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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55)화 (155/353)

Chapter 155 -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3)

지윤재는 작전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 차수연에게 작전의 리스크와 이후 클랜의 방향성에 대해서 잠깐 따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전이 실패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던전은 난이도가 꽤 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상대는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들이다.

이번 작전 장소인 미발견 던전은 <빌런> 클랜에서 최근에 옮긴 거래장소였고, 그 수준이 너무 높은 탓에 보스 룸 공략도 아직 미뤄 둔 고위 던전이다.

아무리 도재현이라는 녀석이 그간 클랜의 계획을 어그러뜨렸고, A급 홀더 권오준의 실력이 뛰어나다곤 해도…

막 던전 공략을 마친 파티를 쓰러뜨는 것 정도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그래서 도재현이 웬 광역 상태 이상 스킬을 사용했을 때도, 지윤재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클랜원들 대부분이 발이 묶이긴 했지만, 기껏해야 3초 정도 묶이는 공포다.

궁지에 몰린 쥐가 펼치는 최후의 발악이라고 생각했다.

‘…뭐지?’

그런데 그의 행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재현은 상태 이상을 건 상황에서 공격을 해오는 게 아니라, 웬 석판 같은 아이템을 꺼내며 돌발행동을 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쏟아지는 강렬한 빛.

온통 황금색인 빛이 도재현에게 뿌려졌다.

그리고 그 뒤에선.

마치 용의 형상이 나타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뭔가 이상하다.

그대로 두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이 지윤재의 머리에 꽂혔다.

그래서 더 지체하지 않고 스퍼트를 올렸다.

보법류 룬과 속력 수치를 극한으로 활용해, 도재현에게 달려들었다.

도재현이 뭔가 얄팍한 수를 더 쓰기 전에, 미리 위험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쇄도하라.”

그의 눈이 떠지고.

한 줄기의 언령이 읊조려졌을 때.

지윤재의 움직임은 모두 의미 없는 몸짓이 되고 말았다.

“뭐…?”

지윤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라졌다.

도재현의 모습이, 완벽히 시야에서 없어졌다.

속력을 낸다거나, 보법류 룬을 쓴다거나…

그런 개념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아예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며, 원래 없었다는 듯이 그의 몸이 전이됐다.

‘어디로?’

사라졌다면, 분명 그 방향이 있어야 한다.

앞은 아니다.

앞쪽엔, 마찬가지로 당황한 <불의 심판> 파티원들만 있을 뿐이었다.

옆은 더더욱 아니다.

구명훈과 클랜원들이 함께 오고 있었기에, 옆이었다면 충분히 기척이 느껴진다.

‘그럼….’

남은 건 하나.

지윤재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끼, 끼야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이 던전 안을 뒤덮는다.

규칙적이던 마력의 배열이 어그러지고, 붉은 피가 허공에 솟구쳤다.

차수연.

타깃은 차수연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뒤에 나타난 도재현에, 모든 마법의 연결을 끊고 다급히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도재현의 검은 기어코 그녀의 등과 가슴을 찔렀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어떻게?’

지윤재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도재현과 차수연의 거리는 최소 200M 이상.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좁힐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만약 좁힐 수 있다 해도 지윤재나 차수연급 홀더가 반응하지 못할 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차수연이 당했다.

그건 ‘동시’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속도.

도재현은 움직임과 동시에 차수연의 뒤에 나타나, 모든 마력을 박살내고 검을 찔렀다.

 

때문에 보스 룸 곳곳에 펼쳐지던 차수연의 중력 마법도…

언제 존재했냐는 듯, 쉽사리 조각나고 있었다.

“끄윽- 씨발, 씨발! 빨리 안오고 뭐해, 이 개새끼들아-!!”

“클랜원 전원, 지부장님을 지켜라!”

차수연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윤재는 황급히 지휘권자로서 명령을 하달했다.

스슥- 스스슥-

챙! 채앵!

지윤재와 구명훈을 비롯해 9명의 클랜원이 모두 차수연을 둘러쌌다.

그에 도재현은 목적한 바를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검을 뽑아 물러섰다.

“끄윽- 끄으으- 씨발, 씨바알! 저 개새끼를 죽여-!!”

차수연이 또 한 번 울부짖었다.

