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녕하십니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냥 5팀 멤버들.
그들을 보며 순간 멍을 때리던 윤지아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인사했다.
나야 불과 두 달 전까지 함께했던 동료들이지만, 이제 막 <불의 심판> 입단 면접을 보고 있는 그녀로서는 까마득한 선배님들이었다.
“반가워요! 전 신유나예요.”
…심지어 저 멤버에서 풋내기에 속하는 신유나마저.
박진우와 윤지아가 사냥 5팀 멤버들과 차근차근 인사를 나눌 동안, 나는 오랜만에 뵙는 팀장님 권오준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습니다?”
“일찍 오기는. 장비 점검하다가 30분을 늦었는데.”
“또 신유나입니까?”
“말해 뭐하냐. 어휴. 내 후계자로 직접 고른 애인데 글러 먹었어, 아주.”
그렇게 말하면서도 권오준의 얼굴엔 은근히 자부심이 가득했다.
신유나의 성장이 꽤 뿌듯한 듯한 표정이었다.
신유나는 사냥 5팀의 신입 클랜원으로, 내가 처음 <불의 심판>에 들어갔을 때 실력 확인차 대련을 진행했던 홀더다.
권오준이 A급 홀더 및 팀장급으로 승진하며 야심 차게 뽑은 후계자였고, 또 그만큼의 가능성을 보여준 근접 계열 유망주였다.
개인적으론 내가 인턴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을 줬던 선배님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말을 놓게 되긴 했지만.’
물론, 그래서 신유나와 더 친해진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했다.
때문에 사냥 5팀 멤버 중 가장 친한 팀원을 꼽으라면, 말할 것도 없이 신유나였다.
들은 소식으론, 최근에 실력을 입증하며 B급 홀더로의 승급을 마쳤다고 들었다.
C급으로 입단한 동기 중엔 단연코 가장 빠른 속도.
‘뱀이 뒤덮은 숲’ 공략 때 자책하며 힘들어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수미 홀더님, 김성철 홀더님, 최동욱 홀더님… B급 인원은 전부 왔네요?”
팀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사냥 5팀 B급’이 전부 왔다.
나와 두 달간을 함께했던 익숙한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권오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음. 이번 파견은 클랜 내에서도 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이거든. 일종의 점검 및 조사인데, 사냥팀이 파견된 것부터가 클랜이 관심 있게 본다는 거지.”
“그건 그렇죠.”
사냥팀은 말 그대로 사냥팀이다.
결계 밖 필드, 던전, 그 외 특수 임무.
현장 업무의 대부분이 괴수들을 사냥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런 만큼 이러한 외부 조사에 사냥팀이 파견된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너, 아가씨 제안 거절했다면서?”
권오준이 장난기 섞인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제안이요? 어떤…”
“불의 심판 정식 입단 제의 말이야. 남들은 다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 난 1등 클랜 입단을, 왜 거절하는 거냐?”
“아, 그거….”
곧장 대답하려던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 말을 돌렸다.
“에이, 불의 심판이 1등 클랜은 아니죠. 로열도 있고, 용광검로도 있는데. 정확히는 3대 대형 클랜이죠.”
“뭐? 이 자식이… 그래서, 다른 클랜으로 간 보겠다 이거냐?”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그냥 아직은 시기상조 같아서 대답을 미뤘어요. 제가 어떤 클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 아카데미 졸업까지도 2년이나 넘게 남았잖습니까.”
막말로 지금 <불의 심판>을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클랜원으로 들어가지는 것도 아니다.
난 아직 1학년이고, 졸업까진 2년이 남았다.
강주연의 특채라면 어떻게든 아카데미를 중퇴하고 입단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억지로 들어가 봤자 내 커리어에 크게 도움이 될 건 없어 보였다.
“쩝.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요즘 신입 클랜원들 면접 보는데, 도재현 너만한 녀석이 없는 것 같다.”
“저도 사냥 5팀에 있을 때 호흡이 좋았습니다.”
“말은 아주.”
내 어깨를 치며 한 차례 웃은 권오준은, 이내 팀원들과 써클 부원들을 향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다들 얼굴 익혔으면 슬슬 가자. 출국 절차 밟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니.”
“네!”
“알겠습니다.”
[워프 게이트]가 공항에 있는 만큼, 홀더의 출국 절차 역시 공항 내에서 진행한다.
과정은 비행기를 탈 때와 비슷하다.
소지품 검사와 여권 및 신분 확인, 세관 신고 등…
외국으로 나갈 때의 정규 절차 대부분을 밟는다.
다만, 테러 물품들을 점검하는 일반 소지품 검사와 달리, 홀더의 소지품 검사는 불법 아이템 탐색이 주목적이었다.
“홀더 등록증 제시해주세요.”
홀더들이 [워프 게이트]를 통해 출국하려면, 홀더 등록증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룬 홀더는 개인의 측면에선 특수 능력자에 불과하지만, 국가적인 측면에선 하나의 인간병기가 될 수 있는 전력이다.
따라서 국내외를 움직일 때면, 홀더들은 늘 협회와 정부의 주시를 받곤 한다.
그 확인을 위한 홀더 등록증.
원래는 ‘국제 홀더 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홀더 강국 중 하나였기에 국내 등록증 자체가 신뢰의 증표였다.
