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3 - 조련 계약 (1)
다행히도 탐색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았다.
주먹구구식으로 이동하며 탐색을 하던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은 룬과 [워프 게이트]가 활성화된 홀더들의 시대다.
방향만 확인할 수 있다면, [워프 게이트] 지점들을 하나씩 돌며 각을 좁힐 수 있었다.
서울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들어가는 경기도 부근.
우리는 고양과 광명, 부천까지 찾아 들어갔지만…
여전히 버그는 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서쪽 광역시인 인천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드디어 버그의 방향은 ‘북서쪽’으로 바뀌었다.
“이건… 강화도 쪽일 확률이 높군요.”
강동욱 교수가 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인천에서 북쪽으로 가면 김포.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가면 강화도.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긴 했지만, <빌런>은 섬 지역과 그 부근의 무인도들을 본거지로 삼는 모양이었다.
무인도는 까다로운 탐색 지역이다.
직접 파고들면 수색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렵고, 설령 수색한다 하더라도 그게 성공적일 거란 보장이 없었다.
<빌런>은 그런 맹점을 잘 노렸다.
실제로 우리도 방향을 거의 확인했지만, 그들의 진짜 본거지를 찾지 못할 가능성 역시 있었다.
우리 파티가 강화도의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
강동욱 교수는 선언했다.
“확실합니다. 이 근방의 무인도. 그 어딘가에 빌런이 있습니다.”
“그럼…”
“예. 지금부터는 본대와 연락해, 합동 수색을 펼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린 어디까지나 선발대다.
<빌런>의 본거지를 발견하고, 단번에 이들을 소탕하려면… 작전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본대의 합류가 절실했다.
그에 김명현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작전의 일시 정지를 선언했다.
근방에 있는 호텔에 잠시 자리를 잡고, 본대 합류를 기다리기로 정한 것.
덕분에 숨 가쁘게 달려온 후,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 강동욱 교수님?”
그렇게 다시 모이는 시각을 정리하고, 각자 정비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에 나는 호텔 내의 카페를 찾았다.
정확히는 거기에 먼저 와 있는 강동욱 교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 도재현 홀더. 무슨 일이죠?”
강동욱 교수가 내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번 수색과 관련된 것들을 더 연구 중이었는지, 내가 오기 전까지 버그를 보며 무언갈 골똘히 생각 중이었다.
나는 커피 하나를 시켜와, 그의 앞에 앉았다.
“저, 다른 게 아니라….”
그리고 천천히 꺼내는 화두.
그와는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난 그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사실 어제 연이 닿은 후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워낙 사안이 급하고 작전이 빠르게 진행돼 물을 시간이 없었다.
집중하는 얼굴로 내 질문을 모두 들은 후.
강동욱 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련 계열에 대해 궁금하다고요?”
“네.”
조련 계열.
아카데미 특수 계열의 세부 분야 중에서도 희귀한 계열이자, 학계에서는 오히려 주류 학문으로 평가받는 계열.
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내 말에…
강동욱 교수는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도재현 홀더는 이미 본인 계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아카데미 최고의 유망주 아닌가요?”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사실 대외적인 평가는 그게 맞긴 하다.
안도권 사건 및 초고속 승급으로 1학년에서 한 번.
김도윤 습격 사건과 <안티 빌런> 창설로, 아카데미 전역에서 한 번.
마지막 이번 사건으로 한 번.
<빌런>의 양동작전을 그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막아내면서, 나는 단숨에 홀더 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 인사가 됐다.
일전에 박진우가 보여줬던 ‘국내 TOP10 유망주 홀더’에서, 사실상 ‘원톱 유망주’로 올라선 것과 마찬가지였다.
강동욱 교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날 설득했다.
“도재현 홀더의 학구열은 충분히 칭찬할 부분입니다만… 불필요한 과도 학습은 오히려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련 계열이 요즘 홀더 계에서 주류 학문으로 떠오르고 있긴 해도, 직접 전투계열들의 전통적인 인기와 비교할 바는 아니니까요.”
