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44화 (144/353)

파견 첫날 치열했던 조사를 마친 후.

우린 <남자의 조건> 클랜에서 예약해 준 나고야 내 온천 료칸(*일본 전통 숙박시설/온천 여관)에 와 있었다.

미나토구라는 곳 외곽에 자리한 전통 료칸.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알록달록한 양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미즈가 말하기론 일부러 관광객이 많은 곳을 피해 장소를 잡았다는데, 과연 현지인의 추천답게 한적하면서도 료칸으로서 갖춰야 할 편의시설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불의 심판 측은 동부 쪽으로 갔다고 했나요?”

참고로 사냥 5팀과는 숙소가 갈라졌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사의 방향에 따라 <불의 심판> 측은 동부 쪽으로, <안티 빌런> 측은 서부 쪽으로 숙소를 잡았다.

물론, 우리는 그 안에서도 또 팀을 나눠서 조사하지만 말이다.

안내를 맡던 시미즈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륙 방향의 미즈호구라는 곳인데, 권오준 씨는 몇 번 우리 클랜에 방문한 적이 있어 지리를 잘 알 겁니다.”

한 마디로 저쪽은 굳이 안내가 필요 없다.

<남자의 조건> 클랜에서도 나고야 내에서 협약을 맺고 자주 활용하는 숙소들이 있었고, 일본 파견을 몇 번 와본 권오준은 그에 대해 꽤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숙소의 체크인을 모두 마친 후.

나는 입구에서 시미즈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늦은 저녁에 안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협업을 약속한 이상, 최선을 다해 도와드려야죠. 이번 일은 저희 클랜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직접 조사를 주도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니까.

<남자의 조건> 측에서도 밀수 범죄 소탕은 중요하다.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수익과 연관이 될 수 있는 문제니까.

그러나 다방면에서 문무를 겸비한 아키바가 이렇게까지 자료를 모았는데도, 현장 조사가 실행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오기 전까지 얼마나 답답한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호위팀 인력을 좀 빼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클랜 입장에선 그건 또 허용할 수 없는 범위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밀수 범죄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그들은 이 정보를 풀지 않았다.

이유는 아마 밀수를 직접 소탕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독식하기 위해.

그런 가려진 사정들을 모두 미루어 봤을 때, <남자의 조건>도 잇속을 위해 움직이는 평범한 클랜 중 하나일 뿐이었다.

뭐, 협업을 진행하러 온 우리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지만.

“간밤에 무슨 문제 생기시면, 여기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시미즈가 명함 하나를 꺼내 건넸다.

화려한 장식과 클랜 로고, 그리고 핸드폰 번호가 적힌 명함이었다.

“감사합니다.”

“예, 그럼 편안한 밤 되시길.”

그 말을 끝으로 시미즈는 료칸을 떠났다.

나는 명함을 지갑에 넣곤, 예약된 남자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일본의 료칸은 구성과 디자인이 종류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나고야 외곽에 있는 우리의 숙소는 2층으로 이루어진 정통 료칸의 형태였다.

시미즈의 말로는 현대 양식으로 개축된 고민가 형태라고 하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진 모르겠고 그냥 한국에 있는 한옥 호텔과 비슷해 보였다.

특히 분위기와 양식 때문인지, 일반 숙소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양쪽으로 나뉜 숙소 중 남자 방은 왼쪽.

나는 접객원의 도움을 받아, 2층에 있는 우리 방으로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오우. 왔냐.”

방엔 당연하게도 선객이 있었다.

내가 시미즈랑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미리 안내받고 올라와 쉬고 있는 박진우였다.

녀석은 거실 한가운데에서 대자로 누운 채, 날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이건 뭐,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뭐하냐?”

“뭘 뭐해. 누워있잖아.”

“왜 방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이러는데.”

“방까지 갈 힘이 없어. 나 짐도 안 풀었음.”

잠깐 둘러보니 정말 거실 한편에 짐이 덩그러니 있었다.

와…

지독한 새끼.

오자마자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거야?

“야. 드러워. 씻고 쉬어.”

“오우… 귀찮아. 그리고 여기 너무 넓어서, 이대로 잠들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아.”

박진우의 말처럼, 우리의 객실은 상당히 넓었다.

녀석이 대자로 누워있는 이 커다란 거실부터 시작해, 각자 따로 잘 수 있도록 구비된 두 개의 방, 가볍게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목적 방, 그리고 샤워실 및 화장실.

2인실이라기엔 커도 너무 크다.

아마 이곳 료칸 내에서 최고급 특실을 내준 것 같다.

그 어마어마한 사이즈에 감탄이 나오다가도, 이런 숙소에 와서까지 거실에 누워 자려는 박진우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이내 방 안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와….”

거실과 마찬가지로 개인 방 역시 크고 깔끔했다.

살짝 낮긴 해도 침대가 놓여 있었고, 무드등이나 소파 등 편의를 위해 제공된 소품들이 많았다.

외부 디자인과 인테리어만 전통 양식을 따를 뿐, 사실상 호텔과 다를 게 없는 구조였다.

지극히 현대인인 나는, 당연히 이런 구조가 훨씬 편하다.

“음, 대충 짐만 풀고….”

방 한편에 짐만 풀고 나갈 채비를 시작했다.

옷장에 걸려 있는 료칸 전용 유카타.

세련되고 심플한 디자인이라 입는 데에 부담이 없었다.

“온천 한 번은 가봐야지.”

