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193)화 (193/353)

Chapter 193 -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8)

‘미쳤어, 진짜.’

문가은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겨우 다잡았다.

하늘 위를 향해 올라가던 본 드래곤과 그를 뒤따라온 만티코어.

또한, 본 드래곤의 몸 위에서…

비행 방향과는 반대로 몸을 돌린 도재현과 문가은.

그건 마치 곡예와도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도재현의 [계약 강화] 덕분에 본 드래곤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만티코어 사냥.

도재현은 뒤에서 문가은을 안은 상태로, 그녀의 활을 대신 쓰는 신기한 전투를 보여줬다.

‘분명 일점사를 썼었지.’

그 와중에 그가 사용한 스킬은 [일점사].

[일점사]는 [활] 룬과 [별절사법] 룬이 둘 다 10레벨은 돼야 쓸 수 있는 파생스킬로, 궁수 계열이 사용하는 스킬 중 매우 강력한 공격 스킬에 속했다.

단일 대상에 쏘는 공격 중엔 거의 탑급으로 분류되는 스킬.

그런 고위 스킬을, 전사 및 암살자 계열인 도재현이 썼다?

원래라면 여기에 의구심을 품어야 정상이었다.

‘…어, 언제 이렇게 활 솜씨가 는 거야.’

하지만 문가은은 거기에 딱히 의구심이 없었다.

이미 도재현은 복합적인 힘과 다재능에 대해 몇 번이나 보여준 적이 있고, 그에 관해선 홀더 계에서 논문으로도 연구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그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지녔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그 능력들을 성장시켰는지에 대해 집중할 단계였다.

‘백허그한 채로….’

그래서 문가은은 그저.

아까의 상황을 마음 속으로 조용히 복기했다.

백허그 상태로 함께 활을 쏘는 사냥.

그건 다시 생각해도 꽤 로맨틱한 구도였다.

…물론, 활을 쏘는 도중.

도재현의 팔과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으아아-.’

부끄러움이 극에 달했던 상황.

덕분에 본 드래곤이 비행을 마치고 착지할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도재현은 민망했던 일 때문이었겠지만, 사실 문가은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작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아, 우유 좀 더 먹어 놓을걸. 아우-’

오직 도재현이 어떻게 반응할까에만 신경이 쏠려 있는 그녀였다.

평소엔 가슴 크기에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우습게도 유제품이 간절해졌다.

“그… 미안, 가은아.”

어쨌든 그렇게…

공중에서의 화려한 전투가 끝난 후.

도재현이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말을 할까말까 몇 번 고민하다가 건넨 듯한 사과.

그러자 문가은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나, 나도 좋았… 아니, 아니. 사고였잖아. 잘 잡았으면 된 거지. 아하, 아하하.”

어색한 웃음이 흐르고, 그녀는 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몇 번이나 쳤다.

‘미쳤어, 문가은. 미쳤어, 진짜.’

오늘 그녀의 마음가짐은 가벼웠다.

처음 말했던 그대로.

그저 도재현의 계약 괴수에 올라타 보고, 같이 소소하게 사냥 데이트를 즐기려 했을 뿐이었다.

어젯밤 강주연이 그와의 첫 키스를 가져가며 먼저 부뚜막에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그건 그녀가 용기를 내 잘 얻어낸 결과.

섣불리 그걸 따라가려 하다간, 자신의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 문가은은, 늘 그랬던 것처럼 평범하게 그와의 시간을 보내려 했었다.

‘어떡해… 떨려.’

그런데 막상 계획이 현실이 되니, 머리가 새하얘진다.

도재현의 목소리에 심장이 쿵쿵 뛰고, 몸이 닿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오랜만의 데이트라 그런 걸까?

아니면, 그에 대한 감정이 깊어진 걸까.

어쩌면 강주연의 말대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고 나니…

자신의 마음에 좀 더 솔직해지는 기분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문가은은.

자신도 한 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재현아.”

처음엔 그저 친구의 지인.

이후엔 아카데미에서 가장 친해진 친구.

그리고 방학 도중.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 부탁했던 ‘가짜 남자친구’.

도재현이 문가은에게 다가왔던 모습은 꽤 다양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녀는 그의 모든 모습이 다 좋았던 것 같다.

친구의 지인일 때도.

친한 친구일 때도.

가짜 남자친구일 때도.

도재현은 항상 말이 잘 통했고, 유머러스했으며, 그 내면엔 섬세한 배려심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그의 모습들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매번 장난처럼 넘어갔지만, 오늘은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인생에서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부끄럽지만, 솔직한 마음.

그걸 꼭 표현하고 싶었다.

“어?”

그래서 고개를 돌린 도재현에게,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사실… 아까 좋았어.”

부끄러운 마음을 꾹 참고 건넨 한 마디.

용기를 냈지만, 도저히 그의 눈은 마주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문가은은 시선을 땅에 고정하며 겨우 말을 꺼냈다.