그녀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온몸은 시뻘건 피로 물들고, 가슴팍엔 커다란 구멍이 났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건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호흡을 삼키고 있었다.

그 흐트러진 모습에, 지윤재는 당황했다.

차수연의 이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빌런>에 들어오고, 그녀의 직속 부하가 된 후로 단 한 번도.

늘 냉철하고, 잔혹한 모습만 보이던 지부장이었다.

같은 사이코여도, 이 사람 앞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싶었었다.

그리고 그 칼 같은 가면은, 단단한 힘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윤재가 항상 군말 없이 그녀에게 복종했던 건, 그만큼 그녀가 지닌 힘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그런 차수연이 일격에 당했다.

S급 홀더에 가장 근접했다 평가받는 A급 홀더. 

<빌런> 내에서도 마스터와 부마스터를 제외하면, 따라올 상대가 없는 클랜원.

그 화려했던 평가가 무색했다.

단단하던 마력 방어막은 종잇장처럼 쉽게 찢어졌고, 상대의 공격은 그녀의 반응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분명 상대는 마력이 고갈되고 지쳐있었을 텐데…

알 수 없는 스킬 한 번에 전황이 바로 역전됐다.

죽음.

차수연은 그 일격으로, 죽음의 위기에 몰려있었다.

지윤재가 살짝 입술을 베어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 일격의 그림자조차 쫓지 못했었다.

“임진혁.”

“예!”

“지부장님을 치료해라. 있는 포션을 모두 갖다 부어.”

“알겠습니다!”

임진혁이라고 불린 클랜원이 다급히 차수연에게 붙었고, 지윤재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도재현을 바라봤다.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검을 어깨에 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물며 겨우 토해낸 말.

그에 도재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보면 몰라? 너희 대장 죽이려고 한 거?”

“…무슨 스킬을 쓴 거냐고 묻는 거다.”

“그걸 내가 왜 말해줘? 너나 차수연이나, 아까부터 웃긴 질문만 하네.”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하는 도재현.

그는 이내 차갑게 표정을 바꾸며, 지윤재를 노려봤다.

“역겨운 새끼들. 너흰 사람 잘못 건드렸어.”

싸늘한 말투.

그리고 그보다 더 차가워지는 주변의 공기.

지윤재는 그 순간.

깜짝 놀라며 자신의 소검 두 자루를 꺼냈다.

“……!!”

캉-!! 카가강-

이내 강렬하게 맞부딪히는 두 무기.

꽤 거리가 있는 곳의 도재현이, 어느새 자신의 지척까지 와 있었다.

차수연을 처음 공격할 때의 그 ‘순간이동’은 아니다.

그러나 빠르다.

도재현은 미친 듯한 속도를 자랑하며, 순식간에 지윤재에게 다가왔다.

‘보법류 룬?’

아니다.

[날렵한 몸놀림] 같은 보법류 룬으로 설명되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압도적으로 높은 속력.

이건 분명…

막대한 능력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과 압박감이었다.

도재현은 맞부딪힌 검과 소검 틈에서.

부릅 뜬 눈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목 닦고 뒤질 준비나 해, 지윤재.”

그 말과 함께.

맞부딪힌 검에서 순간 마력이 끌어 올랐다.

콰아앙-!!

이내 도재현의 검에선, 맹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건.

그건 분명…

한때 동료였던 김도윤의 주특기.

[폭발하는 검의 기세]였다.

‘씨…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그 강렬한 마력에 휩쓸리며, 지윤재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차야만 했다.

* * *

아깝다.

차수연을 향한 일격필살이 미수로 돌아가고, 나는 입맛을 다셨다.

[왜곡의 그림자]는 ‘블링크’를 통해 순식간에 상대에게 도달하고, 모든 방어 수단을 무시한 채 공격하는 강렬한 궁극스킬이다.

나는 이 스킬의 설명을 잠깐 읽고, 곧장 판단했다.

차수연을 죽이기로.

그렇게 옮겨진 내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쇄도하라.

그 한 마디와 함께, 차수연의 심장엔 내 검격이 꽂힐 것만 같았다.

‘역시 차수연은 차수연인가.’

하지만 <빌런> 내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인 그 위명이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걸까.

차수연은 분명 모든 방어 수단을 잃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내 공격 속도를 따라 반응해냈다.

심장에서 아주 살짝 빗겨 간 부위.

