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룬 홀더>는 미완의 소설이었다.
극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가 성사되고 괴수에 대한 다양한 단서가 제공됐지만, 나는 결국 완결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 빙의됐다.
그렇기에 당연히 내가 모르는 것도 많았다.
소설에 푹 빠져 구매했던 설정집 같은 것도, 결국은 극에 나왔던 사건이나 괴수 등에 대한 부연설명에 불과했으니까.
‘검은색 마력석은 처음 듣는데….’
그중 검은색 마력석에 대한 건 금시초문이었다.
마력석의 색깔은 등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E~C급 마력석은 주로 푸른색, B~A급 마력석은 붉은색, S급은 보랏빛을 띤다.
그 외에도 특수 종류 마력석마다 색깔이 조금씩 바뀌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검은색 마력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완전히 처음 보는 형태의 마력석이었다.
“…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거무튀튀하던 마력석의 색깔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붉은색으로 바뀐 것.
원래의 A급 마력석 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뭐야, 이게….”
이곳에 뜬금없이 떨어진 이후.
나는 그간 수없이 많은 변수를 마주했었다.
[파상검법]을 배우지 않은 박진우, <염무>로 가지 않은 강주연, 아카데미에 단기 강사로 찾아온 유은설, 기존보다 빨리 나타나고 제압된 김도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다 세기 힘들 정도.
그러나 지금까진 이를 모두 유연하게 대처해왔다.
당황스럽긴 했어도, 나름 최선의 판단을 내렸었다.
그렇기에 이번 변수도 더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검은색 마력석.
생소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지만, 연구해볼 가치는 충분하니까.
‘또 다른 열쇠일 수도.’
나는 원작에서 <빌런>과의 대립 구도가 끝나기도 전에 이곳에 빙의했다.
그렇기에 이후에 이어질 스토리…
혹은 결말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
어쩌면 검은색 마력석은, 그 실마리의 작은 열쇠가 될지도 몰랐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정보의 탐구는 필수였다.
물론, 당장은 물증이 사라져버려서 연구가 어렵겠지만 말이다.
‘시간이 남으니까….’
잠깐 고개를 돌려보니 문가은은 마력석에 이어, 가죽 등의 부산물 채취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는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작업.
나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잠시 미뤄뒀던 결투 승리 보상을 불러왔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빠른 회복력(임시) 2.튼튼한 사자의 힘줄 3.맹독(선택불가) 4.지구력(선택불가) … … 8.사족격투(선택불가)]
‘…뭐야, 이건 또.’
또다.
검은색 마력석에 이어, 또다시 이상한 점이 나타났다.
만티코어가 보유한 여덟 개의 룬.
그중 선택 가능한 첫 번째 룬이 ‘임시 룬’이었다.
나는 이렇듯 임시 상태로 나타나는 룬에 대해 알고 있다.
이건 원래 대상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얻어진 룬.
일전에 상대했던 안도권이 비슷한 케이스다.
그는 당시 [광폭화 포션]을 사용하며 [무자비한 돌격] 룬을 임시로 얻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정보창들도 열어봤다.
내가 잡은 만티코어는 총 세 마리.
개체가 다르기에 다른 만티코어에게서도 룬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튼튼한 사자의 힘줄 2.맹독(선택불가) 3.지구력(선택불가) … … 7.사족격투(선택불가)]
‘역시.’
생각했던 대로였다.
다른 만티코어에겐 임시 룬인 [빠른 회복력]이 없었다.
오직 첫 번째 만티코어.
즉, 순간적으로 ‘마력석이 검은색으로 빛났던 특수 만티코어’에게서만 임시 룬이 존재했다.
마력석의 변색이 단순히 특이 현상으로만 끝나지 않음을 말해주는 상황이었다.
‘일단 다 받자.’
우선 룬을 받고 정보를 확인해봐야, 뭐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른 회복력을 선택하셨습니다. 3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2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신성을 2 획득합니다.]
[튼튼한 사자의 힘줄을 선택하셨습니다. 11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6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을 2 획득합니다.]
[상위룬과 연동되는 룬입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튼튼한 사자의 힘줄’ 룬이 ‘야만왕의 후예’ 룬의 하위룬으로 등록됩니다.]
[튼튼한 사자의 힘줄]은 신체강화류의 레어룬이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얻었던 전투보조룬 중 하나.
더 정확히는 근력 쪽을 보조하는 룬이었다.
특히 일전에 얻었던 [도마뱀의 비늘]이나 [질긴 늑대 가죽]처럼 관련 짐승의 이름이 그대로 들어가며, 상위룬 [야만왕의 후예]와 연동이 됐다.
