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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90)화 (190/353)

Chapter 190 -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5)

“…….”

얼음 호수에 정적이 흐른다.

뭔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 뇌가 활동을 멈춰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키스하자는 거지?

아니, 정확히는 키스가 아니라 뽀뽀인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나 찍어내는 머리를 흔들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강주연이 내게 특정 스킨쉽을 요구했다는 것.

그리고 그 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

그 이유까지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상황은 그랬다.

“주연아.”

나는 살짝 복잡해진 머릿속을 조금 가다듬고, 그녀를 불렀다.

지금 내가 물어보려는 건 그녀의 제안에 대한 대답이나, 룬 각성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 같은 게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안쪽을 파고드는 질문이었다.

강주연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응.”

막상 질문하려니 나도 말문이 막힌다.

그러나 머뭇거림을 머금고, 천천히 입을 연다.

이 질문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고민이 쌓여왔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꼭 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너, 나 좋아해?”

“……!!”

사실 오랫동안 지나쳐왔던 문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됐지만…

언제부턴가 그 선을 조금씩 넘어오던 이들.

동료라는 타이틀을 걸었지만…

조금씩 그를 벗어난 감정을 내비치던 이들.

나는 내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들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 감정이 이끄는 방향과 내 예상이 맞다면, 3명의 여자들.

그리고 그 호감의 종류는 아마…

이성적인 호감일 확률이 높겠지.

당장 그녀들이 내게 하는 행동과, 같은 남자인 박진우에게 하는 행동이 전혀 다르니까.

그럼에도 난 그동안 그녀들이 다가오는 걸 애써 무시해왔었다.

‘…나도 헷갈렸으니까.’

그건 그녀들이 직접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도 한 몫 했지만, 나도 내 감정을 한 명으로 치우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모두 소중하고, 모두 특별했다.

누구 한 명을 고를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은 살면서 처음이라, 당황하며 문제 자체를 피해왔던 것 같다.

뭐가 뭔지 알기 힘들어서, 스스로 감정을 억눌러 왔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마음에 남아있던 마지막 선까지 넘으려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제는 정말.

그간 애매했던 관계들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모르겠어.”

갑작스럽고 직접적인 질문.

그에 강주연이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보며 더 확신했다.

룬 각성을 위한 입맞춤이…

그저 만들어낸 구실이라는 걸.

부탁받은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상하다는 반응이 아니라 모르겠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아무리 봐도 부탁에 급한 사람이 나올 반응이 아니었다.

나는 강주연의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를 바라봤다.

“주연아. 솔직히 말해줘. 룬 각성으로 입맞춤해야 한다는 거, 정말이야?”

“…….”

강주연은 여전히 시선을 돌린 채, 날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사실을 말해줬다.

“…아니.”

그럴 것 같았다.

강주연이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그런 각성 조건은 없을 것 같긴 했다.

레드 드래곤이라는 카날레스와 당대의 용기사가 연인 관계였던 게 아닌 이상, 그런 과한 조건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으니까.

나는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확인하고 싶었어.”

“확인?”

“응.”

시선을 내렸던 강주연이…

어느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부끄러운 듯 흔들리는 눈동자.

그러나 그녀가 지금껏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당당하고, 자신을 믿는 눈빛이었다.

“너랑 있으면… 자꾸 마음 한편이 간질거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막힘이 없었다.

단답만을 표하던 강주연으로부터 기나긴 의사 표현이 전달된다.

그건 강주연에게서 처음 보는, 커다란 용기였다.

“눈을 마주치면 떨려. 손이 닿으면 놀라.”

강주연이 날 본다.

나도 강주연을 바라본다.

그 시선의 마주침 속엔.

단순히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마음의 교류가 있었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머리에 얼굴을 그려내면 보고 싶어져.”

그녀는 자신의 작은 두 손을 모아, 가슴에 가져다 댔다.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

마치 그를 직접 느끼려는 듯한 손짓이다.

“이게 좋아하는 거면, 그런가 봐.”

살짝 눈을 감은 채 말하는 강주연.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뜬다.

“하지만 아니라면, 모르겠어. 그래서… 몰라서. 확인해보고 싶었어.”

강주연이 살면서 처음 느껴봤을 감정.

그건 순간의 파도일까.

아니면 영원의 바다일까.

아마 직접 부딪혀보기 전까진…

이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거짓말까지 하며, 내게서 그 감정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랬구나.”

