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1 - 본가 (3)
저택 안도 외부에서 본 것처럼 화려했다.
1층은 거실과 부엌, 손님을 맞이하는 방들로 구성돼 있었고, 부모님과 내 방은 2층에 있었다.
특이하게도 3층엔 서재와 각종 업무용 방, 농사 관련 연구실 등이 크게 펼쳐져 있었다.
확실히 부모님이 농사 부자라 그런지, 집 안에도 그와 관련된 자료들이 잘 체계화돼 있는 것 같다.
집에 들어온 후, 부모님은 식사 준비를 마무리하러 1층에 가셨고… 나와 강주연은 2층으로 와 내 방을 구경 중이었다.
다행히 방의 구성이 서울 자취집과 크게 다를 게 없어서, 나조차 처음 보는 내 방에 당황할 일은 없었다.
강주연은 방 군데군데를 천천히 손으로 쓸며 감상했다.
“…엄청 넓어.”
그리고 가끔 이런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하하. 부모님들 마음이 다 그렇지 뭐. 자식 사는 곳은 다 좋게 해주려 하시잖아. 주연이 방도 그렇지 않아?”
너스레를 떨며 묻자, 강주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강주연의 방도 이것보다 넓으면 넓었지, 절대 더 좁거나 작진 않을 것이다.
강우현의 딸 사랑에 비하면, 우리 부모님의 아들 사랑은 약과 수준이니까.
강주연은 넓디넓은 방을 계속 구경했다.
솔직히 난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방에 구경할 게 딱히 없는데…
그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미소를 머금은 채 방을 구경했다.
왠지 모르게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
그래서 나도 방해하지 않았다.
강주연은 내 방을 구경하고, 나는 강주연을 구경했다.
별다른 대화가 없었지만, 그건 의외로 기분 좋은 침묵이었다.
똑똑-
그러다 문득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준비가 끝났는지 엄마가 와 있었다.
“얘들아, 식사 다 차렸단다. 방금 막 차려서 좀 기다려도 안 식으니까, 혹시 바쁘면 할 거 다 끝내고 내려오렴.”
“아니에요, 엄마. 바로 갈게요.”
엄마의 웃음기 넘치는 말에 나는 곧장 대답했다.
어머니.
대체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거예요.
이 짧은 시간에 뭐가 바쁘고, 뭘 끝냅니까.
당혹스러울 정도로 짓궂은 배려다.
강주연도 뒤늦게야 엄마의 말을 이해한 건지, 그새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큼. 빨리 가자. 밥 식겠다.”
“…응.”
어차피 시간은… 이라는 무서운 뒷말이 들려온 것 같긴 한데, 나는 애써 이를 무시했다.
어쨌든 우리는 짧은 집 구경과 방 구경을 마치고, 1층으로 향했다.
거실 옆에 마련된 다이닝 룸.
부엌이라 칭하기엔 너무 넓은 공간.
그 안에 들어가니 열 명은 앉을 수 있을 식탁이 있었다.
그리고.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만찬이 우릴 반겼다.
“와….”
또 한번 감탄이 나온다.
기본 반찬만 10개는 넘는 것 같은데, 에피타이저와 메인 디쉬 또한 그 수에 맞먹는다.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음식 종류와 한눈에 봐도 느껴지는 퀄리티, 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적당한 음료…
보자마자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데코레이션까지.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라는 표현이 들어맞는다.
‘엄마도 나만큼 요리에 진심이구나.’
의외로 [요리] 룬은 원래 내게 있던 재능일지도 몰랐다.
“엄마. 이거 다 엄마가 한 거예요?”
그래서 다들 감탄하고 있을 때.
슬쩍 엄마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팔로 날 치며 복화술을 하셨다.
“얘는. 엄마 요리 못하는 거 알잖니. 거의 다 시켰어.”
“…시켜요?”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무슨 이런 요리들이 해남 땅끝마을…
그 안에서도 더 시골인 우리 집까지 배달을 와?
“요즘 세상 좋아졌더라. 사례금 넉넉하게 주면, 직접 와서 요리도 해주던데? 홀더들이 요리를 그렇게 잘 하는 건 또 처음 알았지, 뭐니.”
“…….”
<룬 푸드> 쓰셨구나.
전에 김채은도 쓴 적 있는 출장뷔페 업체.
아마 그곳 광주 지부의 홀더들을, 이곳까지 출장시킨 모양이었다.
[워프 게이트] 비용에 추가 거리를 생각하면 돈이 상당히 깨졌을 텐데, 엄마의 웃는 표정을 보니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역시 쓸 땐 화끈하게 쓰는 부모님이셨다.
“다들 편히 앉아요. 주연이 너도 어서 앉으렴.”
“네, 어머니.”
어쨌든 우리는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 자리에 앉았다.
잠시 앉아있자, 아까 아버지가 말했던 ‘손님’도 오셨다.
거구라고 봐도 될 정도의 큰 키에 검은 더벅머리.
후줄근해 보이지만 나름 감각이 느껴지는 옷차림.
서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인사해라, 재현아. 아까 말했던 김지성 홀더님.”
아버지가 손님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홀더로선 처음 듣는 이름.
하지만 우리 집에선 아버지와 일을 함께 하는 손님.
나는 그에게 정중한 예를 표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서울 홀더 아카데미 소속, 2학년 도재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김지성이라는 남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마치 여기서 날 볼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얼굴로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고 계셨다.
“도 사장님. 아드님이 설마 도재현 홀더였습니까?”
“아, 제가 말을 안 했던가요?”
“…예, 전혀.”
“하하. 예, 맞습니다.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도재현이가, 제 아들입니다. 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아버지를 보고 확신했다.
