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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79)화 (179/353)

Chapter 179 - 평화로운 일상 (5)

익숙한 풍미에 잠깐 화가 나긴 했지만, 확실히 맛집은 맛집이었다.

사람들이 줄 서서 찾아오는 이유가 있었다.

부드러운 식감과 알맞은 간.

적당한 양념 등이 어우러진 명태조림.

녀석은 생선으로 보일 수 있는 최상의 맛을 제공했다.

입이 즐거우니 분위기도 화목했다.

문가은과 나는 맛있는 식사로,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와 일상을 만끽했다.

“하아- 행복해애.”

입안 가득 명태조림을 채워 넣으며, 햄스터 같은 미소를 짓는 문가은.

그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괜찮은 음식 좀 먹었다고 행복하다니, 행복의 기준이 너무 낮은 거 아니야?”

“뭐래. 원래 행복은 멀리 있는 거 아니야. 작은 곳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구. 소확행 몰라?”

“아, 그건 인정.”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가은의 말처럼 행복이란 게 멀리 있지 않다.

맛있는 요리를 먹고, 재밌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사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이긴 했다.

“…그리고 같이 먹어서 좋은 건데.”

거기에 이어서, 웅얼대듯이 말을 잇는 문가은.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난 미간을 모으며 되물었다.

“어? 뭐라고? 못 들었어.”

“으으, 이럴 때만 못 들어. 짜증 나.”

“아니, 너무 작게 말했잖아.”

“치- 콜라랑 같이 먹어서 더 행복하다고 했다, 왜.”

“아닌데. 다른 말이었는데, 분명.”

“아, 몰라몰라.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해.”

…쩝.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문가은 더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서 급한 화제전환에 어울려 줬다.

아까 하던 얘기.

식당에 들어오고부터 우리의 주된 대화 주제.

이는 역시, 그저께 있었던 작전에 관한 부분이었다.

언론에선 아카데미와 대형 클랜들, 그리고 내 활약에 대해서만 대서특필로 비춰주지만…

사실 작전 당시 뒤쪽에서도 남은 파티원들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빌런> 클랜원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우리 수색대 파티원들.

나는 오히려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 … … 그럼 정말 너희끼리 차수연을 잡은 거야?”

그중 가장 큰 화두는 역시, 차수연의 제압.

A급 홀더 중에서도 최상위 홀더.

<빌런> 내 간부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

그런 여자를, 내 친구들끼리 잡아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응. 처음엔 채은이가 궁극스킬 써서 길 열고, 거기서 내가 지원하면서 박진우가 침투했어. 마무리 공격은 주연이가 했고.”

“채은이가 궁극스킬이 있어?”

“어? 응. 못 들었어?”

전혀 못 들었다.

김채은은 남을 치켜세우는 건 좋아하지만, 자신을 과시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활발하고 밝은 성격과 대비되는 신중한 마음가짐.

때문에 궁극스킬 얘기는커녕, 차수연을 검거한 것에 관한 이야기도 대략적으로만 들었었다.

‘새 룬을 얻었다는 건 들었는데….’

김채은에게 새로운 룬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얼어붙은 전장].

얼음 속성 최고 실력자라는 정선영의 주력룬.

그녀의 스승님이 지닌 룬을 그대로 답습하며, [빙결]에서 훨씬 진보된 에픽룬을 습득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채은이가 후천적 재능이었구나.’

원작에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채은은, 후천적으로 능력이 개화하는 홀더였다.

각성 시 얻었던 룬과는 별개로, 새로 깨달음을 얻어 더 높은 등급의 룬을 얻게 되는 경우.

이런 케이스는 원작에 딱 한 명 있었다.

송현.

송씨 가문의 자제이자, 처음으로 [검] 룬을 획득하는 방법을 국내에 소개한 홀더.

그는 룬에 후천적인 재능이 있는 대표적인 홀더였고, 그로 인해 극 후반엔 강력한 룬들을 보유하고 그에 따른 높은 활용도를 과시하며 실력자로 성장한다.

이번에 새로이 룬을 얻고, 심지어 궁극스킬까지 습득하는 데에 성공한 김채은.

그녀 또한 앞선 재능들에 뒤지지 않는, 꽤 뛰어난 후천적 재능의 소유자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다들 생각보다 훠얼씬 잘 해줘서 그 악명 높은 차수연을 잡을 수 있었지. 대단하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고.”

문가은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곤 젓가락으로 명태조림을 다시 뒤적거렸다.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모습.

그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건넸다.

“너도 대단하고 멋있어. 왜 남 얘기하듯이 말해?”

그러자 순간 문가은의 몸이 멈칫했다.

갈 길을 잃던 젓가락질도 자연히 멈췄다.

그리곤 그녀 특유의 민망해진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뭐, 뭐래. 난 그냥 거들기만 했는데.”

“궁수 계열이 그럼 거드는 걸 하지, 뭘 해. 마법사 계열처럼 막타 칠 거야? 전사 계열처럼 탱킹할 거야? 원래 지원에 특화된 계열이잖아.”

“…난 궁극스킬도 없잖아.”

“진짜 혼날래? 궁극스킬이 전부가 아니잖아. 네가 가진 다른 장점이 얼마나 많은데.”

애초에 문가은도 1학년 궁수 계열에서 수석인 홀더다.

