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6 -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4)
현대 사회에 룬 홀더와 괴수가 나타난 이후.
그동안 홀더 계에선 무수히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룬이라는 힘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 괴수와 던전의 정체는 무엇일지, 이 모두를 관장하는 시스템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가장 원초적인 질문부터.
발전에 대한 근원적 의지까지.
홀더들은 그간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를 진행해왔고, 또 그 노력에 대한 결과물을 조금씩 일구어내며 초창기보다 훨씬 전문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 강동욱 교수, 조련 계열 홀더 중 최초로 통솔 30 돌파… 드디어 B급 괴수 조련에 성공하나?
그러한 현 홀더 계의 주력 학문은 무엇일까.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학자들은 모두 똑같이 답할 것이다.
괴수 조련(Monster Taming).
홀더와 괴수가 양립한 이후 발생한 모든 힘 중 가장 신비로운 힘이자, 룬 연구자 대부분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현 홀더 계의 주력 학문.
아카데미는 물론, 협회 및 각종 단체에서 이미 많은 학자가 이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된 비밀과 열쇠들도 하나씩 나오는 상황이었다.
혹자는 이 조련 계열의 룬만이 홀더와 괴수에 얽힌 모든 비밀을 풀 수 있고, 나아가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과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만큼 ‘괴수 조련’은…
홀더 계의 관심이 한데 모인, 현대 사회의 주요 학문 중 하나였다.
“강 교수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주말인데 고생하시네요.”
연구소 호위를 맡은 팀장의 인사에, 강동욱은 웃으며 답했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 소속.
특수 계열 전임 교수, 강동욱.
그는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괴수 조련’에 대해 가르치는 교수이자, 학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는 중인 연구자이기도 했다.
국내 조련 계열 홀더 중 손에 꼽히는 권위자로, 이론이든 실전이든 그를 따라올 홀더가 많지 않았다.
“저야 일인데요, 뭐. 교수님이야말로 주말인데 안 쉬십니까?”
“하하. 요즘 성과가 워낙 좋아서요. 저도 일하고 싶어서 몸이 막 근질근질합니다.”
강동욱이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황금 같은 주말.
그가 휴식을 마다하고 아카데미에 또 출근한 이유는, 최근 들어 좋은 성과를 내는 중인 연구에 조금 더 시간을 쏟기 위해서였다.
‘직접 가져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강동욱은 입맛을 다시며 연구소 안을 바라봤다.
아카데미 특수 계열, 다복합 연구소.
이곳 내부 깊숙한 곳엔, ‘괴수 조련’과 관련해 연구가치가 매우 높은 특수아이템 하나가 잠들어 있다.
[융화의 질서].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묘한 생김새의 수정구.
당장 드러나는 특수효과는 통솔 능력치를 10 올려준다는 것밖에 없지만, 봉인된 능력이 많아 연구할 부분이 넘쳐나는 전설급 아이템이었다.
‘정말 놀라운 아이템이야.’
강동욱은 [융화의 질서]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괴수 조련과 괴수들의 신비를 알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융화의 질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아이템이다.
아이템을 지닌 채로 조련하면 괴수와의 친밀도를 급격히 상승시킴은 물론, 홀더의 통솔 수치와 룬 활용을 뛰어넘는 보조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언제 한 번은 불가하다고 판단됐던, ‘괴수 두 마리의 동시 조련’을 가능케 하기도 했었다.
연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드러난 능력만 이 정도.
아직 관련 연구들이 상용화되지 못해, 걸음마 단계나 다름없는 국내 조련 계열 분야.
그 안에서, [융화의 질서]는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비밀리에 연구하지만.’
그 때문에 아이템의 존재와 연구내용이 모두 비밀리에 부쳐졌다.
[융화의 질서]는 아카데미에 귀속된 아이템.
강동욱 역시 아카데미와 계약을 맺고 연구 중인 터라, 사적인 이용이 불가했다.
그래서 집에 가져가 연구하고 싶어도, 반드시 출근해야만 했다.
“오늘도 전용연구실에서 있으십니까?”
문득 질문을 던지는 호위 팀장에, 강동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새로 준비된 괴수가 있나요?”
“말씀하셨던 B급 괴수, 켄타우로스를 금요일에 조달하긴 했습니다. 자세한 건 아마 연구실 보고서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호위팀은 연구소 호위를 주 임무로 맡지만, 종종 실험용 괴수들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전에 강동욱은 본격적인 조련 연구를 위해 B급 괴수 조달을 신청했었는데, 그게 마침 완료된 모양이었다.
강동욱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그럼 오늘도 수고…”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들어가려던 찰나.
쾅-!
다복합 연구소의 입구가 거친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쏟아지는 사람들.
아카데미 내부 직원들과 교수진, 그리고 몇몇 학생들이 포진된 무리였다.
그 난데없는 등장에, 강동욱의 머리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지?’
다복합 연구소는 막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입구에서야 건물 안으로는 들어와도, 내부까지 들어가려면 어차피 호위팀에 막힌다.
