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85)화 (185/353)

Chapter 185 - 2학기 종강 (3)

월요일 저녁, 아카데미 학생회관.

<안티 빌런>의 써클룸 회의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동기인 이현호부터 시작해, 한동안 못 봤던 2학년 선배들, 거기에 졸업을 준비 중인 윤지아 선배까지 모였다.

다른 네 명의 친구 정도로 친하진 않지만, 내겐 모두 소중한 써클 부원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한 명 한 명 눈인사를 한 후.

천천히 회의실 중앙의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조용한 메아리가 울렸다.

시험 기간에 부른 모임인데도, 부원들 대부분의 표정이 밝았다.

그건 역시 아카데미에 찾아온 평화와 안전…

그리고 써클의 목적이 달성됐다는 점 때문일 것이었다.

“거의 두 달 만인가요?”

끄덕끄덕-

내 가벼운 질문에, 부원들이 고갯짓으로 긍정을 표했다.

<빌런> 소탕 작전이 있었던 날 이후.

<안티 빌런>은 임시로 한 번 모였을 뿐, 제대로 모인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잠정적으로 써클의 활동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연합작전을 통해 <빌런>은 완전히 소탕됐다.

아직 잔챙이 클랜원들이 남긴 했지만, 문제가 됐던 뿌리는 모두 뽑혔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때문에 써클의 목적은 생각보다 훨씬 조기에 달성이 됐고, 극단적으로 보면 써클의 존재 이유도 사라져버렸다.

‘써클 활동이 붕 떠 버렸지.’

사실 그건 우리 써클의 얘기만은 아니었다.

워낙 대형 사건을 겪으며 아카데미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있다 보니, 다른 써클들 역시 제대로 된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번 2학기는 써클 활동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의 써클 활동 방향을 재설정할 시간을 가졌다.

그를 위한 잠정 활동 중단이었고, 오늘은 그 결과를 부원들에게 설명해 줄 시간이었다.

“우선, 시험 기간인데도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시간은 괜찮으신 거죠?”

그 질문엔 김채은과 박진우가 대답을 대신해줬다.

“문제없습니다-!”

“오우, 시험은 진작 포기한 지 오래야.”

“푸하하.”

분위기 메이커인 두 사람의 답에, 부원들 대부분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모두 오랜만에 보는데도, 서로 간에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나 역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써클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회의에 앞서, 두 가지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시선이 오른쪽에 앉은 부원에게 향했다.

부원 중 유일한 3학년이자, 써클 부회장.

윤지아였다.

“그간 우리 써클의 부회장을 맡아주신 윤지아 선배님께서, 이번에 불의 심판 클랜에 최종합격하셨다네요. 축하드려요, 선배님.”

“와.”

“와….”

국내 3대 클랜은 늘 홀더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마지않는, 최고의 클랜.

그중 하나에, 이제 막 아카데미를 졸업한 학생이 들어갔다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 올해 3학년 마법사 계열 중엔 유일하다고 들었다.

부원들의 감탄 어린 시선이 쏟아지자, 윤지아는 민망한 듯 웃음을 지었다.

“다들 고마워요. 아마 안티 빌런에서 활약했던 점이, 최종합격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여러모로 제겐 감사한 써클이네요.”

짤막한 소감에, 부원들 모두가 격하게 박수를 보냈다.

바쁜 와중에도 써클을 위해 최선을 다한 부회장을, 다들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아무리 <빌런>에 원한이 있다곤 해도, 그녀의 활동 반경은 어마어마했다.

<안티 빌런>의 운영을 거의 홀로 맡다시피 하고, 써클의 핵심 활동이었던 ‘일본 현장 파견’에도 참여했으며, 심지어 마지막에 치러진 소탕 작전에도 아카데미 멤버로 들어갔다.

이 모든 걸 <불의 심판> 입단 면접과 병행했으니, 그야말로 괴물 같은 활동력이었다.

“윤지아 선배님이 졸업하게 되면서, 써클의 부회장 자리가 공석이 됐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본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두 번째 기쁜 소식은…”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부원들을 둘러봤다.

