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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49화 (149/353)

미지의 문을 열고 들어선 보스 룸은, 일단 뜨거웠다.

지금껏 던전에서 마주한 괴수들은 전부 불속성.

그리고 아마 보스 괴수 또한 불속성일 거라는 걸 암시하듯, 보스 룸 안은 숨이 턱 막히는 공기와 견디기 힘든 온도로 가득했다.

나야 불내성 능력치가 10이나 되고, [그을린 도마뱀 가죽 갑옷]까지 보유하고 있기에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불속성에 전혀 내성이 없는 파티원들은 꽤 힘들어 보였다.

입장하자마자 다들 안색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공간이 너무 넓어.’

나는 긴장한 얼굴로 보스 룸 안을 둘러봤다.

넓다.

넓어도 너무 넓었다.

도중에 확인했던 ‘밀수 특수 공간’의 몇 배는 돼 보이는 크기를 자랑했고, 덕분에 보스 괴수의 모습은 아직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이번 던전과 가장 유사한 구조였던 ‘아카데미 지하 던전’은, 보스 룸에 입장하자마자 그리즐리 드레이크 혹은 레드 드레이크가 모습을 드러냈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를 긴장감만이 내부에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 더 가야 보스가 있는 건가?’

상당히 멀어 보이는 보스 룸의 끝을 바라본다.

사방이 불꽃으로 뒤덮여 있어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끝자락엔 벽이 있긴 했다.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을 둘러싼 벽.

그리고 양옆으로 뻗은 광활한 공간.

동굴의 형태를 생각해봤을 때, 이건 일종의 돔구장과 같은 구조였다.

그동안 던전을 공략하며 지나온, 협소했던 던전 내부와 동일 공간이라고 보기 힘든 형태였다.

“다들 괜찮습니까?”

나는 일순 조용해진 파티원들에게 물었다.

나와 강주연, 윤지아, 박진우는 불내성이 높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권오준 또한 나름의 저항력이 있는지 안색이 괜찮았다.

나머지 다섯의 파티원이 문제였다.

불속성 괴수들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강렬해진 불길과 내부 온도에, 다들 숨을 쉬기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조…금 힘들군요.”

“이건 마치 불속성 마법을 정면에서 수시로 받는 느낌입니다.”

파티원들의 힘겨운 대답에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던전은 시작부터 A급 괴수가 나타나던 고위 던전이다.

당연히 그 끝인 보스 룸 공략도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 디버프가 특수 조건으로 깔려있을 줄은 몰랐다.

거의 기믹 보스에 버금가는 디버프.

공략에 큰 걸림돌이 될 만한 악조건이었다.

“흐응- 어쩔 수 없네요.”

“…이수미 홀더님?”

그렇게 난감한 상황이 이어지던 도중.

가만히 있던 이수미가 말문을 열었다.

그리곤 스태프를 꺼내 들더니, 집중 상태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이후 3분 정도 지났을 때, 그녀는 신성 주문의 완성을 고했다.

“평온을 되찾아라.”

언령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이수미의 궁극스킬이 펼쳐졌다.

그녀의 스태프에서 시작된 보랏빛 신성력은, 그대로 다섯 명의 파티원에게 분산되며 주변을 덮었다.

빠른 속도로 각 파티원에게 흡수되는 신성력.

이내 그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던전의 특수 조건으로 고생하던 파티원들의 컨디션을 모두 되찾게 하는, 놀라운 주문이었다.

“…궁극스킬입니까?”

묻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질문이 나왔다.

이수미는 살짝 지친 듯 숨을 몰아쉬며, 날 흘겨봤다.

“들으면 몰라요? 언령 했잖아요-.”

“전엔 없으셨잖아요.”

“어머, 회장 씨 은근 나한테 관심 많았구나.”

역시 이수미는 말빨로 못 이기겠다.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길래 저런 말들이 반사적으로 나올까.

게다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전해지는 싸한 느낌.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안정 계열의 버프 스킬인 겁니까?”

“네에- 익힌 지 얼마 안 돼서 범위도 지속시간도 짧지만요. 최대 5명, 30분이 한계예요.”

“그거면 충분해요.”

생각지도 못했던 이수미의 궁극스킬.

분명 ‘뱀이 뒤덮은 숲’ 공략 때만 해도 없었던 스킬인데, 지금은 자유롭게 펼쳐내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불의 심판>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획득한 모양이었다.

아무렴 좋다.

덕분에 상태가 안 좋던 다섯 명의 파티원이 단숨에 컨디션을 회복했고, 나는 그대로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전진을 명했다.

“포메이션은 그대로 갑니다. 대신 궁수 계열인 아키바 씨는 1열로 와서 저희와 함께…”

그런데 그때였다.

쩌적, 쩌저적-

콰, 콰아앙-!!

고요하던 보스 룸의 벽에 금이 생겼다.

금이 생긴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모든 구조물이 파괴되는 듯한 강렬한 폭발음이 들렸고, 그대로 벽이 박살 났다.

그리고 벽면 너머로 보이는 또 다른 공간.

