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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70)화 (170/353)

Chapter 170 - 첫 계약 (3)

“이, 일어나라!!”

황동연의 더듬거리는 언령.

그와 함께 나타난, 헤아릴 수 없는 수의 괴수.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나는 절망적인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저게 대체….”

저게 대체 다 뭘까?

섬 내부를 가득 채운, 수많은 괴수.

생김새는 모두 저주 계열의 언데드.

그들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우릴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녀석들의 태세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마 황동연의 능력인 것 같아요.”

내 허리를 잡은 채, 몇 발짝 뒤로 물러선 유은설.

그녀가 부연 설명으로 이해를 도왔다.

“황동연의… 능력이요?”

“네. 제가 진입하려고 했을 때, 황동연은 호위들 안에서 마력을 배열 중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마력이 폭발적으로 집중됐고, 그 결과 나온 게 저것들이죠.”

“저게 한 홀더의 능력….”

황동연에 대한 정보는, 늘 베일에 싸여있었다.

그동안 <빌런> 클랜에 대한 정보와 그 클랜원들의 행보에 대해 밝혀진 사항은 꽤 많았고, 심지어 부마스터 황성연은 굵직한 사건을 일으켰던 탓에 관련 연구자료도 넘쳐났었다.

하지만 클랜 마스터인 황동연.

그에 관한 내용만은 항상 제대로 알려진 게 없었다.

황동연은 클랜을 창설만 했을 뿐, 특별히 범죄 이력이나 활동 이전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진짜 괴수를 조종하는 거였다고?’

그간 괴수와 관련됐던 <빌런>의 특이 행적.

그리고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시즐링 샐러맨더.

몇몇 사건을 통해, <빌런> 내에 [조련 계약]과 관련된 홀더가 있을 거라고 의심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게 마스터 황동연의 능력일 거라곤, 그리고 이 정도로 많은 괴수를 다룰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통솔이 대체 몇이길래.’

강동욱 교수의 말대로라면, 한 홀더가 다룰 수 있는 괴수는 통솔 수치와 룬 레벨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 황동연이 일으킨 기수는 얼핏 봐도 수십 마리.

통솔 수치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괴수였다.

“도재현 홀더. 일단 뒤로 물러나야 해요. 뒤쪽 파티와 합류하고, 최대한 원군을 기다려야…”

카아아아--

캬오오오-!!

유은설이 다급히 내게 말을 건네던 찰나.

엄청난 기운의 ‘하울링’이, 섬 안에 퍼졌다.

괴수들 가운데에 서 있던 거대한 크기의 용.

온몸이 뼈로 이루어진, 일종의… ‘본 드래곤’.

본 드래곤이라고 불러 부족함이 없는 녀석.

녀석이 발을 거칠게 바닥에 내려치며, 괴성을 지른 것이었다.

“윽….”

그에, 순간 유은설의 몸이 살짝 경직되었다가 풀리는 게 보였다.

나는 이런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상태 이상 ‘공포’.

일전에 그리즐리 드레이크를 상대할 때 겪었던 상태 이상.

녀석을 처치하고 획득한 [위압] 룬의 [선전포고] 스킬로 가능한 효과였다.

[‘명경지수’ 룬의 특별한 힘이 대상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합니다. 어떠한 저주나 상태 이상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행히 난 이러한 상태 이상에 대해 면역이었다.

어제 일본에서 보스 괴수 ‘야마타노오로치’를 사냥하고 획득한 정신 계열 에픽룬, [명경지수] 덕분이다.

박진우가 지닌 두 번째 사기룬을, 나도 이젠 보유하고 있었다.

“스승님. 일단 저 녀석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녀석이 있는 한, 어차피 물러서 봤자 위험해져요.”

“…….”

내가 꺼낸 말에, 유은설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의 하울링으로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저 본 드래곤은, 그대로 두면 우리 파티를 모두 박살 낼 거라는 걸.

파티의 최대 전력인 우리가 앞장서서 녀석을 막아야만 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었다.

“스승님, 혹시 황성연 홀더를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강한 자입니다.”

“도재현 홀더는 저 본 드래곤을 맡으려는 건가요?”

“예.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솔직히 자신은 없다.

본 드래곤이 끝이 아니다.

주변엔 황동연이 소환해낸 무수히 많은 언데드 괴수들이 즐비했고, 아직 힘이 남은 <빌런> 클랜원들도 있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승리는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을 끌어야 해.’

하지만 처음 작전 때부터 지금까지, 결론은 똑같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곧 도착할 원군을 기다리는 것.

그걸 위해 우린 위험을 무릅쓰고 앞쪽으로 온 것이었다.

유은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럼 먼저 갈게요. 부디 조심해요.”

“네, 스승님. 절대 안 죽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역할 분담이 끝났다.

