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나연은 주력룬이 두 개인 멀티 홀더다.
검을 다루는 솜씨는 같은 A급 중에서도 견줄 이가 많지 않았고, 바람 속성 마력룬에 있어선 최고라고 인정받는 실력자다.
괴수와 홀더가 나타나고도 수십 년.
그동안 물리룬과 마력룬을 동시에 사용하는 다재능 멀티 홀더들이 수없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권위자를 꼽으면 항상 성나연만 언급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 성나연보다 바람을 더 잘 다룬다고?’
나는 질릴 듯한 얼굴로 와이번을 바라봤다.
괴수 등급부터 성향, 특징까지.
알려진 게 전혀 없는 보스 괴수.
관련 정보 역시 알음알음 소문으로만 알려져, 사전에도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괴수.
그런 녀석이, 또다시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는 알아냈네.’
성나연보다 바람을 잘 다룬다는 사실.
그건 다시 말해 녀석이 마력 공격에 능력치가 치중된, 딜러형 괴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딜러형 괴수는 한계가 명확하다.
공격이 강력하지만, 그만큼 방어엔 또 약하다는 것.
‘야산의 이무기가 그랬지.’
뱀이 뒤덮은 숲의 보스 괴수인 야산의 이무기가 그러했다.
녀석은 땅을 자유자재로 흔들고 가르며 혼란을 줬고, 강력한 나무 공격으로 공략 파티를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그 모든 공격이 막히자, 결국 약점을 드러냈다.
기습적인 물리 공격에 큰 타격을 입었고, 공들인 마력 공격엔 완전히 무너졌다.
아마 고목으로 몸을 이동하는 기믹만 아니었다면 훨씬 쉽게 사냥했을 것이다.
‘저 녀석도 반격만 할 수 있다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는 와이번을 바라본다.
하늘을 마치 집처럼 날아다니는 저 녀석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막하긴 했지만, 어쨌든 공략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녀석의 공격을 모두 막거나 피한 후.
녀석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확실한 반격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그대로 승기를 가져올 게 분명했다.
쿠에에에-!!
소름 끼치는 괴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또 한 번.
바람 속성의 마력 공격이 찾아온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하나하나 강한 마력이 담겨있는 무형의 기운.
그건 바람으로 구성된 일종의 ‘창’이었다.
그것도 오로지 투창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창.
무수히 많은 ‘바람의 투창’이, 자비 없이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읏….”
앞쪽에서 홀로 공격을 막아내는 성나연이 침음성을 흘렸다.
첫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던 그녀도, 두 번째 공격엔 살짝 버거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안 좋아.’
확실히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성나연은 바람 속성의 마력룬을 사용하지만, 어쨌든 그 보조를 바탕으로 앞선에서 딜탱을 겸하는 브루저다.
검을 들고 앞에서 싸워야 할 그녀가…
방어 마법만을 활용하며 우리 쪽에 머물러 있다.
그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본인 스스로도 와이번에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쉽지 않은 전투 구도.
그를 알려주는 상황이었다.
나는 입술을 살짝 물며, 문가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원거리 공격은 어때?”
와이번이 나타난 시점부터, 이미 시위를 당기던 문가은.
그녀의 공격은 벌써 몇 번이나 하늘을 향해 시도됐었다.
하지만 문가은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거리가 멀어. 마력을 쓰면 어떻게든 닿을 수 있는데, 그 때마다 저 괴수도 팀장님처럼 방어 마법을 쓰는 건지 번번이 막혀.”
우리에게 쏟아내는 공격 외에도, 방어 마법까지 펼치는 와이번.
성나연보다 바람을 잘 다룬다…
그 말이 단번에 이해되는 룬 활용도였다.
콰, 콰가가-!!
쿠우웅!!
둥지 주변이 재차 무너졌다.
우리의 발이 닿은 곳도 얼마 안 있어 무너질 모양새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 당하게 될 거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나는 결심하곤 앞쪽의 성나연에게 말을 건넸다.
“성나연 홀더님, 레비테이션 가능합니까?”
서둘러 꺼낸 그 말에 성나연이 당황했다.
“지금요?”
“네. 제가 공중으로 가서 저 녀석의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원거리 공격 간엔 싸움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탱커인 누군가가 나서는 것.
그를 위해선 일단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와이번이 자리한 곳은 하늘.
놈에게 다가가려면, 결국 성나연의 [레비테이션] 스킬이 필요했다.
그 제안에 성나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 도재현 홀더가 위험해져요. 공중으로 올려줄 순 있어도, 상대 괴수의 공격까지 피할 수 있게 제가 조종해줄 순 없어요. 그건 지금 제가 직접 올라가서 상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해요. 집중이 깨져서 레비테이션이 풀리니까요.”
“괜찮습니다.”
성나연의 우려는 합당했다.
[레비테이션]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와이번과 싸우다 보면 온전히 그에 집중할 수 없게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내겐 돌격류 룬인 [천하제일 경주마]와 그 하위룬인 [고속비행]이 있었다.
