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첫 번째론, 광폭화 포션의 유통 경로를 찾아내는 겁니다.”
천천히 목을 가다듬은 후 꺼낸 한 마디.
그 제안에, 기대감을 지니고 바라보던 부원들의 눈빛이 빠르게 식어갔다.
처음에 살짝 흔들렸던 지윤재 역시 마찬가지.
그는 금세 안도감이 보이는 자세로 여유를 되찾았다.
마치 ‘설마 그거겠어?’ 싶었는데, ‘진짜 그거네’와 같은 반응이었다.
스파이들의 유일한 증거였던 [광폭화 포션].
그 아이템의 유통 경로를 찾아내자.
이 말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그들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장. 그건 너무 현실성이 없는 얘기예요.”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윤지아가 말을 꺼냈다.
그녀는 최근 <불의 심판> 입단을 준비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써클의 부회장이라는 직함에 책임감을 지니고 오늘 회의에 참석해 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마 회장도 알고 있을 것 같지만… 광폭화 포션과 같은 세계적인 불법 아이템의 경우, 정상적인 무역을 통해 거래되지 않아요. 단순히 협회에서 아이템을 구매하고, 혹은 개인 거래로 아이템을 사고파는 것과는 다르죠.”
당연히 알고 있다.
아마 여기 있는 어떤 부원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인지하고 있습니다. 불법 아이템의 제작은 보통 해외 제3국에서 맡고, 유통 역시 여러 국가를 거쳐 우리나라로 오기에 그 꼬리를 하나하나 잡기란 쉽지 않죠. 그건 마치…”
잠깐 말을 흐리자, 윤지아가 굳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마약.”
“예. 마약이 유통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세계에서, 그리고 이번 세계에서도 오래 전.
큰 성황을 이루었었던 ‘마약 유통’.
마약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제3국에서 제작을 마치면, 그 결과물들은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무역을 통해 각국으로 유통된다.
코카인, 필로폰, 펜타닐 등…
수없이 많은 마약이 여기저기에 유통됐고, 한국 내에서도 역시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이들을 거래해왔다.
마약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세계적으로 언제나 골칫거리인 불법 거래 종목이었다.
‘금세 사장돼 버렸지만.’
하지만 괴수와 룬 홀더라는 존재들이 생겨나며,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격번의 시대로 돌입한 후.
마약 시장은 이전에 반해 훨씬 축소됐다.
어지간한 질병과 중독은 전부 치료할 수 있는 ‘신성 계열 홀더’들이 나타나고부터 마약중독자 치료가 너무 쉬워졌고, 던전이나 필드에서 획득 가능한 몇몇 특수 아이템은 마약을 뛰어넘는 각성 효과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깃이 바뀌었어.’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잃어버린 마약 카르텔.
그들은 이내 세력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다.
그건 바로 전 세계적으로 거래가 금지된 ‘불법 아이템’.
이들을 유통하고 판매하며, 심지어 제작까지 하는 사업이었다.
이 품목엔 앞서 언급했던 각성류 아이템부터 시작해, 온갖 불법적인 무기와 특수 아이템, 또한 우리가 지금 다루는 [광폭화 포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뉴스를 보면 한 번씩 나오곤 했던 불법 마약 소지 검거…
그게 지금은 불법 아이템 소지 검거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전 세계에 불법 아이템 제작국은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그중 가장 큰 규모의 카르텔을 곱으라면… 역시 콜롬비아일 겁니다.”
콜롬비아.
이전 세상에서 세계적인 마약국으로 유명했던 나라.
그 카르텔만 보면 최대 규모를 보유한 나라.
이들의 마약 및 범죄 카르텔은, 홀더가 나타난 이후 더 견고해졌다.
각종 범죄자 홀더들을 카르텔로 불러 모으며, 이전보다 강력하고 거대한 조직으로 변모했다.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빌런> 클랜.
물론,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집단 전체의 목적도 뚜렷하기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지만, 그만큼 악독한 범죄 조직이라는 걸 말해줬다.
전 세계적으로 불법 아이템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카르텔 보유국.
그 안엔 당연히 [광폭화 포션]도 있었다.
“저는 이 콜롬비아에서 일본으로 유통되는,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밀입국 되는 불법 아이템을 조사하려고 해요.”
그 유통 경로 과정에서, [광폭화 포션]을 구매한 이들을 찾겠다.
거기서 다시 내부 스파이의 단서를 찾겠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유통되는 불법 아이템이 모두 콜롬비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남미 내 또 다른 카르텔인 멕시코에서도 오고, 근처 동남아 나라에서도 넘어오는 아이템들이 많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넘어오는 수는 압도적이다.
다른 유통국과 비교하면 몇 배 수준.
<빌런>에서 취급하는 불법 아이템의 수량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들을 조사하다 보면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설명했는데도, 윤지아와 다른 부원들의 표정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나도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대규모 조사를 써클 수준인 우리가 어떻게….”
계획은 좋은데, 사이즈가 너무 크다.
<안티 빌런>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긴 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아카데미 내 써클이다.
고작 학생들이 모여 만든 집단.
클랜 단위도 아닌 써클 단위가, 그 정도의 조사를 하겠다?
아마 누가 들어도 허황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난 웃으며 그 걱정을 덜어냈다.