만약 출입자가 아카데미 교수라고 해도 안 된다.
강동욱처럼 정식 출입증을 허가받은 전속 연구자들에 한해서만 들어올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탁… 교수님?”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다가오는, 무리 중 선두.
그는 강동욱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탁원호 교수.
아카데미 전사 계열 소속의 전임 교수이자, 서울 홀더 아카데미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재단 탁씨 가문의 예비 후계자였다.
그리고 강동욱에겐, [융화의 질서] 연구를 정식으로 제안한 계약자이기도 했다.
“강 교수, 피해야 합니다.”
“예?”
그런 그가 웬 무리를 끌고 온 후.
갑자기 피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강동욱은 상황 파악이 잘 되질 않았다.
하지만 탁원호는 그의 이해는 상관없다는 듯.
곧장 말을 이었다.
“레인보우의 보관장소를 옮겨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레인보우.
특수아이템 [융화의 질서]를 일컫는, 일종의 코드네임.
탁원호의 입에서 그 비밀스러운 이름이 나오자, 강동욱은 더욱 당황스러운 얼굴이 됐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대화가 곱게 끝마쳐지는 일은 없었다.
콰아앙-!!
펑! 펑! 콰앙!!
폭발이 일어났다.
불속성 마법.
그중에서도 광역 폭발을 일으키는 [익스플로전].
그 강력한 마력 공격이, 사방에서 굉음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문 앞에서 다급히 들어오던 사람들도, 너무도 쉽게 폭발에 휘말렸다.
“끄, 끄아악-!!”
“살려줘!”
“교수님! 교수님…!!”
순식간에 연구소가 아수라장이 됐다.
살아남은 이들은 최대한 걸음을 움직여 연구소 안쪽으로 들어왔고, 미처 공격에 대처하지 못한 이들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입구 쪽에선 복면을 쓴 사람들이 각자 무기를 쥐고 밀려 들어왔다.
스무 명? 서른 명?
다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홀더들이었다.
“이, 이게 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
그 지옥도와 같은 광경에.
강동욱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으며 당황으로 가득 찼다.
그건 옆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던 호위 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화롭던 연구소가, 갑자기 피로 물들었다.
웬 복면인들이 쳐들어오며 습격을 진행했고,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이게 불과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도무지 상황 파악이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
그리고 그 폭발 속에서.
남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짙은 남색의 머리카락과 검은색의 커다란 대검.
주변에서 일렁이는 어둠의 기운.
그 남자는.
강동욱도, 그리고 재빨리 그를 지키기 위해 막아선 탁원호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군.”
마검의 소유자, 황성연.
그가 아카데미를 습격했다.
클랜원들을 수십 명 대동한 채.
<빌런> 내에서 변장하고 움직이는 수많은 스파이들과 달리, 그의 얼굴은 대중에게 너무도 익숙했다.
왜냐하면 황성연은 ‘광화문 집단 살인사건’으로 수배범이 된 후.
단 한 번도 이름이나 얼굴을 바꾼 적이 없었다.
그 때의 그 얼굴 그대로.
그 때의 그 이름 그대로.
그렇기에 아카데미를 습격한 오늘조차.
그와 마주친 모든 이들이, 그를 알아본 것이었다.
“…잘도 아카데미에 다시 기어 들어왔군.”
탁원호가 이를 아득거리며 황성연을 바라봤다.
벌써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
이대로라면 아카데미 역사상 최대의 사상자가 나올 것 같았다.
그 참사의 원흉이, 뻔뻔하게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황성연은 그런 탁원호의 분노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대 빌런 클랜의 부마스터가 클랜원들을 이끌고 올 정도의 물건이라니, 어지간히 대단한 물건인가 보군.”
그 장황한 말엔, 황성연은 탁원호를 빤히 바라봤다.
“원호, 넌 이미 알 텐데.”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탁원호의 표정이 분노로 가득해졌다.
해묵은 증오와 기억의 편린이, 갈 길을 잃은 채 그의 감정에 머물렀다.
황성연.
그 이름은 탁원호에게 너무도 많은 악몽을 심어준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딱딱한 반응을 본 황성연은…
조용히 자신의 검을 들었다.
“…재미없는 이야기군.”
더 이상의 대화가 의미 없다는 것.
이미 그걸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
파앗-
어느덧 황성연의 검은색 대검에 마력이 모여들었다.
불결한 어둠과 짙고 붉은 핏빛이 어우러진 기괴한 마력.
시간을 끌지 않고 단번에 끝내겠다…
그런 의지가 엿보이는 강렬한 마력이었다.
“…….”
탁원호도 그걸 보며 이를 악물고 자신의 검을 부여잡았다.
막아야 한다.
여기서 뚫리면.
이대로 놈들이 노리는 것으로 예상하는 [융화의 질서]를 뺏기면.
앞으로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랐다.
<빌런> 클랜이 어떻게 날뛸지 몰랐다.
그 잠재적 위험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황성연을 여기서 막아내야 했다.
그리고….
“피를 삼켜라.”
아카데미에.
커다란 절망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