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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29화 (129/353)

“배열이 너무 빨라. 마음을 더 가라앉혀. 마력 구조가 복잡할수록, 천천히 돌아가야 해. 발현할 때 마력이 튀지 않게, 차분하게 순차적으로 배열하렴.”

오늘도 어김없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김채은은 이를 머리에 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흘려보내려 노력했다.

스승님은 언제나 ‘참고’를 강조했다.

옆에서 던지는 조언은, 항상 참고에 그쳐야 한다고.

깨닫고 한발 앞서가는 건, 결국 김채은 자신이어야 한다고.

때문에 정선영과 함께 훈련하는 전담 수업 날.

무수히 많은 조언이 귓가를 지나갔지만, 김채은은 이를 마음에 새김과 동시에 떨쳐내려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마법사 계열에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확실한 한 방.

조금 느리더라도 완성된 공격.

앞선에서 전사 계열들이 버텨주는 만큼, ‘딜러’인 마법사 계열은 기대치에 맞는 딜을 준비해야 했다.

‘…됐다!’

끊임없이 혼자만의 싸움을 하던 김채은은, 마침내 준비 과정을 완성하며 마법을 시전했다.

[얼티밋 프로스트]와 [필드 프리징].

단일기와 광역기를 동시에 펼치는, ‘더블 캐스팅’이었다.

팟- 쩌저저적-

스스스-

괴수 대용으로 준비됐던 마력 구조물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중앙의 바위도, 주변의 초목도 전부.

상반된 형태의 두 마법이 성공적으로 시전됐음을 알려주는 결과였다.

무거운 표정으로 옆에서 바라보던 스승님.

정선영도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축하한다. 기어코 더블 캐스팅을 해내는구나.”

“아….”

더블 캐스팅.

최소 B급 홀더에 다다른 마법사 계열이,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면 활용할 수 있는 주문 방식 중 하나.

여기서 ‘특수한 조건’이라는 건…

[아드리안 주문] 룬을 보유한 마법사 계열을 말했다.

[아드리안 주문]은 까다로운 주문법 룬이다.

배열과 발현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레벨을 올리는 것도 상당히 어려워 [플로리안 주문]에 비해 단점이 훨씬 많은 룬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장점도 상당히 많은 룬이었다.

대표적인 활용 방식이 방금과 같은 ‘더블 캐스팅’.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펼칠 수 있다는 건, 한계가 명확한 마법사 계열에게 있어 상당히 매력적인 장점이었다.

“이제 정말 B급이구나. 홀더 성과만 채우면 승급은 쉽겠어.”

멍한 얼굴의 김채은에게, 또다시 정선영의 축하가 들려왔다.

그렇다, B급 홀더.

방금 더블 캐스팅에 성공함으로써, 김채은은 실력으론 B급에 완전히 다다르게 됐다.

단순히 말뿐이 아니었다.

[정교한 배열, 치밀한 응용, 깨끗한 발현! 마력을 다루는 당신의 솜씨는 극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마력과 주문법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마력제어’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드리안 주문’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빙결’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3 획득합니다.]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정보창이 쉴 새 없이 나타났다.

덕분에 주력룬들의 레벨이 10레벨을 넘어섰고, 마력 수치도 50을 넘어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수치상으로도 김채은이 B급 홀더가 됐음을 알려주는 정보창들이었다.

그리고….

[얼음에 대한 친화력이 경이로운 수준에 가깝습니다. 높은 친화력과 이해도는, 경지에 다다랐을 때 또 다른 바람을 불러옵니다. 당신에게 내재된 재능이 피어납니다.]

[새로운 룬 ‘얼어붙은 전장’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1 획득합니다.]

또 한 번 떠오른 정보창에…

이번엔 김채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각성 시의 룬은 해당 홀더에게 주어진 재능.

자신은 노멀룬인 [빙결]을 받았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를 주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스, 스승님. 저….”

그런데 지금.

그 일반적인 룰이 깨지고 있었다.

스승님이 가지고 있는 에픽룬.

그것도 얼음 속성에선 최고로 불리는 [얼어붙은 전장].

그 룬이…

김채은의 <홀더 정보>에 기록되고 있었다.

굳게 닫혀있던 재능의 꽃봉오리가, 마침내 꽃을 피우는 순간이었다.

* * *

구름을 가린 둥지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처음엔 이토록 광활한 평야를 언제 다 돌지 싶었는데, 의외로 방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가은의 탐색류 룬인 [돌고래의 음파].

이를 따라 괴수들이 뭉쳐 있는 곳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방향이 결정됐고… 이를 쭉 따라가니 어느덧 초입을 지나 중간부를 넘어서고 있었다.

“가은!”

“응!”

문가은과의 파티사냥 역시 점점 숙련도가 높아졌다.

