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152화 (152/353)

서울 홀더 아카데미.

인적이 드문 교정과 건물, 그리고 집무실.

을씨년스러운 가을의 분위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오늘의 아카데미는 적막한 기운이 곳곳에 맴돌았다.

“…….”

그런 침묵 속.

탁원호는 집무실에서 가만히 자신의 업무를 봤다.

익숙하다.

원래 주말의 아카데미는 늘 조용했다.

간혹 연구를 위해 나오는 교수진이나 개인 훈련 및 써클 활동 때문에 나오는 학생들이 있긴 하지만, 일단 강의가 없는 날이기에 평소보단 방문객이 매우 적었다.

개인 성장에 열정적인 학생이나 교수…

혹은 탁원호처럼 기관을 통솔하는 운영진이 아닌 이상, 황금 같은 주말에 아카데미에 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지하 던전이라….”

탁원호는 두껍게 구성된 보고서 뭉치를 읽고 있었다.

자신의 전속 제자이자, 이제는 공공연한 아카데미 내 최대 유망주.

1학년 도재현이 그간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특수 보고서였다.

<아카데미 지하 던전 연구 최종 보고서 : 빌런의 계략을 중심으로>

어느 날 우연치 않게 발견된 아카데미 지하 던전.

언제고 공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진 못했었다.

탁원호 자신이 직접 탐사를 한다면, 탁씨 가문의 다른 운영진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게 되면 지하 던전은 그저 형제들의 경계대상 및 평범한 수익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맡겼던 게 도재현이었다.

당시 남다른 전투 감각과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던 전속 제자.

녀석이라면 충분히 공략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혹시 공략이 어렵다면 그냥 그대로 묻어두려고도 했었다.

“그게 전부였는데….”

하지만 도재현은 탁원호가 맡긴 공략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어떻게 모았는지 1학년 내 최대 유망주들을 동료로 섭외해 지하 던전의 공략을 마쳤고, 던전 내부와 괴수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기록해 보고했다.

사실상 완벽에 가까운 공략 보고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맹점을 완벽하게 파고들었군.”

도재현은 탁원호가 내심 원했던 내용.

지하 던전과 관련해, 석연치 않다고 느꼈던 부분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합리적 추론을 더해 만든 보고서.

그게 지금 탁원호가 읽는 최종 보고서였다.

(중략)

따라서 올해 1학기, 아카데미 내부에서 출현한 괴수 ‘시즐링 샐러맨더’는 이곳 아카데미 지하 던전에서 출몰하는 괴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자연적 현상이 아닌 인위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며, 이에 <빌런> 클랜이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빌런> 클랜에서 당시 사건을 주도했다면, 한 가지 더 위험한 정보가 추론된다. 이는 <빌런> 측에서 던전 내 괴수를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특수한 방법 혹은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인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며, 최악의 경우 ‘광화문 광장 집단 살인사건’ 당시처럼 무고한 피해자들이 … …

(중략)

저번 1학기, 갑작스럽게 아카데미에 출현했던 괴수.

B급의 시즐링 샐러맨더.

강의가 아닌 시간에 난데없이 등장한 탓에, 많은 학생이 다치고 죽었었다.

당시 이슈화가 되긴 했어도 금세 사그라들었던 사건에 대해, 도재현은 다시 한번 짚어내고 있었다.

그건 분명 <빌런>과 관련이 있었다고.

그들에겐 괴수를 현실로 끌어내는 특수한 방법이 있다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들이, 최종 보고서에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괜히 써클 수장이 된 게 아니군.”

탁원호는 보고서를 읽으며 내심 감탄했다.

자신의 제자가 국내 최대 범죄조직에 대항하는 써클을 만들겠다고 할 땐 솔직히 걱정이 앞섰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확실히 인정하고 있었다.

<안티 빌런>의 회장엔 도재현이 가장 어울린다.

그가 도출해낸 결론들은 모두 납득이 갔고, 찾아낸 단서들은 모두 신빙성이 있었다.

지금껏 아카데미에 없던 유형의 써클을 만든 건, 괜한 영웅 심리 따위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그의 행동엔 늘 근거가 있었다.

“흠흠. 누구 제자인지, 참.”

괜히 웃음이 나온 탁원호는, 헛기침을 내며 다시 보고서에 집중했다.

한 학기 동안 제자가 노력했던 땀방울이 담긴 보고서인 만큼, 조금 더 진중하게 읽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타다다-

쾅-!

“탁 교수님! 큰일입니다!”

갑자기 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아카데미에 상주하던 직원 한 명이 들어와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탁원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습격! 습격이 일어났습니다.”

“…습격이요?”

뜬금없는 단어에, 탁원호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카데미가 갑자기 습격을 당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선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직원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숫자는 대략 20명! 많은 직원과 학생들이 크게 다치고 있습니다. 그 무자비한 손속으로 추측하건대, 아마 빌런 소속의 클랜원들로 보입니다! 시급한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있는 남자는…”

멈칫한 직원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물들었다.

