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7 - 전면전 (3)
활용도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룬은, 등급이 높을수록 성능 또한 좋아진다.
<넥스트 룬 홀더> 설정상의 룬 등급은 총 5개.
노멀, 레어, 에픽, 전설, 신화.
간혹 [룬 사냥꾼]이나 [구도자의 땀방울]처럼 전설 및 신화급을 넘어서는 돌연변이 에픽급들이 나올 때도 있지만, 보통은 위의 순서가 룬 성능의 순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같은 능력’을 다루는 룬이라고 하더라도, 룬의 등급에 따라 성능은 달라지곤 했다.
‘공통룬도 마찬가지.’
그 영역은 주력룬이 아닌, 공통룬에도 해당한다.
예를 들면, 암살자 계열의 공통룬 중 하나인 ‘보법류 룬’.
보법류의 기초 룬은 [민첩성]으로, 노멀룬이다.
홀더의 움직임을 조금 더 빠르고 민첩하게 보조해주는 속력 계열 룬.
나도 일전에 괴수 사냥으로 얻은 적이 있던 룬이고, 노멀룬인 만큼 특별한 효과나 파생스킬 또한 없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은 성능의 룬이 [날렵한 몸놀림].
레어 등급이다.
이 또한 내가 지닌 룬으로 [민첩성]보다 더 빠르게 움직임을 보조해주고, ‘마력을 활용한 파쿠르’에 능숙해진다는 특수효과도 있다.
이처럼 모든 룬에는 똑같은 능력이더라도, 성능 차이를 보이는 다른 등급의 룬들이 있다.
“상대가 전혀 안 보입니다!”
“지, 진짜네. 우, 우와… 시, 신기해. 어, 어디로 간 거지.”
그리고 이는.
암살자 계열의 ‘은신류 룬’에도 마찬가지다.
유은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빌런> 클랜원들은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의 앞에서 대놓고 모습을 숨겼는데, 어이없게도 그걸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신류 룬의 기초 룬은, 노멀급 [은신].
그러나 유은설이 적진을 휘저으며 보이는 모습은 결코 노멀급의 성능이 아니었다.
최소 에픽급, 어쩌면 전설급.
레벨 또한 무조건 10레벨 이상이다.
‘저게 S급 홀더….’
나도 그를 보며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미리 계획했던 전략이지만, 이게 정말 생각했던 대로 될 줄은 몰랐다.
유은설은 내가 [파워 브레이크]로 만든 대지의 틈에 숨어든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졌다.
시야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기척까지 숨기는, 그야말로 완벽한 은신.
암살자 계열의 정점만이 보일 수 있는 신위였다.
S급 홀더, S급 홀더.
말은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많이 들었지만, 그 위력을 실제로 체감한 건 처음이다.
고작 은신 한 번 했을 뿐인데…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느껴졌다.
‘얼룩진 암석 더미’ 던전에서 김채은과 나를 도울 때도, 유은설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르릉-
촤악-!!
“끄, 끄아악-!!”
“제, 젠장…!!”
숨 막히는 고요가 끝났다.
유은설이 어느 순간 은신을 해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내, 적에 대한 암습을 시작했다.
클랜 마스터 황동연 혹은 부마스터 황성연.
둘 중 하나를 단번에 죽이기 위한 진입.
그 진입로에 있는 <빌런> 클랜원들이, 그녀의 검격 한 번에 모조리 나가떨어졌다.
마치 전투의 신호탄과 같은 그 모습을 본 나는, 곧장 권오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권 팀장님…!!”
“음! 전 파티원, 유은설 홀더님을 보조한다! 궁수 계열과 마법사 계열은 원격 보조에, 신성 계열은 치유는 버리고 오직 버프에만!”
사실상 파티의 부파티장격인 권오준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S급 홀더가 참전하면 그 외 병력은 걸림돌일 뿐이다.
앞에서 어중간하게 끼어드는 것보다, 뒤에서 원격으로 보조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권오준은 그 구조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모든 인원을 보조로 돌리고, 신성 계열도 버프만 사용하게 지시했다.
