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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81)화 (181/353)

Chapter 181 - 도재현을 아세요? (2)

아카데미는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걸 꼽으라면…

역시 타국 아카데미와의 교류.

서울 홀더 아카데미는 국내 아카데미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아카데미다.

부산과 광주 등 국내 지역 거점에도 몇몇 아카데미가 존재하긴 하지만, 명성과 권위 측면에서 서울 홀더 아카데미를 따라올 국내 아카데미는 없었다.

그리고, 독점은 곧 정체를 불러온다.

지금의 아카데미는 홀더 강국의 일타 아카데미라는 이름 아래 자연히 고이게 됐고, 이러한 ‘대외 교류 부족’은 ‘인력 부족’과 더불어 그간 아카데미의 질적 저하를 일으킨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곤 했다.

그러한 지적들을 쇄신하고자 시도한 첫 프로젝트.

그게 이번 타국 아카데미 교류 프로젝트였다.

<캘리포니아 홀더 아카데미 교류 학생들을 환영합니다!>

서울 홀더 아카데미 정문.

그 한가운데 높은 곳에 커다랗게 걸린 플래카드.

입학 후 처음 보는 낯선 광경에, 박진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캘리포니아?”

아직 임시 휴강 기간이지만, 박진우는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에 나왔다.

작전이 모두 끝난 후.

한 사흘 정도 푹 쉬다 보니, 도무지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쉬란다고 정말 쉬기만 하는 건 박진우의 몸에 맞지 않았다.

“뭔가 엄청 바뀌긴 하는구만.”

거의 일주일 만에 등교하는 아카데미.

이는 못 본 새에 꽤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빌런>의 침입으로 여기저기 박살이 났던 건물들이 빠르게 예전 모습을 되찾았고, 사건의 전후처리도 마무리를 지으며 음울하기만 하던 아카데미 내에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게다가 방금 본 플래카드.

타국의 유명 아카데미와의 학생 교류.

이는 꽤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건지, 벌써 프로젝트가 실행에 옮겨지고 교류 학생들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며 국내 언론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확실히 이번 사건을 통한 아카데미의 대처가 깔끔하긴 했다.

“나하곤 상관없지만.”

아카데미의 이런 변화는 관계자들에겐 굉장히 반가운 혁신이었지만, 솔직히 박진우에겐 알 바 아니었다.

그는 단지 싸우는 게 좋았다.

온 힘을 다해 싸우고, 그만큼 스스로 강해진다는 체감이 될 때 막대한 성취감을 느꼈다.

룬 홀더에게 각자 자기만의 신념이 있다면, 박진우는 그러한 성취감이 자신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아카데미도, 잘 뛰놀 수 있는 환경만 갖춰지면 그만이었다.

훈련할 공간과 시간.

실전을 뛸 기회와 준비.

목표가 돼 줄 수 있는 상대.

그것만 있다면 더 원하는 게 없었다.

“도재현. 그 자식이 있어서 다행이네.”

평소에 표현은 잘 안 하지만, 박진우는 은근히 도재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라이벌이라기엔 이제 너무 높이 올라간 친구였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목표로서 적합한 상대가 돼 줬다.

몇 번을 부딪치고 깨져도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돼 줬고, 끊임없이 사고를 몰고 다녀 뛰놀 환경도 갖춰줬다.

따분하고 정형화된 아카데미에, 도재현은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어 다니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난장판은 박진우가 가장 좋아하는 환경이기도 했다.

“읏, 타타. 오늘도 달려볼까.”

박진우는 찌뿌둥한 몸을 풀며, 아카데미 연무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시험해볼 게 많았다.

저번 작전을 통해 극한의 실전을 겪게 되며, 홀더로서 얻은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정체됐던 능력치나 룬 레벨도 가파르게 올랐고, 새로이 얻게 된 능력도 있었다.

특히 차수연을 검거할 때 펼쳤던 연합 전략.