그런데…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이내 그에게서 날아든 답문이 이상했다.

“어, 어? 그…게 좋았다고?”

어딘가 묘한 기색이 담긴 그의 질문.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들자, 도재현은 역시나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문가은은…

이내 그 눈빛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좋다는 게 아니라…!! 아씨, 너 진짜 죽을래?”

“아니, 네가 방금 분명 그렇게 말했잖아.”

“당연히 백허그가 좋았단 말이잖아!”

목적어를 표현하지 않으니, 말이 이상해진다.

졸지에 가슴 만져지는 게 좋은 변태가 돼 버렸다.

그에 화가 차오른 문가은이 도재현의 어깨를 퍽퍽 쳤다.

“이씨!! 겨우 용기냈는데!”

“아, 미안. 미안. 아! 아, 진짜 아파.”

“그냥 죽어! 죽어! 이 변태! 죽…”

괴수 사냥을 하듯 맹렬하게 몰아치는 문가은.

쉴 틈 없이 주먹 공격을 하던 그녀가…

문득 균형을 잃었다.

탁-

도재현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자신에게 끌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는 다시 한번.

하늘에서 이어, 땅에서도.

그에게 백허그로 안긴 상태가 됐다.

그대로 붙잡힌 문가은은, 아까 소리칠 때보다 훨씬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거 놔….”

“싫은데? 아깐 좋았다며.”

그 말엔 문가은의 표정이 뾰루퉁해졌다.

“이씨- 자꾸 놀릴 거면…”

하지만 그녀의 말을 가로막듯.

도재현이 조용히 속삭였다.

“나도 좋았어.”

“…어?”

“나도 좋았다고. 백허그하면서 같이 사냥한 거. 나도 사실 너 안고 싶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방금 뭘 들은 거지?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는 그의 직진 발언에, 문가은의 표정이 멍해졌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걸 보며, 도재현은 또 한 번 웃음을 지었다.

“용기 내서 표현해줘서 고마워. 혹시… 주연이 얘기 들었어?”

“아, 응.”

강주연의 이름이 나오자, 문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사귀자고 한 적 없다고 하지만, 어쨌든 마음을 표현하고 입맞춤을 한 것.

그건 친구로만 지내던 그들의 관계에…

드디어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걸 말해줬다.

아마 그는 강주연을 비롯해 문가은과 김채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는 것 같았다.

도재현이 살짝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너만 보지 않아도?”

“응. 이미 해외에선 많이들 그렇게 하잖아. 우리나라도 곧 개정될 거고. 난 그냥… 날 봐줄 때만 진심으로….”

문가은은 답을 하다 말고,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으아아! 못 하겠어! 연인 사이엔 이렇게 민망한 말을 어떻게 하는 거야아!”

“참 너다운 반응이다.”

그는 그녀의 몸을 돌려,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또 한 번 웃고는…

문가은의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제 서로 마음도 알았으니까, 좀만 덜 싸우자?”

그 따뜻한 말에.

문가은은 마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애써 표정을 숨기며 괜히 툴툴댔다.

“씨이- 네가 맨날 먼저 시작하잖아.”

“그야 네 반응이 재밌잖아.”

“진짜 죽을래?”

“못 죽일 거면서.”

“…짜증 나.”

“하하. 가자, 마저 사냥하러.”

도재현이 문득 손을 건넸다.

문가은은 그에 살짝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이미 전에도 해본 적 있는 가벼운 스킨쉽이지만,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마주 잡는 손은… 느낌이 아예 달랐다.

그의 손은 차가우면서도, 묘한 온기가 있었다.

그 기분 좋은 감촉에, 문가은은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잡아야만 했다.

“재현아.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도재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문가은은 살짝 웃으며 물었다.

“우리 그럼 이제 사귀는 거야?”

“그럼 아니야?”

“아니, 그… 주연이는 아직 사귀는 건 아니라길래, 혹시나 했지.”

“…주연이가 그래?”

도재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뭔가 상당히 억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긴 서로 입술까지 맞췄는데, 그걸 단순히 썸으로 보는 게 더 웃긴 일이긴 했다.

순전히 강주연의 연애 경험이 전무해서 생긴 해프닝.

…그리고 사실 문가은 또한.

연애 경험이 없는 탓에, 그를 확인받고 싶어 묻는 것이기도 했다.

“재현아, 나 그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두 개, 세 개도 물어봐도 돼.”

“우리 가짜긴 했어도, 아빠 앞에선 사귀는 사이였었잖아.”

“어, 그치.”

아마 아직도 문정혁은 두 사람이 사귀는 것으로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현실이 됐다.

세상일이란 참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낸 것에 도재현이 의아한 얼굴로 문가은을 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그럼… 내가 첫 여자친구인 거지? 너한테.”

“…….”

순간 도재현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든다.

그게 중요해?

라고 묻는 듯한 얼굴.

하지만 첫 키스를 강주연에게 빼앗긴 문가은으로서는…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