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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61)화 (161/353)

Chapter 161 - 반격 (2)

강동욱 교수의 ‘버그’ 활용은 확실히 획기적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단순히 [융화의 질서]가 중요하고 귀한 아이템이기에 분실을 우려해 부착한 안전장치였겠지만, <빌런>에서 이를 탈취해가며 상황이 돌변했다.

오랜 시간 동안, 끝끝내 찾지 못했던 <빌런>의 본거지.

이를 찾을 중요한 단서가 된 것이다.

설명을 모두 들은 후.

가능성을 확인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럼 위치는 실시간으로 파악이 되나요?”

이 질문에 강동욱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어찌 됐든 마력을 통해 파악하는 위치가 아니기에, 버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직접 탐색을 해야 합니다. 현재 버그가 알려주는 위치는,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꽤 많은 바를 시사했다.

<빌런>의 거처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지만, 반대로 상대가 이를 알아챈다면 역으로 함정을 팔 수도 있다는 뜻.

이 방법에도 나름의 리스크가 있었다.

“그래도 절대 포기할 수 없죠.”

“예. 이번이야말로 빌런을 잡을 유일한 기회입니다.”

본격적인 계획을 설명하려는 걸까.

탁원호 교수가 앞쪽으로 나와 게시판을 가리켰다.

그런데 문득 그의 가슴팍에 생긴 검상과 곳곳의 상처들이 눈에 확 띄었다.

‘황성연….’

탁원호 교수의 이런 모습을 보니, 또 한 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늘 단단하고 묵묵한 교육자의 모습을 보이던 스승님이었는데, 웬 싸이코 새끼한테 잘못 걸려서….

나로서는 처음 겪는 주변인의 큰 부상에, 감정의 주체가 잘 안 됐다.

황성연을 꼭 내 손으로 베어내야겠다.

머릿속엔 온통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빌런의 이번 습격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지금껏 그들이 수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긴 했어도, 특정 단체와 전면전을 펼친 적은 없었으니까요.”

탁원호 교수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성명문 몇 개를 게시판에 내걸었다.

“이에 한국 홀더 협회 및 국내 42개 클랜에서는 아카데미의 작전에 협력한다는 성명문을 보내왔습니다. 만약 이번 작전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경우, 국내 홀더 계 역대 최고 전력이 팀으로 구성될 겁니다.”

이어, 탁원호 교수는 아카데미 표시의 자석 몇 개를 걸었다.

“작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이 한데 모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강 교수는 작전의 중심이자 관계자이고, 유은설 홀더님은 현 아카데미 전력의 최대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유은설 홀더님만 수락하신다면, 두 사람은 이 작전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탁원호 교수의 시선이 이번엔 나와 김명현 교수를 향했다.

“그리고 김 교수와 도재현 학생은, 이번 습격의 또 다른 쟁점이었던 안티 빌런 써클의 관계자들이기에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즉, 여기 모인 이들은 협력 작전 인원 중…

아카데미 측 인사에 해당한다는 뜻.

어쩌다 보니 내가 학생 측 대표 인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크게 중요치 않았다.

탁원호 교수는 게시물들을 갈아치우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대 빌런 소탕 작전의 개요를 설명하겠습니다.”

* * *

출발일은 바로 내일로 결정됐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빌런> 측에서 이쪽의 계획을 눈치채기 전에 속전속결로 작전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탁원호 교수는 어떻게든 작전에 직접 참여하려 했지만, 몸이 회복되기는커녕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전참여는 너무 무리였다.

때문에 그는 아카데미 내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현장 작전의 총 책임자는 김명현 교수가 맡게 됐다.

자타공인 최강자인 유은설에게 먼저 권유가 갔지만, 그녀는 자신이 정식 아카데미 관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리를 거절했다.

‘시간이 많진 않아.’

탁원호 교수로부터 작전 일정을 들은 후.

나는 <안티 빌런> 써클룸으로 와, 나만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먼저, <홀더 정보>와 <룬 정보>에 대한 점검.

이번 일본 파견과 ‘밀수 동굴’ 공략 및 습격 대응을 통해, 나는 새로운 힘을 다수 얻었다.

획득한 룬의 수만 해도 거의 10개에 가까웠고, 특수 능력치를 비롯한 각종 능력치도 대폭 상승했다.

이러한 힘과 새로운 효과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란 시간이 꽤 촉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아예 못 읽은 것도 있으니까.’

특히 [잊혀진 아룡의 석판] 봉인을 풀며 획득한 룬, [용언이 맺은 약속]의 경우 아예 룬 정보를 읽을 시간도 없었다.

당시 상황이 급박했고, 조련 계열의 룬은 곧장 활용이 불가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구체적으로 내용을 살펴보지 못한 룬과 스킬들.

이들은 연무장으로 가 직접 확인하면 될 것이다.

나는 점검해야 할 내용을 순차적으로 체크했다.

일단 이렇게 개인 점검이 끝내고 나면…

“우리 쪽에선 그렇게 10명이 가는 거야?”

단체 점검 내용.

이를 확인이라도 하듯, 명랑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했다.

김채은이었다.

주말 동안 못 봤던 그녀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또 찾아와 있었다.

마침 그녀와 같이 있었던 건지…

그 옆엔 문가은도 자리해 있었다.

“응. 탁원호 교수님은 그렇게 많이 참여할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 부원들 의지가 너무 강해서.”

나는 김채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안티 빌런>에선 이번 작전에 10명이 참여한다.

1학년에선 나와 김채은, 강주연, 문가은, 그리고 박진우.