정론이었다.
내가 마법사 계열들의 [플로리안 주문]이나 궁수 계열의 [별절사법] 등을 익히지 않는 이유 또한 이런 이유다.
내 전투 스타일에 맞지 않는 룬이나 능력을 억지로 배우려 하면, 오히려 다른 능력의 활용이 어긋날 수도 있었다.
투입하는 시간 대비 효율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내 주력룬의 보조에 그쳐야 했다.
다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다르다.
나는 살짝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게 아니라… 제가 최근에 조련 계열 룬 하나를 얻게 돼서요….”
이번 사건을 통해 얻게 된 3개의 전설룬 중 하나.
[용언이 맺은 약속].
이 녀석은 단순히 보조에 그치기엔 너무 아쉬운…
차고 넘치는 효과들을 지닌 고위 룬이다.
때문에 이를 그냥 버려두듯이 지나칠 수가 없었다.
<룬 정보>
◎이름: 용언이 맺은 약속
◎등급: 전설(Legendary)
◎레벨: 1
◎새겨진 부위: 오른쪽 손등
◎특수효과
: 마력석에 의해 지성을 잃은 존재들을 조련하고, 그들과 계약할 수 있다. 룬의 특별한 효과로 인해, 계약자들은 사용자의 일반 능력치 중 10%(5.5/6.0…/4.9)에 해당하는 수치를 추가 능력치로 부여받는다.
: 계약 대상이 용의 전설과 관련이 있는 이들이거나 용의 특성 중 일부를 띨 경우, 계약의 성공 확률이 급격히 상승한다. 또한, 계약자 정보에 특별한 효과들이 추가된다.
: 룬 레벨 및 통솔 수치에 비례해 계약 가능한 대상의 수준이 올라가며, 계약할 수 있는 숫자 또한 달라진다. (현재 1마리)
*[룬 사냥꾼] 룬과 연동된 특수효과
: 사용자의 보유 룬 중 하나를, 계약 대상에게 ‘부여’할 수 있다. 계약 대상 하나당 총 3개의 룬을 부여할 수 있으며, 룬 부여 시 해당 룬은 홀더 정보에서 삭제된다.
◎계약 대상 목록 (0/1)
-없음
◎파생스킬
[계약의 손길]
◎세부정보
: 전설 속 존재로 불리는 ‘드래곤’이 용언으로 맺은 약속. 마력석을 통해 지성을 잃은 존재들을 조련해, 계약을 맺고 파트너로 활용할 수 있다. 용언이 새긴 강력한 약속의 힘은, 계약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룬 정보>.
이 룬이 원래, 지윤재가 얻게 될 룬이었다.
[조련 계약]으로 대표되는 조련 계열 룬 중, 최상위에 해당하는 전설룬.
과연 그 위명답게, 특수효과가 어마어마했다.
룬 보유자의 능력치 일부를 계약 대상에게 넘길 수 있다는 점이나, 용 관련 괴수들의 조련이 훨씬 쉬워진다는 점, 거기서 또 특별한 효과가 추가된다는 점 등…
조련 계열 룬 중엔 따라올 룬이 없는, 엄청난 성능들이 줄을 이었다.
게다가 [룬 사냥꾼]과 연동되어 생겨났다는 특수효과.
‘룬 부여’.
이건 정말, 몇 번을 읽어도 충격적이었다.
‘룬을 줄 수 있다고?’
한 홀더가 획득할 수 있는 룬은 30개로 정해져 있고, 나는 그보다 좀 더 많은 50개의 룬을 얻을 수 있다.
총합 50개의 룬.
평범한 홀더들은 평생을 수련해도 다 채우지 못할 수지만… [룬 사냥꾼]을 꾸준히 활용하다 보면, 내게 있어서 50개는 금방이다.
당장 현재 내 보유 룬만 해도, 37개에 육박 중이다.
그간 상위룬 조합을 꾸준히 해왔는데도 이 정도니,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50개가 채워질지 모른다.
