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연휴, 그리고 치열했던 공략이 끝난 후.
화요일의 아침.
나는 공강 시간을 이용해 잠시 협회에 와 있었다.
미발견 던전인 ‘구름을 가린 둥지’와 관련해 처리할 보상 문제도 있었지만, 며칠 전부터 계속 계획하고 있던 승급 목적의 방문이기도 했다.
“능력치 점검 결과… 세 개의 주요 능력치 중 근력과 속력, 총 2개 부문에서 기준 능력치를 초과하셨어요. 한 개만 넘어도 충족되는데, 도재현 홀더님은 두 개나 넘으셨네요.”
익숙한 목소리의 여자가 보고서를 읊었다.
C급 홀더, 이지혜.
일전에 내 승급심사를 맡았던 협회 소속 직원이다.
이번은 등급이 등급인 만큼 그녀가 직접 심사를 하는 건 아니고, 이미 다른 전문 직원들로부터 심사된 결과를 종합해 내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전에 평가받으신 룬 활용 및 숙련도 점검은 만점에 가까우세요. 물리룬과 마력룬의 적절한 배합, 감각적인 활용. 멀티 홀더로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홀더로서의 기본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호의적인 얘기가 계속해서 들렸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결과를 들으니 기분이 들떴다.
“저, 그럼…”
말끝을 흐리며 묻자, 이지혜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축하드려요. 도재현 홀더님은 오늘부로 협회 공인 B급 홀더로 승급하셨습니다. 주요 능력치 평가, 룬 활용 및 숙련도 심사, 기준 홀더 성과 점검… 모든 요구 항목을 만족한 결과예요.”
B급 홀더.
처음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만 해도,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던 등급.
재능의 끝판왕이라는 강주연의 각성 등급이자, 노력으로 닿으려면 한참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등급.
그 등급을 드디어 내 것으로 만들었다.
이곳 세계에 떨어지고 난 후.
F급 홀더로 등록한 후, 약 9개월 만의 쾌거였다.
“전산상으론 이미 B급으로 등록되셨고, 정식 확인증은 일주일 뒤에 발급되실 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지혜가 내게 몇몇 서류를 넘기며 설명을 이었다.
B급 홀더로서의 혜택이나 의무사항, 혹은 세금에 관련된 문제 등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었다.
간략하게 10분 정도 설명을 마친 이지혜.
그녀는 다시 한번 눈을 빛내며 날 봤다.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하세요. C급 홀더로 승급하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B급이라니….”
엊그제…가 사실 맞긴 하다.
C급으로 승급했던 게 불과 네 달 전.
방학이 막 시작하던 6월 말이었는데…
그 네 달 안에 능력 평가는 물론, 아득하다고 생각했던 성과 평가까지 모조리 충족하며 승급을 했으니.
그를 모두 지켜본 이지혜의 입장에선 믿기지 않을 만도 했다.
이 정도로 빠른 승급은 나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사관님이 성과 평가 관련해서 도움 많이 주셔서 가능했어요. 감사합니다.”
“에이. 전 그냥 직원으로서 일한 것뿐인데요, 뭘.”
참고로 문가은도 B급으로 승급했다.
그녀는 나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와서 승급을 확정 짓고 갔는데, <로열>에서 클랜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꽤 오래됐기에 성과 평가는 가볍게 통과한 모양이었다.
B급으로서의 능력이야 뭐, 함께 파티사냥을 하며 내가 직접 확인했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럼 이제 B급이 세 명이네.’
아카데미 지하 던전 5인 파티.
그중 세 명이 벌써 B급이었다.
강주연, 문가은, 그리고 나.
게다가 김채은과 박진우 역시 성과가 부족해 승급만 못 했을 뿐이지, 이미 능력으론 B급에 도달한 홀더들이다.
파티원 전원이 B급 홀더인 파티.
임시로 만들었던 초창기와 달리, 이젠 정예 파티라는 느낌이 물씬 나고 있었다.
“아, 참. 그리고 이번에 공략하신 미발견 던전 말인데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지혜가 말을 꺼냈다.
“공동 소유권에 관한 논의는 사흘 안에 확정될 것 같아요. 던전 이름은 발의하신 대로 구름을 가린 둥지로 정해졌구요.”
