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6 - 전면전 (2)
부으으-
기장섬에 도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강화도 끄트머리 석모도와 기장섬의 거리는 대략 400M.
배를 타고 움직이는 게 민망할 정도로 짧은 거리다.
혹여나 대기하고 있는 <빌런> 인원들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도착했을 때의 섬 부근은 고요하기만 했다.
“이대로 중앙까지 진입할게요.”
파티장 유은설이 짤막하게 지시했다.
이제부터는 전면전이다.
설사 섬 안에 함정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을 뚫으며 나아가야 했다.
“문가은 홀더?”
“네, 넵!”
유은설의 부름에 문가은이 재빨리 답했다.
아카데미 강사라곤 해도, 궁수 계열은 유은설과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
때문에 문가은은 유은설과의 지금 대화가 처음이었고, 당연히 명령을 받듯 태도가 딱딱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야 사제 관계로 유은설과 나름 가까워졌지만, 문가은에겐 그저 하늘 같은 S급 홀더님일 뿐이니까.
그리고 문가은 뿐만 아니라, 이번 작전에 참여한 홀더들 대부분이 꽤 얼떨떨한 기분일 것이다.
S급 홀더와 같이 작전을 한다는 건, 어떤 홀더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였다.
“지금부턴 궁수 계열의 역할이 중요해요. 빌런 쪽에서 어떤 함정을 만들어놨을지 모르니까요. 긴장을 놓지 말고, 마력 탐지를 계속 활용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너무 긴장하지는 말구요. 안성현 홀더가 잘 도와줄 거예요. 안성현 홀더?”
“예. 맡겨 두셔도 됩니다.”
원군으로 온 A급 홀더 안성현이 가볍게 답했다.
그는 <석양의 꽃> 클랜 소속 궁수 계열 홀더.
국내 궁수 계열 중 A급 홀더가 절대 흔하지 않은 등급임을 고려하면, <석양의 꽃>이 떠오르는 신흥강자라는 게 확 체감이 됐다.
유은설은 그 외에도 각 계열들에게 세부 지시를 내렸다.
‘엄청 능숙하시네.’
나는 그 모습에 작게 감탄했다.
S급 홀더는 뛰어난 실력을 쌓음과 동시에,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야 성취할 수 있는 등급.
홀더들에겐 매번 손을 뻗는 하늘이자, 닿기 힘든 금자탑이다.
유은설은 클랜이 없는 무소속 홀더지만…
S급이라는 등급은 허투루 따지 않았다는 듯, 파티를 이끄는 데에 있어 능숙하고 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엔 날 가르칠 때 엄격한 모습만 봤었는데, 이렇듯 본업에서의 진중한 모습을 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척- 척-
달칵-.
장비가 움직이는 소리가 적막 속을 가른다.
우리 파티는 신중하게 섬 내부를 수색했다.
수색 방향은 출발 지점에서 중앙을 쭉 가로지른 후, 다시 오른쪽으로.
섬 한 바퀴를 도는 방향이다.
10분, 20분…
섬 안으로 들어가며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달리 위협적인 함정이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파티 내에 긴장감은 더해갔다.
유은설은 잠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수색을 멈추고 궁수 계열인 안성현에게 물었다.
“궁수 계열. 아직인가요?”
“예, 파티장님. 아무래도 특별한 함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다만?”
안성현의 말에 유은설이 되물었다.
문가은이 그 말을 받았다.
“중앙 쪽에 마력이 집결된 구조물이 있는 것 같아요.”
“구조물….”
“네. 섬 입구부터 느껴지긴 했는데, 중앙으로 올수록 그 기운이 강해져요.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에요. 여기가 빌런의 본거지인진 모르겠지만, 마력이 집중된 무언가가 있는 건 확실해요.”
파티의 분위기가 또 한 번 달라졌다.
압도적 양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조물.
이는 즉, 강동욱 교수가 버그를 통해 가리킨 위치가 거의 정확하다는 말과 같았다.