원래도 호흡이 안 맞는 건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던전을 함께 공략하다 보니 수준이 훨씬 올라갔다.

이제는 서로 이름만 불러도 뭘 해야 할지 알 정도.

한창 김채은과 파티사냥을 할 때의 호흡과 거의 비슷했다.

“흡….”

“도재현!!”

물론, 위기가 없던 건 아니다.

B급 괴수는 몇 마리가 와도 문제없었지만, A급 괴수의 개체가 네 마리를 넘어서면 상당히 버거웠다.

공중형 괴수는 보통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그것도 속리산 필드에만 적용되는 모양이다.

구름을 가린 둥지에선 수없이 많은 괴수가 무리를 지으며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을 해결해 주는 건…

“아!”

“성나연 홀더님!”

뒤쪽에서 굳건하게 호위 중인 A급 홀더, 성나연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우리의 사냥을 지켜보다가, 이렇듯 위험한 상황이 찾아올 때면 직접 나서며 괴수들을 처리해줬다.

더없이 숙련된 바람 마법과 화려한 검술.

같은 멀티 홀더로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실력.

그를 선보이며 묵묵히 우리의 사냥을 도와줬다.

…사실상 파티에 A급 홀더가 한 명 더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성나연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던 걸 하셔도 됩니다.”

도대체 그 ‘하던 거’라는 게 뭔데….

조용히 도와주는 것 같으면서도, 그녀는 한 번씩 뭔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나와 문가은은 이 악물고 그 시선을 무시했다.

그 모습에 혹해 스킨쉽 같은 걸 했다간, 문정혁에게 또 어떤 보고가 들어갈지 몰랐다.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또 걱정하려나?’

문정혁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어쨌든 문가은과의 호흡, 그리고 성나연의 도움으로 우리는 드디어 던전 막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부의 끝자락.

광활한 평야 끝에 드디어 보이는 한 둥지.

던전의 입구가 둥지였듯, 보스룸 또한 둥지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평범한 둥지는 아니었다.

“와… 뭐가 이렇게 커?”

“이걸 둥지로 봐야 되나?”

우리는 질린 얼굴로 거대 둥지를 바라봤다.

일반 둥지가 작은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져 있다면…

이 둥지는 거대한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로로 눕혀진 엄청난 크기의 고목들과 그 안에 마련된 커다란 공터.

둥지라고 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보스 룸은 맞겠지?”

“당연하지. 이 넓은 평야에 오아시스처럼 혼자 떡하니 있는데.”

보스 룸 내부엔 갖은 지형지물만 있을 뿐.

특별히 눈에 띄는 괴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던전 내 괴수가 전부 공중형 괴수였고, 곧 마주하게 될 보스 괴수도 공중형일 확률이 높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끼이이이-

쿠에에에-!!

거대 둥지의 한편에 올라 서 있자…

어디선가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들었던 공중형 괴수의 울음소리 중 단언컨대 가장 소름 끼치는 괴성.

멀리서 듣는데도 파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온다!”

햇빛을 가리며, 거대한 괴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 하늘을 뒤덮을 듯한 크기의 몸과 날개.

새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아래로 뻗은 다리와 거친 생김새를 보면 영락없는 도마뱀.

짙푸른 빛깔로 뒤덮여 한 번씩 반짝이는 비늘까지.

용 혹은 아룡.

지금껏 만난 괴수 중 그에 가장 가까운 이를 찾으라면, 저 녀석을 꼽을 정도로 드래곤과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풍문으로만 듣던 A급 괴수.

그 위용은 S급에 가까워 보이는 괴수.

‘와이번’이 분명해 보였다.

“다들 제 뒤로 오십시오!”

그리고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성나연이 우리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어 곧바로 마력을 활용해 뭔가 발현하는 그녀.

던전 입장 때 [레비테이션]을 쓸 때와 비슷하다.

바람 속성의 마법을 준비하는 자세였다.

끼이이이-

쿠에에에-!!

다시 한번, 와이번이 울부짖었다.

콰, 콰가가-!!

팟, 팟, 쿠우웅!!

그리고 둥지 주변의 지형지물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마치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무형의 기운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차근차근 무너졌다.

“이, 이게….”

성나연의 부름에 재빨리 그녀 곁으로 다가온 우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바람 속성 마법으로 강력한 방어막을 펼친 그녀 덕에, 우리는 다행히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나연이 말을 꺼냈다.

“바람 속성 마력룬을 다룰 줄 아는 괴수입니다. 지금껏 마주한 괴수들보다 훨씬 강한 보스네요. 최소 A급에, S급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집중된 마력이 너무 많아서, 다급히 대처하긴 했는데…”

그녀의 시선이 하늘을 장악한 와이번에게 향했다.

“저 괴수, 아무래도 저보다 바람을 더 잘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건 분명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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