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04)화 (204/353)

Chapter 204 - 새로운 힘 (1)

용맹의 블루 드래곤, 플러비우스.

우리가 쓰러뜨렸던 건 그 분신이었다.

정보창만 봐도 그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나타난 저 푸른 머리카락의 여성은 아마….

‘진짜 플러비우스겠지.’

그건 누구라도 쉽게 유추 가능한 사실이었다.

그녀가 용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실전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대 마법 [폴리모프]을 쓴 게 분명했다.

힘을 다 쏟아부어 잡아낸 괴수가 가짜였다?

상당히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있었다.

‘말투가 생각보다 호의적인데.’

그건 우릴 처음 맞이한 플러비우스의 말투.

그게 꽤 호의적이었다는 점이었다.

‘반갑다’는 표현과 ‘자격을 갖춘 인간들’이라는 말.

이건 플러비우스 또한, 우리가 오는 걸 알거나 기다렸다는 뜻이다.

이유까진 모르겠는데 주어진 상황만 보면 그랬다.

그 때문에 급변한 상황에 긴장했던 나와 스승님도, 일단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지켜봤다.

눈앞의 존재가 정말 드래곤이라면.

우리는 지금, 홀더 계 최초로 ‘길들이지 않은 괴수와 대화하는 인간들‘이 되는 것이었다.

“아. 혹시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가?”

나와 스승님이 말없이 있자, 플러비우스가 다시 말을 꺼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 듯한 표정.

자신의 말이 전달이 안 돼 조용하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아직 통역 마법이 녹슬지 않아서.”

아마 플러비우스는 통역 마법을 사용한 채 우리에게 말하는 모양이었다.

고도로 발달된 통역 마법은, 상대의 마력을 감지하는 것만으로 언어의 자동적인 학습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당연히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들은 그 수준이 극한에 다다른 상태.

덕분에 플러비우스의 입에선 놀랍도록 유창한 한국어가 나오고 있었다.

의외로 가볍게 말문을 트는 데에 성공한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혹시 당신은 드… 위대한 존재십니까?”

나도 모르게 드래곤이냐고 물어볼 뻔했다.

아차 싶어 재빨리 말을 바꿨다.

왠지 드래곤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는 건 실례인 느낌이라.

그러자 플러비우스가 잔잔하게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계의 인간에게 그런 호칭을 들으니 신기하구나. 그렇다. 나는 위대한 드래곤 일족, 그중 용맹의 블루 드래곤이라 불리는 플러비우스라고 한다. 그대들이 우리의 예에 익숙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나를 좀 더 편하게 호칭해도 된다.”

그 말에.

나와 스승님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순간 믿기지 않는 단어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계의 인간’.

그동안 연구자들이 가설로만 세워왔던 개념.

괴수와의 소통이 불가해 확인할 방법이 없던 추론.

던전과 괴수는 지구와 다른 특정 차원에서 넘어온 이계의 존재들일 것이다… 라는 주장.

플러비우스는 방금.

그간 가설로만 전해지던 이론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검증한 거였다.

“이계…라고 하셨습니까?”

홀더 계에 알려지면, 커다란 파문이 일어날 법한 대화.

그에 스승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플러비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탁-

문득 플러비우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

“이, 이게….”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질 않던 황무지가…

단숨에 색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스승님과 나는 경악에 찬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적 있는 블루 드래곤의 영롱한 비늘색.

그 신비로운 빛이 곳곳에 아른거린다.

보는 것만으로 그대로 시선을 빼앗길…

아름다우면서도 커다란 방.

방.

이곳은 방이었다.

플러비우스는 손가락을 튕긴 것만으로, 우리 셋을 자신의 방으로 동시에 ‘워프’시킨 것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용언 마법인가?’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용언 마법].

사실 지금까진 드래곤을 마주한 홀더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한 소문이었지만…

그 위력을 직접 마주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 명을 동시에 딜레이도 없이 워프시킬 정도의 힘이라니.

직접 경험했는데도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다르게 사용하면 그냥 죽일 수도 있는 거잖아.’

마법에 반응할 틈도 없었다. 

마력을 쓰는 존재들을 이토록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면…

바꿔 말해, 쉽게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새삼 눈앞의 드래곤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체감이 됐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해진 정보도 있었다.