“괜찮습니다. 이 조사는 단순히 저희 써클의 활동만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네? 그럼…”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윤지아.
나는 시선을 다른 한편에 앉은 강주연에게 향했다.
“일본 쪽에 무역 루트를 뚫고 있는 불의 심판 클랜에서, 이번 조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겁니다.”
<로열>과 <불의 심판>.
두 대형 클랜의 <안티 빌런> 써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저번 주 금요일에 공식적으로 결정됐었다.
그중 <로열> 클랜이 지원했던 내용은…
<안티 빌런> 써클 부원들에 대한 안전 보장.
아카데미 내부 호위 TF(TaskForce)팀을 구성하고, 간판 클랜원인 성나연까지 팀장으로 파견하며 무력적으로 확실한 힘을 보탰다.
덕분에 나와 문가은은 아카데미 외부에 나갈 때조차, 성나연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사냥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로열이 이렇듯 무력적인 지원을 했다면, 불의 심판은 금전적 지원 혹은 인력적인 지원을 약속했었습니다.”
“아…!!”
그제야 알겠다는 듯 윤지아가 손뼉을 쳤다.
<불의 심판> 클랜은 마력석 및 아이템 무역을 통해 국내에서 ‘일본 쪽 거래 루트’를 가장 잘 뚫어놓은 클랜이다.
당연히 그쪽 방면으론 인력도, 지식도 상당히 전문적으로 축적돼 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막연하기만 했던 단서 탐색에도 길이 보일 수 있었다.
“당연히 이러한 조사 내용은 불의 심판 클랜과 공유하게 될 겁니다. 불의 심판 쪽에서도 빌런에 대해 세워두고 있는 나름의 대비책들이 있을 테고…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나는 한 차례 웃으며 부원들을 바라봤다.
조용해진 써클룸 회의실.
처음엔 불신하던 그들도, 이제는 모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린 비록 써클에 불과하지만,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가면 됩니다. 우리가 처음 결성했던 그 의지와 목적을 달성해내야죠. 그러기 위해 모인 거니까요.”
“아….”
그 말에 윤지아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그리곤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애초부터 불가능처럼 느껴졌던 써클이었죠. 분명 이렇게 모이게 된 것도 기적일 텐데, 제가 그 안에서 또 가능성을 재고 있었네요. 해보지도 않고.”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반박부터 해서 미안해요. 저는 찬성이에요, 그 방법.”
“아닙니다, 부회장님. 상당히 합리적인 이의 제기였어요.”
우리가 웃으며 의견을 합치하자, 이에 질 세라 다른 부원들도 재빨리 긍정을 표했다.
“나도 찬성! 당장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 헤헤.”
“오우. 인정하는 부분이다.”
“미리미리 장비를 제작해 놔야겠군….”
눈에 띄게 적극적으로 수긍하는 부원들.
“…우리 클랜, 그런 거창한 대비책 없는데.”
“주연아. 혹시 아직도 화났어…?”
“화? 원래 안 났었는데.”
“……?”
…방법론과 관계없이 잡담을 하는 부원들.
그 외에도 여타 부원들 대부분이, 내가 제시한 방법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일단 국내 3대 클랜인 <불의 심판>이 협업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다들 큰 신뢰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뭐, 이건 나도 마찬가지긴 하다.
클랜에서 한 번 일해봤던 사람으로서, <불의 심판>의 일 처리가 얼마나 깔끔하고 정확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급조한 써클 부원들의 능력보다, <불의 심판>의 협업이 더 믿음직스러운 게 현실이었다.
“그럼 모두 찬성하신 걸로 알고, 일단 1차 계획은 앞서 말한 내용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이어서 세부적인 역할 분담에 대해서 논의해보도록 할게요. 우선…”
가장 큰 안건이 매끄럽게 넘어간 후.
이후 세부적인 PT와 구체적인 토의가 이뤄졌다.
…
…
“그럼 첫 조사 날짜는…”
“불의 심판 측과의 접촉은, 회장님과 강주연 홀더가 있으니까…”
“제가 제작한 장비들은 임대 형식으로 대여하겠습니다. 아마 시중의 어지간한 장비보다…”
…
…
거의 40분이 훌쩍 넘어갈 정도의 열띤 회의였다.
나 역시 만족스럽게 회의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지윤재의 표정을 살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녀석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하지만 그 무표정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확실히 경력직 스파이다운, 칼 같은 포커페이스다.
‘쯧.’
녀석이 <안티 빌런>에 들어온 의도야 뻔했다.
우리 써클에서 나오는 정보를 획득하고, 지윤재 본인은 거짓 정보를 흘리며 써클 활동을 교란하려는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거짓 정보는 애초에 뿌릴 틈을 주지 않았고, 정보를 얻어가 봤자 별 의미는 없을 거다.
지금 와서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되면, 그게 더 발각에 있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저 녀석을 어떻게 잡을까.’
어차피 다른 스파이들과 달리, 지윤재와 차수연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스파이다.
일단 잡아내기만 하면, 물증은 어떻게든 확보할 수 있을 거다.
대신 그 최적의 타이밍이 언제일지.
언제 그들을 잡아야 완벽히 소탕하고, 이어서 <빌런>의 머리까지 갈 수 있을지.
이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