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1 - 소탕과 정리 (1)
강화도 내 무인도, 기장섬.
아카데미 연합군 수색대와 <빌런>이 맞닥뜨린 장소.
그 중앙에선.
믿기지 않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황성연은 황당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저게 대체 무슨….’
정말 순식간이었다.
황동연이 만들어낸 거대 괴수, 본 드래곤.
그 압도적인 괴수와 처음 검을 맞댄 도재현은, 웬 마력의 빛에 휩싸이더니 괴수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그리곤 갑자기 녀석을 조종하는 데에 성공하더니, 그 위에 올라타 어느 순간부터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어이없는 이 일이, 고작 10분도 안 돼 일어났다.
때문에 유은설과 검을 맞대던 황성연도, 다급히 뒤쪽으로 몸을 빼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혼비백산에 아직 이쪽에 인원이 많아, 유은설과의 전투를 멈추는 건 쉬웠다.
‘실시간으로 적의 능력을 뺏는 룬인 건가?’
그런 의심이 안 들 수 없다.
짧은 전투 속에서, 그동안 도재현은 특이한 힘을 계속 보여왔다.
부하였던 지윤재의 [은닉의 비도술].
그리고 그 궁극스킬인 [나이프 레인].
당장 어제 싸웠던 적의 능력도 오늘 사용하는데, 실시간으로 능력을 뺏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상식적으로 그런 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
“마, 말도 안 돼… 내, 내, 보, 본 드래곤이… 으, 으으…!!”
근처에선, 황동연이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본 드래곤’은 단순히 계약만 맺는 괴수가 아닌, 직접 최상급 마력석과 [드래곤 하트] 등 특수한 아이템을 통해 ‘제작’해야만 하는 괴수다.
<빌런>을 창설한 이후.
정말 오랜 시간동안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 만들어낸 괴수.
그 결과물을 고작 10분도 안 돼 뺏기게 생겼으니, 제정신이 아닐 만도 했다.
‘…재미없게 됐군.’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게 흘러갔다.
이번 전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실험’이었다.
[사령 계약]과 [루덴아크 주문].
그리고 [죽음의 군단장]이라는 룬을 통해, 직접 제작한 언데드들에 숨결을 불어넣고 조종할 수 있는 황동연.
거기에 [융화의 질서]라는 아이템까지 얻게 되며, 20% 부족하던 능력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 전투는 그 능력의 완성판을 점검하고, 훗날 계획 중인 ‘대학살’을 미리 경험하기 위한 일종의 체험판.
완벽한 컨트롤로 아카데미 연합군을 쓸어버리면 대성공이고, 생각만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점검만 마치고 돌아갈 계획이었다.
“어, 어떻게 만든 건데…!! 어, 얼마나 오, 오래 걸린 건데!!”
하지만 이 정도 실패까진 예상치 못했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황동연의 언데드 군단.
그 소환과 조종은 성공적이었지만, 그중 최대 전력으로 꼽혔던 ‘본 드래곤’이 적의 손에 넘어갔다.
과정과 원인은 불명.
그 주인공이 도재현이라는 것 말곤,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때문에 황동연은 주변을 박살 낼 듯이 분노했다.
몇 년간의 인체 실험과 괴수 실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만든 결과물들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 녀석도 이제 버릴 때가 됐나.’
그 모습을 보며 황성연은 혀를 찼다.
그동안 황동연을 동료로 끌고 왔던 건, 그가 동생이라서가 아니었다.
황성연은 정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도 아니고, 그러한 인간적인 감정 자체가 아예 죽은 지 오래였다.
다만, 동생이 자신 못지않은 싸이코패스이기에.
오히려 불쾌할 정도로 징그러운 괴물이기에.
그 뜻과 능력이 맞아서, 함께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동행도 이젠 멈출 때가 된 것 같았다.
‘…곧이겠군.’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다.
이제는 아카데미 연합군 측의 추가 인력이 기장섬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계획을 시간 안에 완성하지 못한 이상.
서둘러 전력을 가다듬고 도망쳐야 하는데, 클랜 마스터인 황동연에겐 그럴 여유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저 잔뜩 분노하며 도재현을 죽이려고만 했다.
황성연은 그걸 보며 곧장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빌런>은 필요에 의해 만들었던 클랜.