당시 [쫓을 수 없는 쾌검]을 사용하며, 희미하게 잡힌 깨달음의 가닥이 있었다.

오늘은 그 가닥을 더 확실하게 잡아내는 게 단기 목표였다.

끽, 끼긱-

타다닷-

그렇게 들어간 아카데미 연무장.

휴강 기간이라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곳엔, 의외로 선객이 와 있었다.

“합! 하압…!!”

“음?”

맑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당찬 기합 소리.

그에 맞춰 지나가는 칼 같은 움직임.

연무장 한쪽에서 느껴지는 거친 기척에, 박진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

그리고 보이는 한 여성 홀더.

찰랑거리는 금발과 뚜렷한 이목구비.

새하얀 피부와 긴 팔다리, 그리고 군데군데에 맺힌 땀방울.

무엇보다 기합에서 느껴지는, 묘한 영어의 느낌.

그것만으로.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합! 하압!”

그녀는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훈련을 이어갔다.

자신의 상체보다 더 큰 듯한 방패.

그리고 일반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무기, 레이피어.

두 무구를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루며, 준비된 동작과 변칙적인 움직임을 연계했다.

‘오우… 저 사람, 강한데.’

박진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느꼈다.

강한 홀더다.

최소 B급, 어쩌면 A급일지도 모르는 홀더.

직접 무기를 맞대 보진 않았지만, 근처에서 느껴지는 마력량과 룬의 힘으로 보이는 저 ‘방패술’만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움직임이 파격적이야.’

그녀의 방패술은 꽤 충격적이었다.

가로와 세로, 앞뒤, 대각선.

방향에 구애받지 않고 방패를 움직인다.

육안으로 봤을 땐 전혀 빈틈이 보이질 않는 방어.

그 안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레이피어의 움직임도 상당히 매섭다.

시작부터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움직임을 가져가고, 예측이 된다 싶으면 다시 경로를 틀어 변형을 준다.

박진우는 그 투박하면서도 빈틈없는 공방을 보면서, 과연 자신이 저기에 내려가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이익-

탁! 타닷-

어느 순간.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내, 이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박진우는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

그건.

너무도 깊고, 깨끗한 시선이었다.

흔들림 없는 눈빛은 호수처럼 맑았고, 눈망울은 넓은 바다처럼 푸른 빛을 띠었다.

마치 무(武)를 향한 단단한 의지가 깃든 듯한 눈빛.

그 묘한 눈동자에…

박진우는 멍하니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건 정말.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누구십니까?”

여자에게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어였다.

-Who are you?

박진우도 알아들을 수 있는, 꽤 간단한 영어가 들려왔다.

탁- 타닷-

쿵!

그 말에 박진우는 단번에 난간을 넘어, 연무장 안으로 들어왔다.

마력과 내구 수치가 높으면.

이 정도 높이에선 얼마든지 착지할 수 있었다.

“아, 음…”

그리고 곧장 말문이 막혔다.

박진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무턱대고 일단 내려오긴 했는데, 외국인인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터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런데 의외로 여자에게서 먼저 질문이 왔다.

“여기 학생, 이야?”

“어? 한국말 할 줄 알아?”

역시 한글은 위대하다.

익숙한 언어가 들리자마자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박진우의 물음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금. 아깐 놀라서, 영어 썼다.”

“아직 어색하구나.”

“응. 배우고 있어. 한국말, 어렵다.”

“하하.”

살짝 귀여운 말투에, 박진우는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방황하는 손을 잠시 비비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건넸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정.

쿵쿵거리는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시도한 악수였다.

“난 박진우라고 해. 서울 홀더 아카데미 소속, 전사 계열 1학년이야.”

“박…진우.”

아직은 어눌한 발음으로 그의 이름을 곱씹는 여자.

그녀는 이내 활짝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난 카밀라. 카밀라 플로레스. 캘리포니아 홀더 아카데미, 전사 계열 1학년. 잘 부탁해.”

