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9 -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7)
‘아파.’
강렬한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통증.
A급 홀더가 된 이후, <빌런>의 핵심 간부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고통.
그 아찔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피는 멈추지 않아 과다 출혈을 일으켰고, 가슴에 새겨진 검상은 지워질 생각을 않았다.
“푸흐으… 흐으….”
차수연은 헐떡이는 숨을 겨우겨우 몰아쉬었다.
1분도 안 돼 끝날 거라 생각했던 작전.
웃으며 기다렸던 살육의 시간.
그게 모두 물거품이 돼 있었다.
전황은 순식간에 불리한 구도로 바뀌어 있었고, 휘하 클랜원들은 상대의 반격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음…음. 정말 엿 같은 상황이 아니겠니.’
속마음엔 히스테릭한 여유가 흘러나온다.
또 도재현이 문제였다.
모든 어긋남의 원흉.
클랜 계획이 살짝 긴박해진 근본적 이유.
고작 1학년에 불과한 학생 홀더가…
또다시 작전을 망쳤다.
이번엔 차수연에게 직접적인 피해까지 주며.
‘도재현….’
차수연은 굴욕적이지만, 이를 악물고 그를 바라봤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돌아가서 제대로 된 치유를 받아야겠지만, 어떻게든 생명에 지장은 안 갈 것 같다.
게다가 녀석의 궁극스킬 또한 제대로 파악했다.
‘쇄도하라.’라는 언령과 함께 펼쳐졌던 스킬.
그건 분명 신체적 힘을 사용하지 않는, 마력적 순간이동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 방어막]을 완전히 분쇄했던 추가타.
아마 순간이동 후 방어력을 무시하는 계통의 궁극스킬인 듯 보였다.
꽤 충격적인 스킬이지만, 다시 마주한다면.
차수연은 이를 막아내고 반격할 자신이 있었다.
‘…기다리렴. 반드시, 반드시 죽여줄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지금의 몸 상태론 뭔가 반격하기는커녕, 역으로 당할 확률이 높았다.
차수연은 자신의 앞에 있는 클랜원을 봤다.
다친 그녀에게 포션을 퍼붓고, 열성적으로 치료한 부하.
혹여나 공격당할 때를 대비해, 앞에 서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니?”
“임진혁입니다, 지부장님!”
“그래.”
차수연은 고개를 돌려 뒤편을 봤다.
‘밀수 동굴’의 보스 룸.
그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 방향.
워낙 출력된 마력이 미세한 터라 모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곳엔 ‘미허가 워프 게이트’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도재현 일행이 이 던전에서 계속해서 찾아왔던 ‘밀수 현장’.
그 마지막 통로가, 이 보스 룸 안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저기까지… 갈 수 있겠니?”
“문제없습니다.”
부하 클랜원이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마치 그녀의 명령이라면, 지옥이라도 갈 듯한 얼굴이었다.
클랜원 대부분이 적들과 맞서 싸우고, 일부는 전투 불능 상태가 된 상황.
지금 상황에서 차수연을 부축할 수 있는 건, 이 부하 한 명뿐이었다.
차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 순간.
푸쉬이-
팍!!
“끄흡?!”
웬 화살 하나가 날아와 부하의 어깨에 꽂혔다.
저 멀리…
활을 들고 있는 상대 파티의 궁수 계열.
<남자의 조건> 클랜의 아키바 미유였다.
그녀는 완숙한 B급 홀더답게, 먼 거리에서도 정확하게 화살을 적중시켰다.
“괜찮습니다, 지부장님. 제가 막겠습니다! 어서….”
상황이 더 급박해졌다.
보스 공략에 온 힘을 다 쏟았던 상대 파티는, 슬슬 힘을 되찾고 있었다.
물리 공격을 하는 이들은 벌써 전투에 참여하고 있고, 마력을 활용하는 이들도 회복이 끝나가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탈출이 불가했다.
차수연은 고개를 끄덕이곤, 이름도 모르는 부하 클랜원의 희생을 발판 삼아 움직였다.
날카로운 화살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부하 클랜원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름조차 모르는, 조금 쓰다 버릴 버림패였다.
그리고 이내, ‘미허가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까지 기어코 도착할 수 있었다.
숨겨진 마력 지점에 손을 닿게 한다.
그대로 ‘전이’를 마치려던 찰나.
“이수연…!!”
어디선가 불쾌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두려움에 젖은 표정과 불안한 떨림.
여기저기 헤진 듯한 금발과 노출 있는 수녀복.
상대 파티의 신성 계열 홀더, 이수미였다.
그리고…
그녀는 차수연이 아주 잘 아는, 오래된 인연이기도 했다.
“음음- 그 역겨운 이름을 또 듣다니. 나도 운이 좀 없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차수연은 재빨리 그녀의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이수미 말고 쫓아오는 다른 홀더는 없어 보였다.
“도망치지 마. 오늘이야말로 죽여줄 테니까.”
“푸훗-”
그 말을 듣자,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네가? 뭘로. 스태프로?”
아무리 지금의 차수연이 약해졌다지만, 공격 스킬 하나 제대로 없는 신성 계열에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수미도 그걸 아는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든 차수연의 이동을 막기 위해 달려왔는데, 딜러들이 모두 전투 상황인 지금.
