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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68)화 (168/353)

Chapter 168 - 첫 계약 (1)

황성연은 문득 재미없다고 느꼈다.

지금 참전한 <빌런> 클랜원들 대부분이 모르겠지만, 지금의 전투는 사실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그건 아카데미 연합군 측에도, <빌런> 측에도 마찬가지였다.

‘원군이 오겠지.’

황성연은 대인 전투에 있어서 베테랑이다.

그 내막이 전부 살육의 현장이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전투의 흐름만큼은 누구보다 잘 읽는다.

아카데미 연합군은, 아마 원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이토록 수비적인 전략을 펼치는 거겠지.

S급 홀더가 꼈다곤 해도, 고작 15명의 파티다.

숫자로 밀어붙여 버리면 당해내는 게 쉽지 않고, 또 유은설은 황성연 자신이 막으면 그만이었다.

‘우리도 시간을 끌고 있고.’

다만, 시간을 끄는 건 <빌런> 측도 마찬가지였다.

황동연이 꼭 실험해봐야 한다던 웬 궁극스킬.

그 발현을 위해, 굳이 본거지까지 클랜원들을 끌어와 시간을 끌고 있었다.

멍청이처럼 말을 더듬는 동생은, 저래 보여도 사실 스킬 발현을 위해 마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서로 시간 싸움이다.

이쪽은 연합군 측 원군이 오기 전에 다 쓸어버려야 했고, 상대는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여차하면…

클랜의 본거지와 재산을 모두 버린 채, 몸만 떠나 도망쳐야 할 수도 있었다.

‘…재미없군.’

황성연은 그러한 전투의 흐름이 재미없다고 느꼈다.

유은설과 화끈하게 싸우기라도 하면 모를까, 적은 정면대결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차라리 [융화의 질서]를 탈취하기 위한 저번 습격작전이 더 재밌게 느껴진다.

그땐 마음 가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고, 오래전 친우였던 탁원호를 만나기도 했으니까.

‘그랬는데….’

지루하고 재미없던 전투.

그 안에 흥미로운 홀더 한 명이 황성연의 눈에 들어왔다.

도재현.

<빌런> 내 부하들이 입에 닳도록 보고하던 주의대상.

최근 떠오르는 아카데미 유망주 중, 가장 뛰어난 실력과 성장치를 보유했다는 홀더.

듣기론 탁원호의 제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그가, 유은설에 이어 부나방처럼 <빌런> 측 진영으로 뛰어들었다.

심지어 잘 싸운다.

창을 들고 돌격을 시작한 도재현은, 무리에 들어오고서부턴 검을 든 채 다수의 클랜원에 밀리지 않고 전투를 이어갔다.

과연 그 명성과 재능이 돋보이는 활약이었다.

‘방해되겠군.’

그래서 황성연은 전투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다른 클랜원들과 간부들을 전부 물렸다.

도재현을 직접 상대하기 위해.

또한, 아카데미 측 인원 상대에 남은 인력을 쏟기 위해.

“숨기고 던져라…!!”

하지만 쉽게 끝날 것 같던 도재현과의 전투는, 오늘 들어서 가장 흥미로웠다.

쉬이이익-!!

쐐애애-.

황성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위를 바라봤다.

단검의 비가 쏟아진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물리 공격.

황성연에겐 분명 익숙한 공격이었다.

‘룬을 뺏는 힘이라도 있는 건가.’

짧은 시간에 그런 판단이 내려진다.

이 공격은 선임 클랜원 지윤재의 궁극스킬, [나이프 레인]이 확실하다.

지윤재는 저번 습격작전에서 몸을 빼지 못하고 붙잡혔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받은 모양이다.

아이템을 쓰든, 룬의 힘이든…

저 스킬은 지윤재의 능력을 강탈한 게 분명해 보였다.

“…재미있군.”

황성연은 손에 잡아든 마검에 마력을 투입했다.

[다인 슬라이프]가 움직인다.

검 밖의 검은색 기운은 검 안으로, 검 안의 핏빛 기운은 검 밖으로.

짧은 시간에 투입된 마력은, 곧장 불길한 어둠을 만들어내며 황성연의 몸 주변을 덮었다.

그리고….

캉-! 캉-!

카가가-.

사방에서 쏟아지던 단검들이, 모조리 ‘벽’에 부딪힌다.