앞으로 치면 가슴, 뒤로 치면 날갯죽지 쪽.

그곳으로 방향을 틀어, ‘즉사’만큼은 막아냈다.

‘…난 년이긴 하네.’

비록 적이지만, 그 순간의 판단력은 감탄이 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치명상이 아닌 건 아니었다.

즉사만 피한 거지, 차수연은 완전히 전투 불능상태가 됐다.

만약 치료가 실패로 끝나고,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그녀에게 예정된 건 죽음 뿐이었다.

‘다행히 빌런 새끼들이 병신이기도 하고.’

나를 포위하듯 둘러싼 <빌런> 클랜원들을 바라본다.

이 녀석들은 차수연이 당하자, 우리 파티로 향했던 공격 방향을 온전히 내게 바꿨다.

나름 나도 이걸 예상하고 차수연을 노린 거긴 했지만, 정말 병신처럼 한쪽으로 모두 모여줄 줄은 몰랐다.

녀석들이 분산되어 우리 파티를 동시에 노려야 까다로운데, 멍청하게도 내게만 한꺼번에 달려들어 주니…

힘을 모두 회복한 나로선, 땡큐도 이런 땡큐가 없었다.

“도… 재현….”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찬 검과 몸.

그리고 초점을 잃은 듯한 눈동자.

한때 <안티 빌런> 부원이었던, 2학년 구명훈이었다.

지윤재에게 [폭발하는 검의 기세]를 먹여 잠시 떨어뜨려 놨더니, 이번엔 <빌런>에 붙어먹은 빠돌이 선배의 등장이다.

“선배.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빌런에 붙어 먹고 있었네요?”

“으으… 널 죽이고… 지아 님… 흐흐. 지아 님을….”

“광폭화 포션까지 먹었구나.”

이젠 통제불능이다.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짐승에겐, 아무리 정신 차리라고 말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나는 [참회자의 검]을 꺼내 들었다.

‘빨리 끝내버리자.’

앞서 지윤재를 상대할 때도 보였듯, 지금의 내 컨디션은 풀컨디션이다.

그 이유는 하나.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이 룬은 단언컨대, 지금껏 내가 얻은 모든 룬 중 가장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사기룬이었다.

단순히 궁극스킬인 [왜곡의 그림자]뿐만이 아니다.

상처 치유와 마력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는 특수효과 덕에 고갈됐던 마력은 모두 채워졌고, 마력의 위력 증가로 사용하는 마력 공격마다 족족 강력한 한방을 일으켰다.

거기에 파생스킬, [용인화].

처음엔 용의 날개 같은 게 생겨나는 스킬인가 싶었지만, 피부에 비늘이 돋을 뿐 육체적으로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이건 [광폭화]와 유사한 스킬이었다.

일정 시간 동안, 능력치의 30%가 증가하는 스킬.

[광폭화]보다 비율은 낮지만, 페널티가 적고 지속시간이 길었다.

“흡….”

덕분에 [광폭화]와 [용인화]를 동시에 사용한 내 능력치는, 80%의 증가 효과를 보였다.

기준 능력치에서 증폭되기에 곱절이 되진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파괴적이다.

거의 두 배에 가깝게 뻥튀기된 능력치.

사실상 A급 최상위 홀더의 능력치로 봐도 무방했다.

슥- 스스스-

푸쉬익-!!

나는 그 압도적인 능력치를 활용해, 극한의 속도로 구명훈에게 다가간 후.

가볍게 그의 어깨를 갈랐다.

“끄, 끄아아악-?!”

내가 다가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구명훈이,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멱따는 소리를 더 듣지 않고, [연격]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등 쪽에 베어지는 세 번의 검격.

“끄, 끄릅-”

그 무자비한 일격에.

구명훈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압도적인 능력치 차이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분명 구명훈은 <빌런>으로부터 특별한 힘을 부여 받은 것 같았다.

마검처럼 보이는 거무튀튀한 검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의 주변은 불길한 기운으로 넘실거렸다.

특히 이성을 잃은 모습까지 보이며, 그가 [광폭화 포션]까지 들이킨 상태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대로 뒀다면, 꽤 골치 아픈 상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 보면 그만이지.’

나는 가볍게 검을 털어냈다.

뭔가 보여주기 전에, 쓰러뜨리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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