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우리 팀원들은 료칸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식당엔 어제 체크인 이후 못 봤던 윤지아, 그리고 혼탕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강주연이 미리 와 있었다.
“…안녕.”
“어, 어. 좋은 아침.”
이제는 자연스럽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강주연.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답했다
…누가 듣더라도 부자연스러운 대답이다.
‘정신 차려, 도재현.’
손바닥으로 뺨을 툭툭 친다.
멍해진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강주연과 어색해진 건 아니다.
오히려 어젯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간 조금씩 남아있던 거리감이 완전히 좁혀졌다.
서로 이름까지 부르기로 하며 더 가까워진 친밀도가, 하루 만에 사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단지…
-재현아.
-어?
-나, 타월 등 쪽 고정이 풀린 것 같은데….
-…예?
이야기를 마치고 탕에서 나가기 전.
타월을 묶어달라고 부탁했던 강주연.
그리고 극도로 긴장하며, 그걸 도와줬던 나.
그때 그녀의 매끄럽던 등이, 쿵쾅거리던 심장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아오, 진짜. 음란마귀가 씌었나.’
속으로 스스로를 꾸짖으며, 허튼 생각을 날려버렸다.
잘 생각해 보면 강주연의 부탁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긴 했지만, 깊게 파고들수록 그녀의 하얗던 피부만 떠오르니…
자연히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묘했던 어제의 기억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사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아침 식사 후 체크아웃을 하니, 료칸 앞엔 아키바가 미리 와 있었다.
“그럼 각자 조사를 마친 후, 로쿠반쵸역 워프 게이트로 다시 모이는 걸로 하죠. 아키바 씨, 우리 부원들을 잘 부탁합니다.”
“네. 맡겨 두십시오, 재현 님.”
다시 두 팀으로 쪼개 조사를 나가는 우리 팀.
C팀의 팀장은 아키바가 맡기로 했다.
그녀가 워낙 이곳 나고야의 지리와 특성을 잘 알기도 하고, 숙련된 B급 궁수 계열이기에 전투 지시를 내리기도 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 조사지점으로 떠나고, B팀인 나와 강주연도 현장으로 이동했다.
우리의 첫 이동 장소는 나고야항 수족관.
그 안의 전시장 한곳에 자리한 던전, ‘바다 요괴 서식지’였다.
던전은 대부분 필드 안 어딘가에서 찾아내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듯 평범한 장소에서 발현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장 ‘아카데미 지하 던전’만 해도 그런 케이스였으니.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의 텁텁한 기운으로 인해 홀더의 속력이 약간 저하합니다.]
‘바다 요괴 서식지’는 무인도 형태의 던전이었다.
사방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고, 해변에서부터 초입부가 시작됐다.
나야 [수중호흡]이나 [수중질주]와 같은 룬들을 보유한 터라 상관없지만, 강주연은 관련 룬이 없기에 수중던전이라도 나오게 되면 골치가 아프다.
다행히 이름과는 달리 공략 경로가 무인도 안쪽으로 향하고, 보스룸 역시 육지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서…
공략 상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덕분에 우리는 차근차근 괴수들을 사냥하며, 미허가 워프 게이트 조사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오오오-!!
스슥- 스스스-
“주연아, 라이트 메테오!”
“…응.”
빠르게 진행되는 전투.
그 사이 강주연과 내 호흡도 점점 합을 찾아갔다.
나는 강주연의 주요 마법들을 알기에 필요한 순간마다 그녀를 찾았고, 그녀 역시 적재적소에 미리 마법을 배합하며 내 전투를 지원했다.
콰, 콰가가-!!
콰아앙-!
“어?”
하지만 앞선에서 전투를 이어가던 도중, 강주연의 지원을 받은 난 중간중간 깜짝 놀라야만 했다.
강주연이 펼쳐내는 불속성 마법.
몇 번 경험했던 마력 공격이고, 분명 익숙한 기운이었을 텐데…
그 위력과 마법의 시전 속도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뭐야. 언제 이렇게 세진 거지?’
어제 ‘음습한 요괴 소굴’을 공략할 땐, 5인 파티에 딜러진이 여럿이라 크게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2인 파티로 강주연의 화력 지원을 정면에서 마주하니, 그 위력이 확실히 남다른 게 느껴졌다.
‘A급 문턱까지 온 건가?’
강주연은 정통 [플로리안 주문] 룬을 활용하는 홀더다.
[플로리안 주문] 룬은 김채은이 사용하는 [아드리안 주문]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활용법이 간단해서 성장이 빠른 편이지만, 그것도 초심자 단계의 이야기다.
강주연 정도 되는 고위 마법사 계열들은, 점점 룬 활용이 복잡해지고 쉽게 한계에 부딪힌다.
당연히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룬의 한계를 안고도, 강주연은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능력치와 룬 활용은 향상되고, 전투 감각은 더 고강해졌다.
윤지아를 마주치고 일종의 리미트가 풀린 강주연.
그 과정을 눈앞에서 직접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콰- 콰가가-
그오오…?
수준 차이 앞에 상성은 무의미하다는 걸까.
던전에 출현하는 괴수들 대부분이 물속성이기에 큰 효과를 못 볼 법도 한데, 강주연의 마법은 보란 듯이 괴수들의 숨통을 끊어갔다.
