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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91)화 (191/353)

Chapter 191 -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6)

홀더 강국.

현시점 지구에서 홀더 강국을 고르라면.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들이 나오곤 하지만… 역시 첫 번째로 불리는 나라는,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이다.

사실 미국은 홀더 강국이라는 표현부터가 민망하다.

그들은 보유한 S급 홀더만 스무 명이 넘고, 핵심 홀더 전력으로 불리는 A급 및 B급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소속 홀더들의 양과 질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고, 교육의 질과 수준도 매우 높아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홀더 아카데미만 다섯 군데나 보유 중인 나라였다.

단순히 홀더 강국이 아닌, 세계 최대 홀더 강국.

딱 그런 표현이 맞았다.

-리암 헨드릭스, 국제 홀더 협회 선정 ‘올해의 홀더’.

-헨드릭스, 초호화 개인 저택을 공개해 화제…

-S급 홀더에 걸맞는 S급 저택. 그의 재산은 대체 얼마?

하지만 어느 집단을 가든, 독보적인 존재는 있는 법.

미국의 수많은 홀더 중에서도 더욱 유명한 홀더들을 꼽으라면, 손에 꼽히는 홀더들이 몇 명 있었다.

그중 하나가 리암 헨드릭스.

미국 전역에서 최고로 군림 중인 S급 홀더로, 벌써 50대에 가까워지는 원로 홀더이기도 했다.

헨드릭스가 세계적인 명성을 남기게 된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전사 계열에서 최초로 S급 홀더에 다다랐다는 점.

타 S급 홀더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무력을 지녔다는 점.

미국 내 최대 규모 클랜 중 하나의 마스터라는 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화제가 됐던 점은 역시 ‘다섯 명의 아내를 둔 홀더’였다는 점이다.

-리암 헨드릭스, 기어코 미국에 특별법을 제정시키다.

-현대 사회의 또 다른 개방! 미국의 다처다부제 허용.

-가장 큰 목적은 DNA… 우성 인자가 우수한 홀더를 낳는다는 논리 때문….

현대 사회에 괴수와 홀더가 출현한 후.

처음으로 다수의 아내와 결혼한 인물.

그게 리암 헨드릭스다.

심지어 그는 미국에 홀더의 결혼과 관련된 특별법까지 제정시키며, 현대 사회에 다처다부제를 부활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덕분에 지금 많은 나라는 다처다부제와 관련된 홀더 특별법을 제정 중이고, 아직 개방하지 않은 한국 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운동이 벌어지곤 했다.

“난 재현이가 한국의 헨드릭스가 될 것 같아.”

“헨드릭스?”

카페 안 세미나 룸.

크리스마스 일정 계획을 위해 모인 이들.

문득 김채은이 꺼낸 말에 문가은이 되물었다.

갑자기 리암 헨드릭스 얘기를 하길래 무슨 말을 이어가나 했는데, 뜬금없이 도재현과 연결을 시키고 있었다.

“응. 벌써 우리만 해도 세 명이잖아. 재현이처럼 매력적인 홀더는, 당연히 여자 홀더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어. 특히 요즘처럼 세계적으로 다처다부제가 허용되는 시대엔 더더욱.”

헨드릭스가 만들어낸 새로운 바람.

이는 한국에서도 말리기 힘든 열풍이었다.

많은 홀더들이 개방을 요구하며 특별법 제정을 원했고, 주류 홀더 강국들이 펼치는 세계적 흐름에 우리나라도 편승할 것을 기대했다.

실제로 관련 법안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오곤 했다.

개혁의 바람은 전국 곳곳에서, 각지에서 불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셋이 구시대 법안에 갇혀 싸우기보다는, 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줘야 한다고 난 생각해.”

“서로 돕는다….”

“응.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혹시 너희 연애해 본 적 있어?”

날카로운 김채은의 질문.

그에 강주연과 문가은이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연애 경험은커녕, 다른 남자와 손을 잡아본 적도 없는 그녀들이었다.

“안 민망해도 돼. 나도 마찬가지야. 헤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렇게 연애 경험도 없는 우리끼리 싸워봤자, 우리 연애에 전혀 도움 될 게 없다는 거지.”

즉, 크리스마스 일정을 계획한 오늘처럼.

서로의 관계 진전을 위해 협력하는 사이가 되자.

김채은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전제 조건은 강주연과 문가은이 다처다부제라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바람을 인정하는가에 있었다.

특히 두 사람은 대형 클랜 핵심 인물들의 딸들이기에, 이 부분을 언급하는 데에 더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들은 그런 점에 보수적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가은이 먼저 손을 들었다.

“찬성! 난 솔직히 채은이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어. 저번엔 주연이랑 막 싸우려고 하지 않았었어?”

