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8 -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6)
암살자 계열의 가장 큰 특징이 뭔가요?
라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아마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름 그대로 ‘암살’이 특징입니다, 라고.
암살자 계열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습할 때 제일 큰 효과를 본다.
세분화한 능력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겠지만, 핵심은 결국 기습이다.
그 기반은 [은신] 룬과 [약점 파악] 룬.
[은신]을 통해 기척을 숨기거나 시야에서 사라지고, [약점 파악]을 통해 상대의 방어력을 깎는다.
이 구도가 암살자 계열의 가장 기본적인 기습 루트였다.
‘그리고 지윤재는 두 번이나 기습에 실패했지.’
지윤재는 날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처음은 폭발 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내가 구명훈과 싸운 틈을 타 습격했을 때.
두 번째는 <빌런> 클랜원들과 3:1 전투 구도에서, 갑자기 끼어들어 공격한 방금.
처음은 웬 불의 방패에 막혔었고, 방금은 내 반응속도에 막혔다.
급습에 두 번이나 실패한 암살자 계열.
특기를 잃어버린 홀더는, 당연히 전투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압…!!”
“……?!”
갑작스럽게 연달아 몰아치는 내 검격에, 지윤재가 당황해 소검으로 맞받아친다.
총 다섯 번의 빠른 검격.
그 안엔 미약한 ‘속성’의 힘이 담겨있었다.
‘체인지 스트라이크.’
이번에 4개의 속성룬을 모두 하나로 조합하며, 새로 얻게 된 상위룬 [엘리멘탈 마스터].
이 룬의 핵심 효과는, 상대의 ‘내성 능력치(속성 저항)’를 일부 무시할 수 있는 ‘원소 무시’.
그리고 속성의 힘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 최대 50%까지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체인지 스트라이크’, 이 두 가지다.
정면 결투에서 다소 약세를 보이는 지윤재.
나는 그를 몰아붙이기 위해 이를 극한으로 활용했다.
불, 물, 땅, 바람, 그리고 다시 불.
총 다섯 번의 속성 마력이 미약하게 내 검에 담기며 바뀌어 갔다.
평범한 검이라면 마력 감응이 약해 금세 부서졌겠지만, [참회자의 검]은 감응도가 상당히 높은 에픽 아이템.
역시 비싼 무기는 비싼 값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지윤재가 당황하며 내 검격을 흘려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의외로 쉽게 막아내는 느낌이 들었다.
‘저 작은 숏소드로 잘도 막네.’
A급 홀더가 B급 홀더와 다른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보통의 B급 홀더들은 이런 공격을 받으면, 압도적인 근력 및 속력 차이에 당황하며 그대로 밀려 버리지만…
A급 홀더들은 이렇듯 자신의 룬을 활용해 그 차이를 좁혀낸다.
이 ‘흘려내기’는 아마 소검을 활용한 검법룬.
그중에서도 회피에 특화된 기술인 것 같았다.
암살자 계열은 일반적으로 탱킹이 어렵기에 맞대결에서 주로 회피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우곤 하는데…
지금 지윤재가 보이는 모습은 그러한 회피 형태의 정석이었다.
‘용을 탄 암살자’의 칭호는 물 건너갔어도 어쨌든 A급은 A급.
지윤재가 지닌 기본적인 재능이, 쉽게 어디 가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보며, 난 속으로 진하게 웃었다.
‘어차피 노릴 생각도 없었다.’
처음부터 타깃은 지윤재가 아니었다.
푸슈우-
화르륵-!!
“끄, 끄아아악-!!”
“김민철! 이런 씨발!”
“뭣…!!”
어느 순간 지윤재와 1:1 구도가 되긴 했지만, 나머지 3명의 <빌런> 클랜원들은 여전히 주변에서 날 급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틈을 노려, 내게 창을 찔러오던 한 클랜원.
김민철이라 불린 그 클랜원의 팔이…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깔끔하고, 완벽하게.
그리고 그 절단면에선.
마치 활화산처럼 불길이 붙어 타올랐다.