그 틈에서, 앞선을 맡은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캉- 카강-
구오오-!!
‘쉽다, 쉬워.’
강주연의 화력 지원으로 괴수들은 거의 빈사 상태가 됐고, 저주를 품는 요괴의 특성상 [참회자의 검] 위력은 계속 증폭된다.
당연히 평소보다 전투가 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번에 새로 얻게 된 [악귀의 저주] 룬.
이 룬의 활용도가 은근히 쏠쏠했다.
<현재 사용 가능한 저주>
*[간단한 저주]
: 부식, 둔화, 혼란
*[악귀의 저주]
: 부식, 둔화, 혼란, 쇠약, 도발
-룬 레벨이 오르고 고유 특색이 저주에 담기면, 해당 저주가 파생스킬로 변모합니다.
그동안 [간단한 저주]를 활용해 쓸 수 있었던 저주는 3개였다.
부식, 둔화, 혼란.
상대의 방향 감각에 디버프를 주는 혼란을 포함해, 저주 대부분이 이름 그대로의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전투에서 쓰긴 힘들었는데….’
그동안 간간이 저주를 섞어 쓰긴 했어도, [간단한 저주]가 내 주력 전투룬이 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신성술과 직접 전투의 동시 컨트롤이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전투 도중 속성룬을 쓰긴 해도 너무 복잡한 마력 공격은 섞지 못하듯, 저주와 같은 신성술 역시 복합적으로 사용하려면 더욱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악귀의 저주 덕에 훨씬 편해졌어.’
그런데 어제, 고위 저주 룬을 얻게 되니 그 문제가 바로 해결됐다.
복잡하고 치밀한 저주를 사용하려면 여전히 시간이 걸렸지만, 몇몇 저주들은 전투 도중에 섞어 쓸 수 있을 정도로 컨트롤이 편해졌다.
구오오…?
그중 가장 쏠쏠한 저주는 역시 ‘쇠약’.순간적으로 상대의 내구력을 깎아내는 저주.
흔히들 ‘방깎’으로 일컫는 효과를 지닌 저주였다.
내 보유 룬 중엔 [견고한 이빨]이 지닌 효과이고, 스킬 중엔 [하이드 어택]이 있지만…
두 효과는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쓸 수 있다.
반면 ‘쇠약’은 리스크없이 신성력만을 사용하는 저주.
물리 공격을 주력으로 삼는 내게 있어, 가장 알맞은 상태 이상이었다.
‘위력도 상당해.’
저주 발현은 마법과 달리, 신성력을 사용한다.
신성 계열 홀더들이 특정 신들의 힘을 빌려 신성술을 발현하듯, 저주 역시 악신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기에 신성과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신성 수치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고, 신성 관련 룬이 있으면 그 힘이 강화된다.
이제 막 얻은 [악귀의 저주] 위력이 강한 이유였다.
[지독하리만큼 강렬한 저주! 대상에게 주문을 거는 읊조림엔 더없이 악한 기운이 몰려 있습니다. 저주를 다루는 당신의 솜씨가 더 세밀해집니다.]
[‘악귀의 저주’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신성을 1 획득합니다.]
[높은 신성 수치로 인해 수복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신체 반응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빠른 회복력’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신성을 1 획득합니다.]
룬의 성장도 거침이 없었다.
꾸준한 룬 활용으로 [악귀의 저주] 룬 레벨이 오른 것은 물론, [빠른 회복력] 룬도 성장을 거듭했다.
일전에 ‘구름을 가린 둥지’ 던전에서 특이 만티코어를 잡고 얻었던 룬.
보유룬 중 [전투치유]와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마력 공격에 한해서만 치유를 하기에 훨씬 성능이 좋았다.
이렇듯 신성 관련 룬들을 성장시키며 능력치를 올리다 보니, 어느새 신성 수치는 35.
‘좀 심할 정도로 높네….’
그 수치에 나도 혀가 내둘러진다.
이 정도면 거의 뭐…
신성 계열 C급 홀더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고, 고오오….
전투가 끝났다.
마주쳤던 바다 요괴들은 모조리 쓰러졌다.
그래도 전원 B급 괴수에, 7마리나 되는 괴수 무리였는데…
너무도 빠르게, 너무도 허무하게 끝난 전투였다.
나는 몸을 한 번 털어내고, 장비를 가볍게 점검했다.
시간이 많진 않아서, 이번에도 마력석만 챙기고 앞으로 가야 했다.
“재현아.”
그렇게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던 도중.
뒤쪽에서 지원 공격을 하던 강주연이 다가왔다.
“어, 정비 마쳤어? 얘네 마력석만 캐고 출발하자.”
그렇게 말을 건네자, 강주연이 문득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이내 그녀의 손가락이 살짝 먼 곳을 향했다.
무인도 형태로 구성된 던전의 수풀.
그 우거진 나무들 사이의 어느 지점이었다.
“저쪽에서… 묘한 마력이 느껴져. 섬세하게 체크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그 말에 내 눈이 곧장 커졌다.
나고야 조사 이틀 차.
드디어 우리가 찾던 일말의 단서를…
강주연이 지금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