또한, 남은 암살자 계열과 전사 계열은 전방위에서 파티를 호위할 수 있도록 진형을 바꿨다.
“도재현.”
짧은 지시를 마치고 창을 꺼내든 권오준이 날 봤다.
그리고 그가 꺼낸 말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네가 프리롤로 유은설 홀더님을 도왔으면 한다.”
“…제가요?”
살짝 놀라 되묻자, 권오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파티에서 공수가 다 되는 홀더는 너밖에 없어. 나도 같이 들어가고 싶지만, 그러기엔 주변에 빌런 놈들이 너무 많다.”
권오준의 말이 맞았다.
유은설이 전장을 휘젓듯 적들에게 침투해갔지만, 우리 파티가 여전히 포위 상태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챙-
채쟁-!!
그걸 방증이라도 하듯, 그새 파티에 달려든 두 명의 클랜원.
그들의 검을 박진우가 자신의 검으로 막아섰다.
다른 쪽에선 최동욱과 신유나도 힘겹게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권오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힘은 저번 전투에서 충분히 확인했다. 아마 전력을 다하면, 나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거야. 부탁한다, 도재현. 네가 유은설 홀더님을 도와라. 지금 상황은 괜찮아 보이지만, 유은설 홀더님은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어. 이유는 알지?”
“…예.”
유은설은 분명 이곳에 적수가 없는 S급 홀더지만, 저 안에선 위협이 존재했다.
‘…황동연과 황성연.’
<빌런>의 마스터와 부마스터.
형제인 두 사람이, S급 홀더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황성연은 A급 홀더라 알려졌지만, 최근 ‘아카데미 습격작전’에서 내부 A급 홀더들을 홀로 쓸어버린 걸 보면 결코 평범한 A급의 실력은 아니었다.
황동연은 누구도 마주쳐본 적이 없기에, 그 무력을 직접 확인할 길이 없었다.
수뇌부의 두 머리가 만약 S급 홀더라면, 아무리 유은설이라 하더라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무사하진 않겠지만.’
<빌런> 측에 S급 홀더가 두 명이다?
그럼 우리 파티는 사실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다만, 최대한 그 위기를 뒤로 미루고 원군 도착까지 시간을 벌 뿐이었다.
“흡…!!”
나는 권오준과 짤막한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움직였다.
유은설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휘젓는 중인 적진 안.
그 안으로 맹렬히 돌진을 시작했다.
[천하제일 경주마]의 돌격이었다.
‘액셀 피어싱…!!’
무구 교체술로 양손엔 [와이번 스피어]를 든다.
파생스킬인 [액셀 피어싱]을 활용하기 위한 무기교체.
선공을 할 때, 그리고 적의 진형을 무너뜨릴 때 가장 효과적인 스킬이었다.
“끄아악-!!”
“돌격 룬? 무슨 속도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내 돌격에 몇 명의 <빌런> 클랜원이 부상을 당하며 당황했다.
적들의 수는 다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
다수의 적과 싸우기에 당연히 [야만왕의 후예], ‘맹수의 법칙’이 발동한다.
여기에 상대들 중 나보다 낮은 능력치의 상대들이 많아, [위압]의 특수효과도 자연히 발동했다.
유은설을 따라 적진에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능력치가 뻥튀기되고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내 몸놀림은 여느 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오, 오와… 하, 한 명 더 왔네… 하, 하하….”
호위하는 클랜원들 사이에 있는, 황동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새낀 정말 클랜 마스터가 맞긴 한 걸까.
왜 자꾸 정박아처럼 말을 더듬어 대는지 모르겠다.
‘스승님은….’
잠깐 상황을 살펴보니, 암습을 위해 진입했던 유은설도 호위들에 막혀 황동연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B급 및 A급 홀더와 S급 홀더의 수준 차이가 엄청나긴 하지만… 그 수가 20, 30을 넘어가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육탄전을 펼쳐 어떻게든 막아내는 <빌런> 클랜원들에, 유은설은 꽤 고전하고 있었다.
일단, 플랜A는 실패였다.