물리 공격으로 팔을 베고, 이어진 마력 공격으로 태워지는 신체 부위.
김민철이란 클랜원은 쥐고 있던 창을 떨어뜨리며, 강렬한 고통에 신음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윤재한테 힘을 다 쓰면 바보지.’
나는 차분하게 남은 녀석들을 바라봤다.
처음부터 내 목표는 지윤재가 아니었다.
애초에 지윤재는 암살자 계열이다.
A급 홀더이긴 해도, 자신의 주특기는 어디까지나 [은신]과 방깎을 활용한 습격이다.
당연히 그의 진짜 힘도, 정면대결보단 기습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정면대결을 하며 시간을 끌어줄 홀더들.
즉, 남은 3명의 <빌런> 클랜원들을 해치운다면…
전투 구도는 내 쪽으로 쉽게 잡히지 않을까?
나는 이 네 명의 무리와 싸우려 들어왔을 때부터 이런 전략을 세웠고, 그 첫 번째 걸음은 방금 한 명을 리타이어시키며 성공했다.
‘체인지 스트라이크의 마무리.’
[엘리멘탈 마스터]의 특수효과인 ‘체인지 스트라이크’.
속성을 바꿔가며 50%까지 증가시킨 위력의 공격.
그 마무리의 방향을 순간적으로 돌려, 지윤재가 아닌 다른 클랜원에게 타격을 입혔다.
안 그래도 내 펌핑된 능력치에 정신을 못 차리던 B급 홀더들이었는데, 극한까지 버무려진 이 마무리 공격을 그들이 막아낼 리가 없었다.
결과는 대성공.
이제 남은 건 지윤재를 포함해 3명이다.
“하나 더.”
순간 무구 교체술로 무기를 바꾼다.
양손에 익숙한 네 자루의 단검이 쥐어졌다.
나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단검들을 적에게 던졌다.
한참 전에 사용했던 [쿼터 나이프]의 쿨타임이, 마침 시간에 맞게 돌아와 있었다.
‘악귀의 저주, 둔화.’
여기에 약간의 주술을 섞는다.
에픽룬 [악귀의 저주] 속 ‘둔화’ 저주.
스킬을 회피하려는 상대의 움직임을 제약하기 위해, 둔화를 건다.
덕분에 부상자 옆에서 허둥대던 한 명의 클랜원이 또다시 내 기습에 당했다.
[쿼터 나이프]가 꽂은 부위는 그의 왼쪽 다리.
네 자루가 모두 적중했으니…
‘비도 폭탄’이 발동하는 건 당연했다.
콰아앙-!!
“끄, 끄으아아-!! 다리! 내 다리…!!”
소름 끼치는 비명이 또 한 번 전장을 적신다.
이제 남은 건 둘.
검과 방패를 든 <빌런> 클랜원 한 명과 지윤재 뿐.
그들의 안색이 절망으로 물들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게 네 실력이다, 지윤재.’
지윤재는 나를 습격하고 암살함에 있어, 크나큰 실수를 하나 범했다.
그건 바로 타이밍이다.
내가 가장 위험할 때, 그리고 내게 가장 효과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때.
지윤재는 그 타이밍이 온 찬스를 놓쳤다.
‘차수연과 함께 죽였어야지.’
아까까지의 내가 가장 무방비했던 때는, [왜곡의 그림자]를 사용하며 차수연을 죽이려 했던 순간이다.
그때의 나는 그녀를 사살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고, 이후 마력을 투입해 [폭발하는 검의 기세]를 활용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당연히 다른 공격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지윤재는 그때를 노렸어야 했다.
차수연의 생사는 고려하지 않고, 최적의 타이밍에 내게 전력을 쏟았어야 했다.
그 골든타임을 놓치니, 이렇듯 녀석답지 않게 고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골든타임을 놓치니…
“젠장! 숨기고 던져라!!”
이렇듯.
올바른 상황 판단을 못 하고, 휘둘리듯이 싸우게 되는 거다.
‘병신.’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나왔다.
지윤재의 주력룬 [은닉의 비도술].