커다란 공터 같던 보스 룸 옆엔, 괴수 무리도 들어갈 수 있을 법한 큰 공간이 또다시 마련되어 있었다.

이 던전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다.

던전을 공략하며 몇 번이나 발견했던 ‘방’.

현장 거래와 범죄가 일어났던 증거가 발견된, 밀수 전용 특수 공간.

그게 보스 룸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던 것이다.

콰가가가-

드르르으아…!!

그렇게 동굴의 옆면이 모조리 박살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의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 보스다.”

“저게….”

파티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게, 파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보스 괴수의 모습이…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괴이하고 거대했기 때문이다.

번들거리는 눈빛과 날카로운 이빨.

모조리 물어뜯을 듯한 폭력적인 기세.

당장 머리만 봐도, 그 징그러운 생김새가 눈에 띄는데….

‘씨발. 8개라고?’

심지어 그 머리가 8개다.

보스 괴수는 도무지 몇m에 다다를지 모르는 거대한 몸집과 단단하기 그지없는 비늘, 거기에 무려 8개의 머리를 지닌 거대 뱀이었다.

“야마타노오로치….”

앞선에 와 있던 아키바가 녀석을 보고 중얼거렸다.

“전설로만 들려오는 요괴인 줄 알았는데….”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

일본 전설에 등장하는 이무기 형태의 요괴.

스치듯이 들어봤던 괴물이었는데, 실제 던전에서 보스 괴수로 자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녀석은 총 8개에 다다르는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육중한 몸을 이끌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타닥- 탁-

“권 팀장님! 먼저 가겠습니다!”

“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권오준을 향해 선두에 설 것을 선언하며, 잇따른 보조를 암묵적으로 부탁했다.

그리고 [천하제일 경주마]를 활용하면서 그대로 야마타노오로치를 향해 돌격했다.

손에 들린 무기는 [와이번 스피어].

일본에 오기 전, 최유민에게서 새로 받은 무기 중 하나.

또한, 괴수에게 선공을 취할 때 가장 효율적인 무기 중 하나였다.

‘액셀 피어싱.’

빠르게 질주해가는 돌격.

그 가속도를 이용한 극한의 찌르기.

나는 파생스킬인 [액셀 피어싱]을 사용하며, 야마타노오로치의 몸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내가 보유한 스킬 중에서도 꽤 강력한 공격스킬인 만큼, 상대 괴수에게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크그가가-!

웬 쇳소리처럼 소름 끼치는 음성이 들린다.

손에 든 [와이번 스피어]에선 비늘을 찔러 들어간 감촉이 느껴졌다.

매서운 돌격을 마주하며, 야마타노오로치 또한 어떻게든 이를 피해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장 내 속력이 51에, [천하제일 경주마]는 5레벨이다.

거의 경지에 다다른 수준의 돌격 및 찌르기는, 속도에 강점을 지닌 괴수가 아닌 이상 피해내기 쉽지 않았다.

드, 드르르으아…!!

야마타노오로치가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단단한 내구력을 뚫고 들어간 찌르기는 녀석의 몸에 큰 자상을 남겼고, 상처에선 [액셀 피어싱] 고유의 ‘출혈’ 효과가 일어나고 있었다.

첫 공격부터 확실한 타격을 입혔다는 증거다.

“이크….”

나는 녀석의 몸부림에 바로 몸을 뺐다.

워낙 저항이 거세서 창을 뺄 틈도 없었다.

8개의 머리와 꼬리가 난잡하게 휘둘러진다.

보스 룸 내부가 흔들리고, 군데군데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공격 범위에서 최대한 멀어져, 또 다른 옆 벽면 쪽으로 달라붙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권 팀장님!”

“맡기고 물러서라!”

내 [액셀 피어싱]으로 선공을 연 전투.

이제 나는 무기를 바꿔 호흡을 가다듬고, 미리 준비를 마친 파티원들이 후공을 이어갈 차례였다.

권오준과 박진우가 괴수의 양방향에서 달려들기 시작한다.

뒤쪽에선 마법사 계열의 지원 공격이 이미 시전되는 중이다.

야마타노오로치에게 어떤 룬과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사냥을 마칠 수 있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쩌적, 쩌저적-

콰, 콰아앙-!!

“윽?!”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쪽.

야마타노오로치가 나타난 옆 벽면의 반대편.

이곳의 벽면이 갑작스럽게 터졌다.

나는 그 충격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서둘러 신체 방어 룬들을 활용했다.

‘뭐야, 이게.’

벽면의 조각들에 맞아 날아가면서 의아함이 들었다.

이미 야마타노오로치는 벽면을 뚫고 나왔는데, 반대편 벽면이 갑자기 왜 터지는 걸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나는 억지로 몸을 돌려 충격의 현장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갸, 오오오-!!

“미…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나는 멍하니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벽면을 박살내며 나타난 또 다른 괴수.

압도적인 풍채를 자랑하는 두 번째 괴수.

‘보스 괴수가 둘이라고?’

야마타노오로치에 이어, 이번엔 총 9개의 머리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 뱀이…

새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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