“공략 심사는 끝났나요?”
“네. 어제 연락 주셔서 오늘 아침부터 협회 직원들이 파견 마친 상황이에요. 상당히 깔끔하게 공략하셨더라구요.”
“아, 그거…”
그 말엔 어색하게 볼을 긁었다.
‘…성나연이 함께 공략했으니까.’
국내 3대 클랜의 핵심을 맡은 A급 홀더의 파티 참여.
당연히 공략이 깔끔할 수밖에 없었다.
뭐,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결과다.
미발견 던전 ‘구름을 가린 둥지’는 우리가 발견과 공략을 동시에 마쳤고, 덕분에 던전의 권리는 문가은과 내 공동 소유로 결정됐다.
지금껏 내가 차곡차곡 쌓아 온 던전 컬렉션…
여기에 또 하나가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잊혀진 아룡의 마력석이 채워집니다. 석판이 묘한 힘의 기운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던전을 공략한 내 진짜 목적.
막연하게 ‘아룡’을 찾기 위해 나섰던 탐험.
그 예상이 적중했다.
와이번은 석판이 요구하는 아룡이 맞았다.
석판의 다섯 홈에 들어간 네 개의 마력석.
이제 정말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룬도… 원하는 걸 찾았고.’
와이번을 처치하고 획득한 [룬 사냥꾼]의 보상 역시 만족스러웠다.
지금의 내게 필요하면서, 와이번에게서 얻을 수 있는 룬 중 최상의 룬을 가져왔다.
그간 내가 꾸준히 수집해 온 속성 마력룬.
그중 유일하게 비어있던, ‘바람’에 관한 룬이었다.
[‘투박하게 흔들리는 바람’을 선택하셨습니다. 9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5레벨로 등록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바람 내성을 5, 마력을 4 획득합니다.]
[새로운 내성이 활성화됩니다.]
<룬 정보>
◎이름: 투박하게 흔들리는 바람
◎등급: 에픽(Epic)
◎레벨: 5
◎새겨진 부위: 날갯죽지
◎특수효과
: 거칠고 투박한 바람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 힘의 성질이 공격 쪽에 치우쳐 있기에, 활용 방향에 따라 룬의 위력이 달라진다. 공격 용도로 룬을 사용할 경우 위력이 50% 증가하고, 방어와 보조 용도로 사용할 경우 위력이 30% 감소한다.
: ‘부유’ 효과를 상시 사용할 수 있다. 잔여 마력이 있는 한, 바람의 힘으로 주변 공기를 상승기류로 만든 후 원하는 위치에서 부양 가능하다. 마력 수치와 룬 레벨에 비례해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증가한다.
: 바람내성+5 마력+4
◎파생스킬
[윈드 재블린]
◎세부정보
: 날카로운 바람은 때로 육체까지 베고 찌른다. 앞만 보고 만들어진 바람의 힘은, 오직 당신의 공격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투박하게 흔들리는 바람].
와이번이 보유하고 있던 이 바람속성 마력룬은, 그 위력을 내가 직접 경험했던 만큼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능력치 보정이 좋다.
마력 수치를 4나 올려주고, 바람 내성은 5를 올려줬다.
5레벨의 에픽룬을 감안해도 꽤 높은 상승치다.
덕분에 여타 속성 마력룬들을 얻을 때처럼, 이번 룬 획득으로 ‘바람 내성’이라는 새로운 내성 능력치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
‘특수효과들도 전부 매력적이고.’
첫 번째 효과는 사용하기에 따라 활용도가 무궁무진할 것 같다.
일단 내 마력룬 활용이 대부분 공격에 치중되는 경우가 많고, 페널티인 감소율 또한 증가율에 비해 낮기에 어떤 용도로든 충분히 쓸 만해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인 ‘부유’ 효과.
이건 성나연이 사용했던 [레비테이션] 스킬을 특수효과로 변환한 것과 다름없다.
공중형 괴수를 상대할 때, 혹은 하늘을 날아야 하는 특수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효과.
특히 [천하제일 경주마]와 [고속비행]을 활용하기 위해 ‘공중 부양’이 필수인 내 입장에선, 사실 다른 무엇보다 필요한 효과였다.