정확히는 황성연의 주변을 덮은 검붉은 기운.

마검에서부터 시작된 독특한 기운이, 쏟아지는 단검을 전부 받아쳤다.

한 홀더의 궁극스킬이, 너무 허무하게 막히는 순간이었다.

“음.”

이게 [다인 슬라이프]의 장점이다.

공격과 방어를 모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어둠.

워낙 사용조건이 까다롭고 페널티도 많은 무기지만,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이렇듯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특히 황성연은 [영웅 살해자]라는 룬을 보유하고 있어, 마검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세간에 전설급이라고 알려진 [다인 슬라이프]는, 현재 황성연에 의해 모든 봉인이 해제돼 ‘신화급 무기’가 되어있었다.

황성연은 무심하게 기운을 거두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쏟아지는 단검의 비를 모두 막아냈지만, 정작 스킬을 사용한 상대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쇄도하라.”

또 한 번.

또 한 번의 언령이 읊어진다.

평범한 홀더는 평생 하나도 갖기 힘든 궁극스킬이, 도재현에게서 두 번째로 펼쳐졌다.

푸쉬이익-!!

“…….”

황성연은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의 심장을 파고든 한 자루의 검을 봤다.

[다인 슬라이프]가 만든 어둠의 방어가 뚫렸다.

그리고 일어난 거친 피분수.

쏟아질 듯한 피가, 가슴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고 있다.

자신의 가슴이, 그의 검에 정통으로 찔린 상태였다.

그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며…

황성연은 씨익 웃었다.

진한 웃음.

평소의 그에게선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깊고 진한 웃음이었다.

“역시 재미있어.”

정말…

정말 재밌는 상대가 나타났음을.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 * *

‘씨발. 이게 말이 돼?’

나는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나이프 레인]이 막힌 것부터 허무했다.

처음부터 큰 타격을 줄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지만, 아예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줄은 정말 몰랐다.

황성연이 마검을 통해 만들어낸 핏빛 어둠.

그 기이한 기운은 순식간에 그의 주변을 감싸더니, 이내 쏟아지는 단검을 모조리 막아냈다.

그건 마치…

‘주연이 스킬 같잖아.’

일전에 지윤재와 전투할 때, 내 주변을 감쌌던 불의 방어막.

그와 비슷한 느낌을 냈다.

그 때 그 방어막이, 강주연의 새로 각성한 능력이라는 얘기는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황성연도 비슷했다.

아니, 이건 그보다 훨씬 강한 방어막이었다.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핏빛 어둠은, 무려 궁극스킬인 [나이프 레인]을 모두 쳐냈다.

총 21개에 달하는 단검들은…

황성연의 몸 근처에 닿지도 못하고, 모두 튕겨 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그나마 거기까진 괜찮았다.

애초에 시간을 벌기 위해 사용했던 궁극스킬이니까.

중요한 건 [광폭화]와 [용인화]를 사용할 시간.

그 시간은 짧게나마 벌어냈고, 나는 두 스킬을 통해 단숨에 능력치를 두 배에 가깝게 펌핑시켰다.

능력치 상으론 A급 홀더, 그중에서도 상위에 가까운 실력.

권오준의 말처럼, 어떤 홀더와 맞부딪혀도 밀리지 않을 전력이었다.

“쇄도하라.”

그리고 펼쳐낸 또 하나의 궁극스킬.

[왜곡의 그림자].

‘블링크’를 통해 적의 뒤로 순간이동하고, 다음 공격에 모든 방어를 무시하는 강력한 물리 스킬.

현시점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강한 공격스킬이다.

때문에 황성연을 향해 파고 들어가는 내 공격엔, 거침이 없었다.

“미친.”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황성연의 핏빛 어둠을 뚫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공격이 전혀 이어지질 않았다.

머리를 향해 찌르려던 검은 내 의지와 달리 심장 쪽으로 향했고, 검을 꽂은 후에는 이상하게 검에 마력이 들어가질 않았다.

때문에 곧장 이어가려던 [폭발하는 검의 기세]도 활용이 불가했다.

그건 마치…

어떤 특수한 기운에 의해, 내 손이 알아서 움직인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가. 차수연이 말한 궁극스킬이.”

“…어떻게.”

“음.”