‘S급을 넘어서는 등급.’

기존의 홀더 및 괴수 등급 체계에 변동이 필요하다는 것.

S급이 끝이 아니다.

그 위의, 더 아득한 존재들이 있었다.

스승님과 내가 반응조차 못했다는 건, 블루 드래곤 플러비우스가 그만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다는 걸 말해줬다.

“마음 같아선 식사라도 하고 싶지만, 시스템이 그 정도 시간까진 허락하지 않을 것 같군. 둘 다 앉지.”

플러비우스는 웬 모래시계 하나를 탁자에 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스승님과 나도 잠깐 시선을 교환한 후, 각자 자리에 착석했다.

“플…러비우스님?”

“편하게 말하라.”

“아까 말씀하신 이계에 대해 다시 물어도 되겠습니까.”

스승님이 정중하게 재차 질문했다.

무력으로 치면 국내 최정상에 손꼽히는 스승님이지만, 그녀는 싸워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잘 구분하고 있었다.

홀더들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보’.

지금이 그 정보를 얻을 기회라는 걸, 그녀 역시 직감한 모양이었다.

플러비우스는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말 그대로다. 그대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 이계의 존재들이 시스템으로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이건 사실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원작 내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공략의 극후반부 에피소드가 되면, 플러비우스처럼 인간과 대화를 시도하는 이종족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당시 이종족들은 이렇듯 ‘시스템’이나 ‘이계의 존재’와 같은 구체적인 키워드들을 언급하지는 않았었다.

시스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그럼 혹시… 다른 괴수들도 모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어째서 저희를 공격하는 겁니까?”

내 첫 번째 질문에, 플러비우스가 살짝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괴수… 아. 몬스터를 말하는 것인가?”

“비슷합니다. 정확히는 이계의 존재들을 모두 통틀어 괴수라고 부릅니다. 유사인종들도 말이죠.”

스승님이 답변을 덧붙여줬다.

그러자 플러비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몬스터들이 그대들을 공격하는 건 특유의 공격성 때문이다. 그들은 이곳이 아닌, 원래의 세계에서도 인간들을 공격하곤 했었다. 그리고 몬스터가 아닌 이들은… 아마 시스템에 묶여, 기억을 잃었기 때문일 거다.”

“기억을 잃는다…?”

“그렇다. 나 같은 초월자들은 거의 기억을 보존한 채 차원을 넘어오지만, 평범한 존재들은 대부분 기억을 잃고 특정 관념에 사로잡혀 넘어온다. 또한, 각각의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나 권한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지. 그대들이 그동안 그들과 소통할 수 없었던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일 거다.”

플러비우스가 차분히 말했다.

“반면, 초월자들은 차원을 넘어오며 사유 공간을 부여받고, 또 그 공간의 시련에 대해 직접 설정할 수 있다.”

“시련… 말입니까?”

“그대들이 아까 도전했던 내 분신과 같은 것들 말이다.”

“아…!”

단어와 내용은 조금 복잡하지만, 요약하자면…

한 마디로 ‘던전의 공략 조건을 직접 설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왜 플러비우스가 우리에게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지 않는지, 어떻게 이렇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자잘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계는 어떤 곳인지, 차원을 넘어왔다는 존재들은 어떤 이들인지, 당신과 같은 초월자들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는지….

거의 시스템에 관한 질문들이 주를 이뤘다.

플러비우스는 그런 질문들에 성의껏 답해줬지만,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 … … 그 부분은 제약에 걸려 답하기 어렵군.”

“ … … 아쉽군. 그건 내가 답할 수 없다.”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준 만큼, 또 알려줄 수 없는 부분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럴 수록 홀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은 더 커져만 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플러비우스가 문득 탁자 한쪽에 있던 모래시계를 가져와 만졌다.

“이런. 벌써 시간이 다 됐군.”

“버, 벌써 말입니까?”

나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나온다.

아니, 뭐 얼마나 얘기했다고 벌써 끝나?

10분이나 지났나…?

시작부터 저 모래시계를 어디에 쓰려고 놓나 했더니, 원래의 용도 그대로 딱 시간만 재려고 했나 보다.