그걸 보니.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늘이 오기까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강주연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생각하고, 얼마나 오래 고민해왔을지 상상이 갔다.

그 결과가 지금의 용기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토로였다.

겨우 용기를 내, 자신의 말을 다 쏟아낸 강주연은.

그 누구보다.

오늘의 어떤 이보다, 눈부시게 빛이 났다.

이제는 그 용기에.

나도 대답을 줄 시간이었다.

“확인해보자, 그럼.”

이미 가까워진 서로의 거리를 더 좁힌다.

한쪽 손으론 강주연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가볍게 몸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숨 막힐 듯 아찔한 촉감.

달콤한 향이 온몸을 타고 퍼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시리도록 푸르게 빛나는 얼음 호수.

그 가운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너무도 따뜻한, 서로의 온기만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렇게…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입을 맞추고 있었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였다.

* * *

서울 강남구 논현동.

S급 홀더 강우현의 대저택.

그 안, 거실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넓은 크기의 방.

딱딱하고 심플한 인테리어가 방 내부를 덮고 있고, 조금이라도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 듯 가구와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심지어 책상에 놓인 논문과 연구일지는 전부 고위 마법에 대한 내용들로만 서술되어 있어, 방 주인이 어지간히 일에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정작 방의 주인인 여자.

집주인인 강우현의 외동딸, 강주연.

그녀는…

홀로 방 침대에 누운 채.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뒹굴거리고 있었다.

“…힛.”

그리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웃음소리가.

그녀에게서 나왔다.

민망함, 부끄러움, 즐거움, 행복함…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들이 그녀의 얼굴에 시시각각 나타났다.

그만큼 그녀의 마음은 지금.

온통 다른 누군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재현이….”

그녀의 입에서, 몇 번째 불러보는 똑같은 이름이 흘러나온다.

도재현.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시선을 빼앗은 남자.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호감을 받게 된 남자.

언제부터인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좋아하게 된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을 자꾸만 부르고 싶었다.

그만큼 오늘의 기억은, 강주연에게 절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

강주연이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는 입술.

몇 번이나 찾던 그의 흔적이…

여기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떠올려 본다.

-확인해보자, 그럼.

“꺄아-.”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나온다.

퍽- 퍽-.

꽤 근력이 높은 그녀의 주먹이 침대를 울리고….

화르르-

수호해야 할 그녀의 불꽃이 베개를 태워버린다.

아무렴 어때.

망가진 침대는 고치면 되고, 불탄 베개는 새로 사면 그만이다.

지금의 강주연에게 중요한 건 그런 소모품들이 아니었다.

“…힛.”

자신의 머리를 감싸던 그의 투박한 손길.

자신의 입술을 훔치던 그의 부드러운 촉감.

정말 꿈이라고 해도 인정할 놀라운 순간들이…

당장 오늘 저녁에 펼쳐졌다는 것.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했다.

“…아, 맞다.”

그러다 강주연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핸드폰을 들었다.

이대로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를 더 만끽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에게 전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

-헤헤. 그럼 우린 오늘로 협력 관계야! 재현이와의 관계에서 진전이 생기면, 서로 알려주고 도와주는 거야!

강주연과 문가은, 김채은.

세 명의 여자가 모였었던 그 날의 카페 모임.

당시 모임의 표면적인 이유는 크리스마스 일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였지만…

김채은이 그녀들을 한데 모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서로의 감정을 모두 이해하고 존중하며, 앞으로도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갈 것.

그걸 설득하고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예시로 들었던 ‘리암 헨드릭스’와 ‘최근 홀더 특별법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강주연 역시 그 의견에 동참했었고, 실제로 데이트 장소로 <얼음 정원>을 추천해준 것도 김채은이었다.

“일단은… 가은이한테.”

그런 관계를 맺은 이상.

오늘 있었던 일도 친구들에게 말을 해줘야 했다.

앞으로 관계가 어떻게 변할진 모르지만, 어쨌든 강주연 또한 친구들의 관계를 응원하는 입장이니까.

그렇게 강주연은 문가은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뭐? 재현이랑 키스했다고?!

“…키스가 아니라 뽀뽀라니까.”

-그게 그거잖아, 이 불여우야아. 배신이다, 배신이야-!!

그날 맺었던 협력 관계가, 1분 만에 깨질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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