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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87)화 (187/353)

Chapter 187 -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

김채은이 크리스마스에 관해 묻던 날.

거짓말처럼 다른 친구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강주연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문가은은 크리스마스 점심에.

각기 다른 시간대를 제안하며, 나와 만날 걸 계획했다.

‘…다 같이 맞춘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들의 일정은 칼 같았다.

덕분에 난 아카데미가 종강하자마자, 세 친구와 약속이 잡혀버렸다.

물론, 나로서는 생각만으로 즐거운 계획이었다.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역시 난 밖에 나와 활동할 때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다.

특히 많은 휴가 중 최고로 꼽히는 크리스마스. 

이를 누군가와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건, 꽤 축복받은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다들 계획에 맞춰 따로따로 만난다는 거?

연말이기에 다 같이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자축하는 분위기를 조금 내고 싶었다.

이 때문에 혹시 우리 집에 다 모여서 아예 파티를 여는 건 어떻냐, 라는 제안을 했는데…

여기엔 문가은이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바보가…!! 가끔은 어필 시간도 필요해!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며 내 제안을 묵살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웬 어필 시간이 나오는진 자세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따로 만나는 데엔 다들 의견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박진우도 못 온다는 말을 전했기에, 모두 함께 모이는 건 자연스레 무산됐다.

다섯 명의 지하 던전 멤버들.

처음엔 단지 던전 공략을 위해 만났던 동료들이지만, 이제는 내게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없다면, 아무래도 파티는 의미가 없었다.

“…이쪽으로.”

강주연이 살짝 팔을 붙잡으며 날 이끌었다.

이번 약속은 모두 강주연이 계획하고 준비했다.

나는 그럴 필요까진 없다며 나도 돕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거절.

한 번 마음을 먹은 강주연의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다 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성동구 옥수동.

역 근처에서 잠시 걷고 있자, 금세 원하던 장소가 나왔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한껏 분위기를 낸 장식들.

그리고 중앙에서 안내를 돕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시민과 홀더들이 언제나 편하게 기댈 수 있게 노력하는 클랜, 컴포터블입니다. 현재 저희 클랜의 얼음 정원 던전은 휴일의 특수성과 과다 입장을 고려해, 현장 접수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예약한 고객님이실까요?”

매뉴얼대로 착착 나오는 남자의 말에, 강주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입장권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여기요.”

일전에 문가은과 <구름을 가린 둥지>에 다녀온 후.

왠지 화가 난 듯한 강주연에게, 나중에 둘이서 같이 던전을 가자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일본 현장 파견 때 둘이서 사냥을 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이었고 약속은 또 별개.

그 때문에 마땅한 던전을 찾던 중…

강주연이 문득, 오늘 그 약속을 대체하자며 한 던전을 데려왔다.

<얼음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컴포터블>

옥수역 근처에 자리한 특수 던전.

<얼음 정원>.

시민들의 편리한 생활을 연구한다는 클랜, <컴포터블>이 소유한 던전.

이 던전은 다른 일반적인 던전들과 달리, ‘사냥’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던전이다.

던전 내에 출현하는 괴수들의 수준이 매우 낮고, 보스 룸의 난이도도 상당히 낮은 탓에 공략 보상 자체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마 평범한 홀더들이라면, 누구나 기피할 만한 하급 던전.

그런데도 <얼음 정원>은 주말마다, 혹은 매년 기념일마다 입장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 번만 들여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사전에 공지드렸듯 예약 고객님들만 입장 가능합니다.”

“자기야, 그냥 가자.”

“아, 여기 진짜 예쁜데….”

우리와 별개로 다른 한쪽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커플.

그들의 말처럼, <얼음 정원>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입장하자마자 쭉 펼쳐진 빙판길과 곳곳에 놓인 얼음 조각상.

얼음꽃으로 구성된 신비로운 수풀.

관광 명소라고 불러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예쁘고 아름다운 던전 내부를 자랑했다.

그 때문에 <얼음 정원>들은 남녀가 모두 룬 홀더인 ‘홀더 커플’들이 자주 찾는, 최적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네. 총 2명, 예약 확인되셨습니다. 이쪽 매개체를 통해 입장하시면 됩니다.” 

우리 쪽을 담당했던 남자가 확인을 마치고, 입장을 허가했다.

그러자 옆쪽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커플이 부럽다는 듯 우리를 바라봤다.

“저긴 들어가네.”

“저 사람들은 예약했나 봐.”

“와, 엄청 치열하던데 대체 어떻게 뚫은 거지?”

“어? 근데 저 남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순간 커플 중 여자 쪽이 고개를 갸웃했다.

금세 날 알아볼 것 같은 기세.

그에 나는 강주연의 팔을 이끌며 걸음을 서둘렀다.

