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0 - 도재현을 아세요? (1)
<빌런> 소탕 작전이 성공작으로 끝난 후.
아카데미는 2주간의 임시휴강을 선언하며, 사건의 전후처리와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바로잡는 데에 온 힘을 다했다.
황성연의 침입으로 박살이 났던 건물 및 구조물을 각종 업자와 관련 전문 홀더들을 고용해 어떻게든 수리해냈고, 행정적으로 밀려 있던 모든 사안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처리를 마쳤다.
특히 아카데미 내 직원이나 학생, 교수 등 이번 작전으로 희생된 사상자들의 피해 보상.
이건 아예 정부 및 협회와 협력을 하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상을 제공했다.
이걸로 그들의 넋을 모두 위로할 순 없겠지만, 남은 자리를 심심하게 기릴 순 있었다.
‘스파이도 모두 잡아냈고.’
아카데미 내에 남아있던 스파이도 모두 색출에 성공했다.
이건 의외로 과정이 쉬웠다.
포로로 잡은 <빌런> 클랜원과 간부들을 심문하고, 차수연 및 지윤재 등 핵심 클랜원들의 이동 경로 등을 파악하다 보니… 그물망에 걸린 말단들은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불의 심판>, <로열>, <용광검로>의 국내 3대 클랜을 비롯해 각 클랜에 하나둘씩 심어졌던 스파이들도 모두 찾아냈다.
워낙 점조직처럼 구성되어 실체를 잡는 게 어렵던 <빌런>이었지만, 그 위쪽을 대거 잡아들이니 아래를 잡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그렇게 한동안 한국을 들썩이고, 골치 아프게 했던 국내 최대 범죄조직, <빌런>.
이들은 깔끔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지이이-
우우웅-
탁! 타닥-
하지만 아카데미의 안정화가 이루어지는 2주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공무원처럼 아카데미에 나오는 중이었다.
“안 됩니다. 거기선 더 섬세하게 마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강동욱 교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날 다그쳤다.
나는 고개를 한 번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다시 해볼게요.”
“명심하세요. 융화의 질서는 국내 모든 조련 계열 홀더들이 연구하고 싶어 안달 난 전설급 아이템입니다. 그런 희귀 물건을 도재현 홀더가 다루는 겁니다. 어중간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는 건, 그들에게 결례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휴강 기간인 아카데미에 나와 개인적으로는 일들은 꽤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메인이 된 업무를 고르라면…
역시 강동욱 교수와의 공동 연구.
그중에서도, 특수아이템 [융화의 질서]의 집중 연구였다.
‘…아직 멀었구나.’
이마에 뻘뻘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나는 조심스럽게 무지갯빛 수정구를 어루만졌다.
[융화의 질서].
그동안 아카데미가 소유 및 연구를 진행해왔고, <빌런>에서 무리한 작전을 펼쳐가면서까지 탈취를 했던 특수아이템.
이 아이템의 특수효과는 통솔 능력치를 10 올려주는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계약 및 소환 계열에선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다.
특수 능력치에 속하는 ‘통솔’은 내성 능력치와 비슷하게, 올리고 싶다고 올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융화의 질서]에 담긴 진짜 힘은…
해금되지 않은 3개의 봉인 효과에 있었다.
“융화의 질서에 내재된 3개의 껍질. 특수 마력으로 구성된 그 단단한 껍질을, 오로지 도재현 홀더의 마력만으로 벗겨내야 합니다. 첫 껍질을 벗겨내면, 곧바로 융화의 질서와의 연동이 시작됩니다.”
오랫동안 이 수정구를 연구해온 전문가답게, 강동욱 교수는 그 효과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는, 계약자에 대한 이해도와 우호도의 급격한 상승.
그리고 그를 통해 얻어지는 자연스러운 능력치 상승.
두 번째는 [계약의 손길] 스킬을 사용할 때, 계약 확률을 급격히 상승시키는 것.
따라서 해당 괴수를 굳이 ‘마력 고갈’이나 ‘쇠약’ 상태로 만들지 않아도 계약을 할 수 있고, 상황이 따라준다면 두 마리 이상의 괴수를 동시에 조련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계약자의 소환 유지에 대한 무한한 마력 제공.”
“그렇습니다. 빌런 마스터 황동연이, 그토록 많은 사령을 마력 고갈 없이 동시에 부릴 수 있었던 이유죠. 우리의 최종 연구 목표는, 이 세 번째 효과를 발현시키는 겁니다.”
강동욱 교수도 몰랐던 효과.
그동안 비밀 연구로도 밝히지 못했던 세 번째 효과.
계약자의 소환 유지에 대한 무한한 마력 제공.
이게 <빌런>이 [융화의 질서]를 탈취해 간 근본적인 이유였다.
황동연은 [죽음의 군단장] 룬을 통해 ‘사령 보유 횟수’에 제한을 풀고, [융화의 질서]를 사용하면서 ‘무한한 계약 유지 마력’을 얻었던 것이다.
때문에 강동욱 교수와 나의 공동 연구 목표는, 이 세 번째 효과를 발현시키는 게 됐다.
내가 이 중대한 연구의 주력 연구원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조련 계열 홀더들과 달리, 전설급 계약룬을 지닌 난 통솔 수치에 상관없이 고위 괴수들을 여럿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실은 1단계 껍질도 벗기지 못해 헤매는 중이지만 말이다.
지이이-
우우웅-
탁! 타닥-
“다시. 다시 합니다.”
순간 [융화의 질서]와 내 마력의 연결이 끊기고, 어김없이 강동욱 교수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씨발. 살려줘.’
지옥이다.