“초월자의 방은 원래 시간 제한이 있다. 초월자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세계의 불균형을 일으키는 이들이기에… 권한도 많지만, 제한도 많이 걸린다.”

“그럼 이 던전… 아니, 초월자의 방은 다시 들어올 수 없는 겁니까?”

내 다급한 질문에 플러비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한 달이 지나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다만, 그때는 이미 시련이 끝났기에, 오늘처럼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을 것이다.”

“…제한이 걸리는군요.”

“그렇다. 그대가 만약 새로운 정보를 얻고 싶다면… 다른 초월자의 방을 찾아가 시련을 받거나, 혹은 시스템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그 말에 퍼즐 하나가 풀렸다.

‘시스템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들’.

즉,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에 나왔던 특정 늑대인간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어느 정도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들이었던 것.

그래서 당시에도 인간들과 ‘이계’에 대해 구체적인 대화가 가능했던 모양이다.

탁-

플러비우스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방안 구석 쪽엔 두 개의 문이 생겨났다.

그녀는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들이 시련을 이겨낸 보상은, 저 문을 통해 나가면 얻을 수 있다. 종류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니, 원하는 대로 골라 가져갈 수 있도록.”

그 말을 끝으로, 플러비우스가 스승님을 바라봤다.

“자격을 갖춘 인간이여. 만나서 반가웠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든 증표를, 잘 찾아냈더군.”

“아, 이건….”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한계를 넘어선 인간들을 바라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거든.”

그 말을 끝으로 플러비우스가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건 그녀 나름대로 스승님께 작별 인사를 한 것이었다.

이에 스승님도 잠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열고 던전을 나갔다.

저 문 밖이, 아마 이 던전 내에 있는 일종의 ‘레스트 룸’일 것이다.

“맹약자여. 그대를 만난 것도 즐거웠다. 반가운 기운과 놀라운 흔적이 있어 나답지 않게 당황했었는데, 그대에게 비춰졌을지 모르겠군.”

스승님이 나가고, 플러비우스가 하는 말에 난 되물었다.

“절… 알고 계셨습니까?”

“재밌는 질문을 하는군. 그대가 내 충신이었던 아스피도켈론과 계약한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진짜 다 알고 있었구나.

이제 보니, 초월자라는 게 뭔가 다 만능처럼 느껴진다.

플러비우스는 아까부터 그래왔듯, 부드러운 미소를 내게 보이며 말했다.

“그대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맹약자다. 아마 지금껏 해온 대로 그대의 길을 걷다 보면, 라프리온에서 찬란했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수호의 불꽃과도 연이 닿은 것 같은데, 그녀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어쩌면 그녀가 답이 돼 줄지도.”

플러비우스의 알쏭달쏭한 조언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다 돼서, 나도 스승님처럼 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오늘 플러비우스로부터 얻은 정보가 상당히 많았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만약 한 달이 지나,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나는 꼭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놀라운 업적! 그 누구도 쌓기 힘든 금자탑, 초월자의 혹독한 시련을 모두 받고 이겨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에 당신이 보유한 모든 힘이, 빠르고 눈부신 성장을 이룹니다.]

[모든 일반 및 특수 능력치를 각각 5씩, 모든 내성 능력치를 각각 3씩 획득합니다.]

[보유한 모든 룬의 레벨이 1씩 오릅니다.]

[전설 속 존재. 용맹의 블루 드래곤, 플러비우스의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플러비우스가 부여한 ‘찬란한 물의 힘’이 당신의 주변을 감쌉니다.]

[‘파상검법’ 룬과 ‘유수검법’ 룬이 찬란한 물의 힘에 반응합니다. ‘룬 사냥꾼’을 통해 두 룬의 힘을 그대로 답습한 새로운 상위 룬이 만들어집니다. 두 개의 룬이 홀더 정보에서 사라집니다.]

[‘용맹한 영원의 물결’ 룬을 획득합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 속력을 각각 7씩, 마력, 물 내성을 각각 5씩 획득합니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해, 또 다른 문이 열립니다. 당신의 계약자 중 ‘본드’가 용의 기세를 되찾아 새로운 힘을 각성합니다!]

[본드가 ‘티르본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티르본드는 더 이상 사령이 아닙니다.]

“…….”

드래곤 누님의 보상은.

정말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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