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2 - 반격 (3)
[룬 사냥꾼]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다양한 룬 획득, 적절한 배합, 상위룬 조합 등.
접근 방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꼽으라면, 역시 ‘고레벨의 좋은 룬’을 얻는 것이다.
룬을 평가함에 있어 등급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지만, 레벨은 그에 못지않은 핵심 요소다.
“레벨이 높으면 이해도가 달라지니까.”
그리고 [룬 사냥꾼]은 일반적으로 획득한 룬의 레벨을 절반가량 하락시켜 등록한다.
따라서 상대의 룬 레벨이 높을수록, 즉 상대의 수준이 뛰어날수록 얻게 되는 룬의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수준 높은 룬을 얻으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쟁취할 만한 수준 높은 홀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룬 레벨이 저조했지.”
일반적으로 룬 레벨은 홀더가 괴수보다 높다.
홀더들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자신의 룬을 단련하고 성장시키는 반면, 괴수들은 특정 공간에서 성장이 멈춘 채 생활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사냥했던 룬들은 대부분 괴수의 룬이다.
홀더들과는 몇 번 대련을 통해 룬을 얻긴 했지만,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와 싸운 적은 없었다.
때문에 내가 획득하는 룬들의 레벨엔 한계가 있었다.
괴수 등급으론 A급 괴수는 물론, S급 괴수까지 사냥해봤지만…
아쉽게도 획득 시 10레벨을 넘어가는 룬은 없었다.
“…이번엔 달라.”
그러나 이번 <빌런>의 습격.
꽤 강력한 상대, 그리고 높은 등급을 지닌 고위 홀더들과 전투를 치르며 상황이 바뀌었다.
갑작스러웠던 공격을 막아내며 거머쥔 승리의 결실은…
확실히 지금까지와 달랐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은닉의 비도술’을 선택하셨습니다. 20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10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5 획득합니다.]
A급 홀더부턴 룬의 숙련도가 달라진다.
일전에 상대했던 스파이, 안도권이나 김도윤이 [광폭화 포션]을 통해 일시적으로 A급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버금가는 모습’이다.
능력치 펌핑을 통해 올라가는 데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20레벨이라니….”
반면 지윤재는 <빌런> 소속 선임 클랜원.
일전에 상대한 이들과는 달리, 완연한 A급 홀더의 능력을 보이는 고위 홀더였다.
당연히 룬 레벨과 활용도에서 하위 홀더들과 비교가 안 됐고, 승리 시에 획득한 결과물도 놀라웠다.
주력룬 20레벨이라는 상상 초월의 숙련도.
이에 나는 무려 10레벨의 에픽룬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중력’을 선택하셨습니다. 20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10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5 획득합니다.]
“와….”
그리고 그건 차수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내 [왜곡의 그림자]에 큰 타격을 입고 도망쳤었고, 그 탓에 [룬 사냥꾼]은 내 승리를 인정했다.
때문에 난 차수연의 주력룬인 [견딜 수 없는 중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10레벨 에픽룬 두 개가, <홀더 정보>에 단번에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새로 얻은 룬의 정보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룬 정보>
◎이름: 은닉의 비도술
◎등급: 에픽(Epic)
◎레벨: 10
◎새겨진 부위: 손가락 마디
◎특수효과
: 단검, 단도 등의 비수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림자 일족 다크문으로부터 전승된 다양한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 은신 계열 룬과 함께 활용할 시, 위력이 20% 상승한다.
: 마력을 담아 비도를 던질 경우, 순간적으로 방향을 꺾을 수 있다. 꺾는 타이밍엔 제한이 없으며, 본래 위력의 70%로 공격이 이뤄진다.
◎파생스킬
◎궁극스킬
[나이프 레인]
◎세부정보
: 야만 일족 바바리안의 천적이라 불리는, 그림자 일족 다크문의 전문 비도술. 습득 방법이 워낙 까다롭고 기술들이 난해해 전승이 어렵다고 전해지지만, 그럼에도 유지를 이어가는 이들은 존재한다.
