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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84)화 (184/353)

Chapter 184 - 2학기 종강 (2)

12월 말.

어느덧 한해가 저물어간다.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 내게 있어선, 이번 생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연말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 한 해,

유독 사건 사고로 가득했던 2학기도…

이젠 정말 끝을 향해 달려갔다.

<2학기 종강 공지>

-이번 학기 종강은 12월16일(금)에서 12월23일(금)으로 일주일 미뤄졌습니다. 교수님들께선 일정에 맞춰, 강의 계획을 조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번 임시휴강 기간에 미리 올라왔던 종강 공지.

임시휴강 기간은 총 2주였지만, 아카데미는 유연하게 일정을 조정하며 2학기 종강은 딱 일주일만 미뤘다.

이번 임시휴강이 아카데미 내부 사정으로 인해 발생하게 됐는데, 거기서 또 학생들 개개인의 일정까지 뺏을 순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2학기의 종강은 12월 23일.

즉, 크리스마스와 이브가 시작되기 전으로 확정됐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받은 결정이었다.

<에브리데이 - 서.홀.아>

-와 크리스마스 전 종강은 ㄹㅇ 센스 있네.

└ 그니까 ㅋㅋ 크리스마스에 시험 걱정 안 하고 놀아도 됨.

 └ 넌 어차피 크리스마스에 같이 있을 사람 없잖아.

  └ 왜 시비임?

-요즘 아카데미 일 좀 잘하네. 뭐지.

└ 갓원호가 혼자 운영해서 그런 거 아닌가. 듣기로는 탁원혁, 탁원상 다 제쳤다던데.

 └ ㄹㅇ? 어디 피셜임

  └ 내 뇌피셜임

-솔직히 전사 계열 입장에선 갓원호 운영 때려치고 강의나 했음 좋겠음 ㅋㅋ 운영은 아무나 하는데 강의는 아무나 못 하잖아

└ 탁원호가 그 정도임? 교수들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 네가 진짜 잘 하는 교수를 안 만나봐서 그래.

-하 이제 종강하면 캘리포니아 눈나들 못 보겠네.. 눈 호강하고 좋았는데

└ 근데 미국 애들 종강도 안 했는데 한국엔 어케 온거임? 

 └ 나도 몰?루

 └ 미국 아카데미는 3학기로 운영된대 ㅇㅇ 걔넨 여기 왔을 때가 방학이었음. 

종강 마지막 주의 월요일.

나는 강의실 한쪽에 앉아, 학생 홀더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들을 읽었다.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 요즘의 아카데미가 일을 잘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이는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확실히 요즘 아카데미의 일 처리는 확실했다.

“갑자기 일을 잘하니까 어색하네.”

다만, 안 하던 짓을 연달아 하니 신기할 뿐.

옆에 있던 문가은이 내 말에 웃으며 답했다.

“풋- 위쪽 분들이 들으면 서운하겠다.”

“음. 그동안 운영이 좀 이상하긴 했잖아.”

“그 말 그대로 탁원호 교수님한테 말한다?”

“…우리 가은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왜 그럴까, 또. 말로 하자, 말로.”

“으, 징그러. 하지 마.”

질색하듯 고개를 젓던 문가은은, 이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말에 동의했다.

“그래도 그 말은 인정. 아카데미가 갑자기 달라진 것 같아.”

솔직히 소속 학생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정도로 깔끔한 일 처리다.

그동안의 서울 홀더 아카데미는, 사실 긍정보단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했다.

국내 아카데미 시장의 독과점.

인력 부족과 교수들의 질적 저하.

꽉 막히고 답답하기만 한 내부 운영…

곧장 떠오르는 것만 세도, 손이 가득 찬다. 

얼마나 이미지가 안 좋으면, 일이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겠는가.

심지어 운영 재단을 맡은 탁씨 가문은 ‘무능’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였다.

“저번 작전 이후로 완전 쇄신한 느낌?”

“정확히는 2학기 때부터지.”

“아, 맞다.”

그랬던 아카데미가 변화를 이뤘다.

그 시발점은, 2학기와 동시에 시작된 유명 강사들의 영입.

유은설을 비롯해 정선영, 임현 등의 유능한 상위 홀더들을 차례로 영입하며, 단기적이지만 아카데미 교육의 질적 수준을 확 높였다.

그리고 결정타는 저번 <빌런> 소탕 작전.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자마자, 아카데미는 기다렸다는 듯 단단한 일 처리를 보여줬다.

습격 및 작전의 희생자들에게 확실한 보상을 제공했고, 폐허가 될 뻔한 아카데미 내부를 휴강 기간에 깔끔하게 정돈했다.

또한,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캘리포니아 홀더 아카데미와의 협업까지 막힘없이 진행하며, 학생들도 놀랄 만한 프로젝트들을 연달아 벌였다.

이번 종강일 단축 같은 사소하면서도 자잘한 일 처리의 유연함은 덤이었다.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봐.”

“무슨 소문?”

내 질문에 문가은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그 왜, 운영진 쪽에 빌런의 스파이가 있었다는 소문.”

“…….”

