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2 - 소탕과 정리 (2)
아카데미 연합군의 원군이 모두 도착하고, 상황은 빠르게 정리됐다.
수십 명의 <빌런> 클랜원과 황동연이 일으킨 언데드 군단.
처음 마주할 땐 태산 같았던 이들이,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무너졌다.
녀석들은 모든 면에서 밀렸다.
황동연이 정말 비공식 S급 홀더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쪽은 정식으로 공인받은 S급 홀더가 네 명이나 된다.
홀더들의 질과 전투 수준에서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숫자도 우리가 훨씬 많고.’
게다가 연락 받은 원군이 모두 기장섬에 도착하며, 수에서도 우리가 앞서게 됐다.
아카데미에 협력을 약속한 국내 3대 클랜과 그 외 군소 클랜.
각 클랜에서 차출된 홀더만 최소 3명을 넘었다.
그중 원군으로 기장섬에 도착한 홀더는 대략 60명.
황동연의 언데드 군단까지 포함하면 아직 <빌런> 쪽이 많긴 했지만, 잘 단련된 프로 홀더들에게 그 정도 괴수들은 껌이었다.
“모두 소탕 완료했습니다! 작전 종료입니다!!”
중앙에서 상황을 체크하던 한 홀더가 큰 목소리로 보고했다.
기장섬으로 온 <빌런>의 클랜원들.
그리고 혼란의 틈을 타 도망치려던 잔당들까지.
모든 퇴로를 차단하며, 그들을 생포하는 데에 성공했다.
우우웅-
갸오오-.
창공을 맴도는 본드 위에 올라탔던 나도, 그 소리에 한 시름을 놓게 됐다.
“…진짜 끝났구나.”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가만히 있진 않았다.
지치고 힘들긴 해도, 어떻게든 본드와 함께 아카데미 연합군의 총공세를 도왔다.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유한 본드의 날갯짓은, 상대의 진형을 붕괴시키는 강렬한 파괴력을 지녔다.
원군이 도착했다고 해서, 이 능력을 활용하지 않는 건 바보였다.
덕분엔 나는 호위를 받아 도망치려던 황동연을 붙잡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녀석은 정말 계약과 소환 쪽에 능력치가 몰려있는 건지, 단체로 습격하자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붙잡혔다.
“이, 이… 놔, 놔라! 비, 빌어먹을 새끼! 내 보, 본 드래곤을…!!”
황동연이 내게 옷깃을 붙잡힌 채 낑낑댔다.
상황이 종료되고, <빌런>은 사실상 끝장이 났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위엄은커녕 애새끼처럼 불만만 늘어놓고 있다니….
이딴 놈이 <빌런>의 마스터라는 게.
그리고 이딴 놈에게 아카데미가 그동안 휘둘려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한숨만 나왔다.
“으, 으으… 제, 젠장… 혀, 형은 어, 어딜 간 거지…?”
‘이 새끼는 더듬지 않고는 말을 못 하나?’
떽떽거리는 목소리에 괜히 짜증이 확 나서, 나도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그를 자극했다.
“야. 네 본 드래곤 쩔더라.”
반응은 1초도 안 돼서 강하게 돌아왔다.
“뭐, 뭐? 이, 이 개, 개새끼가…!!”
황동연이 눈을 부라렸다.
마력이 모조리 바닥나고 각종 무기에 찔려 온몸이 제압된 상태인데도, 거침없이 내게 욕설을 내뱉는다.
이런 종류의 도발에 꽤 약한 편인가 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쓸게. 네 몫까지.”
“아, 안 돼!!”
“본 드래곤도 내가 더 좋다던데? 아까 봤지? 존나 잘 싸우는 거. 이제 나랑 싸우는 게 익숙해질 거야, 얘도.”
“그, 그럴 리가… 내 보, 본 드래곤이….”
황동연은 그 말과 함께 침몰하듯 고개를 숙였다.
오랫동안 공들인 탑이 모두 무너졌다는 것.
그게 드디어 실감 나는 모양이었다.
‘이제야 조용해지네.’
온종일 시끄럽게 굴던 황동연을 조용히 시킨 후.
나는 본드를 천천히 움직여 착지를 시도했다.
아직 [언어]가 없어 매끄러운 소통은 어렵지만, 피아식별과 이동 방향 정도는 잡아줄 수 있었다.
우우웅-
캬오오-.
푸으으-
본드가 조심스럽게 땅에 착지했다.
밑엔 이미 무수히 많은 괴수와 <빌런> 클랜원들을 소탕한, 아카데미 연합군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 중앙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의 중년.
<불의 심판> 클랜 마스터, 강우현.
연합군의 핵심 인물인 그가, 가운데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도재현 홀더. 또 보는군. 인턴 때 이후로 두 달 만인가?”
본드의 몸 위에서 내려오고, 땅에 발을 디디자 강우현이 반갑게 날 맞았다.
그와 동시에 황동연을 제압하러 오는 연합군 내 다른 홀더들.
나는 그들에게 황동연을 맡긴 후.
강우현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뭐? 하하하. 자네, 농담이 늘었군. 이제 우린 협력 관계 아닌가.”