지윤재의 주력룬이던 [은닉의 비도술]은 일종의 ‘무공룬’이었다.
룬 자체가 기술적인 방법론을 담은 룬이었기에, 효과도 단출하고 파생스킬도 없었다.
내 보유룬 중엔 [파상검법]이나 [유수검법], 혹은 [매화검법]과 유사한 룬이었다.
대신, 룬 레벨이 기준치에 도달하며 궁극스킬 활용이 가능했다.
“나이프 레인이라….”
총 21개의 비도를, 무작위 방향으로 한 대상에게 쏘아내는 스킬.
지윤재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궁극스킬이자, 바로 직전 전투에서 경험했던 극강의 물리 공격이기도 했다.
지윤재가 보유한 힘 중에 가장 탐내던 녀석이었는데, 기어코 내 힘이 됐다.
생각 외로 물리 공격 쪽에 스킬이 부족했던 내게 있어, 이는 꽤 매력적인 스킬이 될 것 같았다.
<룬 정보>
◎이름: 견딜 수 없는 중력
◎등급: 에픽(Epic)
◎레벨: 10
◎새겨진 부위: 쇄골
◎특수효과
: 중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되고, 인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 룬을 통해 발현되는 모든 마법에 상태 이상 ‘둔화’ 효과가 적용된다.
: 특정 대상이 아닌 특정 지역의 중력을 조절하기에, 룬을 통해 발현되는 모든 마법이 ‘광역 마법’의 형태를 보인다. 룬 레벨과 마력 수치에 비례해, 펼칠 수 있는 영역의 넓이가 달라진다.
◎파생스킬
[프레스 다운]
◎궁극스킬
[리버스 그래비티] (제한)
◎세부정보
: 염동력 계열에서도 중력을 다루는 데에 특화된 룬. 서서히 가중되는 중력의 압박은, 상대가 누구든 견딜 수 없이 무너지게 만든다.
“음….”
룬 정보를 하나하나 읽어 본 나는, 차수연의 [견딜 수 없는 중력]이 생각 외로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걸 느꼈다.
전체적인 성능은 좋다.
마법에 기본적으로 상태 이상이 들어간다는 점, 모든 마법이 광역성을 띤다는 점….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효과들이다.
“속성룬이 아닌 게 아쉽네.”
다만, 이 룬이 속성 계열의 마력룬이 아닌, 특수 계열 마력룬이라는 게 흠이었다.
특수 계열 마력룬은 기본적으로 마력의 배열과 발현이 거의 필수적이고, 이를 보조하는 룬들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당장 [견딜 수 없는 중력]의 ‘광역 마법’ 특성만 읽어봐도, 해당 지역에 마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따라서 가벼운 마력만으로도 불이나 번개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속성 마력룬과는 달리…
이러한 전문적 특수 마력룬들은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궁극스킬인 [리버스 그래비티]가 ‘제한’ 상태에 걸려 있는 것도, 레벨은 충족했지만 그러한 필수 요건을 만족하지 못해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제 와서 주문법을 배우는 건 비효율적이야.”
내 주력은 어디까지나 물리 계열.
마력을 활용하긴 하지만, 다른 마법사 홀더들처럼 주문식을 활용해 마력을 배열하고 발현하진 않는다.
만약 이를 배워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그런 성향은 내 전투 스타일과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프레스 다운은 쓸만하겠네.”
다행히 1인에게 강렬한 중력 가중을 선사하는 파생스킬, [프레스 다운]은 활용도가 높아 보였다.
이건 다른 마법들과 달리, 가볍게 마력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사용 가능했다.
확정적 상태 이상 스킬 하나를 얻은 느낌이었다.
“나머지는… 더 없고.”
구명훈에게선 아쉽게도 획득한 룬이 없었다.
