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고야시.
인적이 드물다 못해, 사람이 아예 없는 카페.
주인도, 손님도 없어 보이는 황량한 카페에 한 남자가 다급히 들어섰다.
날카로운 인상과 이마의 흉터가 돋보이는 홀더.
<빌런> 클랜의 지윤재였다.
“지부장님, 목표물들이 작전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카페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무 사람도 없는 조용한 카페.
그 안에서 웬 와인을 들고와, 홀로 마시는 차수연이었다.
“음음- 전원이 입장했니?”
“아닙니다. 현재 도재현과 강주연으로 구성된 소규모 팀만이 이중던전과 1차 워프 게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아마 오늘 안으로 팀원들을 불러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고야항 수족관에 자리한 ‘바다 요괴 서식지’.
그 안 중간부 어딘가엔, <빌런>의 주력 밀수 통로인 ‘미허가 워프 게이트’와 설립지역인 이중던전이 존재한다.
이들의 탐색을 위해, <안티 빌런> 써클과 <불의 심판> 클랜이 상호 협업으로 일본에 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미리 기다리고 있던 <빌런> 클랜.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목표물들이 미끼를 물었다는 소식을, 지윤재는 전하고 있었다.
차수연은 천천히 와인을 음미하며 말했다.
“음음- 그럼 슬슬 준비하렴.”
“…지부장님.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뭐가 말이니?”
갑작스러운 지윤재의 질문.
그에 차수연이 고개를 돌렸다.
어지간해선 명령 하달이나 임무에 토를 달지 않는 지윤재인데, 정말 오랜만에 듣는 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윤재는 망설이며 말을 아끼다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작전…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전 내용도, 성공 여부도 모두 미지수인 부분이 많습니다.”
“흐응- 어떤 점에서?”
차수연이 흥미로운 얼굴로 지윤재를 봤다.
거기엔 그를 질책하려는 어떤 기색도 없었다.
순수한 흥미.
단지 그의 대답이 궁금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에 지윤재가 차분히 말을 꺼냈다.
“우선, 저희 클랜의 실제 밀수 장소를 미끼로 쓴다는 겁니다. 확실한 유인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긴 하지만, 만약 작전이 실패하면 저희 클랜은 주 수입원 중 하나를 잃게 됩니다.”
이건 꽤 큰 문제였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빌런> 클랜이, 수익을 내는 가장 큰 비중은 ‘불법 아이템의 밀수’.
그 시작점이 되는 ‘미허가 워프 게이트’를, 이번 작전에선 미끼로 쓰고 있다.
만약 작전이 실패할 경우.
클랜의 밀수 통로 및 조달 인력을 모두 잃게 된다.
이는 지금껏 <빌런> 클랜이 펼쳐온 작전 중 가장 리스크 있는 작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후후. 성공하면 되는 거 아니니?”
“하지만…”
“윤재야.”
순간 반박하려던 지윤재는, 날 선 차수연의 부름에 고개를 숙였다.
“예, 지부장님.”
“언제부터 그렇게 겁쟁이 새끼가 됐니?”
“…죄송합니다.”
실패를 가정하지 마라.
그녀는 그걸 돌려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해보렴. 재밌네.”
본래라면 그대로 끝났을 논의.
하지만 이런 논의가 오랜만이라 그런지, 차수연은 웃으며 반론을 받아줬다.
그에 지윤재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두 번째 이유를 들었다.
“두 번째론, 불의 심판을 건드는 게 너무 위험해 보인다는 겁니다. 어차피 안티 빌런 써클은 도재현이라는 구심점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클랜의 걸림돌이 되는 주체만 제거해도 충분할 텐데, 강주연을 비롯해 불의 심판 인원들까지 건들면…”
아찔한 상상을 한 그가 말을 이었다.
“저희는 작전이 끝난 후, 불의 심판과 전면전을 펼쳐야 합니다.”
이번 작전은 대형 연계 작전이다.
한국에선 클랜 부마스터 황성연을 위시해 수많은 클랜원이 아카데미를 습격하고, 일본에선 차수연과 지윤재 등의 파견 인원들이 <안티 빌런>과 <불의 심판>을 덮친다.
목표는 사살.
일본에 조사를 온 전 인원의 사살이다.
그걸 위해 밀수 장소에 관한 정보를 흘린 거였고, 그걸 위해 클랜 차원에서도 아직 공략하지 않은 이중던전에 유인한 것이었다.
‘…….’
지윤재는 그게 너무 무리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빌런> 클랜은 그동안 국내 대형 클랜들과의 전면전을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전면전을 한다고 해서 딱히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고, 각 클랜마다 보유한 S급 홀더의 존재가 부담되기도 했으니까.
괜히 국내 3대 클랜이 아니다.
전면전을 펼쳤을 때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클랜은 셋 중 하나도 없었다.
‘왜 이제 와서….’
막말로 강주연을 죽이려면 언제든 죽일 수 있었다.
지윤재는 슬슬 A급 반열에 오르고 있는 홀더고, 암살자 계열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특정인의 암살 정도는 쉬웠다.
그럼에도 암살 명령이 내려오지 않은 건, 그런 작전이 펼쳐지는 순간 <불의 심판>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걸 잘 알기에 지윤재는 이번 작전이 더 이해가 안 갔다.