3학년에선 윤지아가, 2학년에선 총 4명의 부원이. 

1학년 멤버들이야 워낙 참여도도 높고 나와 연이 깊어 그렇다지만, 나머지 멤버들의 참여는 의외였다.

분명 불참해도 괜찮다는 말을 했음에도…

이들은 완강하게 참여 의지를 밝혀왔다.

아마 그들 중 대부분이 부회장 윤지아처럼, <빌런>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받았거나 감정의 골이 꽤 깊은 모양이었다.

“도재현. 넌 괜찮은 거야? 일본에서 습격당했었다며.”

문가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다.

이번 사건은 규모가 규모인 만큼 국내에 빠르게 소식이 퍼졌다.

아카데미 습격엔 <빌런> 부마스터가 참여했다는 것부터, 일본에 파견을 나간 우리에게 습격 인원이 배정됐다는 것까지.

특히 우리는 습격 인원을 오히려 제압해 국내로 호송해왔기에, 그에 대한 관심도가 더 집중되기도 했다.

기사로 전해지는 소식이야 긍정적이었지만…

주변인의 입장에선 당연히 당사자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나는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당연히 괜찮지. 알잖아, 나 튼튼한 거. 어지간해선 잘 안 다쳐. 그리고 명색이 안티 빌런 회장인데, 빌런 애들한텐 쉽게 안 당해주지.”

“치, 말은.”

허세가 잔뜩 섞인 말투.

그에 문가은은 질색하는 얼굴을 하면서도…

내심 다행이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런 걸 보면, 문가은도 은근히 표정이 쉽게 드러나는 타입이다.

“그런 일 있을 줄 알았으면, 나도 도재현 너 따라서 가는 건데.”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건네는 것 역시, 진심이다.

문가은은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

결코 마음에 없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와 지낸 시간이 꽤 쌓이면서, 이제는 그 진심을 알 수 있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난 괜히 농담을 던졌다.

“에이, 갔으면 다쳤어. 오늘은 너무 급해서 그런가, 내가 궁수들까지 챙길 손은 없더라.”

“…죽을래?”

“미안.”

어째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농담 덕에 무겁던 분위기가 나름 풀렸다.

그렇게 이번의 사건과 내일 있을 작전.

그에 대해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채은이 문득 이상하다는 듯 문가은에게 물었다.

“가은아, 너 근데 아직도 재현이 도재현으로 불러?”

그 갑작스러운 질문에.

문가은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응? 어어. 왜?”

“둘이 꽤 친하잖아. 왜 아직도 성 붙여서 불러?”

“에?”

그에 문가은이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나도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아 눈을 깜빡였다.

친한데 왜 성을 붙이냐니.

뭔가 두 명제에 연관성이 없는데…?

물론, 친한 사이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는 건 맞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안 친한 건 아니지 않나?

문가은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글쎄, 워낙 호칭이 하나로 굳어져서 그런가? 이젠 그냥 성 붙여서 부르는 게 편해졌어.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아 참, 하고 손가락을 피며 덧붙였다.

“그리고 주연이도 도재현, 도재현 하잖아. 난 주연이 통해서 도재현을 알게 돼서 그런지, 주연이가 부르는 호칭을 따라가게 되더라구.”

“아하….”

김채은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걸 듣던 난 반문했다.

“어… 아닌데.”

이전 얘기는 동감하지만, 다음 얘기는 전제가 잘못됐다.

문가은이 뭔가 오해하고 있네.

잘못된 건 바로잡아줘야지.

“뭐가 아닌데?”

그에 문가은이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순간 말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생각해 보니, 말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다 같이 있으면 알게 될 거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 주연이랑은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어. 몰랐는데, 주연이가 자기는 다른 사람이랑 가까워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더라고.”

…근데 누가 사일런스 마법이라도 걸었나?

갑자기 왜 이렇게 조용해진 것 같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 좀 편해진 것 같다고, 더 내려놔도 좋을 것 같다고… 일본에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서로 이름 부르기로 했는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답하던 도중.

마지막쯤엔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계속해서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지?’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잘못된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빌런>에 관한 대항 작전을 이야기하며 무겁기도 했지만, 주말 간 못 봤던 해후를 풀며 나름 쾌활하던 분위기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긴장을 풀고, 내일부터 진지해지면 될 일이었다.

‘뭐, 뭔데 대체.’

그런데 그 밝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차갑다.

차가워도 너무 차갑다.

내가 꺼낸 말이 이어질수록, 써클룸 분위기가 한없이 싸늘해졌다.

그러던 중 정적이 끊기고, 이내 그녀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하, 하하. 자기래, 자기. 가은아, 너도 들었지?”

“…나도 이제 이름으로 불러야겠다. 응.”

“이런저런 얘기는 뭘까? 대체 무슨 얘기를 했을까?”

“…그치. 친해지면 성 떼고 부르는 게 맞긴 하지.”

“이러려고, 이러려고 우리 빼고 일본 갔구나.”

아니, 대화가 아니었다.

이건 겉으론 대화하는 척하면서…

실은 각자 자기 말만 꺼내는 혼잣말.

2인으로 구성된 집단적 독백이었다.

“근데 가은아. 네가 화날 이유는 없지 않아?”

“맞아. 주연이 따라서 그렇게 부른 거니까, 이번에도 그래야지. 응.”

“이상하다. 가은이는 계획에 없었는데….”

그 알 수 없는 대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만해.’

미안해.

뭔진 모르지만, 내가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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