그는 아카데미 학생 중에서도, 불속성 마력룬과 검법을 정석적으로 다뤄 온 멀티 홀더.
그래서인지 그가 보유했던 룬들은, 이미 모두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이었다.
웬 마검 같은 것을 사용하길래 새로운 룬이 생겼나 싶었는데, 단순히 아이템의 성능과 이펙트였을 뿐.
달리 극적으로 생겨난 룬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나는 새로 얻은 [은닉의 비도술]과 [견딜 수 없는 중력]을 몇 번 사용해보다가, 이내 무기를 정리하고 연무장을 나왔다.
더 점검할 필요가 있는 룬은 없었다.
새로운 전설룬 [용언이 맺은 약속] 또한 읽어 보긴 했지만, 이 녀석은 아직 직접 전투에 활용할 수 있는 룬이 아니다.
이젠 내일 있을 작전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계획의 진행에 집중해야 했다.
* * *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
아카데미 정문 앞엔, 총 8명의 홀더가 와 있었다.
어제 탁원호 교수가 불러 모았던 네 명.
김명현 교수, 강동욱 교수, 유은설, 나.
여기에 국내 3대 클랜의 각 파견 인원, 그리고 한국 홀더 협회의 파견 인원이 왔다.
“이번 작전은 선발대와 후속 전력으로 구성될 겁니다. 저희는 선발대로서 강 교수님의 탐색을 따라 빌런 클랜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고, 이후 후속 전력과 동시에 그들의 본거지를 급습합니다.”
팀장을 맡은 김명현 교수가 짧게 설명했다.
즉, 지금의 8명은 선발대 인원이다.
거기에 각 클랜과 협회를 대표하는 인원들이 온 만큼, 멤버도 상당히 쟁쟁했다.
“다들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빌런을 뿌리 뽑을 수 있기를.”
한국 홀더 협회에서는 김대원이라는 A급 홀더가 왔다.
김대원은 국내 신성 계열 중 원탑에 꼽히는 실력자로, 무료 치유나 순회 치료 등 하위 홀더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의인이기도 했다.
홀더 협회에 선한 영향력이 있음을 알리는 데에 크게 일조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박창현입니다.”
“음, 권오준입니다.”
<용광검로>에선 박창현이라는 A급 홀더가 왔고, <불의 심판>에선 떠오르는 클랜 간부 권오준이 참석했다.
수장급은 오기 힘들지만, 다들 클랜에서 한 가닥 한다는 간판 홀더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로열>은 한 술 더 떴다.
아예 개국공신 핵심 간부인 문정혁이 선발대로 와 버렸다.
선발대에 마법사 계열은 필요 없어도, 궁수 계열 한 명은 꼭 있어야 한다는 나름 합리적인 논리를 주장하면서 말이다.
덕분에 난 아주 오랜만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문정혁 홀더님.”
“오- 우리 예비 사위, 하도 안 봐서 얼굴을 까먹겠어.”
“…예?”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순간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고, 이내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주변을 스캔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히도, 이걸 들은 이는 없어 보였다.
“그… 문정혁 홀더님. 그 이야기는 대외적으로 비밀로 해주시기로…”
“음? 아, 그렇지. 하하하. 미안하네. 잠시 깜빡했군.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그랬네, 반가워서. 나도 참 주책이란 말이지. 하하.”
“예, 예….”
이건 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그나마 이 자리에 문가은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봤다면, 문정혁이 또 무슨 폭주를 할지 몰랐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하겠습니다. 강 교수님.”
“예.”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금세 정돈됐다.
김명현 교수의 말에, 강동욱 교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손등 위에 놓여 있던 작은 괴수를 유심히 바라봤다.
아마 이 작전의 핵심인 ‘버그의 신호’를, 조련사로서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동욱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서쪽입니다.”
그렇게.
<빌런> 클랜과의 전면전을 위한 반격이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