이는 이제 사용가치를 다한 도구였기에 그 이상의 미련도 없었다.
마검에 더 많은 피를 먹이고, 자신의 욕구를 만족할 수 있는 또다른 집단.
혹은 또다른 파트너.
그런 이들을 찾아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으, 으으… 마, 막아!! 저 개, 개자식을 끄, 끌어내려…!!”
황동연이 정신없이 격노하며, 또다시 <빌런> 클랜원들에 지시를 내렸다.
그걸 잠깐 보던 황성연은, 바로 마검의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붉은 색의 기운이 황성연의 몸 주변을 덮었다.
공격과 방어.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였던 그 기운은, 이번엔 황성연의 기척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암살자 계열이 [은신]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특이한 모양새였다.
혼란과 아비규환으로 가득한 기장섬 중앙.
그곳 어딘가에서…
황성연은 천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 모든 균열의 시발점이었던 한 남자를 바라봤다.
‘…도재현.’
올해 처음 각성했는데, 벌써 A급에 다다르고 있는 홀더.
부하들의 과도한 보고에도, 단지 흥미롭다고만 생각했던 홀더.
모든 예상을 깨고, 기어코 자신들의 계획을 분쇄한 홀더.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도재현은 이 모든 결과의 중심에 있었다고.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못하게 만든 이레귤러였다고.
그를 보던 황성연은, 속으로 진한 웃음을 지었다.
‘…또 보지.’
아주 오랜만에.
정말 몇 년 만에…
재밌는 상대가 나타난 기분이었다.
* * *
캬오오오-!!
본 드래곤이 공중으로 날아들었다.
그 거대한 몸집으로 어떻게 날아오르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재밌게도 이 녀석은, 자신의 몸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변형의 뼛조각].
본 드래곤이 지닌 룬 중 하나로, 뻗쳐 있는 뼈들을 한데 모아 크기를 조정할 수 있게 해주는 룬이었다.
덕분에 처음엔 하늘을 아무리 올려다봐도 다 못 볼 정도로 거대했지만, 지금 녀석은 내가 올라타고 다니기에 딱 적합한 크기가 되어있었다.
살만 붙었다면 아마 ‘와이번’ 정도로 볼 만한 크기였다.
“또 온다!”
“피, 피해…!!”
여전히 <빌런> 클랜원들은 혼비백산이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고, 황동연의 언데드들이 즐비해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거대한 몸집의 본 드래곤으로 한 번.
크기를 조정한 본 드래곤으로 한 번.
변칙적인 전투 방식으로 계속해서 타격을 주니, 그들은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다들 공격을 퍼부어라! 놈을 격추시켜!”
“안 됩니다! 물리 공격이 도저히 안 통합니다!”
“젠장! 대체 먹히는 게 뭐야!”
게다가 녀석들이 막아야 하는 건, 단순히 본 드래곤의 능력만이 아니었다.
[천하제일 경주마].
상위룬 시스템을 통해 하나로 통합된 내 돌격류 룬.
이 룬의 특수효과엔, ‘탈것’을 탄 상태에서 70% 성능으로 룬 활용이 가능하다는 ‘래피드 라이딩’ 효과가 있다.
본 드래곤은 당연히 ‘탈것’에 속해 이 조건을 만족했고, 돌격류 룬을 쓸 때 자동으로 연계되는 [무자비한 돌격] 룬의 활용은 덤.
덕분에 빌런 놈들의 물리 공격은 완전 무시였다.
콰, 콰아앙!!
본 드래곤의 날갯짓이 한 번 더 적진을 덮친다.
단순히 물리 공격을 활용한 육탄전이지만, 워낙 그 능력치가 높은 탓에 효과는 엄청났다.