덕분에 상위룬을 얻은 이후 처음으로, 새로 얻은 룬의 하위룬 등록이 가능했다.
‘그리고….’
문제의 [빠른 회복력].
나는 서둘러 이 룬의 정보를 불러들였다.
<룬 정보>
◎이름: 빠른 회복력
◎등급: 레어(Rare) / 격하(Downgrade)
◎레벨: 2
◎새겨진 부위: 오른쪽 손바닥
◎특수효과
: (격하된 상태로 인해 효과가 봉인됨.)
: 마력 공격으로 입은 부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신성 수치에 비례해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파생스킬: -
◎세부정보
: 야만 일족, 바바리안의 대표적인 강화술 중 하나. 루덴아크 주문의 특수한 힘을 통해 대상에 인위적으로 주입 및 각인됐다. 그 과정에서 본래의 힘보다 격하된 상태로 등록됐다.
‘이게….’
정말 말 그대로 ‘문제의 룬’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당혹스럽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라도 한 것처럼, [빠른 회복력]의 룬 정보엔 낯설고 새로운 정보들이 여럿 적혀있었다.
먼저 처음 보는 등급인 ‘격하(Downgrade)’.
상위룬과 비슷하게 본래 등급 옆에 추가로 기록된 ‘격하’는, 디버프 등급이라는 걸 증명하듯 특수효과 하나가 봉인되어 있었다.
아마 만티코어가 이 룬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 것 같은데…
이게 에픽급에서 레어급으로 격하됐다는 건지, 아니면 등급은 같은데 효과만 격하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는 이어질 세부정보에 비하면 약과였다.
‘바바리안? 루덴아크?’
바바리안 강화술, 그리고 루덴아크 주문.
[빠른 회복력]을 설명하는 세부정보에 기록된 내용인데, 전부 처음 듣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물론, 예상 가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마법사 계열의 주문법 중 하나인가?’
마법사 계열의 룬 홀더.
그들에겐 각각의 주문법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주문법이 [플로리안 주문]과 [아드리안 주문].
전사 계열이 [삼재검법]을 보유하고 궁수 계열이 [별절사법]을 보유한 것처럼, 마법사 계열에겐 마력을 배열하고 발현할 때 활용하는 공통룬 중 하나였다.
아마 [루덴아크 주문]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게 마법사 계열의 주문법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추측이 들었다.
완전히 처음 들어보는 주문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바리안 강화술…은 신성 쪽 능력인 것 같고.’
애초에 강화술이나 상태 이상과 관련된 능력은 대부분 신성 계열이 다루는 힘이다.
룬의 위력이 신성 수치에 비례한다는 걸 보면 더 확실했다.
특히 ‘바바리안’이라는 이름.
난 이걸 들어본 적이 있었다.
상위룬이자 전설룬인 [야만왕의 후예]를 획득할 때, 세부정보엔 분명 ‘야만왕 마그누스 바바리안’이라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야만 일족과 야만왕이 어느 정도로 긴밀한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로 연관이 있는 개념인 건 맞아 보였다.
“다 했다…!!”
그렇게 새로운 정보들에 잠시 당황했을 무렵.
문가은이 문득 만세를 하며 소리쳤다.
다른 만티코어의 부산물을 채취하러 갔던 그녀.
아까 하피를 잡을 때부터 끙끙대더니, 이번엔 기어코 가죽을 도축하는 데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죽 도축한 거야?”
“응! 한번 봐 봐.”
문가은이 직접 도축한 만티코어의 가죽을 건넸다.
“…….”
상당히 허름해 보이는 모습의 가죽.
부정확한 도축으로 인해 두께가 일정하지 않았고, 미숙한 실력 때문에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찢어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은 걸 알 수 있는 가죽이었다.
나는 웃으며 문가은에게 다시 가죽을 건넸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대형 클랜은 전문 도축업자 쓰잖아. 궁수 계열이 도축까지 잘 하면 사기캐지. 너무 실망하지 마.”
“…그 정도야?”
“응. 우리 앞으로 마력석 길만 걷자.”
“이씨….”
문가은은 삐진 듯한 얼굴로 도축한 가죽을 던져버렸다.
‘실망하지 말라니까, 바로 실망하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다시 사냥하러 가자. 우리 잘하는 거 해야지.”
“치, 알았어.”
잠시 미뤄뒀던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다.
검은색 마력석과 [빠른 회복력].
당혹스러울 정도로 낯선 정보들이었지만…
이는 어쨌든 나중에 조금 더 고민해볼 문제다.
당장 목표는 ‘구름을 가린 둥지’ 공략.
이를 위해 지금은 다시 보스룸으로 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