강우현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압도적으로 지원을 받았었죠. 정말 감사합니다. 강우현 홀더님의 호의 덕분에 저와 안티 빌런 써클, 그리고 아카데미가 더 많은 희생자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딸인 강주연이 내 <안티 빌런> 써클 소속이고, 이번 작전에서도 그녀가 고립되었었기에 그에겐 당연한 발걸음이었겠지만… 새삼 그의 호의가 고마웠다.
강우현은 그간 <안티 빌런>과 내게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빌런> 관련 단서를 찾을 때도 그랬고, 일본에 직접 파견을 갈 때도 도움을 받았다.
특히 이번 작전에선, 가장 먼저 연합군 합류를 선언하며, 각 클랜과 국내 3대 클랜이 모두 모이게 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었다.
강우현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번 <빌런> 소탕 작전은 또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몰랐다.
“겸손은 그대로군. 자신감을 가지게. 자네가 없었다면, 이번 작전은 물론 내 딸도 위험했을 거야.”
역시 딸바보 Max 홀더.
이곳 기장섬까지 단숨에 달려온 것도, 딸이 걱정돼서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의 말이 마냥 겉치레는 아니었다.
<빌런> 클랜의 습격을 막고, 황동연의 언데드 군단을 억제하기까지.
내 활약이 꽤 컸다는 건 나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를 방증하는 예로.
주변에 모인 모든 홀더들.
각 클랜 클랜원들과 아카데미 교수들이 대부분 놀랍고 신기하다는 듯 날 바라보고 있었다.
캬오오오-.
특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거대한 본 드래곤.
아마 다들 이 녀석이 궁금한 거겠지.
“저게 정말 자네와 계약한 괴수인가?”
강우현도 참기 힘든 모양인지, 몹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웃으며 그에 답했다.
“예. 보시다시피, 온몸이 뼈로 이루어진 본 드래곤입니다.”
“…정말 놀랍군. 완전히 처음 보는 괴수인데, 심지어 그 힘도 강력하다니. 아까 전의 위세로만 보면, 거의 S급 괴수로 보이던데.”
“저도 처음 보는 괴수라서, 정확한 등급 산정은 모르겠습니다.”
괴수의 등급 산정은 홀더 협회와 국제 괴수 연구회 등에서 협의를 통해 산정된다.
그 평가지표는 드러난 괴수 정보와 논문, 꾸준한 연구결과 등.
때문에 필드나 던전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본 드래곤은, 산정 등급이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본드는 일반 괴수가 아니라, 황동연과 <빌런>에서 특수하게 만들어진 ‘제작 괴수’니까.
아직도 한 홀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치의 괴수를 만들어낸 게 믿기진 않는다.
다만, 그간 황동연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연구에 집중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마 극악무도한 인체 및 괴수 실험과 셀 수 없는 비밀 범죄들이 얽혀있지 않을까…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어쨌든 정말 수고 많았네. 아카데미와 홀더 계에 영웅이 탄생했군.”
강우현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눈빛엔 짙은 신뢰가 담겨있어, 나도 모르게 살짝 부담이 갔다.
“…과찬이십니다.”
“남은 정리는 원군 측에서 할 테니, 자네는 이제 후방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게.”
“아, 강우현 홀더님. 한 가지 궁금하게 있습니다.”
“음?”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
강우현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날 봤다.
“혹시 빌런 부마스터 황성연의 신병을 확보했습니까? 주변을 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아서요.”
“음….”
침음성을 삼키던 강우현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안타깝지만 황성연은 원군이 도착했을 때 이미 사라진 후였네. 마스터 황동연을 비롯해 빌런 핵심 간부 및 수배범들을 대거 생포했지만, 황성연만은 없었네. 아마 자네들과 전투 중에 미리 몸을 뺀 모양이야.”
“아….”
그 말을 듣자,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전투 도중에도 문득 모습이 사라졌다고 느꼈었는데, 그새 몸을 빼고 자리를 옮긴 모양이었다.
<빌런> 클랜은 물론, 동생 황동연까지 버려두고 혼자 도망치다니….
이런 지독한 녀석은 또 처음이었다.
‘너무 아쉽네.’
황성연은 그 능력과 잔혹성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같이 검을 맞대 봤을 땐, 도저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거의 유은설을 상대할 때처럼, 벽에 막힌 기분.
황성연이 S급 홀더라는 뜻이었다.
그런 그를 단번에 잡아낼 기회였는데, 놓쳤다는 소식을 들으니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클랜 마스터인 황동연과 <빌런>의 핵심 간부들을 잡아낸 건 다행이었다.
그간 아카데미와 내가 골치 아팠던 건, <빌런> 클랜의 조직적이고 악랄한 암습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쉬움을 삼키고, 휴식을 위해 후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몸을 돌린 도중.
문득 미뤄뒀던 정보창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나, 내 눈앞을 어지럽혔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
…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
…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결투에서의 높은 기여도로 인해 승리가 인정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
…
“…아.”
생각해 보니, 이번 전투.
홀더들만 무려 40명, 황동연의 언데드만 50마리나 엮인 대형 전투였다.
그중 내가 본드와 함께 쓸어버린 수만 해도 거의 스물은 될 텐데…
이 룬들, 언제 다 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