유은설은 다시 천천히 마검을 뽑아드는 황성연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눈앞의 본 드래곤에게 발을 향했다.

캬, 오오오-!!

본 드래곤이 또다시 괴성을 질렀다.

나는 [명경지수]로 그 하울링을 무시하며, 빠르게 녀석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씨발. 더럽게 크네.’

둔탁한 뼈로 이루어진 녀석이 다리.

그걸 보자, 새삼 거대한 크기가 체감된다.

본체는 고개를 하늘까지 올려다봐야 겨우 보인다.

도대체 황동연이 이 말도 안 되는 녀석과 어떻게 계약했는지, 의문이 들 뿐이었다.

‘그래도 이점은 있어.’

녀석의 크기가 거대한 만큼, 활용할 수 있는 점도 있다.

암살자 계열의 공통룬, [은신].

레벨이 높은 [은신]은 상대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만 한다면, 그 효과를 여실히 활용할 수 있다.

본 드래곤은 워낙 거대한 탓에 상대적으로 작은 날 볼 수 없었고, 덕분에 [은신] 효과가 제대로 적용됐다.

‘하이드 어택…!!’

[은신]이 됐다면, 당연히 파생스킬인 [하이드 어택]도 쓸 수 있다.

나는 본 드래곤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

녀석의 뒤쪽 다리를 향해 파고들며, 곧장 [하이드 어택]을 사용했다.

[하이드 어택]은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직접 공격 스킬.

적중할 수만 있다면, 분명 큰 효과를 볼 것이었다.

크, 가가강-

갸, 갸오오?!

“…어?”

그런데 녀석의 몸에 내 검이 닿는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곧장 움직임을 멈추고, 그 기현상을 바라봤다.

‘뭐야, 갑자기?’

갑작스레 강렬한 마력의 빛이…

검과 몸의 접합부에 생겨난다.

접합부에서 생겨난 마력은 점점 본 드래곤을 타고 올라가더니, 녀석의 몸 중앙에 특정 지점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본 드래곤의 몸에 박힌 ‘마력석’.

그리고 마력석과 별개로, 영롱한 빛을 내고 있는 또 다른 ‘무언가’였다.

눈이 부시게 차오르던 빛들은, 이내 하나의 정보창을 만들며 내 앞에 나타났다.

[드래곤의 강렬한 의지는 소멸 이후에도 현세를 맴돕니다. 전설을 담은 특수아이템, ‘드래곤 하트’엔 그 향기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드래곤 하트로부터 발산하는 강렬한 마력이 주변을 덮습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과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룬이 드래곤 하트와 감응합니다. ‘본 드래곤’과의 진정한 계약에 대해, 숨겨진 특수 조건이 모두 만족합니다.]

[‘본 드래곤’의 불안정한 계약 관계를 파악했습니다! 특수 조건을 모두 만족한 당신은, 기존의 계약 관계를 파기하고 새롭게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이 계약은 통솔 수치와 룬 레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정보창을 읽었다.

‘드래곤 하트? 계약?’

생소한 단어들과 문구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정보창이 늘 그렇듯, 새로운 힘에 대해 직관적으로 자세히 설명해주는 일은 없었다.

볼 때마다 이게 대체 뭔 소릴까 싶은 내용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어버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흐름에 순응해야 한다.

이건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룬 사냥꾼]의 새 능력인 ‘상위룬’을 얻을 때도 그랬고, 석판의 봉인을 깨고 용 관련 능력을 얻을 때도 그랬다.

기회.

새로운 힘은, 언제나 위기를 타파해 줄 기회가 돼주곤 했다.

‘계약의 손길.’

[용언이 맺은 약속]의 파생스킬, [계약의 손길]을 사용한다.

이 스킬은 말 그대로 대상과 계약하는 스킬.

사용과 동시에, 조건을 만족한 대상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정보창의 설명대로라면, 지금의 나는 이 무지막지한 ‘본 드래곤’과 계약이 가능했다.

그건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을 얻은 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첫 계약이었다.

[계약에 성공합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의 계약 대상 목록에, ‘본 드래곤(저주/특수)’이 추가됩니다. 비정상적인 계약으로, 계약자의 능력이 일부분 제한됩니다.]

[현재 계약 괴수 목록(1/1)]

[특별한 존재들은 때때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계약을 맺곤 합니다. 룬의 온전한 능력을 벗어나는, 불가사의한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관련 룬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통솔을 7 획득합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분명 황동연의 부름에 의해 나타났던 이 본 드래곤은…

계약 파기 및 새 계약을 통해, ‘나의 계약자’가 되었다.

[용언이 맺은 약속]의 첫 계약자.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적과 계약을 맺었던 괴수였다.

갸오오오-.

본 드래곤이 자신의 육중한 몸을 내려앉는다.