‘스킬은… 그때 그 마력의 창.’
[윈드 재블린]은 이름 그대로 ‘바람의 투창’이었다.
공략 당시 와이번이 몇 번이나 사용했던, 그리고 우리를 꾸준히 괴롭혔던 강력한 공격 스킬.
이는 총 10개로 구성된 바람의 창을 상대에게 던질 수 있는데, ‘에픽룬의 직접 공격 스킬’인 만큼 쿨타임이 하루로 상당히 길었다.
‘버릴 게 하나도 없네.’
전부 만족스러운 보상이었다.
그 외에도 레스트 룸에서 획득한 각종 아이템, 와이번에게 도축을 시도하며 채취해낸 부산물들, 여타 공중형 괴수들을 사냥하며 얻은 부산물 등…
다양한 보상들이 있었지만, 내 홀더 정보에 영향을 끼칠 만한 굵직한 보상들은 이게 전부였다.
나는 이지혜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더 주고받은 후.
인사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홀더 협회를 나왔다.
“오늘부터는… 써클 일로 바빠질 테니까.”
홀더 정보를 더 강화하는 건 잠시 미룬다.
이젠 <안티 빌런> 써클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써클 내에서 해야 할 건 생각보다 많았다.
아카데미에 잠입한 스파이들과 그 증거를 찾아내는 걸 1순위로 해야 했고, 김도윤 습격 사건 이후 달라진 <빌런>의 동향을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불의 심판>과 <로열>의 호위를 등에 업은 이상…
비록 아카데미 내 써클 활동일지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없었다.
딸깍-
아카데미로 돌아와 남은 수업을 모두 들은 후.
나는 학생회관의 써클룸으로 왔다.
오늘은 화요일이라 유은설의 전담 수업이 있는 날이지만, 그녀의 개인 일정이 겹쳐 이번 주 수업은 금요일로 미뤄진 상황이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써클 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어?”
그런데 써클룸엔 선객이 와 있었다.
붉은색이 조금씩 감도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
약간 정장 느낌이 나면서도 캐쥬얼한 옷차림.
사실 그런 건 다 필요 없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외모.
“…안녕.”
강주연이었다.
수업 끝나자마자 써클룸으로 왔기에 내가 제일 먼저 왔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왔는지 그녀는 회의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뭔가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와 마주친 짧은 시간에, 그 단어들이 순간 눈에 다 들어왔다.
-A급, 불, 에픽룬, 실전, 성장, 도재현?
그걸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성장 에피소드!’
강주연의 성장 에피소드.
미리 짜 둔 플랜이 결과가 되어 돌아왔다.
강주연은 원래라면 <염무> 써클에서 윤지아를 만나며 한 차례 성장을 거듭한다.
B급에 머무르던 그녀가 A급으로 올라서는 계기.
그리고 홀더 계에서, 역대 최연소 A급 승급이 이뤄지는 계기.
비록 원작과 달리 강주연이 <염무>에 들어가지 않게 됐지만, 윤지아가 오히려 <안티 빌런>으로 오게 되면서 아슬아슬하던 퍼즐의 조각이 맞춰졌다.
그게 바로 지금의 필기.
평소라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윤지아를 만난 후 강주연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저 안에 내 이름이 있는 게 특이하긴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성장에 키워드를 맞춘 듯한 마인드맵.
아주 바람직한 방향의 자기계발이었다.
그런데…
‘뭐지?’
흘깃 보이는 옆 페이지엔 다른 단어들도 있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워낙 글씨체가 예쁜 탓에 무슨 단어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김채은, 단둘이, 사냥, 주말, 문가은, 또?
…뭐지.
뭔가 봐선 안 될 걸 본 것 같은데.
수업 끝나고 써클룸에 바로 온 걸 후회할 것 같은데.
강주연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필기 내용을 덮으며 옆으로 치웠다.
그 생소한 모습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아, 안녕. 일찍 왔네? 하하.”
“응.”
그리고.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차가운 듯한 그녀의 목소리.
그걸 듣자, 의문이 확신이 됐다.
…이거 분명 화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