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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08)화 (208/353)

Chapter 208 - 새로운 힘 (5)

“아무튼 훈련 좀 더해야겠어. 요즘 너무 놀았어.”

그 말에 나는 번뜩 고개를 들었다.

박진우의 입에서 ‘놀았다’는 말이 나온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특종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곧장 생각나는 게 있었다.

나는 억지로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흐흐. 요즘 진도 좀 나갔어? 왜 나한테 안 알려줘, 임마.”

일전에 나는 ‘친구의 부탁’이라는 명목으로, 박진우의 연애 사업에 제물이 됐던 적이 있다.

아카데미 연무장에서의 대련. 

그때 봤던 캘리포니아 아카데미 소속 홀더.

카밀라 플로레스.

내가 본 게 맞다면, 당시 박진우는 카밀라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지독한 훈련광인 박진우가 ‘놀았다’는 표현까지 하는 거면, 아마 카밀라와 연관된 일일 확률이 높았다.

“야야. 이제 막 한 달 됐다. 아직 연락만 하는 단계야.”

박진우는 부정하지는 않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왜? 만나서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해야지.”

이 새끼….

내 연애 사업은 그렇게 놀리더니, 자기 연애는 첫 단추도 못 꿰는 바보였나?

그러자 박진우가 한숨을 푹 쉬며 답했다.

“하… 만날 수가 있어야지, 만날 수가.”

서울 홀더 아카데미의 겨울방학.

그와 함께, 카밀라는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물론, 교환학생을 그만두며 완전히 돌아간 건 아니다.

방학 동안만 잠시 집엔 가고, 개강하면 다시 온다고 한다.

어쨌든 그녀 또한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국 홀더이기에, 쉴 땐 집에 가서 쉬어야 했다.

그래서 박진우는 카밀라와 꾸준히 연락 중이긴 한데, 마땅히 만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쩝. 아쉽네.”

그에 나도 혀를 차며 아쉬움을 삼켰다.

원작에선 조금도 없었던 박진우의 로맨스라서, 솔직히 한때 팬으로서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방학이 끝나고, 다음 학기 개강까진 기다려야 뭔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 뭔 연애냐. 넌 훈련이 어울려. 빡세게 굴러서, 같이 던전이나 가자. 알아봐 둔 데 하나 있어.”

이참에 잘 됐다.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그 던전의 공략에 있어, 만약 박진우가 바쁘면 파티에서 뺄까도 고민했었는데…

이러면 걱정없이 파티원으로 섭외할 수 있겠다.

워낙 고위 괴수들이 등장하는 던전이기에, A급 홀더 한 명 한 명이 귀중했다.

박진우는 내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오우… 넌 연애하고 난 던전에서 굴러라? 이런 개자식을 봤나.”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할까. 같이 구르자니까.”

“아오, 그 파티원들도 다 니 여친일 거 아냐.”

“억울하면 카밀라 한국으로 불러와.”

“씨바… 아직 아무것도 시작 안 했다….”

박진우에겐 세 명의 친구가 내 연인이 됐다는 사실을 말했었다.

우리가 모이는 ‘지하 던전 파티’의 멤버이기도 하고, 녀석이 어디다가 이 사실을 떠벌리고 다닐 사람도 아니니까.

이후 녀석에게 “그렇게 아닌 척 발뺌하더니, 결국 만나고 있었네.”라고 계속 놀림당하긴 했지만…

어쨌든 제일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마음이 편했다.

매일 같이 이 새끼, 저 새끼 하고 서로 놀리지만, 막상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는 박진우밖에 없었다.

“근데 너 진짜 어떡하려고 셋을 만나냐? 한국의 리암 헨드릭스라도 되게?”

“애들은 날 그렇게 만들겠다던데.”

“걔네도 지독하다. 아니, 부모님들한텐 어떻게 말하려고. 막말로 불의 심판 클랜마스터가 이거 알면, 너 살아있질 못할 것 같은데.”

박진우의 촌철살인 같은 그 말에…

순간 내 몸이 멈칫했다.

강우현의 인자한 모습 뒤에 숨겨진, 딸바보의 무서운 면모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하하. 내 딸을 데려가려는 도둑놈을, 클랜에 그대로 놔둘 수야 없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른다.

딸을 데려가는 것만 해도 도둑놈이라고 하는데, 심지어 여자친구가 두 명 더 있다?

걸렸다간 정말 아작이 날 것 같다.

박진우의 말대로 이 세상에 살아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잠시 심장을 부여잡은 나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말했다.

“…주연이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김명현 교수님은 어떻게 설득하게.”

“…채, 채은이가 어떻게든.”

“미친 새끼야. 로열 문정혁 홀더님은 어쩌려고.”

“아. 거긴 괜찮아.”

문정혁 홀더와는 직접 대작까지 해가며 성격을 파악했다.

그는 딸이 행복하다면, 뭐든 이해해주는 아버지였다.

…분명 괜찮을 거다, 분명.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연무장에 드러누운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게 대련을 끝낸 후 회포를 푸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재밌는 건.

그중 주된 주제가 연애라는 점이다.

박진우 이 자식도 남자는 남자다.

아닌 척하면서, 내 조언이나 상담에 은근 귀를 기울인다.