<계약자 정보>
◎이름: - (본 드래곤)
-계약자: 도재현
◎분류: 아룡 (특수/제작)
◎속성: 저주 (언데드)
◎우호도: 보통
◎상태: 보통
◎일반 능력치
[근력: 98 (+11.0)] [마력: 55 (+12.0)]
[속력: 53 (+12.2)] [신성: 11 (+8.0)]
[내구: 101 (+9.0)] [정신: 22 (+9.8)]
◎보유 룬
[용의 분노 Lv.18] [위압 Lv.15] [변형의 뼛조각 Lv.15]
[마력 지배](*제한) [저주받은 용언](*제한)
[민첩성 Lv.5] [육탄방어 Lv.7] [사자의 불꽃놀이 Lv.5]
◎세부정보
: 루덴아크 학파의 금지된 마법을 통해 지성을 부여받은 언데드. 전설 속에 남은 드래곤의 영광은 모두 사라지고, 드래곤 하트와 최상급 마력석만이 그 흔적을 붙잡고 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인해 불안정한 계약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자격을 모두 갖춘 진정한 계약자를 만나 새로이 계약을 맺게 됐다. 하지만 통솔에 있어 완전한 계약이 아니기에, 일부 룬과 능력이 제한된 상태다.
처음 이 녀석의 능력치를 봤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소 A급 괴수.
혹은 S급 괴수 정도의 능력치라고 가늠은 했지만…
정말 녀석의 주력능력치(근력, 내구)가 100 근처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거의 내 주력 능력치 두 배에 가까운 수치.
거기에 [용언이 맺은 약속] 특수효과로 추가 능력치도 부여받고 있다.
한 마디로 괴물.
웬만한 A급 홀더 여러 명이 와야 겨우 막을 수 있는 괴물이다.
‘능력도 생각보다 다채롭고.’
내가 부여했던 세 개의 룬 말고도, 본 드래곤 자체적으로 보유한 룬이 5개나 됐다.
내 통솔 수치와 룬 레벨이 낮아 제한된 능력들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보다는 오히려.
세부정보의 ‘루덴아크’라는 이름이 또 한 번 나온 것에, 난 괜한 이질감이 들었다.
일전에 [빠른 회복력]이라는 룬을 얻을 때도 읽었던 정보인데, 본 드래곤의 세부정보에 다시 나타난 걸 보면…
아마 앞으로 있을 새로운 정보들에 대한 단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부분은 후에 조금 더 연구해봐야 할 내용 같았다.
‘이름은 뭘로 하지?’
<계약자 정보>에 빈칸으로 되어있는 ‘이름’.
강동욱 교수의 말로는, 계약자에게 직접 이름을 붙여줘야 계약자가 더 강해진다고 했었다.
이름을 붙이면 친밀도가 상승하고, [언어]를 통해 유대감을 더 쌓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워낙 여유가 없는 상황이고, 마땅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서일까.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이름이나 붙여버렸다.
[계약자에게 ‘본드’라는 이름을 선사했습니다. 이제 이 이름은 당신과 계약자의 계약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다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일방적인 소통! 만족하지 못한 이름은 불쾌감이 될 뿐입니다. 계약자 ‘본드’의 우호도가 살짝 하락하고, 일부 능력치가 저하합니다.]
‘씨발.’
대실패다.
본 드래곤이라서 그냥 부르기 쉽게 줄여서 ‘본드’라고 이름 지었는데, 아무래도 영 녀석의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나름 애정을 갖고 작명해줬는데, 능력치까지 하락하다니… 살짝 마음이 아팠다.
캬오오오-!!
쾅! 콰앙!
화르르륵-
어쨌든 막대한 능력치를 지닌 계약자와 함께 전투하니, 더 거칠 게 없었다.
본드는 압도적인 능력치와 새로 얻은 불속성 마력룬 등 다양한 공격으로 <빌런> 클랜원들을 괴롭혔다.
녀석에게 탑승한 내가, 오히려 보조의 역할을 맡는 느낌이었다.
나와 본드뿐만이 아니다.
S급 홀더인 유은설,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한 뒤쪽의 우리 파티까지.
모두가 힘을 합쳐 적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빌런> 녀석들도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왔습니다! 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버티고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우리는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코너에 몰렸었지만, 마지막까지 버텨내며 기어코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본드’를 얻는 운도 따랐지만…
어쨌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 건 변하지 않았다.
“불의 심판! 불의 심판의 마스터, 강우현 홀더님입니다!”
“로열의 황건욱 홀더님과 문정혁 홀더님도 오셨습니다!”
“송도혁 홀더님입니다! 용광검로 클랜의 정예가 모두 도착했습니다.”
정말 끝이다.
목이 터질 듯 들리는 원군 도착의 소식.
국내 3대 클랜과 그 최정상, S급 홀더들.
<빌런>을 모두 소탕하기 위한, 정예 홀더들의 도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