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첫 번째 주.
정확히 날짜를 정해놓진 않지만, 최유민과 계약된 장비를 거래하는 날은 항상 월의 첫째 주로 잡아놨었다.
덕분에 나는 수요일 저녁.
우리가 늘 만나는 곳인 특수 계열 건물 내 라운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원래는 평일이 아니라 주말에 만나곤 한다.
평일엔 내가 해야 할 일이 워낙 많고, 저녁엔 각 교수의 전담 수업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수요일 저녁은 탁원호 교수의 전담 수업이 있는 날.
아마 지금쯤이면 연무장에서 그의 무자비한 검격을 받아내고 있어야 했지만…
-기술적으론 더 가르칠 게 없다. 이제 너와 내 격차는 축적된 시간에 따른 경험 차이, 능력치 차이, 룬의 레벨 차이뿐이야. 그야말로 괴물 같은 성장이군.
탁원호 교수는 ‘더 가르칠 게 없군’ 선언을 해버리며, 전담 수업을 주 1회에서 2주에 1회로 변경했다.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검의 방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파상검법]의 정수를 모두 깨우쳤으며, 지금껏 다져온 그의 노하우와 경험을 모두 흡수했다는 점.
그런 점에서 탁원호 교수는 합격점을 줬다.
게다가 능력치까지 성장을 거듭해 B급 홀더로 승급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전보다 수업 시간이 줄어드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리고 이는 김명현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재현 홀더는 이제 저보다 유수활검을 잘 쓰지 않나요?
-…….
-하하하. 농담입니다. 그만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장이 빠르단 뜻이에요. 제가 제자 하나는 참 잘 둔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 역시 수업 시간을 2주에 1회로 단축했다.
그렇다고 두 교수에게 받는 교육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수업 시간이 단축된다 해도 난 여전히 두 교수의 전속 제자였고, 이 사실은 내가 A급 홀더에 다다르며 두 사람을 뛰어넘는다고 해도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실력이 달라지고 교육의 효율이 달라진 만큼, 그에 따른 약간의 조정이 필요할 뿐이었다.
덕분에 요즘의 난 유은설에게 받는 전담 수업에 집중하며, 단검술과 암살자 계열 능력을 키우는 데에 조금 더 힘을 쏟고 있었다.
“재현아, 안녕!”
“어. 왔어?”
잠깐 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라운지 문을 열고 반가운 얼굴이 내게 인사했다.
개강하고 처음 만나는 최유민이었다.
한 달만 못 봐도 낯선 느낌이 들 듯, 그녀 역시 방학 동안에 달라진 모습이 꽤 보였다.
“염색했네?”
“아, 응.”
그린과 브라운의 투톤 컬러.
단조롭기만 하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꽤 다채롭게 염색되어 있었다.
최유민이 머리끝을 살짝 매만지며 물었다.
“잘 어울려?”
“어. 완전 잘 어울리는데? 언제 했어?”
나도 모르게 바로 대답이 나왔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다.
평소에 워낙 어두운 색상의 옷들을 자주 입고 다녀서 음울한 느낌이 나곤 했었는데, 그런 분위기를 단숨에 지워주는 염색이었다.
“어젯밤에 마무리 작업 끝나고 했어. 헤헤.”
내 의뢰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을 텐데, 그와중에 염색할 시간은 있었나 보다.
다행히 한껏 기분 좋은 얼굴인 걸 보니, 본인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드르릉- 승-
자리에 앉은 최유민이 곧바로 마법 가방을 뒤적이며 장비들을 꺼냈다.
오늘은 그녀에게서 계약상의 제작 장비를 지급받는 날이다.
이번 장비들은 기존의 계약 장비와 달리, 추가금과 재료들을 얹어 새로 부탁을 했었다.
정확히는 얼룩진 암석 더미, 그리고 구름을 가린 둥지에서 획득한 부산물 대부분을 건네며 쏟아부은 투자.
그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장비들과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장비를 구체적으로 의뢰했었다.
따라서 두 달 간 쌓여온 10개의 일반 장비를, 4개의 고급 장비로 바꿔 제공해줄 걸 부탁했다.
개강 전부터 시작해, 어제에 이르기까지.
꽤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유민은 의뢰 품목을 모두 제작해온 모양이었다.
“재현이 네가 말한 건 다 만들었어. 근데 저번에도 말했지만, 계약금이 너무 많아. 나 이렇게까지 많은 돈은 필요 없는데….”
얘는 또 이러네.
워낙 궁핍한 무명 생활을 오래 해서일까.
최유민은 가끔 내가 지급하는 추가금에 대해서 질색하곤 했다.
대금으로 받기엔 너무 많은 액수라면서.
하지만 나로선 충분히 제값을 치르는 구매였다.
외부에서 장비를 사는 것보다 최유민의 제작품이 훨씬 성능이 좋기도 하고, 가격 면에서도 가성비를 생각하면 오히려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년만 지나면, 최유민의 장비는 사고 싶어도 못 산다.
살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둬야 했다.
“전-혀. 부담될 것도 아니고, 품질 생각하면 큰 액수도 전혀 아니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물건 보여줘 봐.”
“헤헤. 응, 여기.”
<아이템 정보>
◎이름: 클로우 숏소드
◎종류: 검(소검)
◎등급: 레어(Rare)
◎내구도: 정상
◎제작자: 최유민
◎특수효과
: 속력+2
: 상대를 찢어내려는 야수의 특성이 담겨있다. 마치 손톱으로 할퀴듯 대상을 베어낼 때, 20% 높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부정보
: 깊이 있는 야금술을 통해 제작된 숏소드. 맹렬한 늑대, 바르그의 발톱이 첨가되었으며 상대를 압도하는 야수의 기운을 풍기고 있다. 늑대의 발톱은 쉽게 부러지지 않고, 그에 반면 맞닿은 대상은 쉽게 베어낼 것이다.