한 번 올라가면, 그 이후를 연계할 힘이 내게 있다.
일단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늘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나는 공중에서 녀석을 향한 돌격이 가능했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선 녀석과 맞부딪혀야 합니다. 성나연 홀더님도 물리 공격이 가능하시지만, 지금 바람속성 마법을 써주실 분은 성나연 홀더님밖에 없습니다. 절 믿고 보조해주시면, 제가 앞에서 틈을 만들겠습니다.”
와이번은 공격이 강한 만큼, 방어가 약하다.
지금이야 마력룬을 통해 방어까지 겸하고 있지만, 그에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면 원거리 공격도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었다.
성나연 또한 산전수전 다 겪어온 A급 홀더다.
그녀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성나연은, 이내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지금 바로 갈게요.”
“예.”
결정이 끝났다.
더 망설일 시간도, 필요도 없었다.
방금까지 한 차례 방어 마법을 펼쳐낸 성나연은, 쉬지 않고 곧바로 [레비테이션]을 사용했다.
부, 부우우-
붕 뜨는 기분과 함께 공중으로 몸이 부양된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내 몸.
와이번이 있는 높이와 비슷해지고, 그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그 과정을 기다리며, 손엔 [참회자의 검]을 들었다.
검을 든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껏 그토록 멀리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에게 선공을 가했던 와이번이다.
하물며 이번엔 직접 하늘로 올라와 거리를 좁힌다.
줄곧 공중을 지배하던 녀석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쿠, 에에에-!!
녀석의 세 번째 마력 공격이 찾아온다.
이번엔 꽤 빠른 타이밍이다.
바람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수의 창.
그 대상은…
공중에 홀로 선, 나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흘러라.”
녀석과 마주 보며 선 하늘에서, 나는 아껴뒀던 궁극스킬을 사용했다.
[유수활검].
뭐든 흘려내는 검의 춤으로, 날아드는 투사체를 모조리 튕겨내는 스킬.
그건 바람 속성의 투사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스- 스아-
캉- 카가강-
무아지경으로 바람의 투창을 쳐낸다.
그 많던 목조 뱀도, 강력한 물의 탄환도 튕겨냈던 스킬이다.
와이번의 바람 공격을 쳐내는 것 역시 가벼웠다.
‘여기까지…!!’
[유수활검]의 시전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녀석의 공격이 날아들고, 모두 튕겨내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날아든 바람 공격을 다 튕겨내자, 내 몸이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체공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검무를 춘 탓에, 성나연의 [레비테이션]이 자연스럽게 풀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급격히 추락하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스킬 하나를 더 사용했다.
‘광폭화.’
이 한 순간을 위해 아껴뒀던 또 다른 스킬.
[야만왕의 후예]의 [광폭화].
10분간 내 능력치를 50% 상승시키는 사기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힘이 넘쳐났다.
나는 이를 바탕으로, 순간 허공을 박차며 점프했다.
한계를 넘어선 능력치 펌핑 덕에, [레비테이션]이 없어도 한 번 정도는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돌격!’
연계를 쉬지 않았다.
곧바로 [천하제일 경주마]를 활용했다.
하위룬으로 [고속비행]이 있기에, 생각했던 대로 하늘에서도 돌격이 가능했다.
추락하려는 몸을 움직여, 공중에서 쏘아붙이는 비행.
하강하며 가속도가 붙는 돌격이었다.
쿠에에….
살짝 진정된 와이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내 다시 방어 마법을 펼치는 게 보였다.
지금껏 전투를 주도하던 녀석답지 않게, 뭔가 급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많던 마력 공격을 모두 빗겨 쳐내고, 갑자기 돌격류 룬까지 활용하며 지척까지 다가오고 있으니… 줄곧 하늘을 지배 중이던 녀석에겐 당혹스러울 게 분명했다.
“늦어!”
상위룬으로 조합되며 돌격의 수준이 확 올라간 [천하제일 경주마]는, 돌격의 템포부터 다르다.
상대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방어를 하든.
그보다 반 박자 빠르게 들어간다.
그게 [천하제일 경주마]의 돌격이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엑셀 피어싱…!!’
[참회자의 검]이 들려있던 내 손엔, 어느새 ‘무구 교체술’을 통해 창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일전에 최유민이 만들어 줬던 장비 중 하나.
노멀 등급의 평범한 창.
하지만 [천하제일 경주마]를 활용할 땐.
그리고 그 파생스킬인 [액셀 피어싱]을 사용할 땐.
그 무엇보다 파괴적으로 변하는 무기였다.
그리고….
‘닿았다.’
쿠, 쿠에에에…!!
와이번이 급히 만들어낸 바람 속성 방어 마법을, 내 [액셀 피어싱]이 찢고 들어간다.
도저히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보스 괴수.
녀석에게 처음으로 타격을 입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