그 질문엔 김채은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땐 나도 서툴고, 너희 진심을 몰랐어. 또 생각은 계속 바뀌는 거니까.”

한때 강주연을 견제하던 김채은의 생각도…

이젠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더 나은 관계와 발전을 위해서라면, 세 사람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나온 결론이었다.

“…나도 괜찮아.”

강주연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이로써 세 사람 모두, 만약 도재현의 연인이 된다고 해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도재현이 셋 중 하나를 선택할지, 셋 중 둘만 선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헤헤. 그럼 우린 오늘로 협력 관계야! 재현이와의 관계에서 진전이 생기면, 서로 알려주고 도와주는 거야!”

그렇게 셋은 평화 협정을 맺었었다.

* * *

…그런데 그 평화 협정이 일주일 만에 깨졌다.

[가은이] 비상, 비상, 초-비상.

김채은, 강주연, 문가은.

세 명이 모두 모인 단톡방.

그 방에서 정신없이 울리는 알림에, 김채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답장했다.

[나] 갑자기 왜?

[가은이] 불여우가 부뚜막에 먼저 올랐어. 이거 완전 선점 효과에 당했다!

[주연이] …….

‘불여우’는 강주연을 지칭하는 별명이었다.

불속성 룬을 사용하는 마법사 계열에, 하는 행동이 겉보기와 달리 여우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그녀 스스로는 상당히 싫어하는 별명이지만, 연애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전보다 더 가까워진 그녀들은 자유롭게 그런 별명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김채은은 그걸 보고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부뚜막에 먼저 올랐다, 선점 효과에 당했다…

불안하기 그지없는 말들이 톡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 그게 무슨 말인데?

[가은이] 주연이 어제 재현이랑 키스했대… 우린 끝났어, 채은아.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말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도재현의 첫 키스를 빼앗겼다.

아니, 그게 첫 키스인지 아닌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동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 빼앗겼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말도 안 돼….”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합리적으로 결정된 순서에 따라, 강주연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약속을 맺었었다.

그리고 특별한 날의 특별한 저녁.

그녀가 제일 먼저 도재현에게 고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었다.

어쨌든 세 명의 여성은 각자의 마음을 공유했고, 각자의 방식을 서로 응원해주기로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그의 첫키스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예측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었다.

세 명이 맺은 평화 협정 속에.

‘키스까지 허용’이라는 내용은 없었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주연이] 키스 아니고 뽀뽀라니까.

[가은이] 그게 그거지! 씨이- 진짜 억울해. 나도 포옹까지밖에 안 해봤는데.

[주연이] …언제 했는데?

뜨거운 화제에 시끄러워지는 단톡방.

김채은은 그에 재빨리 새로 문자를 보냈다.

[나] 주연아, 그럼 재현이랑 사귀기로 한 거야?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저번에 그녀들이 다 같이 모여 약조한 게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두 약속.

문득 마음이 변한 강주연이 독점을 원할 수도 있었다.

[주연이] …모르겠어.

[가은이] 모른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키스까지 했는데 안 사귀는 게 어딨어?

[주연이] 그거 이후로 그냥 어색하게 돌아가서….

[가은이] 와- 이 바보 곰탱이가, 진짜. 바로 사귀자고 땅땅땅 못 박았어야지.

[주연이] …언제는 불여우라며.

그러나 다행히 그런 방향은 아닌 듯했다.

어쨌든 톡방에 어제 있었던 일을 꺼낸다는 건, 그날 카페에서 했던 구두 약속을 강주연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타이밍에 강주연이 앞서 나갔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자신도 다시 스퍼트를 내서 따라붙으면 그만이었다.

[나] 어쨌든 축하해. 부럽다-.

[주연이] …고마워.

[가은이] ㅠㅠ 첫 키스는 뺏겼지만, 그래도 첫 여자친구는…

[가은이] !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자꾸 알 수 없는 얘기를 하는 문가은의 톡을 끝으로, 김채은은 핸드폰을 내려놨다.

야심 차게 준비 중이던 오늘의 크리스마스 계획이, 살짝 무색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쨌든 문가은의 말처럼 첫 키스는 뺏겼어도, ‘다른 걸’ 뺏어 올 기회가 있었다.

“…평화 협정은 끝이야, 끝.”

김채은이 입술을 베어 물며 결심했다.

도재현을 향한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까진 변하지 않았다.

강주연의 관계 진전을 축하해주는 것도 진심이었다.

다만, 여러 명의 연인 속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첫 번째 연인’이 되고 싶은 욕심.

그 욕심까지는 버릴 수 없었다.

거기까지 가는 길엔, 평화 협정도 무의미했다.

김채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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