은 숲의 독사 괴수들.
수많은 괴수들의 지긋지긋한 독을 맞으며 성장한…
특수 능력치, 독 내성.
이는 어느덧 11을 기록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