“황성연. 마검의 소유자, 황성연이 확실합니다.”

“……!!”

평화롭던 주말의 아카데미.

그곳에 난데없이, 잔혹한 칼날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쿠우웅-!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승리를 축하해주듯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정보창.

그에 나는 힘이 탁 풀리는 걸 느꼈다.

그건 전력을 쏟아 함께 사냥한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와… 잡았다.”

“끝났다….”

야마타노오로치가 쓰러졌다.

놈의 지독하고 강렬한 저주를 뚫고, 기어코 쟁취해낸 승리였다.

그 중심엔 [명경지수]를 적극 활용한 박진우가 있었다.

녀석은 어지간한 저주를 모두 무시하는 자신의 룬을 활용해 보스의 어그로를 모두 가져갔고, 덕분에 저주로부터 발이 풀린 우리 파티는 체계적인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발만 풀리면 끝이지.’

녀석을 상대하며 가장 까다로웠던 건, 상태 이상 스킬이다.

까다로운 저주들로부터 공격 받으며 계속해서 발이 묶였었고, 그건 박진우가 적극적으로 앞선에 나선 후에야 해결됐다.

그 족쇄로부터 해방된 우리 파티는, 총공세를 취했다.

아껴뒀던 권오준과 강주연의 궁극스킬.

그리고 내 [참회자의 검]에 내재된 [디바인 슬래쉬]까지 쏟아부은 공격이었다.

야마타노오로치는 그렇게 쓰러졌다.

아무리 녀석이 악성향 신성룬으로 자가 수복이 빠르다곤 하지만, 두 개의 궁극스킬과 다량의 신성력이 내포된 스킬 앞엔 장사 없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힘이 풀리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으며, 기진맥진한 파티원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다들 힘이 쭉 빠진 건지, 간신히 대답들을 했다.

이미 파티원 중 대부분은 바닥에 앉거나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우, 진짜- 뒤지는 줄 알았네…. 이건 뭐, S급 괴수 상대하는 기분이야.”

박진우도 바닥에 벌러덩 누워 푸념했다.

확실히 이번 전투는 그에게 꽤 힘들긴 했다.

아까 플레임 히드라에게 불구덩이를 맞아 고통스러워할 땐, 나도 놀랐으니까.

그래도 원작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녀석은 다시 회복을 마치고 야마타노오로치 사냥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공략의 일등공신 중 한 명이었다.

“야, S급이었으면 우리 다 죽었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근데 솔직히 A+ 등급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저놈들 A급이라기엔 너무 세잖아.”

“그건 맞긴 해.”

홀더든, 괴수든.

A급과 S급 사이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한다.

실제 능력과 경력 차이로부터 오는 강한 괴리.

따라서 같은 A급이라고 해도 각자마다 실력이 다 달랐다.

때문에 혹자들은 A+ 등급이나 SS 등급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러한 등급 체계를 시행하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보스 괴수가 두 마리인 보스 룸이라니… 이건 돌아가면 세계에서 놀랄 만한 화제가 되겠네요….”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아키바가 중얼거렸다.

나도 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마리의 보스 괴수.

이건 분명 한국과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놀랄 만한 새로운 정보긴 했다.

그동안 역사상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그녀의 말처럼 현실로 돌아가게 되면…

온갖 기사들이 대서특필되고, 이와 관련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 같았다.

“그럼 슬슬 정리하고 돌아갈 준비를 하죠. 저기 레스트 룸도 열렸으니까요.”

‘밀수 동굴’은 미발견 던전이었다.

공략이 끝나자마자 레스트 룸이 열리며 새로운 방이 보였다.

물론, ‘보스 괴수가 둘’이라는 정보는 지금껏 어디서도 나온 적이 없기에 이 던전이 무조건 미발견 던전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나는 한쪽에 쓰러진 플레임 히드라에게 다가가 도축을 시작했다.

각 보스 괴수의 마력석 채취와 레스트 룸 보상 확인.

이 정도만 정리하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 했다.

보스 괴수들의 부산물이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도축 전문 홀더도 없고 파티원들도 너무 지쳐 휴식이 필요했다.

“끄- 흐읍…?!”

그런데 그때였다.

휴식을 마치고 슬슬 정리를 시작하려던 찰나.

뒤편에 있던 마법사 계열, 김성철이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의 뱃가죽엔, 날카로운 칼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어?”

순간적으로 상황 판단이 안 된다.

김성철이 갑자기 칼에 찔렸다.

…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리고 그 이유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음음- 다들 반가워. 언제고 꼭 죽여보고 싶은 얼굴들이 있었는데, 오늘 여기 다 모였네?”

김성철을 칼로 찌른 남자와 그 무리.

더해, 중심에 자리한 무리의 리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익숙한 말투.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기억 나는 외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인상.

그리고 역겨울 정도로 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

<빌런> 클랜 아카데미 지부의 지부장.

그동안 아카데미와 날 지독하게 괴롭혔던 장본인.

중력의 지배자, 차수연이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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