당장 <안티 빌런> 써클에 두 대형 클랜들이 협력하는 이유도, 저번 작전 때 의도치 않게 <로열>의 문가은이 공격받았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리고 애초에 아카데미 습격 작전은… 내년으로 계획됐던 작전이잖습니까.”
이게 결정적인 마지막 이유였다.
원래 내년 혹은 내후년으로 계획됐던 작전이 앞당겨졌다.
당연히 급하게 펼쳐진 작전인 만큼, 군데군데 허술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날카로운 지적들에, 차수연은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며 답했다.
“음음- 앞당겨진 이유야, 윤재 너도 잘 알잖니?”
“…예.”
사실 계획이 앞당겨지는 건 필연적이었다.
김도윤의 도재현 암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아카데미의 경계가 극도로 강화됐고 예기치 못하게 대형 클랜 둘이 그들과 협력 관계로 돌아섰다.
이렇듯 경계 태세가 강화된 상태에선, 웅크리는 것보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작전은 그런 데에서 나온 강수였다.
“그리고 불의 심판은…”
차수연이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전면전, 할 거란다. 네 말대로 계획이 모두 끝나면.”
“정말입니까?”
지윤재가 깜짝 놀라 되물었고, 차수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그만 좀 징징대렴. 선임 클랜원이라는 새끼가 자꾸 상부 지시에 토 달면,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응?”
그 살벌한 말에.
지윤재의 입에선 자동반사처럼 한 마디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드르륵- 탁.
그 이상의 논의는 끝이었다.
차수연은 그대로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목표물들이 밀수 장소를 발견했다.
그건 곧 작전이 코앞까지 와 있다는 거고,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본격적인 움직임에, 지윤재도 그녀를 따라나설 준비를 했다.
“아, 참. 최근에 데려온 그 모조 마검은 어떻게 됐니?”
차수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지윤재에게 물었다.
“모조 마검… 구명훈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시커먼 녀석 말이야.”
“일본으로 합류해 작전 대기 중입니다. 안티 빌런 인원 중 박진우라는 상대를 맡을 것 같습니다.”
이번 작전은 차수연, 지윤재, 그리고 다수의 클랜원이 투입된다.
목표물들을 이중 던전 및 보스 룸까지 유인한 후.
그들이 지쳐있을 때를 노려 사살하는 것.
그리고 이 작전엔, 부마스터 황성연의 지시로 열화판 마검을 받은 구명훈도 참여해 있었다.
차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잘 써먹고 끝나면 폐기하렴.”
이번 작전을 위해 임시로 영입된 홀더다.
세뇌 작업이 들어간 탓에, 어차피 오래 끌고 가지도 못 했다.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폐기 처리해야 할 1순위 대상이 구명훈이었다.
그 냉철하면서도 합당한 명령에, 지윤재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 *
뿔뿔이 흩어져 있던 팀원들이 한데 모였다.
‘바다 요괴 서식지’ 던전.
그 중간부 외진 곳에 자리한 장소.
이곳의 묘한 마력 집중 현상에 우리는 곧바로 팀원들을 호출했고, 1시간 만에 모두가 도착했다.
“이건 미허가 워프 게이트, 그리고 이건 이중던전으로 이어지는 매개체가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꼼꼼히 이들을 살펴 보던 아키바 미유.
그녀의 선언으로 검증이 끝났다.
우리가 일본에 와 찾던 <빌런>의 불법 아이템 밀수 장소.
그곳이 바로 여기였다.
“바다 요괴 서식지는 나고야에서 꽤 유명한 던전 중 하나입니다. 많은 홀더들이 사냥을 위해 자주 찾는 던전이고, 그만큼 공략 방향도 확실하게 정해져 있죠. 때문에 정식 공략 방향에서 외진 곳으로 떨어진 이 지점에, 범죄자들이 밀수 장소를 구성한 것 같습니다.”
아키바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이중던전이 있음에도 다른 홀더들이 여길 발견하지 못한 이유.
그건 그만큼 이 던전이 대중적인 사냥터이기에 오히려 그 틈을 파고들어 장소를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 워프 게이트는 이중던전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진 1차 장소인 겁니까?”
내 합리적인 추측에 아키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서 거래를 진행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거래현장은 이 이중던전… 즉, 안쪽으로 들어가야 구체적인 조사가 이어지겠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곤, 권오준을 바라봤다.
그는 또다시 턱짓으로 알아서 하라는 제스쳐를 보였다.
여느 때처럼 내 판단에 맡기겠단 뜻.
이번에도 10명의 지휘권이 내게 있었다.
“그럼 이중던전으로 진입하겠습니다. 다들 돌발 상황에 대비해 전투 준비를 해주세요.”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결단을 내렸다.
명확한 현장증거와 세부조사를 위해선 이 이중던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10명의 팀원은, 이중던전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리고….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의 텁텁한 기운과 일렁이는 공기가 홀더의 내구를 저하시킵니다.]
화끈한 열기로 가득한 이중던전이 우릴 맞이했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 이후 오랜만에 맞닥뜨린, 동굴 형태의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