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1 - 용맹의 블루 드래곤 (2)
몸이 무겁다.
정보창에서 나온 대로, 모든 능력치가 크게 저하했다는 게 몸소 실감이 났다.
당연히 10레벨의 은신도 가볍게 풀렸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다.
스승님 역시 은신이 풀린 채, 무기를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늘 평온하던 그녀의 표정이 오랜만에 굳어 있다.
S급 홀더인 그녀가 보기에도, 확실히 지금 상황이 안 좋다는 뜻이었다.
“재현, 저건 아마….”
“네. 이 던전의 보스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소문으로만 듣던, 그 드래곤….”
스승님과 내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광활한 창공은 아까 봤던 그대로였다.
온하늘을 덮을 정도로 거대한, 푸른 빛의 용 한 마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마치 처음 본드를 봤을 때, [변형의 뼛조각]을 쓰지 않았을 때의 규모.
위대한 존재, 용맹의 블루 드래곤.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 위명에 걸맞는 기세였다.
‘등급으로 치면 어느 정도지?’
내가 지금껏 봤던 괴수들 중 가장 등급이 높았던 녀석을 꼽으라면, 역시 S급 괴수 ‘스월 레비아탄’이다.
스월 레비아탄은 포항에 나타났던 재난 괴수로, 당시 수많은 홀더들을 짓밟고 포항 앞바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괴력을 선보였었다.
또한, 녀석은 [잊혀진 아룡의 석판]의 두 번째 조각인 ‘아룡’에 해당하기도 했다.
그런 녀석을 저 블루 드래곤, 플러비우스라는 괴수와 비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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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괴성이 또 한 번 울려 퍼진다.
온몸에 싸한 긴장감이 흐른다.
저 육중한 몸이, 당장이라도 우리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비교불가잖아.’
나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비교하는 게 민망한 수준이었다.
A급 홀더나 괴수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실력 편차가 있듯, 당연히 S급에도 격의 차이가 있다.
스월 레비아탄은 S급 괴수 중에서도 최약체에 속했다.
지금껏 나타났던 S급 재난 괴수들에 비해 꽤 사냥이 수월한 편이었고, 또한 능력치가 매우 높은 대신 룬 레벨은 상당히 낮았다.
주력룬이었던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가 7레벨.
심지어 같은 룬을 지닌 내 계약자 아스의 룬 레벨이 16이었으니…
녀석은 사실상 A급 최상위로 분류됐어야 할 괴수였다.
즉,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저 블루 드래곤은 최소 S급 괴수 최상위에 속하거나, 어쩌면 지금껏 홀더 계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등급’의 소유자일 지도 몰랐다.
‘잠깐만. 아스?’
그렇게 급박한 상황 속.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타개책을 강구하던 나는, 순간 특이한 생각에 도달했다.
위대한 존재의 수하였던 귀룡, 아스.
녀석은 S급에 다다른 실력으로, 원래의 내 룬이라면 절대 계약이 불가할 괴수다.
하지만 본드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맹약자’라 불리는 용기사였기에…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와 [용언이 맺은 약속]이 있었기에 계약 가능했던 괴수였다.
그런 아스가 섬겼던 존재가 지금 하늘 위에 있다.
시스템이 직접 ‘용맹의 블루 드래곤’이라는 지칭을 했으니, 틀림없었다.
그럼 아스를…
이곳에 소환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드래곤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
언제 드래곤이 들이닥칠 지 모르는 상황.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소환] 룬의 [계약의 부름]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나….
[기묘한 마력의 흐름이 당신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특수한 결계로 인해 마력 이동이 불가합니다! 제한을 풀기 위해선,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거나 결계가 파괴되어야 합니다.]
[‘계약의 부름’ 스킬의 사용이 취소됩니다.]
‘…젠장.’
바로 막혔다.
위대한 존재의 영역.
그 거창한 이름이 붙은 이 던전엔, 마력석을 활용한 어떠한 워프 작용도 막아내는 특수 결계가 설치된 모양이었다.
아마 [조련 계약]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홀더들이 이 던전에 들어왔다면,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스의 소환을 통한 대화 시도는 물거품이 됐다.
“재현! 도망쳐요!”
그리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스승님의 날카로운 외침에 나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향했다.
가만히 공중을 맴돌며 우리를 지켜보기만 하던 블루 드래곤이 어느 순간.
가벼운 날갯짓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그 광경에 우리의 표정도 경악으로 물든다.
날갯짓에서 나온 건 바람이 아니었다.
물.
그건 물이었다.
눈에 들어올 정도의 양이 아닌,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양.
하늘에서, 땅에서, 혹은 저 너머 언덕에서…
사방에서 물이 밀려 들어온다.
“미친… 너무 많잖아.”
그건 단순히 물속성 마법이라고 보기엔 너무 거대했다.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깊은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황무지처럼 아무것도 없던 땅이, 하해와 같은 물로 덮여지고 있었다.
쏴아아아-!!
쿠우웅!!
거대한 파도는 때로 천둥처럼 지면을 때린다.
굉음과 함께 밀려든 파도에, 나와 스승님은 재빨리 도망치려 했다.
“피할 곳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처엔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황무지는 말 그대로 황무지.
이 파도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을 만한 지형지물이, 주변에 단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든 하늘로 도약한다면, 당장의 파도는 피할 수 있겠지만…
그 후엔 결국 이 물바다를 정면으로 맞받아쳐야 했다.
“…한 떨기 꽃을 피워라.”
“……?!”
그리고 그때.
스승님의 입에서 한 줄기 언령이 읊조려졌다.
그 언령이 의미하는 바는 나도 잘 안다.
[설중매화]의 [설원유섬낙화].