시작 자체는 좋았지만, 물량 공세로 밀어붙이는 상대에 후속타가 막혀버렸다.
‘그래도 시간을 끌면 유리해.’
당장 머릿수에 막혔을 뿐, 유은설은 마주치는 적을 모두 쓰러뜨리고 있다.
이대로만 간다면.
우리 파티가 <빌런> 녀석들에게 승리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대로만 간다면 말이다.
“……?!”
적진에 들어와 무아지경으로 싸우던 중.
나는 문득 측면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기운에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홉고블린의 청동 방패]를 꺼내 들었고, 이후 다가오는 검격에 맞섰다.
카, 카강-!!
스스스-
“크흐읍…!!”
아니, 씨발.
무슨 근력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근력 차이에 질질 밀려가다가, 나는 그대로 방패를 빼내며 몸을 피했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빌런>의 부마스터, 황성연이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대 마검을 내려치고 있었다.
‘미친. 진짜 S급인가?’
잠깐 부딪힘이지만, 그 위력은 확실히 전달됐다.
도무지 측정하기 힘든 수준의 근력이 온전히 느껴졌다.
아무리 A급부터 능력치보다 룬이 더 중요하다곤 하지만, 등급 간 절대적인 능력치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다.
방금 내가 마주한 황성연의 힘은, 결코 평범한 힘이 아니었다.
“황성연! 그 새낀 내가 죽인다고 했잖아.”
한 번의 부딪힘에 잠시 밀려난 도중…
앞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퍼진다.
차수연이었다.
황성연은 그녀를 잠깐 돌아보고는,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네 중력을 한 명에게 쓰는 건 아깝다. 넌 저 뒤쪽 녀석들과 싸워라. 우리도 상황이 그다지 여유롭진 않아.”
그 말에 차수연은 살짝 입술을 베어 물며 답했다.
“칫. 대신 목숨은 남겨놔. 그 새낀 꼭 내가 살갗 하나하나 가를 거니까.”
“…재미없는 소리군.”
그런 말들과 함께.
차수연이 클랜원 몇 명을 이끌고 뒤편의 우리 파티 쪽으로 향했다.
‘안 좋아.’
나는 점점 상황이 안 좋다는 걸 느꼈다.
나와 상대하던 다수의 적이 모두 물러났다.
차수연을 따라 뒤쪽의 우리 파티에 달려들기 위함이다.
때문에 순간 펌핑됐던 내 능력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마검의 소유자, 황성연.
그 힘이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없는 남자가, 사실상 내 1:1 상대처럼 돼 버렸다.
“도재현, 인가.”
황성연이 날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난 조용히 검을 쥐며 답했다.
“날 아나?”
“음. 원호의 제자라고 들었다.”
“…원호?”
황성연과 탁원호 교수가 서로 아는 사이였나?
그 뜬금없는 호칭에 의문이 들었지만, 궁금증을 풀 시간은 없었다.
뭐라 얘기할 틈도 없이, 황성연이 곧바로 마검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나중에 듣지.”
“……!!”
스스스-
다시 한 번, 황성연이 다가온다.
재빨리 머릿속으로 방법을 강구했다.
아직 난 녀석을 상대할 준비가 덜 됐다.
일단 빨리 [광폭화]와 [용인화]를 사용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시전 시간은 필요했다.
지금은 그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나는 곧바로 방법을 생각해냈다.
“숨기고 던져라…!!”
지윤재가 지녔던 에픽룬 [은닉의 비도술].
그 궁극스킬인 [나이프 레인].
룬에 대한 지윤재의 숙련도가 매우 높았던 탓에, 룬을 복제한 나도 곧바로 궁극스킬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정도로 황성연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벌 수는 있었다.
10레벨의 에픽룬으로 활용하는 궁극스킬.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공격이었다.
쉬, 이이이-!!
쐐애애애-
총 21개의 단검이, 비처럼 쏟아진다.
까맣게 하늘을 적신 비수가…
거침없이 그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가 사용했던, 강력한 궁극스킬을 바라보며.
“…음?”
뭔가 잘못 봤다는 듯.
황성연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