역시 황성연은 내 궁극스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내게 한 번 당했던 차수연이 미리 언급했던 모양이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인 슬라이프의 어둠은, 피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그건 그저 내 몸만이 아니야. 이 어둠을 마주했다면, 네 몸도 어느 순간 피를 원하게 되지. 그래. 그래서 네 검은 내 심장을 향하게 된 거다.”

…씨발.

이게 대체 뭔 개소리야.

황성연의 장황한 말이 전부 이해되진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마검 [다인 슬라이프]와 황성연의 능력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방금의 공격만 봐도 그렇다.

황성연의 머리로 향하던 검의 방향.

그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뀐 점.

이후 검을 찌른 후.

뭔가 뺏기기라도 하듯 내 마력이 투입되지 않는 점.

마지막으로…

심장에 검을 찔린 황성연의 몸이, ‘초재생’되듯 순식간에 아물어가는 점.

“흡…!!”

그 비정상적인 광경에 기겁하며, 곧장 검을 빼내 그에게서 물러났다.

‘뭐 이런 괴물 새끼가 다 있어.’

나는 짧았던 전투 결과를 돌아보며, 상황이 절망적임을 느꼈다.

내가 가진 힘 중 많은 걸 쏟아부었다.

가능한 능력치 펌핑은 모두 활용했고, 궁극스킬은 벌써 두 개를 썼다.

그런데도 상대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방어를 무시하고 들어간 공격은 적중한 것처럼 보였지만, 웬 ‘초재생’으로 회복이 되고 있었고… 그 기이한 핏빛 어둠 속에선, 어째서인지 마력이 투입되질 않았다.

황성연은 원작에서도 그 힘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홀더.

적의 능력과 공격 패턴을 정확히 모르니,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아직 쓰지 않은 룬과 스킬이 많이 있긴 하지만…

이들이 황성연에게 먹힐지는 의문이었다.

팟-

스스슥-!!

“…어?”

그렇게 황성연과의 대치가 이어지던 중.

누군가가 다급하게 내 몸을 잡았다.

순간 반응하려던 나는, 익히 잘 알고 있는 기운과 모습에… 곧장 몸의 긴장을 풀었다.

“스승님?”

유은설이었다.

한창 황동연을 암살하기 위해 안쪽으로 파고들었던 그녀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내 쪽으로 와 있었다.

그리곤 한 손으로 내 허리를 잡아끈 상태로, 재빨리 보법류 룬을 활용해 황성연에게서 더 멀어졌다.

‘블링크’를 썼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황성연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런 우리를 말없이 바라봤다.

“도재현 홀더, 잠깐 후퇴해야 해요.”

“예? 그게 무슨….”

“저길 봐요.”

가까워진 거리에서, 다급히 내게 말을 건네는 유은설.

그리고 앞을 가리키는 그녀의 손가락.

그대로 시선을 따라가자…

그곳엔, 한 남자가 미칠 듯이 웃고 있었다.

“흐, 흐흐흐… 돼, 됐다아…!! 됐다고!!”

<빌런>의 클랜 마스터, 황동연이다.

그의 손에 무지갯빛 수정구가 들려있었다.

저게 아마 [융화의 질서]로 알려진 물건.

황성연이 습격작전을 통해 탈취해간 전설급 아이템이다.

황동연은 [융화의 질서]를 든 채로, 막대한 마력을 사용하며 소리쳤다.

“이, 일어나라!!”

그건, 이 멀리까지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의 발산이었다.

그리고…

그으- 그아아!!

그르르으-!!

캬오오오-!!

“미…친. 이게 다 뭐야….”

나는 그 아득한 광경에 멍하니 읊조렸다.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황동연이 어떤 언령을 뱉고 난 후.

엄청난 양의 ‘괴수’들이 섬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눈으로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괴수.

그건 괴수가 분명했다.

대신…

모두 육체가 온전해 보이지 않는 괴수들.

‘언데드.’

저주 계열에 속하는 괴수 분류.

언데드.

그들은 모두 언데드였다.

스켈레톤, 듀라한, 밴시, 레이스…

그 사이사이엔 데스 나이트와 리치로 보이는 괴수들까지.

심지어 그 중앙엔.

온몸이 뼈로 구성된, 주변 홀더들을 모두 짓밟아 버릴 듯한 엄청난 크기의 거대용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위로 눈을 올려도 그 형체가 다 보이질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수였다.

“…….”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이건 확실히.

황성연의 압도적 무력을 마주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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