“빨리 가자, 주연아.”

“…어? 어….”

이래서 유명해지면 골치가 아프다.

이젠 정말 모자에 마스크라도 써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 * *

강주연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붙잡았다.

오늘 그녀의 하루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아침, 도재현과의 저녁 약속을 직접 계획할 때 한 번.

점심, 밖에 나가기 전 오늘의 의상을 입을 때 한 번.

저녁, 아카데미에서 도재현을 봤을 때 한 번.

특히 <얼음 정원>에 들어가기 직전.

그가 빨리 가자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을 땐… 정말 심장이 터질 뻔했다.

‘…….’

강주연은 그런 스스로가 신기했다.

햇수로 20년을 살아오면서, 이토록 격한 감정의 파도를 느낀 적은 없었다.

평범한 학교생활과 뛰어난 성적.

익숙한 집안 이력과 아빠에게 직접 배운 클랜 일.

따분한 아카데미와 홀더로서 모자람 없는 역량.

의미를 부여한다면 나름 모두 의미가 있었지만, 돌아보면 강주연은 그저 흐르는 대로 살아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잔잔하던 물결에 자꾸 파도가 일고 있었다.

‘다들 재현이한테….’

그리고 그건…

김채은이 ‘대책 회의’를 하자던 날.

모두의 진심을 넌지시 비쳤던 그 날.

아이러니하게도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

다들 은근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치면서, 강주연도 그제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 자신도, 도재현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다는 걸.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지만…

처음 느껴 보기에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건, 짧은 그녀의 삶 속에서 도재현이 유일했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감정의 파도는 더 격해진 느낌이었다.

“와. 진짜 예약하고 올 만하네. 진짜 예쁘다, 여기.”

<얼음 정원>에 들어온 후.

주변의 아름다운 광경을 둘러보던 도재현이 말했다.

장식품으로서도 가치가 충분해 보이는 조각상들이 곳곳에 놓여 있고, 아름다운 색채의 얼음들은 고고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다.

멍하니 보고 있게 되는, 일종의 실사판 풍경화.

과연 ‘정원’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도재현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이내 강주연 쪽으로 훅 다가왔다.

“여기 있으니까,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따로 없다. 그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는, 특별하고 예쁜 날.

비록 눈이 오는 건 아니지만, <얼음 정원>의 온통 하얗고 깨끗한 풍경을 바라보니…

정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의 강주연에게 그런 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그녀는 훅 다가온 도재현에 또 한 번 놀란 심장을 붙잡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뭔가 컨디션 안 좋아 보이네.”

“…괜찮아.”

사실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컨디션이 아니라, 긴장의 문제일 뿐이었으니까.

“오늘 예쁘네.”

“…어?”

그런데 문득.

도재현이 툭 하고 던진 말에…

강주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는 민망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그냥. 아까 말 못 해준 것 같아서. 옷 잘 어울려, 엄청. 크리스마스에도 잘 맞는 코드 같고.”

“…….”

도재현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걸 보며 강주연은 생각했다.

‘손을….’

손을 잡아야 하는데.

분명 지금이 기회인데….

막상 시도하려고 하니, 선뜻 행동에 옮겨지질 않았다.

저번에 온천에선 더 과감한 행동을 했던 것 같은데, 정작 정석 데이트에 들어서니 손을 잡는 것조차 어려웠다.

역시 뭐든지 분위기가 중요했다.

‘그래도….’

그래도 오늘은 특별하니까.

1년에 한 번뿐인,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조금은 과감해져도 되겠지.

그런 생각에, 강주연이 걸음을 맞춰가 그의 손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할 때였다.

쩌적- 쩌저저-

콰아앙!

히히힝…!!

“꺄, 꺄아아악-!!”

“뭐, 뭐야!!”

“도망쳐! 이레귤러 보스다!”

갑작스럽게 부서진 던전 내부 한쪽.

그리고 나타난 날렵한 모양새의 짐승형 괴수.

특이하게도 온몸이 얼음으로 구성된 괴수였다.

그 난데없는 습격에,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이레귤러 보스(Irregular Boss).

산정된 던전의 등급과 맞지 않는 수준의 보스 괴수가, 뜬금없이 던전 중간에 나타나는 걸 말하며… ‘변형 괴수’라는 말로 불리기도 했다.

일종의 ‘중간 보스’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괴수가 갑자기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레귤러 보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

그 광경에.

강주연은 할 말을 잃고 앞을 봤다.

지금, 여기서.

이 타이밍에 이레귤러 보스가 나온다고?

상식적이지 않은 확률의 사건이었다.

‘…온 세상이 채은이랑 가은이 편이야.’

강주연으로서는 정말 드물게…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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