캘리포니아 홀더 아카데미.

그 익숙한 이름에, 박진우는 속으로 ‘아!’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교류 학생이었구나.”

서울 홀더 아카데미의 이번 교류 프로젝트.

카밀라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미국의 학생 홀더인 모양이었다.

“응. 어제 왔어.”

“와. 진짜 온 지 얼마 안 됐네.”

“응! 모르는 거, 많다. 알려 줘.”

“내,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간 얘기에, 박진우가 당황해 물었다.

그러자 카밀라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국 아카데미, 궁금해.”

그녀는 거칠게 훈련할 때와는 대비되게, 평소엔 밝은 기운을 주변에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그 깨끗한 모습에 살짝 당황한 박진우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생각했다.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미국의 홀더.

그녀에게 가르쳐 줄 아카데미 정보에 대해.

‘근데 뭐부터 알려주지?’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박진우는 이런 데에 약했다.

기본적인 건물 및 계열 소개.

관련 교수님 및 주요 정보의 소개.

아카데미 시설 및 근처 지역 등의 소개.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누구나 쉽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내용에 대해, 사실 박진우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조졌다.’

그건 박진우의 패턴이 거의 항상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강의실–연무장-집.

혹은 연무장-강의실-집.

수업을 들을 때를 제외하곤 매일 훈련만 거듭하는 그는,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아카데미의 구조에 대해 정확히 몰랐다.

당연히 카밀라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었다.

온 정신을 집중해 방법을 생각하던 박진우는…

‘아.’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에,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혹시, 도재현이라고 알아?”

“도재현?”

“응. 요즘 아카데미에서 가장…”

“아! 알아! 아카데미의 영웅! 한국의 기대주?”

‘됐다!’

카밀라의 긍정적인 대답에, 박진우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도재현.

최근 들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악하다시피 한 친구의 명성은, 바다를 건너온 타국의 홀더에게도 닿아 있었다.

막막하던 대화의 흐름에 혈이 뚫린 기분이었다.

“걔가 내 친구거든. 혹시 걔랑 나랑 대련하는 거 구경할래?”

“대…련?”

“아아, 그러니까 서로 싸우는 것 말이야. 한국의 홀더들은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줄게.”

“오! 좋아. 너무 좋아.”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훈련을 온 카밀라답게, 대련에 큰 관심이 있어 보였다.

고민 끝에 박진우가 어렵사리 선택한 방법.

그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하는 종목이었다.

“오케이. 그럼 잠깐만 기다려.”

“응!”

박진우는 잠시 카밀라를 뒤로 한 채, 연무장 한쪽으로 가 핸드폰을 꺼냈다.

자신의 친구이자, 구세주.

도재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나] 뭐 함.

다행히 녀석도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지, 답장이 3초 만에 왔다.

[도재현] 당 채우는 중. 죽을 것 같아, 지금.

[나] 카페임?

[도재현] 어. 모카 프라푸치노 흡입 중.

[나] 연무장 오셈. 한 판 뜨자.

[도재현] ?

그 제안에 잠깐 대화가 멈췄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답장이 돌아왔다.

[도재현] 글자 못 봄? 죽을 것 같다니까. 나 방금 탁원호 교수님이랑 대련하고 왔어.

[나] 오늘 한 번만 해 줘. 진짜 중요함.

[도재현] 아니, 못한다니까? 나 녹초 상태야 지금.

[나] 오늘 대련해주면 다음에 아무 때나 자유대련 10회권 줄게.

[도재현] 아, 미친 새끼야. 싫다고. 그리고 그건 너나 좋아하는 거잖아ㅏㅏ

친구에게서 격하기 그지없는 톡이 왔지만, 박진우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유명한 친구, 이거 좋은 거구나.’

오늘은 뭔가 잘 풀릴 것만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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