시간의 문제일 뿐, 다른 이들에 비해 결코 재능이 부족한 홀더가 아니었다.

다만,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의 재능이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나고, 특히 김채은 같은 경우는 최근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왔으니…

문가은이 괜한 조급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테이블에 젓가락을 탁- 하고 내려놓으며 선언했다.

“안 되겠다. 넌 방학 때 특훈이다.”

“특훈? 갑자기 웬 특훈.”

“너한테 딱 맞는 조언자가 한 명 있거든.”

물론, 문가은에겐 문정혁이라는 국내 최고의 스승이 있다.

하지만 문정혁은 클랜 일로 자주 바쁘고, 또 스승과 조언자의 역할은 엄연히 다른 법.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을 주라던 일본 클랜의 무녀.

아마 그녀라면…

문가은의 훌륭한 트레이너가 돼 줄 것 같았다.

* * *

빙하가 만들어낸 균열이자, 죽음의 협곡.

크레바스.

남극 어딘가.

인적이 전혀 없는 오지에 만들어진, 크레바스 속으로…

한 남자가 들어가고 있었다.

칠흑색으로 덮인 특이한 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남자.

강화도 기장섬에서 홀로 몸을 빼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

전 <빌런>의 부마스터, 황성연이었다.

그그그-

황성연은 크레바스를 타고 움직였다.

떨어지면 한순간 죽음으로 다다를 것 같은 그 위험한 지형에서, 그는 마기를 이용해 벽을 타고 있었다.

그건 파쿠르의 개념을 넘어선 행동.

일종의 [레비테이션] 마법과도 유사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갔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벽의 어둠 속에서, 황성연은 기어코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크레바스 한가운데에 조그맣게 만들어진 구멍.

숨겨진 특수 동굴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였다.

캉-

그그그-

“후우….”

마기를 이용해 입구 쪽으로 몸을 끌고, 검을 지지대 삼아 안으로 들어온 황성연.

그는 동굴 안에서 몸을 털어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던전’처럼.

마력을 주입해야 들어올 수 있고, 던전과 유사하게 구성된 듯한 특수 공간.

그러나 이곳은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황성연은 불빛이 전혀 없는 그 어둠의 공간을 뚫고 걸어갔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만나려던 자는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들리는 기형적인 목소리.

“오셨습니까.”

황성연은 잠깐 불빛을 만들어, 눈앞의 인물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깊은 로브로 온몸과 얼굴을 감싸, 손을 제외한 어떤 신체 부위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인상을 찡그린 황성연이 그에 답했다.

“여전히 얼굴을 보이지 않는군.”

“흉측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 황성연 님도 썩 마음에 들진 않으실 얼굴일 겁니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애초에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황성연에게 중요한 건 그런 외관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로브를 쓴 남자는 손동작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제 한국어가 꽤 늘지 않았습니까? 발음도 내용도, 모두 깔끔해졌습니다.”

“…그렇군. 언어 룬이라도 배웠나?”

황성연의 물음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저희 루덴아크는 항상 연구를 통해 새로운 결과를 도출합니다. 황성연 님께서 보내주신 인간의 뇌를 마력석과 함께 정수로 녹여내면서, 통역 마법에 한국어를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렇듯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됐죠.”

생체실험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가벼운 농담처럼 던지는 남자.

그 사이코패스 같은 웃음에, 황성연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재미없는 이야기군.”

“아, 참. 소식은 들었습니다. 황동연 님이 붙잡히셨다고요. 동생분이라고 들었는데,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딱히 그런 감정은 없다.”

“하하. 그런가요? 하지만 저는 마음이 아프네요. 저희 루덴아크에서 나름 야심 차게 지원했던 사령술사였는데.”

사실이었다.

황동연이 만들었던 언데드 군단.

그 물적 지원과 인력 지원을 <빌런>으로부터 가져왔었다면, 그를 만드는 연구 과정은 모두 눈앞의 남자로부터 빌려온 것이었다.

그걸 모조리 잃고 돌아왔으니, 사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황성연은 그런 복잡한 내부상황엔 관심이 없었다.

“계획에 지장이 있나?”

“전-혀. 전혀 문제없습니다. 저희 계획의 핵심은 그런 소환사 나부랭이보다, 마검 다인 슬라이프의 진정한 소유자이신 황성연 님이니까요.”

어쨌든 남자와 황성연이 계약했던 내용에선 크게 벗어난 게 없기 때문이었다.

탁-

황성연은 동굴 한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네가 말한 던전을 찾았다. 진한 피 냄새와 늑대의 향, 강렬한 마력이 느껴지는 곳.”

“오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런데 입장이 불가하더군. 아무래도 다른 던전과 달리, 특수한 아이템이 필요한 모양이다.”

“아아- 그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어쨌든 찾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언젠가 그 던전이 열리게 되면, 황성연 님이 따라 붙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호들갑을 떨며 이리저리 손짓하던 남자는…

이내 황성연을 보며 멈춰섰다.

확실히 보이진 않지만, 왠지 그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건 라이칸. 그 덜떨어진 늑대 놈들이 해방되지 않는 겁니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저희 루덴아크에 예속되어 있어야, 계획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남자의 말에, 황성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극의 크레바스 속.

어둠만이 짙게 깔린 특수한 동굴.

그 안에선.

아직 누구에게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소용돌이로 몰아치듯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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