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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39화 (139/353)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로쿠반쵸역에서 대략 15분 정도 걸었을까.

걸음을 멈춘 시미즈가, 손짓으로 우리에게 건물을 가리켰다.

살짝 허름하긴 해도, 갖출 건 갖춘 깔끔한 건물.

여의도에 있던 <불의 심판>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큰 규모의 빌딩.

그가 속한 <남자의 조건> 클랜의 클랜 타워였다.

“어서 오세요! 남자의 조건 클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구의 데스크에선 화사한 차림의 여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데스크를 지나 출입증 확인 장소에서도, 그를 지나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대부분 홀더가 아닌, 일반인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남자의 조건 맞아?’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클랜 이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라서.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시미즈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꽤 당황하셨군요.”

“아, 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말을 흐리자, 시미즈가 되물었다.

“화사하고 활기차죠?”

“네. 그렇네요.”

“하하. 저희 클랜은 전사 계열만 잔뜩 있을 것 같은 클랜 명과 달리, 무역과 대규모 사업에 집중하는 상업형 클랜입니다. 당연히 여직원도 있고, 일반인 클랜원도 많죠.”

시미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클랜 명은 그저 마스터께서 초창기에 지었던 이름일 뿐입니다. 최근엔 저희도 이 클랜 명이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옳지 않다고 느껴서, 정식 변경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무역과 거래에 집중하는 클랜.

시미즈의 그 설명은, 클랜 타워를 구경할수록 더 신빙성이 깊어졌다.

각 팀의 부서나 회의실, 서류 보관실 등이 대부분이었던 <불의 심판>과 달리, <남자의 조건> 클랜 타워 내부엔 ‘창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국과의 무역 관련 창고, 한국과의 무역 관련 창고…

혹은 일본 내에서의 거래 관련 창고 등.

다양한 창고들과 그를 관리하는 부서들이 있었다.

시미즈는 차근차근 움직이며, 층별로 내부 부서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가 찾던 곳은…

7층에 이르러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한국과의 무역을 총괄하는 부서 및 창고가 자리한 층입니다. 저희 클랜의 한국 무역 파트는 불의 심판 클랜과 독점적으로 계약이 맺어져 있고, 따라서 불의 심판과의 거래를 총괄하는 부서이기도 하죠.”

설명을 이어가던 시미즈는 잠시 권오준을 봤다.

“이번 분기의 정기 점검은 어떻게 진행하시겠습니까?”

“저희 쪽 팀원과 얘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성철.”

“예.”

마법사 계열인 김성철이 앞으로 나왔다.

사냥 5팀에서 서류 업무를 진행할 땐 항상 김성철 혹은 이수미가 맡곤 하는데, 이번엔 김성철이 나서는 모양이었다.

김성철은 준비한 서류를 들고, <남자의 조건> 클랜 측 직원과 함께 특정 부서로 이동했다.

“그럼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관계자인 권오준 씨는 잘 아시다시피, 우리 클랜과 불의 심판 클랜의 계약 형태는 중개 무역입니다. 정확히는 남미 지역과 한국의 무역을 잇는 역할을 하죠.”

“남미 지역…”

이번 조사와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지역이었다.

내 중얼거림에 시미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남미 지역엔 무기나 방어구 같은 한국 제작 장비들을 수출하고, 한국엔 남미에서 제작된 포션류 및 특수 아이템을 수출합니다.”

그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홀더 강국 중 하나다.

당연히 홀더의 전반적인 인재풀이 넓고, 그 영역은 특수 계열인 대장장이 쪽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보다 싸고 질 좋은 제작 장비.

이를 수입하는 데에 있어, 한국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었다.

‘…반면에 포션류는 남미 쪽이 잘 만들지.’

남미는 단순히 [광폭화 포션]과 같은 불법 아이템만 잘 만드는 게 아니다.

그냥 기본적으로 제작 특수 아이템의 품질이 좋다.

전투계열 홀더보다 연금술사들이 많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남미는 특수 아이템 제작에 진심인 홀더들이 많았고, 당연히 이는 무역에서 강점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제작 장비는 남미로.

남미의 제작 특수아이템은 한국으로.

<남자의 조건> 클랜은 이러한 무역의 중개를 <불의 심판>과 독점적으로 계약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요청하신 불법 아이템 유입 원인의 경우, 이러한 특수 아이템 수입 과정에서 몰래 섞여 들어오거나 혹은 밀수를 통해 넘어오기도 합니다.”

“밀수요?”

밀수.

그 단어 하나에 나를 포함, <안티 빌런> 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가 일본까지 건너와 조사하려던 내용.

그 단서가 시미즈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예. 저희 클랜에 암암리에 섞여 들어온 불법 아이템은, 한국으로 재수출하는 과정에서 저희가 검수를 마쳐 모두 골라냅니다만… 그들이 직접 밀수로 가져오는 물건들은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시미즈는 창고 안 벽면에 붙은 지도를 가리켰다.