<아이템 정보>
◎이름: 와이번 스피어
◎종류: 창
◎등급: 레어(Rare)
◎내구도: 정상
◎제작자: 최유민
◎특수효과
: 근력+1 속력+1
: 바람의 도움을 받아 공격을 강화한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며 공격할 때, 혹은 그 외에 일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창 공격을 활용할 때 30%의 추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부정보
: 창공의 지배자, 프레져 와이번의 가죽을 덧대 만든 장창. 숙련된 장인의 야금술이 빛을 발했으며, 그 안엔 바람을 다루던 괴수의 힘이 가미됐다. 탄탄한 내구도와 꽤 무거운 무게를 자랑한다.
최유민에게 부탁했던 장비는 총 네 종류다.
하나는 소검.
최근 유은설에게 단검술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고, [매화검법] 룬을 본격적으로 키우면서 내 주력 무기 중 하나가 된 소검.
그간 마땅한 장비가 없어서 최유민에게 이를 부탁했었다.
얼룩진 암석 더미의 보스 괴수였던 ‘바르그’의 발톱과 갖은 마력석을 동원해 제작한 소검, [클로우 숏소드].
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질이 좋았고, ‘베어낼 때 위력이 증가한다’는 특수효과 역시 소검 할용에 있어 써먹을 데가 많아 보였다.
특히 [계단 베기] 스킬을 쓰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창….’
창은 원래 내 주무기가 아니었지만, 요즘 [천하제일 경주마] 룬의 파생스킬 [액셀 피어싱] 때문에 중요도가 꽤 높아졌다.
빠른 속도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돌격.
그와 동반해 찔러 들어가는 창 공격.
와이번을 잡을 때도 큰 공헌을 했던 이 콤보를 잘 활용하려면, 적당히 괜찮은 창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최유민이 제작한 [와이번 스피어]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스펙도 쓸만하고, 특수효과도 만점이다.
의뢰했던 품목 중 가장 중요했던 두 무기가,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이었다.
“투척용 단검이랑 방패는 노멀급이야. 열심히 만든다고 만들어봤는데, 아직 모든 제작 아이템이 레어급으로 나오진 않더라구.”
아직 확인하지 못한 두 무구에 대해선, 최유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투척용 단검과 방패.
이미 보유하고 있는 무구들이지만, 내가 전투할 때의 사용 빈도를 고려했을 때 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부탁했었다.
당연히 그렇게 좋은 장비로 쓸 필욘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레어급이 두 개나 나온 걸로 이미 놀라운데, 뭐. 진짜 대단하다. 유민이 너, 실력 엄청 늘었구나.”
“헤헤.”
최유민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지만,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무리 [철혈의 야장]이 있다곤 해도, 최유민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고급 장비를 제작해가는 단계다.
일반적인 성장 속도론 아직 한참 모자라야 정상.
그런데도 이렇듯 내 부탁 한 번에, 레어급 아이템 두 개를 뚝딱 만들어올 정도라니…
아마 이대로면 대장장이 계열 최고 유망주인 이현호가 금세 따라잡힐 것 같았다.
나는 네 종류의 장비를 모두 건네받으며 감사를 표했다.
“어쨌든 고마워. 꼭 필요했던 장비들이었는데, 잘 쓸게.”
“응!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 완전 한가해.”
“개강했는데 한가해?”
“응. 우리 계열은 이론보다 실습 위주라서, 사실 장비 만드는 게 수업이나 다름없거든. 벌써 레어급을 두 개나 만들어 놔서, 이거 제작 과정 보고서로만 만들어도 학점 잘 나올 것 같아. 헤헤. 네 덕분이야.”
그 말에 나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 계열은 의외로 합리적인 집단이구나….
이현호가 꼬박꼬박 써클 회의에 참석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 그리고 B급 승급한 거 축하해.”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문득 최유민이 꺼낸 말에 살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인터넷 기사에 뜨던데?”
“기사?”
“응. 홀더 계에 떠오르는 10대 유망주, 스무 살에 벌써 B급에 승급한 도재현… 뭐, 이런 제목으로. 요즘 은근 핫해.”
“아.”
핸드폰을 확인해 포털 사이트를 열어 보니 진짜였다.
강주연, 문가은 등과 함께 떠오르는 10대 유망주로 선정돼 있었다.
최근에 아카데미 내에서 김도윤 습격 사건을 막으면서 한 번 유명세를 탄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꾸준히 내 행보가 관찰되는 모양이었다.
물리룬과 마력룬을 동시에 사용하는 멀티 홀더.
F급에서 B급까지 최단기간으로 승급을 마친 홀더.
워낙 흥미로운 소재가 많다 보니, 관심이 쏠릴 만도 했다.
‘…어쩐지 요즘 많이들 쳐다보더라.’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생각을 털어낸 후.
다시 최유민에게 인사했다.
“그럼 다음 달에 다시 보는 걸로.”
“응!”
마법 가방에 그녀가 건넨 장비들을 모두 챙겼다.
이번에 내가 최유민에게 특별히 고급 장비를 부탁했던 이유는, 앞으로 얼마나 더 격해질지 모르는 <빌런>과의 격돌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언제 습격이나 전투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비의 허술함으로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니까.
그를 위한 만반의 준비였다.
그리고 그에 이어…
<빌런> 측 스파이 소탕을 위한 두 번째 발걸음.
[강주연] 주말로 일정 잡혔어. 함께 출국할 써클 인원 결정해서, 나한테 알려줘.
본격적인 조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