그녀를 잡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음음- 회포는 다음에 풀자꾸나. 오늘은 언니가 좀 바빠서.”
차수연은 가볍게 눈웃음을 지은 후.
이내 차가운 얼굴로 [워프 게이트]에 손을 올렸다.
예상치 못하게 반가운 얼굴을 보긴 했지만…
그것뿐이다.
지금의 그녀에게 중요한 건, 도주.
그리고 복수.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준 도재현을, 찢어 죽이려는 생각뿐이었다.
“으으… 홀리 바인드…!!”
다급해진 이수미가, 어떻게든 대상을 묶는 신성술을 써봤지만… 이미 [워프 게이트]는 발동이 끝난 후였다.
그렇게, 차수연은 도주에 성공했다.
* * *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끝났다.
이제는 문자 알림음처럼 울리는 [룬 사냥꾼]의 정보창이, 모든 전투가 끝났음을 알려줬다.
지윤재는 무기를 모두 떨구고, 무릎을 꿇었다.
회피와 탱킹.
물리 공격과 마력 공격.
폭발과 독 공격.
나는 현 상황의 내가 펼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냈고, 녀석은 끝까지 이를 견디지 못하며 패배했다.
“흐읍…!!”
“안 되지.”
빠악-!!
이상한 낌새가 보이자, 나는 곧바로 몽둥이로 무기를 교체해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패배를 인정하고, 그대로 자결하려고 한 것 같은데…
어림도 없다.
녀석은 산 채로 잡혀, 죽을 때까지 심문을 받아야만 했다.
“어억….”
머리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지윤재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무술의 달인] 룬을 통해 모든 무기의 숙련도가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른 나는, 무기 사용에 있어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이는 몽둥이와 같은 둔기류도 마찬가지.
지윤재는 아마 내 풀스윙에 이렇게 큰 충격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죽진 않았겠지?’
바닥에 산송장처럼 쓰러진 녀석을 보니,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든다.
“도재현.”
그렇게 지윤재와의 전투를 마무리했을 때쯤.
사람들이 몰려오는 기척이 들렸다.
“아, 권 팀장님.”
권오준과 박진우, 최동욱.
나와 함께 싸워준 앞선의 세 명을 비롯해 후방에서 지원하던 인원들도 하나둘씩 기운을 차리고 다가왔다.
“다 끝났다.”
“다친 덴 없으십니까?”
“뭐, 보다시피. 놈들이 광폭화 포션까지 쓸 땐 당황했는데, 다행히 마법사 계열들이 힘을 좀 내줬어.”
아까 지윤재의 습격 때…
날 막아줬던 웬 ‘불의 방패’는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분명 마력이 모두 고갈됐을 마법사 계열들은 어느덧 마력을 회복해 앞선에 힘을 보탰고, 덕분에 나머지 파티원들도 <빌런> 클랜원들을 순조롭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끄으- 으으….”
“크흐으….”
고통에 겨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대부분 정상이 아니었다.
지윤재를 포함해, 모든 <빌런> 클랜원들이 전투불능 상태가 됐다.
개중엔 목숨을 잃은 이도 있었고, 지윤재처럼 기절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둘러보던 내 시야에 이상한 점이 보였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인물.
차수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차수연이… 안 보이네요?”
그리고 그 말에, 아키바와 이수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상황을 설명해준 건 아키바였다.
“재현 님이 다른 이들과 전투하던 도중, 차수연이라는 여자는 미허가 워프 게이트로 이동했습니다.”
“예? 워프 게이트가 또 있었어요?”
“그렇습니다. 보스 룸 입구 방향에 미세하게 숨겨져 있었습니다. 저와 이수미 홀더가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쉽다.
힘겹게 전투에서 이겼다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빌런> 클랜원들은 지윤재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잔챙이들이다.
아카데미 지부장급이자, <빌런>의 핵심 간부인 차수연.
그녀를 잡았어야 했는데….
우리가 숫자에서도 밀리고, 지친 인원이 많았던 터라 모두 마크하긴 어려웠다.
어렵게 얻어낸 궁극스킬 [왜곡의 그림자]까지 써서 그녀를 빈사 상태로 만들고 난 후라, 더욱 아쉬웠다.
“어쩔 수 없죠. 일단 남은 인원들이라도 정리해서, 나갑시다. 모두 너무 지쳤어요.”
그렇게 마무리 지으려던 순간.
뒤편에 있던 강주연이 내게 다가왔다.
“…재현아.”
“어? 왜?”
“이거…”
그녀가 보여준 건, 붉은 색깔로 빛나는 작은 펜던트였다.
“…불의 심판 간부 전용 통신구야. 정확한 의사 전달은 안 되지만, 위급할 때 신호 정도는 줄 수 있어.”
보통 던전 내부에선 현대의 물품이 안 돌아간다.
당연히 핸드폰도 쓸 수 없어,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다.
그런 때를 대비해 있는 특수 아이템.
강주연은 그중 하나를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바는.
“아무래도 빌런이 공격한 게, 여기만은 아닌 것 같아.”
이 지긋지긋한 <빌런> 녀석들의 또 다른 행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