남미와 일본 사이에 그려져 있는 화살표.

그 색깔은 검은색이었다.

“그들이 밀수를 위해 허가받지 않은 워프 게이트로 일본에 넘어오기 때문이죠.”

허가받지 않은 [워프 게이트].

즉, 불법적인 마력 현상으로 국경을 넘어온다는 뜻이다.

나는 그 선언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미허가 워프 게이트라….”

“그렇습니다. 저희가 이곳에서 합법적으로 중개 무역을 담당하는 클랜이긴 하지만, 사실 나고야는 일본에서 불법 아이템 밀수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빌런>이 [광폭화 포션]을 비롯해 불법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은, 이곳 나고야를 통해 이뤄지는 게 맞다.

따라서 이를 추적하다 보면 그 경로와 관계자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미즈는 <안티 빌런> 써클의 첫 활동이 옳은 방향이라는 걸 정확히 인지시켜주고 있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시미즈에게 물었다.

“그럼 남자의 조건 클랜에서는 미허가 워프 게이트의 장소를 파악하고 있는 건가요?”

정황을 들어보니, <남자의 조건> 클랜 내부를 살펴보는 건 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깨끗한 계약으로 중개 무역을 진행하고 있고, <불의 심판> 역시 정기 점검을 통해 이를 확인하니 더 문제 삼을 게 없었다.

그렇다면 관건은 그가 말한 밀수.

그리고 범죄가 진행되는 미허가 [워프 게이트].

그 장소를 알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시미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벽면의 지도를 가리켰다.

이번엔 아까의 지도 바로 옆에 있는, 일본의 국토와 나고야시가 구체적으로 그려진 국내 지도.

그 안 도시 군데군데엔 웬 동그라미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마치 특정 장소들의 점검을 마쳤다는 표시처럼 보였다.

“저희도 당연히 클랜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을 찾으려고 노력은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저희가 무력에 집중한 클랜이 아니라, 찾는 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미허가 워프 게이트는 주로 던전의 내부나 결계 밖 필드에 은밀하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결계 밖 필드나 던전에 만들어진 [워프 게이트].

이를 찾아내고 검거하려면 그 안에 있는 괴수들을 모두 처치하면서 가야 하니, 당연히 인력 부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에 나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악질적이네요.”

“예. 어떻게든 수사망을 피하려는 수법이죠. 게다가 일본 홀더 협회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타진하려는 의지도 없어서… 그간 조사는 꾸준히 했어도, 정확한 파악이 어렵던 상황이었습니다.”

시미즈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때문에 도재현 씨가 원하신다면, 저희 측 밀수 담당팀 팀장을 연결해 조사를 도울 수 있게 하겠습니다. 나고야에서 밀수를 뿌리 뽑는 건, 저희 클랜에도 깊은 숙원이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권오준을 봤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저희 써클은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하려 하는데.”

이번 조사는 어쨌든 <불의 심판>과의 협업이 걸린 프로젝트.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다행히 권오준은 흔쾌히 허락했다.

“우리 클랜이 맡은 건 거래 클랜의 정기 점검과 안티 빌런 써클의 외부 활동 호위다. 그 외의 모든 건 도재현, 네가 정하면 된다. 걱정 말고 결정해라. 우린 뭐가 됐든 그를 도울 테니.”

그에 나는 감사의 의미로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시미즈 쪽을 바라봤다.

“예. 그럼 진행해주시죠, 시미즈 씨.”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그는 우리를 이끌고 다시 9층으로 데려갔다.

9층은 창고들이 가득하던 다른 층들과 달리, 커다란 부서 내부와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수수한 외관에 온갖 서류들이 넘치는 부서 내부.

그곳엔 몇 안 되는 직원들이 정신없이 업무 중이었다.

그들의 곁을 지나, 우린 중앙에 자리한 팀장 좌석으로 향했다.

“아키바 씨?”

시미즈의 부름에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기다랗게 내려온 검은 생머리와 붉은 눈동자.

그 묘한 느낌을 가라앉히는 듯한 정돈된 분위기.

한 눈에 봐도 일반인이 아닌 홀더라는 게 느껴졌다.

“인사해요. 이쪽은 한국에서 우리와 협업하러 온 홀더 분들. 미허가 워프 게이트의 탐색을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미즈의 간략한 소개.

그에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아키바 미유라고 합니다.”

새하얀 소복 상의에 널따란 하카마(*일본 정통 의복양식)를 입고 있는 그녀.

돋보이는 흰색과 빨간색의 색상 대비.

그리고 책상에 놓인 커다란 장궁.

그건 마치…

한 명의 무녀를 보는 듯한, 독특한 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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