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13)화 (213/353)

Chapter 213 - 초월자의 방: 카날레스 (1)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3년 정도 숙성을 마친 산삼 담금주라는데…

솔직히 그 깊이는 잘 모르겠다.

내가 와인을 더 선호해서 그런지, 그냥 약재를 먹는 기분이었다.

“크으… 쓰다.”

“하하. 어른 다 된 줄 알았더니, 술은 아직 애구나.”

아버지가 웃으며 내 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상당히 반가우신 모양이다.

점심부터 좋아 보이시던 텐션이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까 박… 아니, 김지성 홀더님 보셨어요?”

나는 아버지의 잔에 술을 따라드리며, 먼저 떠난 박지환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밭에 오셔서 인사하셨었다. 또 오신다고 하더라고.”

“몰랐는데 그분, 제 친구 아버지더라고요.”

“그것도 들었다. 신기한 인연이지. 기술 연구를 함께 하러 온 손님일 뿐이었는데.”

박지환에 대해 궁금한 건 여전히 많았다.

쫓고 있는 단체는 무엇인지, ‘구도자’라는 건 정확하게 뭐였는지, 아들과 딸의 성장이 궁금하진 않으신지, 왜 굳이 혼자 활동하는 것인지….

새로운 정보들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인 만큼, 대화하고 싶은 주제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전세계 곳곳을 떠돌며 진실을 탐구하는 이.

그를 또 만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인지 모를, 훗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재현아. 우리 주연이는 어딨니?”

문득 아버지 옆에 있던 엄마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내게 물었다.

그 물음에 내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든다.

“벌써 우리 주연이에요?”

“호호. 나도 모르게 호칭이 그렇게 나오네? 같이 즐기면 좋잖니.”

“방에서 쉬겠대요. 그래도 1년만에 가족끼리 만나는 건데, 방해 안 하고 싶다네요.”

강주연은 자리를 피해주며 2층으로 먼저 올라갔다.

손님들이 머무르는 방은 대개 1층에 있지만, 2층에도 방이 없진 않다.

강주연이 고른 방은 내 방 옆옆의 방.

워낙 대저택인 터라 2층 공간이 넓고, 방과 방 사이에 거리도 꽤 있어서…

아마 같은 층이더라도 큰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착하기도 해라. 재현아, 엄마는 주연이 너무 마음에 든다-.”

엄마가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술잔을 한번 들이마시곤 말했다.

“너무 명문 클랜 딸이던데. 불의 심판이던가.”

“푸-”

그 말에 나도 순간 마시던 담금주를 내뿜을 뻔했다.

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아시지…?

너무 의외의 말이 나와서 당황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보며 물었다.

“…찾아보셨어요?”

“어휴, 말도 마라. 너 홀더 된 이후로, 너희 아부지도 완전 홀더 다 됐어. 매일같이 관련 신문 찾아보고, 너 나온 기사는 세 번씩 본다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엄마가 덧붙인 말에 아버지는 헛기침을 했다.

…아까 느꼈던 팔불출의 기운이 거짓이 아니었다.

아마 이 정도면 나보다 홀더 계를 더 잘 꿰고 계실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유명 홀더가 됐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계시는 게 분명했다.

‘좋네.’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오늘 처음 뵙는 부모님은…

모두 좋은 분들이셨다.

밝은 기운을 지니고 있으셨고, 타인을 향한 배려심이 남달랐다.

하시는 일에는 자부심을 지니셨고, 집엔 시골의 따뜻한 정이 남아있었다.

특히 홀더로서의 험난한 아들의 여정을 걱정하시지만, 늘 자랑스러워하면서 열렬히 응원하셨다.

그 묵묵한 지지가 고마웠다.

이런 분들의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내가 별탈 없이 아카데미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 아버지. 감사합니다.”

비록 이전 세상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익숙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이제는 정말.

이 분들이 내 부모님이셨다.

“여보. 우리 재현이, 진짜 다 컸네요.”

“그러게.”

두 분은 서로를 보고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나도 그들을 향해 마주 웃었다.

그리고 잔을 들어 조용히 건배했다.

저물어가는 본가의 밤이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오랜 회포를 푼 후.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처음 보는 방이지만, 아까 구경을 오래해서인지 다행히 구조가 헷갈리진 않았다.

“……?”

그리고 방안에서 마주친 뜻밖의 손님.

익숙한 얼굴이다.

분명 다른 방에 들어가 자고 있어야 할…

내 여자친구였다.

심지어 의상도 파격적이다.

속이 내비치는 연분홍빛 네글리제를 입고, 매끄러운 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침대 손잡이를 붙잡고, 무릎을 꿇듯 옆으로 앉은 자세까지.

그 어떤 때보다 고혹적인 자태를 선보인 그녀가…

살짝 시선을 내리 깔며 말했다.

“…나, 난 씻었어.”

“……….”

아무래도 밤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 * *

다음 날.

우린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의 밭에 나와 있었다.

박지환이 알려줬던 정보의 던전.

<초월자의 방>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중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던전에 먼저 가야 했다.

“흠흠. 여, 여긴가? 지도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으, 응.”