그리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 안티 빌런 써클이, 아카데미 공식 올해의 써클에 선정됐습니다. 다른 대형 써클들을 모두 제치고, 써클 창설 3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네요.”

“…헐?”

“지, 진짜?”

내 말에 다들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카데미에서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써클’.

한 해 동안 가장 열띤 활동과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써클에게 주어지는 상.

써클 추가 지원금과 상패, 총학장 추천서 등…

아카데미 내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들이 제공되는 써클 활동의 꽃이다.

우리 <안티 빌런> 써클은 2학기가 종강하기 직전, 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 하루 전인 오늘, 써클 회장인 내게 먼저 연락이 왔다.

아마 내일부터 학생회관 게시판과 각종 계열 건물들엔 이에 대한 포스터가 붙을 것이다.

“네. 확실히 연락받았어요. 그러니 다들 자부심을 지녀도 됩니다. 이번 빌런 소탕에 관한 우리 써클의 공로를, 아카데미에서도 직접 인정해줬으니까요.”

써클의 목표가 너무 빨리 사라지긴 했지만, 사실 우리 써클이 3개월간 보인 퍼포먼스는 절대 작지 않았다.

써클의 창설 자체만으로 <빌런> 클랜 수뇌부에 위기감을 심어줬었고, 그로 인해 발생할 습격을 조급히 앞당기게 했다.

이후 <불의 심판>과 <로열>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으며, 아카데미 써클 중엔 최초로 대형 클랜과 협업을 시도하는 추진력을 보여줬다.

특히 일본 현장 파견에서 찾아낸 ‘미허가 워프 게이트’는 <빌런>의 주 수입원을 차단하게 했고, 본격 소탕 작전에선 다수의 써클 부원들이 참여하며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 정도면 써클 수준이 아니잖아.’

비록 창설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써클이지만, 우리의 활동 성과를 따라올 써클은 아카데미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상이었던 것이다.

“오우, 근데 그거 받으면 뭐가 좋은 거야?”

“너무 많아서 다 말하기 힘들어. 나중에 혜택 직접 읽어봐.”

“제일 중요한 것만 말해줘.”

“연무장에 있는 ‘그룹 배틀룸’, ‘프라이빗 배틀룸’ 전부 다 신청 가능. 프리패스야.”

“…진짜 최고의 혜택이네.”

박진우가 가장 좋아할 혜택을 읊어주니, 녀석이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1년에 딱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써클상인 만큼, 부원들 개개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혜택이 상당히 많았다.

우리는 잠시 잡담을 나누며 수상의 기쁨을 나눈 후.

이내 분위기를 바로잡고,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그럼 슬슬 본 회의를 시작할게요.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이번 안건은 우리 써클의 존속에 관한 내용입니다.”

중요 화두를 꺼내자, 모두 긴장한 얼굴로 날 봤다.

사실 ‘올해의 써클’에 선정됐다곤 해도, 시한부 써클이나 다름없는 게 <안티 빌런>이었다.

써클의 대목표가 사라진 이상…

사실 남은 건 해체 수순뿐이었다.

오늘 회의는, 그를 마무리 짓기 위해 모인 것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써클 해체는 확정입니다.”

“아….”

“음.”

냉철한 내 말에 작은 탄성이 들려온다.

거기엔 예상했다는 듯한 목소리와 아쉽다는 감정, 덤덤한 반응 등…

말로 다 하기 힘든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미 빌런 클랜이 와해 단계에 이르렀고, 평화를 찾은 시점에서… 우리 써클의 존속은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해요. 제가 처음 써클을 창설할 때 여러분이 제 무모한 계획에 동의해주셨듯, 저 역시 목표를 달성한 여러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희 써클은, 가장 명예롭고 아름다운 순간에 걸음을 멈추고자 합니다.”

<안티 빌런> 써클의 해체.

창설 3개월 만에 어떤 써클도 이룩하지 못할 성과를 만들어낸 우리지만, 단기 목표를 지니고 만들어진 만큼 이제는 아쉬워도 새로운 길을 가야 했다.

