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0 - 반격 (1)
‘밀수 동굴’의 완전 공략.
그리고 <빌런>의 습격을 막아낸 후.
우린 쉴 틈도 없이, 빠르게 한국으로 귀국했다.
‘아카데미도 습격당할 줄이야.’
우리가 차수연 및 지윤재 등에게 공격받는 동안, 아카데미 또한 습격을 받았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귀국엔 협력 클랜인 <남자의 조건> 클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시미즈 켄조와 아키바 미유가 적극적으로 우릴 도왔고, 추가 인원 또한 배정받았다.
홀더 범죄자 특별 호송을 통해 총 9명의 <빌런> 클랜원들이 서울로 옮겨갔고, 이들은 그대로 한국 홀더 협회에 이송됐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소속으로 흩어진 파티원들.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곧장 아카데미로 달려갔다.
습격으로 난장판이 된 아카데미엔, 홀로 교정을 지키는 탁원호 교수가 있었다.
“스승님…!!”
나는 그를 보자마자 달려갔다.
평소 부르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아닌, ‘스승님’이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게, 그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가슴 쪽엔 커다란 검상이 생겨 있었고, 늘어붙은 핏자국과 상처들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상체 곳곳에 그어진, 무수히 많은 생채기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마디로 만신창이가 된 몸.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몸 상태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밀수 동굴’에서 습격을 당한 것도 화가 났는데, 아카데미가 습격받고 주변인이 다친 걸 보니 열이 확 치솟았다.
나는 주먹을 꽉 주며 그에게 물었다.
“어떤… 어떤 개새끼입니까. 당장…”
“진정해라.”
그러자 탁원호 교수는 오히려 차분한 말투로 날 진정시켰다.
그는 워낙 경험도 많고, 경력도 오래된 고위 홀더.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차분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스승님의 큰 부상에, 나도 모르게 극도로 흥분했던 모양이다.
“중요한 건 지금 이후다. 어쨌든 살아남긴 했으니.”
탁원호 교수는 침착한 얼굴로 내게 이어 물었다.
“그래. 일본에서 현장증거를 모두 찾고, 습격한 빌런 인원들도 잡아냈다고?”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 현장은 빌런의 신규 거래 장소로, 검거와 동시에 자금적 측면에서 놈들에게 꽤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했다. 정말 큰 일을 했어. 덕분에 빌런 쪽에서도 꽤 급해지겠군.”
끼이익-
그 말과 동시에, 교수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내 세 명의 교수진이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유은설, 꽤 어두운 표정의 김명현,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의 교수가 한 번에 들어왔다.
마지막 교수는 탁원호와 마찬가지로, 한쪽 팔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아마 아카데미 내에서 습격을 정통으로 당한 교수인 듯 보였다.
“아….”
나는 그들을 보고, 곧바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유은설과 김명현 교수는 작게 손을 들어 그 인사를 받아줬다.
아카데미 수뇌부급 인사와 현 아카데미 최강의 무력자.
보기 힘든 인물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이렇듯 쟁쟁한 교수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끼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들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유은설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안색은 심히 좋지 않아 보였다.
그건 추정컨대, 여기까지 오며 아카데미의 희생자들을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일 거다.
유은설은 겉으론 차갑고 딱딱해 보이는 이미지지만, 실상은 정이 많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홀더다.
그간 이를 겉으로 티 내지 않았을 뿐, 그녀는 지금껏 가르친 학생들과 내게도 꽤 많은 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자리를 비운 타이밍에, 많은 이들이 습격으로 죽고 다쳤다.
원작에서도 ‘아카데미 습격 작전’으로 인해 <빌런>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던 그녀인데…
직접 강사가 된 지금은 그 감정이 더 격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제가 없을 때 일이 났군요.”
그 한마디에, 탁원호 교수가 얕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명백한 운영진의 실책입니다. 아무래도… 아카데미 내 깊숙한 곳까지 스파이가 침투했던 모양입니다. 유은설 홀더님이 외부 출장이 잡혔던 틈을 타, 거짓말처럼 놈들이 쳐들어온 걸 보면 말이죠.”
아카데미 내에 <빌런>의 스파이가 있다.
이건 비단 학생에 해당하는 내용만은 아니다.
분명 운영진이나 교수진에도, 스파이들이 숨어있었다.
1학기 말 안도권의 살인미수 사건 때, 감독관들이 터무니없이 약하고 안일했던 점.
2학기 초 김도윤 습격 사건 때, 거짓말처럼 나와 문가은, 김도윤 셋이 팀이 됐던 점.
그 외에도 <빌런>이 개입한 각종 사건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즉, 운영진 측에도 확실히 스파이가 있다는 뜻.
이는 원작에서도 구체적인 정보가 나오질 않았었다.
이번 일본 탐사 때 내가 열정적으로 조사에 임했던 것 또한, 이렇듯 드러나지 않은 스파이들을 제대로 검거하기 위해서였다.
“늦은 만큼, 아카데미의 차후 계획에 적극 동참할게요. 무고한 학생과 일반인들을 이토록 무자비하게 대하는 사회악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네요.”
유은설이 선언하듯 말했다.
<빌런>에 대한 유은설의 적개심.
그 감정이 눈덩이처럼 굴러, 그녀로 하여금 의외의 결정을 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아카데미 입장에선 단순 강사로 영입했기에 그녀를 전투 인력으로 넣을 별다른 명분이 없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와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이었다.
탁원호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돌렸다.
“강 교수.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예.”
아까 교수실로 들어왔던 세 교수 중, 처음 보는 얼굴의 교수였다.
“특수 계열 전임 교수, 강동욱이라고 합니다.”
아.
그 이름에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강동욱.