온천 료칸까지 왔는데 온천을 안 가는 건 너무 큰 손해다.

일할 땐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땐 제대로 쉬어주기.

내일의 조사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

드르륵-

채비를 마치고 방문을 열자, 아까의 자세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박진우가 있었다.

도무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박진우.

눈까지 감고 있는데…

이 새끼 혹시 자나?

“야, 자냐?”

“아니.”

“아씨, 깜짝이야.”

누워있던 박진우의 눈이 번뜩 떠지며 대답이 나왔다.

씨발.

간 떨어질 뻔했네.

이건 뭐, 저주 인형도 아니고….

“야. 온천 가자.”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박진우에게선 칼 같은 대답이 나왔다.

“안 가요.”

“아, 왜 또.”

“귀찮아. 이대로 잠들 거야.”

“미친 새끼. 이불도 없고, 바닥이잖아. 그리고 좀 씻으라고.”

“오우… 따뜻하고 아늑해서 좋은데? 이게 그 다다미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답이 없다.

박진우의 고집은 누가 와도 못 꺾는다.

나랑 같은 수업 듣겠답시고 탁원호 교수의 수업도 안 들은 녀석인데, 귀찮다고 생각한 일을 하려하진 않겠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설득 방향을 바꿨다.

“야야, 료칸까지 와서 온천을 안 가는 게 말이 되냐?”

“귀찮다니까. 그리고 힘들어. 나 오늘 궁극스킬까지 쓰느라 마력 바닥났다고.”

“그럴 때일수록 피로를 풀어야지. 어?”

“응, 안 가. 잘래.”

그대로 박진우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지독한 새끼.

싸우는 것 말고는 만사가 귀찮은 걸까.

오늘 이 녀석의 작전 제안에 감탄했던 내가 바보 같아졌다.

“어휴… 드러워서 혼자 간다, 내가.”

나는 한숨을 쉬며 포기하곤 홀로 숙소를 나왔다.

아직 시각이 그리 늦진 않아, 료칸 내외는 불빛이 반짝였다.

2층 끝자락에 도착하니 아까 봤던 접객원이 날 맞았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고객님?”

“아, 온천을 좀 이용하려 하는데요.”

“그럼 제가 안내를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네. 그렇게 해주세요.”

접객원은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번 하고는, 앞장서서 온천을 안내했다.

1층으로 내려가, 남자 숙소 뒤편의 문을 열고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탁 트인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샤워실로 보이는 작은 건물 하나, 그 뒤엔 온천으로 보이는 공간이 가려져 있었다.

“이쪽 건물에서 샤워를 마치신 후, 안쪽 입구를 통해 온천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이용시각은 새벽 2시까지이며, 호출이 필요하실 땐 온천 및 샤워실에 비치된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온천 운영도 완전 전문적이구나.

그런 것치곤 손님이 너무 없는 것 같긴 한데…

아마 외곽에 자리했음에도 너무 비싼 고급 숙소라 그러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다.

접객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

고급 숙소답게 샤워실도 청결하고 깔끔했다.

여긴 샤워실 청소도 무슨 1시간 단위로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누구 하나 왔다 간 흔적 없이 깨끗했다.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온천 입구엔 커다란 타월이 정돈된 채 진열되어 있었다.

<반드시 하체에 타월을 걸치고 입장해주세요.>

일본의 온천이 약간 몸을 가린 채 들어가는 이미지가 있긴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타월을 필수적으로 걸쳐야 하는 온천이 있을 줄은 몰랐다.

고급 숙소라 이런 것도 철저한 건가?

이젠 전부 다 생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는 실없이 웃으며, 타월을 걸치고 온천 안으로 들어갔다.

“오…!!”

또다시 감탄이 나온다.

온천 내부는 한눈에 봐도 인상 깊었다.

료칸 측에서 직접 가꾼 건지 알록달록한 꽃과 나무들이 주변에 자라 있었고, 그 아래에 작은 바위들로 온천탕이 마련돼 있었다.

물은 마치 코발트블루를 보는 듯한 맑은 빛깔.

자연의 정경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한 번에 담은 온천이었다.

“죽이네….”

예상했던 대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의 조건> 측에서 비용을 전부 지불해줘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곳 료칸의 숙박 비용이 상당히 비싼 모양이다.

숙소에 들어갈 때부터 인적이라곤 보이질 않았다.

나는 그대로 허허벌판 같은 온천탕 안으로 들어가, 몸을 담갔다.

“와….”

세 번째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박진우, 이 새끼.

이 좋은 걸 왜 안 한다는 거야?

이따가 깨어 있으면 한껏 놀려야겠다.

나는 바위 한쪽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몸은 노곤한 기운으로 물든다.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이 맛에 온천 오는 거구나.

사람들이 일본 여행 갈 때 굳이 굳이 온천 료칸을 포함하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스슥-

그렇게 10분…

20분쯤이 지났을까.

혼자만 있던 온천 안에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드디어 박진우도 못 참고 온 건가?

아니면 다른 숙소의 손님이 온 건가?

그런 생각으로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인기척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다른 온천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

“…어?”

시야를 단번에 채우는 아름다운 외모.

마르고 가녀린 몸과 긴 머리카락.

그를 가리고 있는, 내 타월보다 훨씬 커다란 타월.

내가 잘 아는, 그리고 날 잘 아는 친구.

너무도 익숙한 외양의 ‘여자’가…

눈앞에 와 있었다.

“아.”

그리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여기.

혼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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