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마력의 빛이 쏟아진다.
와이번의 거센 등가죽.
그 깊숙한 곳에서 터진 [파상천검]은, 내 몸에 남아있던 모든 마력을 빌려 폭발적인 마력 공격을 구현했다.
와이번은 그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출혈, 독, 화살, 바람…
각종 물리 및 마력 공격과 다양한 스킬들.
워낙 많은 공격이 겹쳐 상처가 쌓여 있었던 탓에, 저항할 틈도 없이 생을 마감한 모양이었다.
지긋지긋했던 전투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결과였다.
콰, 콰아앙-!!
우우웅-
엄청난 굉음이 던전을 울린다.
와이번의 거대한 몸이 땅으로 추락하며 난 소리다.
놈의 등에 올라타 있던 나 역시 그대로 추락하는가 싶었지만, 성나연의 바람이 제때 힘을 발휘하며 날 받아줬다.
그녀의 궁극스킬은 내가 와이번의 등 뒤에 도착했을 때 지속시간이 끝난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전투가 끝나고 [레비테이션] 스킬을 재차 사용한 모양이었다.
나는 가볍게 땅에 착지한 후.
성나연과 문가은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성나연에게 감탄을 표했다.
“대단하시네요. 아직도 마력이 남아있으시다니.”
그러자 성나연이 장난기 섞인 얼굴로 웃었다.
“놀리시는 겁니까? 제대로 안 싸웠다고.”
“예? 하하, 아닙니다. 다 같이 만든 승리잖아요. 성나연 홀더님 아니었으면, 땅에 처박힌 게 와이번이 아니라 저였을 겁니다.”
앞선에서 활약한 나도 나지만, 뒤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문가은과 성나연도 큰 활약을 했다.
문가은의 화살은 적당한 시점에 와이번에게 타격을 줬고, 성나연의 바람은 아예 전투 구도를 바꾼 키였다.
아마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번 보스 사냥은 정말 쉽지 않았을 거다.
그걸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둘의 얼굴도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어쨌든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재현 홀더는 소문보다 훨씬 더 대단한 홀더였군요. 과연 각 클랜에서 탐낼 만한 인재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번 전투는 내가 생각해도 잘 헤쳐가긴 했다.
효율과 가능성을 고려해 불필요한 힘은 덜어내고,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모든 룬과 스킬을 활용해 와이번에 맞서 싸웠다.
문가은과 성나연의 보조를 믿고 움직인 것은 덤.
던전 초입부에서 만티코어와 싸울 때 살짝 방심했던 걸 생각하면, 이번은 스스로 생각해도 확실히 잘 싸운 전투였다.
성나연은 고생했다는 인사를 끝으로.
간단히 짐을 정리하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럼 저는 먼저 던전을 나가 있겠습니다. 두 분께선 공략 보상을 확인하시고, 천천히 던전을 나오시길.”
“정말 괜찮으세요? 그래도 다 같이 공략한 던전인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호위를 명목으로 우리를 따라왔던 성나연.
그녀는 사실상 이번 던전 공략 파티 멤버 중 하나였다.
그녀의 [레비테이션]이 없었다면 애초에 던전 입장부터 불가했을 거고, 이후 수가 많아진 괴수들을 사냥할 때, 마지막 보스 괴수인 와이번을 사냥할 때.
그녀는 필요한 순간마다 직접 나서며 도움을 줬었다.
그런 그녀가 아무런 보상도 챙기지 않겠다니.
얼룩진 암석 더미 공략 때와 비슷했지만, 이번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유은설은 나를 파티원으로 영입한다는 목적이라도 있었지, 지금의 성나연은 오직 클랜의 임무에 따라 움직이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성나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계속 미리 말씀드린 겁니다. 어디까지나 제 목적은 호위. 습격 대상이 좀 다르긴 했지만… 뭐, 괜찮습니다. 이번 던전에서의 위험은 다 제거한 것 같으니까요.”
성나연은 그 말을 건넨 후 던전을 나갔다.
정말 우리에게 보상을 모두 넘긴 것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뭔가 죄송하네.”
“뭐가 자꾸 죄송해. 괜찮아. 어차피 말만 저렇게 하지, 팀장님도 다 보상받아.”
다른 한쪽에 있던 문가은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아, 그래?”
“당연하지. 성과 없는 초과 근무가 어딨어. 특히나 팀장님 같은 고급 인력은 더 몸값이 비싸고 까다로운데.”
그와중에 문가은이 마법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곤 포션 몇 개를 꺼내 내게 건넸다.
[치유] 효과가 있는 포션.
그리고 스태미나를 보충해주는 포션.
전투가 막 끝난 내게, 딱 필요한 아이템들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손짓하며, 그녀가 건넨 포션들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마 우리 아빠한테 개별로 보상받을 거야. 호위 TF팀 인원들은 안 오고 팀장님만 온 걸 보면, 개인 의뢰 형식으로 부탁받으신 것 같으니까. 너도 알잖아. 우리 아빠 보호 의식 센 거.”
“-꿀꺽. 알지, 알지.”
문정혁의 딸 사랑은 누구보다 잘 안다.
문가은에게 많이 듣기도 했고, 그와 직접 술자리까지 함께하며 속사정을 전부 들었었으니까.