홀더 계에도 꽤 잘 알려진 스승님의 주특기이자, 주력 궁극스킬.
암살자 계열의 궁극스킬인 만큼, 그 위력이 극강에 다다른 공격 스킬이었다.
‘지금 궁극스킬을…?’
그런데 그 궁극스킬이 지금 단계에, 벌써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너무도 과감한 판단이다.
내 상식에서 공격형 궁극스킬은 항상 전투를 마무리 짓는 최후의 공격이었는데…
스승님께선 이를 상대의 스킬을 막는 데에 씀에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쏴아아아-!!
스스- 스슷-
사사사-
“재현은 항상 스킬을 아껴 두는 습관이 있어요.”
빠르게 내 주변으로 움직이는 스승님이, 스킬을 사용하며 말을 걸었다.
“그 종류가 대련이든, 실전이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이면, 과감하게 스킬을 쓸 줄 알아야 해요. 그게 궁극스킬이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몸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신기하게 그 이야기들은 모두 내 귀에 들어와 박혔다.
“내 궁극스킬은 전방위 방향에 상관없이 모든 걸 베어낼 수 있어요. 그 대상은, 마력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죠.”
마침내 그녀의 검들이 쏟아지는 물에 닿는다.
흐린 날씨와 맹렬한 파도에…
때아닌 눈의 꽃이 흩날린다.
스승님은 마치 검을 든 무희처럼 움직이며, 두 자루의 소검으로 거침없이 파도들을 ‘베어냈다’.
“……!!”
그건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사방에서 우릴 향해 쏟아지던 물들은, 스승님의 소검에 베어지며 자연스럽게 외딴 방향으로 서로 뭉쳐갔다.
오른쪽에서 베인 물은 다시 오른쪽으로, 왼쪽에서 베인 물도 역류해 왼쪽으로.
각기 다른 방향에서 왔던 물들이 서로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소용돌이’.
스승님은 방금.
검격만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신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바다 안 작은 공간 속에서, 스승님이 날 봤다.
“이렇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엔 아끼지 않고 스킬을 써줘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게 재현을 더욱 숙련된 홀더로 만들어줄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실전 속에서 피어나는 가르침.
이는 여전히 홀더로서의 경력이 부족한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나는 긴장감 속에 검을 움켜쥐며 그녀의 말을 새겨들었다.
그 모습에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말을 이었다.
“재현. 마력 보조를 할 수 있겠나요?”
“마력 보조…요?”
“네. 같이 타격하면 좋겠지만, 지금 재현의 능력치론 저 용에게 타격을 입히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플러비우스라는 저 괴수는, 제가 지금껏 만나본 S급 괴수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그 말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내 능력치가 궤도에 올랐다곤 해도, 경력에 따른 명확한 한계가 있다.
[광폭화]와 [용인화]를 모두 써도, 플러비우스에겐 전혀 닿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홀더의 힘은 능력치가 전부는 아니다.
신체 능력치가 부족하다면, 룬 활용으로 힘을 보태면 그만이었다.
“네. 해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딜에만 집중해서 보조해줘요. 레비테이션은 따로 필요 없어요.”
“필요 없다고요?”
“네.”
스승님은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말 그대로다.
뛰어오르면서, ‘점프’했다.
‘미친. 뭐야, 저게.’
스승님이 하늘을 향해 도약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나와는 달리, 바람속성 마력룬을 사용할 줄 아는 멀티 홀더가 아니다.
오직 전투 룬과 무공에만 특화된 암살자 계열 홀더.
당연히 [레비테이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즉, 지금 그녀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허공을 걷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허공답보구나.’
암살자 계열 혹은 공격형 전사 계열 홀더들의 보법류 룬.
흔히 ‘경공술’이라고도 불리는 룬들을 극한으로 단련시키면 파생된다는 스킬, [허공답보].
스승님께선 이미 그 경지에 도달하고, 숙련된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제야 과감하게 궁극스킬을 사용하던 스승님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그녀는 굳이 궁극스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이미 본연의 능력 자체가 믿을 만한 힘이었던 것이다.
“나도 도와야지.”
그녀의 움직임을 멍 때리고 볼 수만 있을 순 없었다.
내게도 보조할 수 있는 확실한 여유가 생겼다.
스승님이 만들어 놓은 소용돌이는 내게 안전한 공간을 선사했고, 이는 내가 마력을 활용하기에 최적의 상황임을 말해줬다.
‘광폭화, 용인화.’
우선, 능력치를 펌핑시킨다.
두 개의 스킬을 사용하니, 단번에 능력치가 80% 증폭된다.
당연히 마력 수치도 A급 홀더의 수준을 가볍게 넘어섰다.
‘배열. 그리고 발현.’
[마력 제어] 룬을 활용해 마력을 배열한다.
장소는 특이하게도 내 입.
쩍 벌려진 내 입 안에 특수한 마력이 배열된다.
‘응용, 증폭.’
그리고 최근에 획득한 주문 룬 [플로리안 주문]을 통해 이를 응용한다.
정식 마법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룬.
그 룬의 힘을 빌어 마력식을 바꾸고, 여기에 [마력 증폭]을 얹는다.
체내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마력이, 내 입 쪽으로 모두 집중되기 시작했다.
준비는 그걸로 끝.
더 필요한 건 없었다.
천천히 마력이 집중되며 서서히 고조될 때쯤…
나는 고개를 하늘로 들며, 눈을 크게 떴다.
‘드래곤 브레스…!!’
스승님께서 부탁하신 마력 보조.
지금의 내가 저 하늘의 용을 향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력 스킬은…
아이러니하게도, 용들의 전유물인 [드래곤 브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