얼핏 들으면 음모론 같지만, 신빙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저번 1학기 학기 말 평가의 대련 상대 배정이나 무능했던 감독관들, 이번 2학기 김도윤의 석연치 않던 <부산물 채취> 조 배정… 당장 내가 겪은 특이 현상만 꽤 많다.

<빌런> 쪽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내 3대 클랜이나 홀더 협회에도 침투하는 녀석들인데, 아카데미 운영진이라고 해서 침투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현재 홀더 협회에서 집중적으로 심문 중이라는 차수연과 지윤재.

아카데미의 핵심 스파이였던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낸다면, 아마 더 확실한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튼 달라져서 좋긴 하네.”

“그러게. 솔직히 기대 안 했었는데.”

그 과정이야 어쨌든, 지금의 아카데미는 달라졌다.

특히 탁원호 교수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걸 보면, 아카데미 운영에 있어서만큼은 탁씨 가문 후계자들 사이에서 확실히 주도권을 잡은 느낌이 들었다.

올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을 또 기대할 만한 행보였다.

“어, 교수님 왔다.”

문가은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사이…

김광부 교수가 시간에 맞춰 강의실로 들어왔다.

이번 학기 2개밖에 없던 공통과목, <부산물 채취>의 마지막 수업을 위해서였다.

“반갑습니다, 수강생 여러분.”

<부산물 채취>는 마력석을 비롯한 괴수들의 부산물을 직접 채취해보고, 최종적으로 [도축] 룬을 획득하는 데에 목표를 둔 강의.

김도윤 습격 사건 때문에 잠깐 주춤한 적도 있었지만, 김광부 교수는 특유의 연륜으로 강의를 마무리까지 잘 끌고 가줬다.

오늘은 그동안의 수업을 모두 종합하며, 앞으로 수강생들이 가져야 할 방향성에 대해 짧게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도 현장 실습 위주로 진행됐던 수업이다 보니, 특별히 기말고사는 없었다.

대략 30분 정도 이야기를 이어갔을까.

김광부 교수는 슬슬 수업을 마무리했다.

“ … …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룬 홀더의 재능은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재능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도축은 대부분, 후천적인 재능에 속할 때가 많죠.”

한 차례 숨을 고른 그가 말을 이었다.

“비록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지 도축 계열 룬을 얻지 못했더라도, 수강생 여러분은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가 늘 강조해왔듯, 부산물 채취는 끈기와 인내의 싸움입니다.”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재능.

전자가 각성 시 획득하는 룬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홀더의 노력 여하에 따라 획득할 수 있는 룬들을 말했다.

김채은이 [얼어붙은 전장]을 획득한 것처럼, 혹은 송현이 곧 [검]을 획득하게 될 것처럼.

룬 홀더들은 첫 각성 이후에도 얼마든지 룬 획득의 기회가 있다.

그중 [도축]은 후천적 획득에 속하는 대표적인 공통룬.

나 역시 이전에 강의를 들으며 [마력 제어]를 획득했듯, [도축] 룬을 얻기 위해 <부산물 채취>를 들은 것이었다.

‘…결국엔 못 얻었지만.’

강의는 열심히 들었는데, 아쉽게도 룬은 못 얻었다.

이는 내가 도축 쪽에 재능이 없는 것일 수도 있었고, 아직 룬을 얻을 타이밍이 아닌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쪽이어도 큰 상관은 없었다.

굳이 룬이 아니더라도 <부산물 채취>는 내게 괴수와 부산물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고, 정말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룬 사냥꾼]으로 획득하면 그만이었다.

“그럼 오늘 수업은, 아니 이번 학기의 부산물 채취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김광부 교수의 말을 끝으로…

2학기의 첫 번째 수업이, 마무리됐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학생들의 말과 함께, 꽉 차 있던 강의실이 비워지기 시작했다.

“와아- 끝났다아-”

수업이 끝나고, 문가은이 기지개를 켜며 기뻐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좋아?”

“응! 뭔가 종강이 실감 나. 도축 룬 못 얻은 건 좀 아쉽지만.”

룬을 못 얻은 건 문가은도 마찬가지였다.

문가은은 그에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로열>엔 이미 전문 도축 홀더가 있음에도, 자기가 꼭 직접 [도축]을 얻고 싶었다나 뭐라나.

나도 나지만, 문가은도 어지간히 공통룬 획득에 관심이 많은 홀더였다.

나는 잠깐 시계를 보다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시험 없어?”

“응. 나 시험 다 화요일이랑 수요일에 몰려있어.”

“다행이네. 그럼 공부하다가, 이따 써클룸 잠깐 와.”

그 말에 문가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의하려고?”

“응, 한 30분? 짧게 하려고. 이번 주 종강이라 다들 못 오니까.”

<빌런> 클랜이 저번 작전을 통해 거의 모두 소탕됐지만, 여전히 <안티 빌런> 써클은 남아있었다.

아직 사회 곳곳에 <빌런> 클랜원들이 숨어있기도 하고, 써클 회장인 내가 특별한 입장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 회의는, 그러한 <안티 빌런>의 향후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아카데미가 종강하고 강의들이 잘 마무리됐듯, 내가 만든 써클 역시 책임지고 매듭을 지어야 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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