“출국 절차 모두 완료되셨습니다. 도재현 홀더님은 11시 00분에 도쿄로 가는 국제 이동 워프 게이트 이용이 예약되어 있으십니다. 출국 층은 3층, 게이트 넘버는 E-3입니다. 오늘도 인천 국제공항 워프 게이트 서비스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항 직원이 정중한 인사와 함께 티켓을 건네줬다.
나는 티켓에 적힌 장소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른 팀원들도 금세 짐을 챙겨 따라왔다.
사실 이동 수단만 비행기에서 [워프 게이트]로 바뀌었을 뿐, 이건 뭐 평범한 해외여행 출국 절차와 딱히 다를 게 없었다.
팀원들이 모두 모이자 권오준이 전달사항을 말했다.
“도쿄의 하네다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국내 워프 게이트를 통해 나고야로 이동한다.”
“나고야요?”
“음. 정확히는 나고야시 로쿠반쵸 방향의 워프 게이트를 이용한다. 대기시간 없이 바로 출발할 거니까, 도착하는 대로 바로 집합할 수 있도록.”
이번 조사는 <불의 심판>과의 협업으로 진행되지만, 어쨌든 우리가 조사하고자 하는 지역은 <불의 심판>의 관할 무역 루트다.
우리가 마음대로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권오준과 사냥 5팀의 지휘에 따르는 게 정석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다들 개인 정비 마치고, 일본에서 봅시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으로 향했다.
나로서는 이 세계에 오고 난 후.
처음으로 외국에 발을 디디는 것이었다.
* * *
“어우, 메스꺼워.”
“와… 국제 이동 워프 게이트는 진짜 빡세구나.”
도쿄에 도착하고, 쉴 시간 없이 곧바로 나고야까지 단숨에 건너온 후.
우리는 게이트 앞쪽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워프 게이트]의 국제 이동은, 국내 이동과 차원이 달랐다.
이동만으로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 소모되고, 여기저기 비틀린 마력들이 신체에 타격을 주며 극심한 멀미를 일으켰다.
온몸이 메스껍고 갑갑하다.
차멀미나 뱃멀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속이 울렁거렸다.
“안 힘들어?”
잠시 숨을 고르던 나는, 태연한 표정의 강주연을 보고 물었다.
“…조금.”
그녀는 살짝 피곤한 기색만 보일 뿐,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어 보였다.
역시 강주연.
놀라운 수준의 포커페이스다.
누군가 관심 있게 보는 것도 아닌데, 자기 자신이 컨트롤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렇듯 감정조절에 진심인 그녀가 저번엔 그토록 화난 모습을 보였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대략 10분 정도 휴식 시간을 취한 후.
우리 팀은 [워프 게이트] 내부 공간을 벗어나 밖으로 향했다.
[워프 게이트]가 자리한 곳은 로쿠반쵸 역.
나고야시에서도 아래쪽 지역에 있는 지하철역이었다.
역을 나서는 동안, 나는 역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권오준에게 물었다.
“뭔가 되게 허름한 느낌이네요?”
“지하철역이라서 그럴 거다. 더 아래로 가서 부두 쪽으로 가면 번화가가 있지.”
로쿠반쵸 역은 사람도 별로 없고,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났다.
역 바깥을 나오니 그런 느낌은 더 진했다.
곳곳에 늘어선 낡은 건물들과 상가.
마치 일본이 아닌, 서울의 한 작은 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마중 나왔군.”
역 바깥을 나와 잠시 두리번거리던 권오준이 말했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남성 한 명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샤기컷 헤어스타일에, 갈색인지 금색인지 모를 염색.
왠지 모르게 익숙한…
전형적인 일본인 상의 얼굴이었다.
-불의 심판 클랜, 안티 빌런 써클. 나고야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엔 이런 푯말이 내걸려 있었다.
‘아니, 보통 저런 건 공항에서 들지 않아?’
사람도 별로 없는 지하철역 밖에서, 홀로 저걸 들고 있는 걸 보니 뭔가 황당했다.
그는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권오준 씨!”
“반갑습니다. 시미즈 씨. 거의 6개월 만에 뵙는 것 같군요.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맡겨주십시오.”
능숙한 한국어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재일교포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하고 깔끔한 발음이었다.
시미즈라고 불린 그 남성은 내게도 악수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남자의 조건> 클랜의 선임 클랜원, 시미즈 켄조라고 합니다. 도재현 씨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 홀더 아카데미 소속의 도재현이라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으려다가, 순간 멈칫하며 되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시미즈 켄조입니다. 줄여서…”
“아뇨, 아뇨. 굳이 안 줄여도 될 것 같아요.”
뭔가 더 들어선 안 될 걸 들은 느낌.
나는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꿔, 일 얘기로 넘어갔다.
“권 팀장님께 이야기는 대략 들었습니다. 클랜 타워 내부를 직접 점검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요?”
시미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 남자의 조건 클랜과 한국 불의 심판 클랜은 5년간 무역 협력 관계를 이어오면서, 무역 품목 및 거래 과정에 대해 정기적으로 투명한 점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 두 분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클랜 타워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바로 가시겠습니까?”
나는 권오준에게 눈빛으로 의중을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턱짓으로 짧은 신호를 보내 답했다.
그와 두 달간 팀 생활을 했기에 이 신호를 잘 안다.
내 생각대로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시미즈를 바라봤다.
“바로 안내해주시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