문가은의 말처럼 <빌런>의 본거지인지까진 모르겠지만, 이곳 기장섬에 뭔가 있는 건 확실했다.
“그럼 이대로…”
고개를 끄덕인 유은설이 다시 지시를 내리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강한 마력의 진동을 느낀 듯.
안성현과 문가은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파티장님…!!”
“……!!”
그리고 그 파동은, 궁수 계열만 느낀 건 아니었다.
스릉-!
스르릉-
앞선의 전사 계열들이 모두 각기 무기를 들고, 후열의 마법사 계열은 마력을 배열하기 시작했다.
다른 계열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투를 준비했다.
그렇다.
전투 준비.
우리는 모두 전투를 준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요하던 섬 중앙에 …
갑자기, ‘적’이 나타났기에.
“와, 와… 지, 진짜네. 혀, 형 말대로 다, 다들 왔어….”
그 긴장감 어린 대치 상황 속.
어디선가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티 기준으로 앞 방향.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눈까지 내려서 덮은, 작은 키의 한 남자였다.
철컥- 척-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장비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셀 수도 없이 많은 홀더들이 나타났다.
홀더들의 자리는 가지각색이었다.
앞쪽의 남자가 있는 곳엔 당연히 있었고, 그 옆.
그 옆의 옆과 대각선.
심지어 우리 파티의 뒤쪽까지, 홀더들이 자리했다.
‘…씨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욕설이 나온다.
우리 파티는 포위됐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홀더들이, 우리의 주변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장섬에 도착하고, 수색을 시작한 후…
가장 큰 위기 상황이었다.
‘미허가 워프 게이트가 또 있었구나.’
갑작스럽게 나타난 홀더 무리.
이들은 아마 [워프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빌런> 클랜원들일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마력의 흔적이 전혀 없다가, 갑자기 생겨난 걸 보면 확실했다.
‘그래도 생각보단 적어.’
나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까진 아니라는 걸 느꼈다.
녀석들도 급하게 도착한 건지, 다행히 아득할 정도의 수는 아니다.
앞과 뒤, 옆의 포위 숫자를 모두 합산해도…
대략 40명 정도?
현재 추정되는 <빌런> 내 클랜원들만 200명에 가깝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부족한 숫자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담되는 숫자지만, 여기까진 우리도 어느 정돈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시간을 끌어야 해.’
대 <빌런> 소탕 작전은 강화도 및 인천 근처의 무인도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최소 15인 이상으로 구성된 파티가 섬들을 덮쳐 수색을 진행하고, 그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한곳으로 모이게 되는 구조.
따라서 우리 파티는 이곳 기장섬에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다른 파티들의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피해를 줄이며 녀석들을 상대해야 했다.
“어, 어떻게 알고 오, 온 거지?”
처음 말을 꺼냈던 짙은 갈새 머리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아마 아이템 때문일 거다.”
그러자 옆에 있는 남자가 말을 받았다.
비슷한 생김새와 머리 색.
그러나 정반대의 큰 키와 어깨에 걸친 커다랗고 거무튀튀한 검.
압도적인 분위기가 그의 주변을 장악했다.
‘황성연.’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나는 단숨에 그를 알아봤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저 불길한 마검을 지닌 홀더는 황성연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를 형이라 부른…
저 키 작은 남자는 아마, 클랜 마스터 황동연이겠지.
<빌런>의 클랜 마스터와 부마스터가 한자리에 모여, 우리 파티 앞에 서 있었다.
“아, 아이템?”
“그래. 융화의 질서인가 뭔가 하는 그거. 그것말곤 우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그렇구나. 이, 인간들도, 꽤 또, 똑똑하네. 어, 어차피 죽으면 끄, 끝인데… 헤, 헤헤.”
“…….”
듣기 거북할 정도로 말을 더듬는 황동연이, 묘한 말을 뱉으며 우릴 바라봤다.