그리곤 꽤 끔찍해 보이는 형체의 두개골을, 갑자기 나를 향해 들이밀었다.

다만 아까와 달리 전혀 공격적이지 않은, 굉장히 순종적인 태도였다.

그건 마치…

‘타라는 건가?’

자신의 몸에 올라타라는 듯한 제스쳐였다.

확실히 강동욱 교수의 말이 맞았다.

[언어] 룬이 없으니, 계약자와 소통이 여간 쉽지 않았다.

만약 오늘의 위기를 모두 타파하고 돌아갈 수 있다면, [조련 계약]과 관련된 공통룬을 꼭 얻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본 드래곤의 몸에 올라탔다.

그아아-

갸오오오…!!

본 드래곤에 올라타고 위로 올라가자, 녀석이 아까처럼 강렬한 괴성을 지르며 하울링을 일으켰다.

처음 볼 땐 그토록 절망스럽고 공포가 아닐 수 없었는데…

우리 편이 되니, 이렇게 든든한 괴성이 따로 없었다.

“뭐, 뭐야 저게….”

“저거 마스터가 만든 괴수 아니었어…?”

땅 쪽에서 절망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살짝 둘러보니…

뒤쪽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우리 파티원들도.

서로 무기를 맞대고 싸우던 유은설과 황성연도.

심지어는, 이 괴수들을 일으킨 황동연도.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혹은 황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갸, 오오오…!!

쿵! 쿵!

쿠우웅!!

그 정적 속에서.

다시 한번, 본 드래곤이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잠시 ‘공포’ 상태에 걸린 적들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씨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도, 도망쳐!”

“끄아아악-!!”

순식간에 전장이 혼비백산이 됐다.

<빌런> 클랜원들은 본 드래곤의 공격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쳤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은 본 드래곤의 발길질에 그대로 즉사했다.

갸오오오-!!

쿵! 쿵!

황동연의 언데드 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하나하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을 녀석들은, 대장 격이나 다름없는 본 드래곤의 눈먼 공격에 먼지처럼 모조리 휩쓸려 갔다.

본 드래곤의 육체 능력치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모양이었다.

“다들 침착해라! 모두 힘을 합쳐서 막아야 한다!”

“안 됩니다! 저걸 어떻게 막습니까!”

“도재현! 도재현 저 자만 잡으면 된다. 어떻게든 진입해서, 저 자식을 끌어내려!”

그런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

<빌런> 클랜원 중, 간부급으로 보이는 이가 나름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역시 어느 집단을 가든,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은 있는 걸까.

저 간부는 짧은 시간과 주어진 상황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을 내리고 있었다.

‘안 좋네.’

그에 나는 혀를 찼다.

본 드래곤은 매우 강력한 괴수다.

거대한 몸집과 막대한 근력으로 눈앞의 모든 걸 분쇄하는 재앙과도 같은 괴수.

자세한 건 <계약자 정보>를 봐야 알겠지만, 육체 능력치만 봤을 땐 S급 괴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녀석에게 진입했듯, 녀석은 속력이 상대적으로 느리다.

또한, 크기가 너무 커서 달라붙는 상대들에 대한 대처가 쉽지 않다.

<빌런> 측의 간부는 그 맹점을 잘 파고들고 있었다.

B급 이상의 홀더들 다수가 한 번에 내게 달라 붙으면, 본 드래곤의 위에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럼 또 다른 걸 써야지.”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빌런> 클랜원들을 보며…

나는 씨익 하고 웃음을 지었다.

아직 [언어] 룬이 없어서, 본 드래곤과의 세밀한 소통은 어렵지만.

이 상황을 대처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룬 사냥꾼’ 룬과 연동된 특수효과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계약자 ‘본 드래곤’에게 부여할 수 있는 룬은, 총 3개입니다.]

[‘민첩성(노멀/Lv.5)’ 룬을 계약자 ‘본 드래곤’에 부여합니다. 해당 룬이 홀더 정보에서 삭제됩니다.]

[‘육탄방어(노멀/Lv.7)’ 룬을 계약자 ‘본 드래곤’에 부여합니다. 해당 룬이 홀더 정보에서 삭제됩니다.]

[‘사자의 불꽃놀이(레어/Lv.5)’ 룬을 계약자 ‘본 드래곤’에 부여합니다. 해당 룬이 홀더 정보에서 삭제됩니다.]

[룬 사냥꾼]과 연동된 [용언이 맺은 약속]의 특수효과.

‘룬 부여’.

나는 이 효과를 통해, 그간 획득했던 룬 중 효율이 떨어지는 세 개의 룬을 ‘본 드래곤’에게 부여했다.

그리고…

갸, 갸오오오-!!

쿵, 쿵, 쿵!!

화르륵-!!

“…너무 많이 줬나?”

본 드래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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