분명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원작에선 별다른 비중이 없어 모르는 인물이었지만, 이곳에 직접 오고 나서는 꽤 영향력 있는 아카데미 교수라는 걸 들었었다.
그는 소환(테이밍) 계열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는 중인 권위자 중 한 명이고, 학계에서도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유명인사였다.
특히 김채은이 이런 유명 홀더들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기에, 언젠가 그녀를 통해서도 몇 번 들어봤던 것 같았다.
“다들 들으셨겠지만, 이번 사건은 빌런 클랜의 부마스터 황성연을 비롯해 다수의 빌런 클랜원이 참여한 대형 습격 사건입니다. 그리고 저도 추가로 들은 이야기지만, 일본에 파견 간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을 동시에 습격한 양동작전이기도 하죠.”
강동욱 교수는 탁자에 보고서 하나와 핸드폰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 하나를 틀었다.
영상 속엔 신비로운 무지갯빛을 보이는, 웬 수정구 형태의 아이템이 비치고 있었다.
“지금 보시는 아이템은 융화의 질서라는 아이템입니다. 대외적으로 비밀리에 묻혀 있는 아카데미 소유의 특수아이템으로, 관련 계열에선 막대한 잠재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융화의 질서].
이번엔 들어본 적 없는 아이템 이름이 나왔다.
강동욱 교수의 계열과 위치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소환 계열에 특화된 특수아이템인 모양이었다.
“이번 습격작전에서 빌런이 노렸던 건 이 아이템입니다. 그들은 더없이 많은 위험 요소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카데미에 침입해, 기어코 이 아이템을 탈취해갔죠.”
강동욱 교수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융화의 질서가 보유한 잠재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전문 연구자인 저조차 아직 그 본연의 능력을 끌어내지 못했고, 알 수 없는 능력들이 여럿 봉인된 전설급 아이템입니다.”
특정 아이템은 때로 진정한 힘을 끌어내는 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내가 지녔던 [잊혀진 아룡의 석판]만 해도, 그 봉인을 해금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과 마력석이 소요됐다.
이번에 알게 된 [융화의 질서]라는 아이템 또한, 그러한 성질의 봉인이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빌런 클랜에서 이 아이템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까지 힘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장 저희 연구진도 그 진짜 힘을 알아내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하나 확실한 건…”
마지막 말을 꺼내는 강동욱 교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 힘을 다 끌어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괴수를 조종한 일반인 습격.
자칫하면 그런 참사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강동욱 교수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저희는 최대한 시일 내에 전력을 꾸려, 빌런으로부터 이 아이템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어떻게 말이죠?”
그에 유은설이 물었다.
말이야 쉽다.
빼앗긴 아이템을 되찾고, <빌런>에게 복수하고.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 아닌 훨씬 전부터 진행됐을 계획이다.
하지만 <빌런>의 본거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점조직으로 구성된 만큼, 말단 클랜원들도 자신들의 본거지를 모르고…
클랜 수뇌부는 다양한 불법 아이템을 활용하며 거처를 옮긴다.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해, 협회와 각 클랜에서도 그동안 섬멸 작전을 펼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강동욱 교수의 표정은 자신이 있는 듯 확고했다.
“바로 이 녀석을 통해서입니다.”
강동욱 교수가 손을 펼쳤다.
그걸 보고 난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녀석이 뭔데?’
처음 본 그 손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뭔가 보였다.
강동욱이 천천히 내미는 손.
그 위에 아주 미세한 점 같은 게 시야에 포착됐다.
정말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무언가였다.
“이 녀석은 버그라는 F급 괴수로, 곤충 서식지 던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수한 소형 괴수입니다.”
F급 괴수, 버그.
사냥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괴수명이다.
강동욱 교수는 그 처음 보는 괴수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이 친구는 워낙 크기가 작아 육안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고, 체내에 마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 마력 감지로도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이곳에 모인 교수진과 내가 녀석의 존재를 몰랐던 것만으로 증명이 됐다.
물론, 살상력도 거의 없기 때문에 그게 장점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융화의 질서 아이템에 조련된 버그를 상시 부착해 놨었습니다. 아마 이건 아이템을 탈취해 간 빌런의 황성연도 눈치채지 못한 부분일 겁니다.”
거기까지 듣자, 강동욱이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대충은 이해가 갔다.
아이템을 단순히 뺏기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특별한 장치를 해놨다는 점.
그를 어필하려는 것 같은데…
사실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했다.
“체내에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게 큰 의미가 있나요? 어차피 위치를 전달할 방법이 없잖아요.”
마력이 없어 발견이 어렵다는 것.
그건 다시 말해, 이쪽에서도 녀석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련이 된 괴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조련된 괴수를 [소환]하는 건 일반적인 조련 계열 홀더들의 전투 방법 중 하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련된 괴수의 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괴수 조련은 일종의 계약과 높은 친밀도로 일워질 뿐, 귀속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동욱 교수는 내 의문에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전투력이 없는 대신, 자신들만이 가진 몇몇 특색. 그게 버그에겐 있기 때문이죠.”
“특색이요?”
강동욱 교수가 이에 천천히 답했다.
“그렇습니다. 버그들은 작고 약하지만, 그 수가 많아 동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괴수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마력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특별한 신호를 통해 동족에게 방향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아…!!”
그 설명이 나왔을 땐.
교수실에 모인 모두가 감탄했다.
그제야 강동욱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다들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즉, 저희는 이 버그가 붙어 있는 융화의 질서 아이템을 통해서… 빌런의 본거지를 알아낼 계획입니다.”
겉보기에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괴수.
그는 이를 조련함으로써, <빌런>의 위치를 파악할 스파이를 심어 놓은 것이었다.
괴수 조련으로 만든…
일종의 생체 GPS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