연구 지옥이 따로 없다.
탈진할 것 같은 몸을 겨우 부여잡고 온 신경을 쏟는데,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도 모르게 살려달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 끝이 없을 것 같은, 까마득해 보이는 연구가…
절대 시간 낭비인 것만은 아니었다.
[더 집요하게, 더 섬세하게. 마력을 다루는 당신의 능력에 섬세함이 더해집니다. 더욱 매끄럽고 유연하게 마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됩니다. 룬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마력 제어’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력 증폭’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2 획득합니다.]
한동안 정체기에 빠져 있던 공통룬들의 레벨이 올랐다.
무기나 무공을 다루는 직접 전투계열 룬들은, 실전 혹은 연습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알아서 성장이 된다.
[구도자의 땀방울]은 룬의 기본 성장 속도를 3배로 올려주니까.
하지만 이러한 공통룬들은 레벨을 올리려면 따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최종적으로 전투에 도움이 되는 룬들이지만, 전투 도중 직접 사용하지는 않기에 성장 자체는 정체되기 때문이다.
‘…급하게 성장한 반대급부지.’
성장이 빠르다는 건, 그만큼 놓치는 것도 많다는 뜻.
나는 다른 일반 홀더들과 달리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며 성장한 게 아닌, [룬 사냥꾼]과 특수아이템 등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디테일한 면에서 동급 홀더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단적인 예를 들어도, 지윤재의 [은닉의 비도술]이 20레벨이었고, 차수연의 [견딜 수 없는 중력]도 20레벨이었다.
반면 내 주력룬인 [파상검법]과 [유수검법]은 아직 11레벨.
A급 홀더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숙련도다.
주력룬의 레벨들이 이런데, 특히 올리기 힘든 공통룬의 레벨은 더 심했다.
그래서 이렇듯 공통룬 레벨이 오르는 점이, 내게 있어선 보유한 룬들의 성장을 가다듬는 과정이 돼주고 있었다.
지이이-
우우웅!!
탓- 탓-
그리고 [마력 제어] 룬이 10레벨에 도달하면서, 미동조차 없던 [융화의 질서]에 변화가 생겼다.
무지갯빛 수정구 안.
기묘하게 맴돌던 영롱한 고리 하나가 생겨나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지녔던 마력과도 연결되는 느낌이 살결을 타고 올라왔다.
[‘융화의 질서’와의 마력 연동에 성공했습니다. 영롱하고 깨끗한 마력이 주변을 감싸 흐르고 있습니다.]
[‘융화의 질서’의 첫 번째 봉인을 해금했습니다. ‘융화의 질서’를 보유하고 있을 시, 대상이 보유한 계약자들과의 우호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모든 계약자의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됐군요!”
강동욱 교수가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마력 연동과 첫 번째 봉인 해금.
역시 경험자답게, 그는 나와 [융화의 질서] 사이에 나타난 그 변화를 바로 눈치챈 것이다.
나 역시 오래도록 집중한 성과가 나옴에 웃음이 나왔다.
“네. 드디어 1단계에 성공했습니다.”
“해낼 줄 알았습니다. 역시 도재현 홀더는 빨라요. 고작 1학년이 이 정도 마력 컨트롤을 보여주다니….”
감탄한 얼굴로 턱을 감싸 쥐던 강동욱 교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자, 그럼 내일은 현장 탐사를 나가서, 도재현 홀더의 계약자인 본드와 함께 융화의 질서 성능을 실험해보죠. 아마 그간 제가 연구했던 성장치보다, 훨씬 뛰어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네요.”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물었다.
“내일…도 연구합니까?”
“그럼요! 지금이야말로 융화의 질서 성능을 낱낱이 파헤칠 기회입니다! 계약 관련 공통룬들에 대해서도 제가 집중적으로 강의해드릴 테니, 내일도 꼭 나오세요.”
“…….”
이 미친 연구자.
처음에 날 가르칠 때 그렇게 신난 이유가 있었구나.
* * *
그리고 오후.
“다시 한번 느끼지만, 도재현 홀더는 역시 암살자 계열에 재능이 있는 게 확실하네요.”
아카데미 내 연무장.
휴강 기간이라 아무도 없는 이곳에, 한 여자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S급 홀더이자 내 암살자 스승인, 유은설.
그동안 수련의 결과가 쌓여서인지, 이번 작전의 실전이 도움이 된 것인지…
그녀와 전담 수업에서도, 오랜만에 룬들이 성장을 이룩했다.
[날렵해진 감각이 온 신경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휘두르는 단검에 당신의 의지가 강하게 깃듭니다. 룬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무술의 달인’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매화검법’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은신’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3, 근력을 2 획득합니다.]
[무술의 달인]과 [은신]은 드디어 10레벨에 이룩했고, 유은설에게 직접 배운 [매화검법]은 어느새 7레벨까지 다다랐다.
룬의 레벨들이 하나둘 고레벨로 나아가는 것을 보니, 확실히 내가 B급을 넘어 A급으로 발돋움 중인 게 눈에 보였다.
한 번 한계를 뛰어넘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며 가다듬는 건 그리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성장은 항상, 언제나.
스승님에게도 너무 잘 보인다.
유은설은 가만히 내 몸의 변화를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이번엔 제 공격을 직접 막아보세요. 패턴은 은신 후 암습, 습격 경로는 미정, 사용 무공은 설중매화입니다. 마력은 전처럼 담지 않을게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지막지한 말을 쏟아내는 유은설.
그 잔혹한 선고에…
나는 귀를 의심하며 좌절했다.
‘씨발. 살려줘….’
울고 싶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