이에 대해선 부원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다만, 그 시점은 내년으로 미루고자 해요.”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해체의 유예.

갑작스러운 그 말에 의아해진 얼굴의 부원들에게, 나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아직 국내엔 체포되지 않은 빌런 클랜원들이 많습니다. 저번 작전 때 집결한 숫자가 반의반도 안 된다고 하니, 최소 100명 이상의 빌런 클랜원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죠.”

수뇌부는 거의 다 잡혔지만, 잔챙이들은 여전히 떠돌고 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녀석들은 그대로 둔다면 결국 또 다른 범죄자로 전락할 것이다.

아마 ‘아웃홀더’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골칫거리가 될 녀석들이었다.

“따라서 우리 써클은 앞으로 그런 잔여 빌런 클랜원들을 잡는 활동을 하려고 해요. 그걸 왜 굳이 써클이 나서서 하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안 해도 될 걸 굳이 찾아서 하려는 게, 써클 활동이잖아요?”

그 말엔 부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모인 사람 중.

그 누구도 강제로 써클에 온 사람은 없었다.

“활동 기한은 내년 신규 써클 부원 모집 전까지입니다. 안티 빌런은 내년 1학기 여름 방학 때 해체됩니다. 따라서 함께 활동하고 싶은 분들은 같이 하셔도 되고, 나가고 싶은 분들은 얼마든지 나가도 좋습니다. 창설 때도 그랬지만,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는 계획한 바를 그대로 꿋꿋이 이어가기만 할게요. 자유롭게 결정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본 회의 안건을 마무리 지었다.

써클 해체는 확정.

하지만 유예기간은 내년 여름까지.

그 안에 써클 탈퇴는 자유.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 결정한 사항들이었다.

그리고….

“하암-”

“그래서, 부회장은 언제 뽑아?”

“재미없는 얘기를 오래도 하네.”

웃음꽃을 피우며 농담을 던지는 써클 부원들.

이번 결정으로 써클을 탈퇴한 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회의가 끝난 후.

써클 룸엔 나 혼자 남은 채.

앞으로의 써클 방향을 재설정 중이었다.

사실 써클 부원 모두가 남을 거라는 건 내 예상 속에 없었기에, 그에 맞춰 활동 방향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뭐가 그렇게 바빠?”

“어?”

그런데 혼자 남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득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김채은이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안 갔었어?”

“응. 화장실 갔다가 다시 왔어.”

“시험공부 안 해도 돼?”

“헤헤, 너도 안 하잖아.”

“뼈를 때리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쓰던 계획을 마주 썼다.

김채은은 옆에 앉아, 이런저런 잡담을 내게 건넸다.

“은근히들 좋아하더라.”

“뭘?”

“써클 당장 해체 안 한 거. 아닌 척해도 다들 아쉬웠나 봐. 나름 정도 들고.”

“그러게. 나도 생각 못 한 시나리오야, 이건.”

전원 탈퇴를 안 한 건 계획에 없었다.

2학년 선배들은 대부분 탈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단 한 명도 탈퇴하지 않으니 뭔가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만큼 내가 이끌어온 써클이, 단순한 이유로 결정할 단체가 아니란 뜻일 거다.

“특히 현호가 좋아하던데.”

“이현호?”

“응. 걔 무뚝뚝한 척하는데, 표정이 다 읽혀.”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 황성연 때문이겠지.

이현호는 황성연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인물.

아무리 <빌런>이 소탕됐다곤 해도, 황성연이 잡히지 않은 이상 그의 추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현호만큼은 아니지만, 황성연은 내게도 하나의 목표가 됐다.

무고한 시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홀더.

아카데미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남자.

국내 최악의 범죄자를 꼽으라면 단연 황성연이다.

언젠가 도망친 그를 직접 찾아내, 내 손으로 잡아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나 또한, S급 홀더의 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재현아.”

“응?”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중.

날 부르는 김채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날 빤히 바라보며, 입을 오므리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듯한 표정.

그리고 그 망설임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혹시…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 해?”

아.

올 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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