…일부러 말 안 하신 거다.
아버지도 엄마 못지 않은 팔불출이셨다.
나한텐 부담될까 봐 조금도 언급하지 않으셨는데, 내 이름이 기사나 뉴스에 뜨는 게 은근히 기분 좋으셨나 보다.
‘…뉴스에 더 자주 나와야 하나.’
정작 난 유명해지는 게 귀찮아서 최대한 감추고 다녔는데, 효도를 위해서라면 방향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김지성이라는 홀더는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날 안다면 아마 강주연도 알 텐데, 이런 시골에서 난데없이 <불의 심판> 외동딸과 나를 만났으니 당혹스러울 만도 했다.
그런데 그가 당황한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가 유명해서가 아니었나 보다.
“도재현 홀더, 혹시 내가 말을 좀 편하게 해도 될까요?”
“아, 네네. 당연하죠. 아버지 손님이신데.”
“그럼….”
잠시 망설이던 그가 내게 물었다.
“그럼 혹시, 박진우라는 이름을 아니?”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김지성의 입에서 나왔다.
박진우?
박진우가 여기서 왜 나와?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봤다.
“진우요?”
“응. 같은 학년으로 아는데.”
“네, 맞아요. 제 친구예요, 진우. 그런데 진우랑 어떻게…”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그런 뒷말을 삼킨 채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김지성의 얼굴은 어느새 당황에서 반가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우와 친구라는 내 대답.
그게 뭔가 그의 가려움을 해결해주는 답이었나 보다.
그리고 이내.
김지성이 건네는 충격적인 한마디.
“만나서 반갑다. 난 진우 아빠 되는 사람이야.”
“…예?!”
깜짝 놀란 내 목소리가 다이닝 룸을 가득 울린다.
박진우의 아빠?
이게 대체 무슨….
* * *
폭풍 같던 점심 식사가 끝난 후.
엄마와 아버지는 잠시 자리를 비워주셨다.
잠시 밭을 보고 와야 한다고 말하긴 하셨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비켜주시는 게 눈에 보였다.
두 분도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의 해후를 원했을 텐데, 우리에게 나름 중요한 것 같은 사안에 깊은 배려심을 보이셨다.
“그… 진짜 진우 아버지…세요?”
그렇게 나와 강주연.
그리고 김지성이 남은 거실.
나는 아까부터 가장 큰 화두였던 주제를 물었다.
박진우의 아버지.
이건 분명, 원작에서 나온 적이 없던 내용이었다.
‘아. 스치듯이 나오긴 했었나?’
아버지의 이름이나 생김새가 나온 적은 없지만, 흔적에 대해 언급된 적은 있었다.
아버지가 워낙 방랑벽이 심해서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닌다고.
그래서 기러기 아빠처럼, 정말 가끔씩 집에 들어온다고.
하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간 언급이 전부였다.
박진우의 가족에 대해 자세히 서술됐던 건, ‘아카데미 습격 사건’에서 납치됐던 동생 박윤서가 가장 많았었다.
김지성은 그런 내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하하. 그럼 진짜 아빠지, 가짜 아빠일까.”
…가짜 아빠 같은데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아니, 그도 그럴 게…
정말 하나도 안 닮았다.
이목구비부터 말투, 분위기, 제스쳐….
뭐 하나 박진우와 닮은 게 없다.
애초에 이름부터 김지성이잖아.
이건 그럼 가명인 거야…?
다양한 의문들이 한데 담긴 내 표정.
그걸 본 김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 연결이 안 되는 부분이 많겠지. 음… 뭐부터 말해야 할까.”
잠깐 고민하던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말보단 보여주는 게 빠르겠구나.”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간 나와 강주연의 몸이 움찔했다.
갑작스러운 주변 공기의 변화.
김지성의 몸에서, 갑자기 강렬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끝과 다리에서 파생되던 마력은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가, 이내 그의 온몸을 덮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발현과 섬세한 컨트롤.
깊은 조예가 느껴지는 그의 [마력 제어]였다.
고위 홀더는 마력을 쓰는 것만으로 대략적인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김지성도 그런 케이스다.
그는 나와 강주연이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마력 활용을 보여주는, 분명한 고위 홀더였다.
‘뭐야.’
그리고 이어진 그의 외적 변화.
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어떠냐. 이제 좀 진우 아빠 같아 보이니?”
뭐지?
[폴리모프]인가?
후줄근하던 그의 옷차림은 그대로지만, 얼굴이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맑은 눈동자.
열정이 담겨 있는 듯한 쾌활한 분위기.
정말 박진우와 똑 닮아 있다.
박진우의 아버지라는 게 단번에 수긍되는 외관이었다.
“이 얼굴의 이름은 박지환이다. 사실상 내 진짜 이름이기도 하지.”
“진짜… 이름이요?”
“그래. 아내나 아들에게 가짜 이름을 알려줄 순 없잖니. 음, 그리고 이건….”
또 한 번.
그의 손끝에서 마력이 불꽃 튀듯 강렬히 일어난다.
아까 보여줬던 완벽의 변장술.
그걸 다시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류지혁이라는 이름의 얼굴이란다. 어쩌면 너희가 가장 잘 알 수도 있는 얼굴이겠지.”
김지성이나 박지환과는 전혀 다른,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의 남성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건 나와 강주연이 아주 잘 아는 얼굴이었다.
“류지혁 홀더님….”
기사에 이름과 얼굴이 몇 번이나 실렸던 홀더.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다섯 명의 홀더.
아주 가끔씩만 모습을 드러내서, ‘신비주의 홀더’라는 별칭까지 붙여진 홀더.
유은설에 이은, 또 다른 무소속 S급.
류지혁 홀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