사실 나도 먼저 고백을 받은 입장이라 명쾌하지 않은 조언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녀석보다는 선배라 해줄 말은 많았다.

그렇게 한껏 상담을 해주다가, 나는 문득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쉬워서 어쩌냐. 지금 배운 것들 바로 써먹어야 할 텐데.”

그 말에 박진우도 머리를 긁적였다.

“쩝.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잘 됐어. 지금은 성장에 좀 집중해야 돼. 안 그래도 검 룬 보유하는 홀더들 많이 나올 텐데.”

“…뭐?”

순간 녀석이 흘리듯이 한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검 룬을 보유하는 홀더들이 많이 나온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주제였다.

그러자 박진우가 몰랐냐는 듯 묻는다.

“오우, 뭐야. 너 던전 갔다 오느라 뉴스도 안 봤냐? 어제 난리 났었는데.”

잠시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하던 그는, 이내 내게 핸드폰을 던졌다.

탁-

건네받은 폰 화면 안엔…

그가 말했던 대로, 마치 대자보처럼 특종 기사들이 걸려 있었다.

-세계 최초! 인위적으로 룬을 만들어낸 홀더, 송현아.

-송현아는 대체 누구? 검술명가 송씨 가문의 후계자.

-송현아, 서울 홀더 아카데미 입학 수속 예정…

-송현아, 자신의 롤모델 홀더로 도재현 뽑아…

-‘반복 행동’으로 만든 룬… [검] 말고 또 없을까?

-리암 헨드릭스, “한국은 매번 날 놀라게 한다.”

“…진짜네.”

드디어 [검] 룬의 획득 방법이 세상에 나왔다.

원작에서도 이 때쯤으로 예정되어 있던 일.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던전 공략에 가 있을 때 발표되어 살짝 놀랐을 뿐이었다.

‘확실히 난리가 났겠구나.’

기사가 이토록 많이 나온 게 이해가 된다.

반복 행동을 통한 룬의 인위적인 획득.

이 놀라운 방법이 처음 세상에 공개됐으니, 온 홀더 계가 들썩일 만도 했다.

이제 많은 홀더들이 [검] 룬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물론, [검]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홀더들은 이미 이를 보유하고 있고, 그게 아닌 홀더들은 딱히 주력룬도 아닌 룬을 필요로 하진 않겠지만….

‘룬을 획득하면 능력치를 주니까.’

어쨌든 획득만 하면 능력치를 조금이라도 주는 게 룬이다.

[검] 룬의 경우, 근력이 매우 낮을 때 획득하면 1의 근력을 준다.

고위 홀더들은 아마 오르지 않아서 의미 없겠지만, 이제 막 룬에 대해 배우는 햇병아리들에겐 소중한 능력치였다.

아마 근력을 사용하는 직접 전투 계열 홀더들은, 누구나 이를 얻으려 들 것이다.

“송현아 그 사람, 그걸로 홀더가 됐다더라.”

“그래?”

“어. 그래서 요즘 일반인들이 다 따라한대. 저 방법으로 홀더 되고 싶어서.”

박진우의 말에 대충 맞장구를 쳐줬다.

나도 이미 아는 내용이다.

게다가 곧 밝혀지겠지만, 당연히 이건 홀더로 각성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물론, 송현이 일반인에서 홀더가 되긴 했는데…

그와는 전혀 케이스가 다르다.

사실 그에겐 ‘원래 홀더가 될 재능’이 있었고, 그게 이 방법을 통해 앞당겨진 것뿐이다.

워낙 많은 이들이 시도하고 있다고 하니, 이에 대해서도 금세 알려지게 되겠지.

그런데 나는 문득,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박진우의 말에서…

순간 이상한 이름을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송현이 아니라, 송현아라고…?’

송현이 아닌, 송현아.

내가 알던 이름이 바뀌었다.

박진우의 말을 듣고, 재빨리 기사들을 다시 읽어 보니…

정말이다.

[검] 룬의 획득 방법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홀더.

검술명가 송씨 가문의 후계자.

남자 송현이어야 할 인물이, 어째서인지 여자 송현아가 돼 있었다.

‘…뭐야, 이게.’

심지어 예쁘다.

금발로 물들인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명문가의 자제라는 걸 과시하듯 화려한 외관을 뽐내고 있었다.

원작에선 형인 송도혁의 재능에 밀려 노력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이미지였는데, 이곳에선 뭔가 귀족 아가씨의 느낌이 물씬 나는 홀더가 됐다.

‘…종잡을 수가 없네.’

나름 이곳 세계에 대해, 원작과의 차이점 및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 등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점들이 많았다.

등장인물의 성별이 바뀐 건 또 처음이다.

‘…크게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송현.

아니, 이제는 송현아인 그녀가…

[검] 룬의 획득 방법을 세상에 처음 알린 홀더라는 것.

그리고.

박진우에 버금가는 엄청난 노력의 아이콘이자, 이후 그 노력을 보상받는 ‘후천적 재능의 소유자’라는 것.

그래서 만약 그녀와 마주치게 될 일이 있다면.

그런 훗날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우호적으로 지내는 게 좋다는 것 정도?

숙지해야 할 내용은 딱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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