그 궁극스킬인 [나이프 레인].
총 21개의 단검을 대상에게 쏘아내는 원거리 스킬로…
단검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게 아닌, 제각기 다른 타이밍에 쏟아지는 시간차 공격이다.
특히 단검이 날아오는 방향이 모두 예측불허인 데다가, 대상의 내구 수치를 일부 무시하는 방깎 효과도 붙어 있어 굉장히 까다로운 궁극스킬이었다.
‘거기에 전부 물리 공격이지.’
내가 보유한 궁극스킬들은 크든 작든 대부분 마력을 활용한다.
반면 지윤재의 [나이프 레인]은 오로지 물리 공격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조를 많이 받는 만큼, 마력은 담기지 않는 순수 물리형 궁극스킬이었다.
‘백병전 선언이면 깔끔히 무시할 텐데.’
스킬 하나로 궁극스킬을 상쇄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까 강주연을 지킬 때 써버린 탓에, [백병전 선언]은 아직 쿨타임이 돌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난 여유가 있었다.
내게 주어진 회피 및 방어스킬.
그게 [백병전 선언]만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흘러라.”
조용히 읊조린다.
어느새 무구 교체술로 두 손에 쥐어진 검.
나는 차분히 자세를 잡고, 쏟아지는 단검들을 받아칠 준비를 했다.
플레임 히드라 공략 때 [파상천검]을 쓰긴 했지만, 다행히도 [유수활검]은 아껴뒀었다.
극한의 회피에 집중한 스킬이라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듯 또 기회가 찾아왔다.
쉬- 이이이-!!
캉- 캉-
카강- 카강-!
[나이프 레인]의 방향이 모두 무작위라곤 하지만, 사실 첫 5개가 날아오는 방향은 정해져 있다.
왼쪽 아래 무릎, 오른쪽 대각선 위, 눈앞 정면, 오른쪽 어깨, 등 뒤 후면.
이 복잡한 방향 구성을 난 모두 외우고 있었다.
지윤재는 원작 내에서 상당히 비중이 높았던 악역.
그만큼 나 역시 그가 활용하는 룬과 스킬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다음은 리드미컬하게.’
첫 5개의 단검은 엇박자로 날아든다.
그렇게 까다로운 5개의 단검을 막아낸 후엔, 타이밍에 맞게 막으면 된다.
총 21개의 단검이 쏟아진다.
그에 춤을 추듯 움직이는 내 검.
캉- 캉-
이후 기괴한 쇳소리와 함께 부딪혀 떨어지는 지윤재의 단검.
마치 비처럼 쏟아진 단검과 맞물린 내 검무는…
순식간에 그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카아앙-!!
또다시 지윤재의 무기와 내 무기가 부딪친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짼지 가늠도 안 갔다.
“빌어처먹을! 도대체 어떻게! 왜 다 알고 있는 거냐, 왜!!”
분노에 가득 찬 지윤재가, 거칠게 소검을 휘두르며 날 몰아붙였다.
[나이프 레인]의 공격 루트도, 첫 다섯 단검의 방향도.
심지어는 그 틈을 타, 이렇듯 지윤재가 달려들 것도.
모두 내 예측범위 안에 있었고, 녀석은 보란 듯이 이 반격에 걸려들었다.
패턴을 모두 미리 읽힌 자의 최후였다.
그리고….
“크- 윽?!”
뿔 난 황소마냥 달려들던 지윤재가, 갑자기 침음성을 흘렸다.
어딘가 불편하고 괴로워 보이는 그의 표정.
마치 불의의 일격이라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에 씨익 웃음이 나온다.
난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독 맛이 어때?”
아까 지윤재와 몇 번 맞부딪혔던 순간.
내 검에 스치듯이 베이며, 군데군데에 생겼던 생채기.
그곳에서 웬 극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느덧 8레벨에 도달한 [맹독] 룬.
그 파생스킬인 [포이즌 어택].
구석에 숨어든 쥐새끼처럼, 내 독 공격이 지윤재의 몸에 기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