우리는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이야 놈들이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지만…
언제 전투가 시작돼도 이상하지 않았다.
“음음- 황성연. 도재현 저 새끼는 내가 죽일 거야. 미리 말했어.”
익숙한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황성연과 황동연의 옆에 서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
바로 어제.
내게 치명상을 입고 도망쳤던 차수연이었다.
가슴에 구멍이 나고, 피를 철철 흘리던 게 생생한데…
어느새 멀쩡한 몸 상태로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잘도 다시 왔네.’
그녀를 본 나는 아깝다는 듯 혀를 찼다.
그새 부상을 회복하고 합류하다니.
이래서 어제 바로 죽였어야 했는데.
그녀는 날 향해 아득바득 이를 갈며, 증오 섞인 눈빛을 보냈다.
아무래도 어제 내게 쌓인 분노가 상당한 모양이다.
하긴.
<빌런>의 핵심 간부가, 이제 막 유망주로 불리는 아카데미 학생 홀더에게 1초 만에 죽을 뻔 했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전처럼 존댓말은 안 하는 건가.”
“더 격식 차릴 필요 없잖아? 이제 이 클랜도 끝물인데.”
“…재미없는 이야기군.”
황성연과 차수연이 잡담을 주고받는 게 들린다.
나는 속으로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미친 새끼들.’
적을 앞에 두고 저딴 말이나 하고 있다니.
어지간히도 여유를 부린다.
아니, 어쩌면 급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들의 말처럼 지금은 <빌런> 클랜 자체가 위기이기에, 아예 상황의 위급함에 대해 초연해진 걸지도 몰랐다.
어쨌든 적들의 이런 태도는…
우리에겐, 기회였다.
쿠, 쿠우웅-!!
쩌, 쩌저적-
“뭐, 뭐야?”
“땅이…!!”
고요하던 땅바닥이 갑작스럽게 진동한다.
이내 강렬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친 내가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파워 브레이크.’
[파워 브레이크].
이제는 [엘리멘탈 마스터]의 하위룬이 된, [갈라진 대지의 정원] 파생스킬.
땅 한가운데를 완전히 가르며 주변 지형을 바꾸고, 땅 위의 전투 구도를 통째로 뒤바꾸는 강력한 스킬.
나는 이 스킬을.
우리 파티의 ‘왼쪽’을 가르는 데에 사용했다.
정상적인 구도라면 뒤쪽을 갈라야 맞다.
어쨌든 우리는 포위된 상황이고, 후방 인원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뒤쪽의 진입로를 차단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건 지극히 수비적인 전략.
한 번 그렇게 스킬을 쓴 이상, 더는 공격적인 구도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 미리 세웠던 전략은…
처음부터, ‘공격’이었다.
“스승님!”
“음…!!”
준비가 끝난 내가 신호를 주고, 유은설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보법류 룬을 통해 갈라진 땅의 틈 사이로 들어갔다.
그렇다.
정확히 ‘들어갔다’.
대지가 갈라지고, 일종의 절벽과도 같은 틈새가 만들어졌는데… 유은설은 그 안으로 들어가며 파쿠르를 시도했다.
보법류 룬과 마력 활용이 극에 달한 암살자 계열에게 있어, 그 정도 벽 타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안에 들어가면… 순간 시야에서 가려져.’
시야에서 가려진다.
이 말은 즉, [은신] 룬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
그리고 암살자 계열은 [은신]을 할 때.
본연의 능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파워 브레이크]를 통해.
탁 트인 지금의 자리에,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은신]하는 유은설.
이는…
누군가를 ‘암살’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흐읍…!!”
유은설이 순식간에 <빌런>의 수뇌부 쪽으로 향한다.
지형을 바꿔, 어떻게든 상대 주요 인물을 암살하는 것.
이게 우리 파티에 ‘S급 암살자 계열’이 투입된 이유이자…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플랜 A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