그런 그에게 직접 보상을 받는다면…
아마 이번 임무의 성과를 고려했을 때 적진 않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문가은도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웃었다.
“하여간 쓸데없이 잘 챙긴다니까. 그렇게 괜찮다고 하셨는데.”
“괜히 미안하잖아.”
“치, 어련하시겠어. 얼른 보상 챙겨서 가자. 나도 이제 피곤해.”
“응.”
처음 올 때만 해도 막연하기만 했던 미발견 던전.
‘구름을 가린 둥지’.
이 생소한 던전의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이 난 순간이었다.
* * *
서울 영등포구.
외곽 쪽에 자리한, 인적이 드문 동네.
차수연은 그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몇몇 블록을 지나 허름한 건물로 발을 옮겼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건물 안쪽을 자꾸 울린다.
지하 3층.
뭐가 있긴 한 걸까 싶은 낡은 건물이지만, 세 층을 내려가니 먼지 가득한 입구가 보였다.
손님 하나 없는데도, 활짝 열려있는 입구였다.
“…….”
차수연은 가만히 그 입구를 바라봤다.
그래도 꼴에 매장이 있긴 했었는지, 안쪽엔 갖은 좌석과 테이블이 있었다.
이쪽 방면으론 전문가인 그녀는 이를 단숨에 알아봤다.
와인바…
여긴 나름 와인바의 구색을 갖춘 곳이었다.
“일찍 왔군.”
그 앞에서 가만히 서 있자, 안쪽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입구 바로 앞의 테이블.
먼지 가득한 소파에 앉은 채, 맥주를 마시는…
짙은 갈색 머리카락의 한 남자였다.
그 모습을 시야에 담자마자, 차수연은 안으로 들어가 어색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부…마스터를 뵙습니다.”
“이번엔 무슨 컨셉이지? 갑자기 존댓말이라니. 익숙하지 않은데.”
한 번에 맥주를 모두 들이마신 남자는, 또다시 잔에 맥주를 따랐다.
이미 한참 전에 와있었던 걸까.
그의 옆엔 빈 맥주병이 여섯 병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번에 제정된 규칙이잖니…잖습니까. 수뇌부끼리도 계급상 존대를 하라는.”
“그런 게 있었나? 재미없는 규칙이군.”
“그거야 씨발, 황성연 네가…!!”
열 받은 차수연에게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샜다.
순간 흘러나온 부마스터의 본명과 거친 욕설.
자신도 모르게 이를 내뱉은 차수연은, 이내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부마스터께서, 한번 거하게 난리 쳐서 그런 거 아닙니까. 저번 불의 심판 사건으로 말싸움하다가, 순간 강남 지부장 목 따버려서.”
“재미없는 얘기군.”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또 맥주를 들이마셨다.
마검의 소유자, 황성연.
<빌런> 클랜의 부마스터이자, ‘광화문 집단 살인사건’의 주범.
지금껏 수없이 많은 홀더와 일반인들을 살해해 왔으며, <빌런>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수배범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먼지 가득한 소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허름한 건물.
폐쇄된 와인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 차수연이 굳이 찾아온 건, 부마스터인 그와의 비밀 접선 때문이었다.
탁-
황성연이 입에 담배 하나를 물었다.
그리곤 종이 묶음 하나를 품에서 꺼내 테이블에 놨다.
차수연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뭡니까.”
“재미없는 작전.”
종이 묶음은 각종 기사와 논문, 에세이 등 다양한 글이 종류별로 기록된 묶음이었다.
그리고 이는 <빌런>에서 주로 쓰는 암호화 문서 중 하나였다.
자주 봐왔던 문서답게 해석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수연은 빠르게 이를 훑으며 해석을 마쳤다.
그리고 이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말했다.
“2주… 후?”
“음.”
클랜에서 계획한 날짜는 지금부터 2주 후.
계획한 작전은, ‘아카데미 습격 작전’.
S급 홀더인 유은설을 잠시 아카데미 밖으로 유인한 후, 내부를 습격해 주요 인물들을 살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그 아이템’을 찾아 획득하는 것.
오래전부터 계획됐던 거대 작전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잘 하면 나도 낄 수 있다. 그러니 디테일을 잘 조립해놔라. 어쨌든 전권은 너한테 있으니.”
왜, 라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빌런>은 그 어느 클랜보다 자유분방한 클랜이긴 하지만, 특정 목표를 지니고 있을 땐 군말 없이 수뇌부의 방침에 따라야 했다.
그리고 차수연은 마찬가지로 수뇌부.
그런 그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클랜의 부마스터와 마스터뿐이었다.
즉, 이번 작전은.
<빌런>의 클랜 마스터에게서 직접 하달된 명령이란 뜻이었다.
황성연이 물던 담배를 버리고, 또다시 맥주를 마시며 웃었다.
“오랜만에 잘해보자, 이수연.”
“씨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하지 않았니?”
“음. 이제야 재밌는 말투로 돌아왔군.”
한기가 내려앉듯, 와인바에 몰아치는 거대한 중력.
황성연은 그 기운에 작게 웃었다.
평화로운 클랜 수뇌부의 접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