당연히 이렇듯 룬을 가리지 않고 획득하다 보면, 나중엔 정작 필요한 룬을 못 얻을 수도 있었다.
‘필요 없는 룬을, 괴수한테 넘길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런데 그러한 룬들 중 일부를, 계약 괴수에게 부여할 수 있다?
이건 지금의 내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효과다.
알짜배기 룬들은 남기면서 불필요한 룬들은 넘기는…
그러면서도 룬을 부여해 해당 계약 괴수는 강화하는.
거의 일석삼조라고 볼 수 있는 효과.
룬이 과도하게 많은 지금의 내 <홀더 정보>.
이를 깔끔하게 정리할 절호의 기회였다.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련 계열을 성장시키고 통솔 수치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음… 그렇군요. 도재현 홀더가 뛰어난 멀티 홀더라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그 정도로 다재능일 줄이야….”
꾸준히 날 설득하던 강동욱 교수.
그 역시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조련 계열 룬을 획득하게 됐고, 여기에 얼마나 재능이 있을 줄 모르니 공부해보고 싶다…
대략 그런 논리를 주장하니, 나름 이해해주는 낌새였다.
“좋습니다. 그럼 도재현 홀더를 위해, 짧은 속성 강의를 잠시 해드리죠.”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분야 최고 권위자에게 조언을 듣다 보면, 분명 막다른 곳에도 길이 생길 것이다.
강동욱 교수는 정리하던 내용을 덮고, 노트의 새로운 장을 펼쳤다.
내게 강의할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곤 펜을 들어, 큼지막한 단어들을 하나씩 적어갔다.
조련, 소환, 언어…
몇몇 키워드로 구성된 작은 마인드맵이 그려졌다.
천천히 마인드맵을 그리던 강동욱 교수는, 어느새 이를 완성한 후 날 봤다.
“우선, 조련 계열은 단순히 조련 계약 룬을 획득했다고 해서 이해가 끝나는 계열이 아닙니다. 타 계열도 비슷하겠지만, 조련 계열은 특히 다른 공통룬들의 보조가 필수적인 계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탁, 탁.
테이블을 두어 번 두드려 내용을 강조하던 강동욱 교수.
그의 펜이, 이내 마인드맵 오른쪽의 ‘언어’라는 항목에 닿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공통룬 중 하나는, 언어입니다.”
“언어요?”
“그렇습니다. 언어 룬은 홀더와 계약 괴수가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일반적으로 언어 룬이 없어도 괴수 조련 및 계약 성사가 가능은 합니다만…”
강동욱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성장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괴수와 소통하지 않는 홀더의 일방적인 명령에 불과하고, 이렇듯 강조되고 반복되는 명령은 괴수를 불안하게 해요.”
“불안…?”
“그렇습니다.”
설명을 곱씹는 내 모습에, 강동욱 교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 불안이 이어지다 보면 결국, 중요한 순간에 괴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홀더가 제어 가능한 영역을 넘게 되는 거죠.”
“아.”
나는 작게 감탄하며, 그의 속성 강의를 새겨들었다.
단순히 조련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룬.
여기엔 의외로 꽤 복잡한 정보들이 서로 얽혀있었다.
조련 자체의 성공 여부도 중요했고, 그걸로 끝이 나는 게 아니었다.
조련 이후, 또 그 이후가 중요했다.
혹시나 잊어버릴까 봐, 나도 노트를 꺼냈다.
기록하면서 들으니 정리가 더 잘 됐다.
그의 강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자자, 그다음은 소환 룬입니다. 언어 다음으로 커다랗게 적혀 있어서, 도재현 홀더도 많이 궁금했을 겁니다. 소환 룬은 어떤 보조 역할을 하냐면…”
그런데 강의를 이어가는 강동욱 교수의 분위기가, 어쩐지 꽤 밝다.
강의에 막 흥미를 느낀 나보다, 더 흥미로워 보인다.
가르치는 목소리엔 한껏 들뜬 느낌이 가득했다.
…뭐지.
이 사람, 나보다 더 신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