하지만 막상 던전에 들어가려는 강주연과 나는, 서로 어색하게 말을 더듬었다.

그 이유는 바로 어제.

그녀와 내가 처음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이고, 이미 김채은과도 밤을 보냈기에 민망할 일도 없었지만…

이게 또 생각한대로 행동이 되진 않았다.

강주연의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보니, 자꾸만 어제 일이 생각난다.

사랑스럽던 그녀의 말과 행동.

부드럽던 그녀의 몸과 입술.

그리고….

‘아오. 정신차려, 도재현…!!’

잠시 한눈을 파니, 또 어제의 기억만 떠올리고 있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흔들며 생각들을 뿌리쳤다.

연애는 연애고, 일할 땐 또 일을 해야지.

“흠흠. 들어가자.”

“…응.”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던전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다행히 주연이도 금세 원래로 돌아왔다.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들어온 던전은 <잿빛 불의 제단>.

동굴 형태의 던전이다.

참고로 이건 박지환이 붙인 이름인데, 생각보다 작명을 잘하셨다.

어쨌든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던전은 불속성 괴수들이 등장하는 고위 던전이다.

<지하 던전>에서 경험한 B급 시즐링 샐러맨더부터 시작해, A급의 블레이징 임프와 버닝 스콜피온.

심지어 일본의 <밀수 동굴>에서 본 적 있는 A급 헬 하운드도 있었다.

<초월자의 방>을 담고 있는 던전답게, 공략이 까다로운 고위 괴수들이 득실거렸다.

“상성이 좋진 않네.”

“응.”

불속성 마법사 계열인 강주연에겐 좋지 않은 상성.

물론, 거의 모든 속성에 무상성인 내가 있기에 큰 상관은 없긴 하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사냥일 때의 이야기.

지금의 우리가 할 사냥엔 분명 불리한 조건이었다.

‘우린 초월자의 방으로 가야 하니까.’

우리의 이번 목표는 <잿빛 불의 제단>이 아니다.

그 안에 자리한 이중던전, <초월자의 방>이 목표다.

조건이 될 지 안 될 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초월자의 방>이 주는 ‘시련’.

그게 상당히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게 지금 불리한 이유고.’

효율적으로 사냥하면서 가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데, 안 좋은 상성에서 사냥을 이어가면 쉽게 지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냥을 안 하고 지나가면 되지.”

“…어떻게?”

강주연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마법가방에서 생수 한 통을 꺼내, 그 안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발현, 배열, 증폭.’

마력룬의 스킬을 사용할 땐 주문법 없이도 즉시 시전할 수 있지만, 주문법을 활용하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나는 [마력제어]와 [플로리안 주문]을 활용해 체내 마력을 손으로 집중시켰다.

거기에 얹는 [마력증폭].

순식간에 강렬한 마력이 내 손과 손에 들린 생수통으로 향했다.

‘뉴 웨이브.’

[엘리멘탈 마스터]의 파생스킬인 [뉴 웨이브].

조금의 물만 있다면, 막대한 양의 물을 불러냄과 동시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스킬.

다양한 룬들의 보조를 받은 [뉴 웨이브]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며 던전 내를 덮었다.

쏴아아아-!!

‘계약의 부름.’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지 않았다.

물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나는 곧바로 두 번째 계약자인 ‘아스’를 불러왔다.

우우우우-!!

보는 것만으로 입이 쩍 벌어지는, 거대 거북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로서도 매우 오랜만에 보는 모습.

저번 공략 이후 두 번째 소환이었다.

-맹약자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야, 아스. 지금 좀 급한데 바로 부탁해도 될까?’

-언제든 준비돼 있습니다.

사냥을 하지 않고, 던전을 지나가려면 ‘괴수들을 지나쳐 갈 수송 수단’이 필요하다.

거기서 떠오른 게 티르본드와 아스.

그러나 티르본드는 수송 관련 룬이 없기에 아무나 쉽게 탈 수 없다.

문가은은 [승마] 룬이 있어 가능했지만, 강주연은 그에 해당하지 않았다.

반면 아스는 [수송 전문가]라는 Max 레벨의 수송룬을 보유 중이다.

전에 유은설을 수송했던 것처럼, 강주연도 아스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뉴 웨이브]를 통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내고, 억지로 아스를 불러냈다.

‘그래도 부족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가 이동하기엔 물이 너무 부족했다.

더 많은 물, 더 거대한 파도가 있어야만…

최소한 중간부 초반까진 도달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

‘지금 바로 뉴 웨이브 스킬을 써 줘.’

-알겠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고위 물속성 마력룬을 지니고 있는 아스.

녀석의 [뉴 웨이브]를 써서, 더 많은 물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아스가 별다른 질문없이 곧바로 마력을 집중시킨다.

무려 16레벨의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

그리고 용족만이 쓸 수 있다는 17레벨의 [드래고니안 주문].

화려한 룬 세팅이 그의 물 마법을 이끌었다.

그리고….

우우우-!!

쏴, 쏴아아아-!!

철썩-!!

내 [뉴 웨이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던전 안을 덮치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