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8 - 초월자의 방: 카날레스 (6)
초월자의 등장에도 강주연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플레임…!”
“잠깐만! 잠깐만, 주연아!”
나는 그런 강주연을 다급히 말렸다.
어차피 초월자는 우리가 공격해봤자 기스조차 안 나고, 애초에 적대적이지도 않기에 굳이 공격할 필요도 없었다.
“…왜?”
“오기 전에 말했잖아. 이 던전은 초월자라는 존재가 있다고. 아마 저 존재는 그 초월자, 이 방의 주인일 거야.”
“…….”
내 설득에 강주연의 기세가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초월자를 바라봤다.
방금 우리를 죽일 뻔했던 ‘시련’.
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데에서 화가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 나도 그 구조는 이해가 안 가긴 한다.
죽일 듯한 기세로 침임자를 몰아넣고, 그 시련을 이겨내면 호의적으로 나오는 태도라니.
이성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조화였다.
만약 초월자가 우리보다 강하지만 않았다면, 솔직히 시스템이고 뭐고 감정을 못 이겨 공격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맹약자는 말이 통하는군. 이미 플러비우스와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인가.”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초월자는 나와 플러비우스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하긴.
[용맹한 영원의 물결]이라는 룬을 획득하며, 온몸에 ‘물의 기운’을 잔뜩 두르고 다니는데… 드래곤들이 이를 몰라보는 것도 웃기긴 했다.
나는 적당히 예를 갖추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나도 맹약자인 그대를 보게 되어 반갑다. 내 이름은 카날레스. 그대들에게 시련을 내린 초월자이자, 수호의 레드 드래곤으로 불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수호의 레드 드래곤, 카날레스.
우리가 처음 <잿빛 불의 제단>에 들어올 때부터 추측했던, 그리고 <초월자의 방>에 들어오고부터 확신했던 초월자.
강주연이 새로 얻은 힘의 원류가 되는 전설 속 존재가, 우리 눈앞에 있었다.
카날레스가 살짝 고개를 돌려 강주연을 봤다.
“내 힘을 잇게 된 아이도 반갑구나. 그대가 오는 것까진 예측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그러자 강주연이 이마를 조금 찌푸리며 답했다.
“…누가 당신의 아이죠.”
“하하. 그건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느냐. 시스템에도 내 이름이 떴을 텐데.”
“…….”
플러비우스 때도 느꼈지만, 초월자들은 ‘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홀더들이 룬을 획득하고, 능력치를 올리는 시스템.
이들을 수치화한 각종 정보창.
어쩌면 초월자들 역시, 이러한 정보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일단….”
탁-
카날레스가 말을 돌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플러비우스 때도 본 적 있는 특수 워프.
그녀는 손가락 튕기기 한 번으로, 단숨에 우리를 자신의 레어로 이동시켰다.
“……!”
이를 처음 겪는 강주연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연인끼리는 닮는다더니…
이전에 내가 보였던 반응과 완전히 똑같다.
살짝 미소 지은 나는, 놀라지 말라고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앉지. 궁금한 게 많을 테니.”
카날레스의 말에 우리는 가볍게 자리를 찾아 앉았다.
테이블 위에선 역시 모래시계가 모래를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이 모래만큼이었다.
나는 잠시 강주연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도 내 시선에 눈을 맞추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
그런 의미가 담긴 끄덕임.
이미 던전에 입장하기 전부터, <초월자의 방> 구조와 보상에 대해선 설명을 마쳤었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오게 된 건 어쨌든 ‘박지환의 부탁’이 가장 컸기에…
만약 시련을 이겨낸다면, 그의 질문을 먼저 묻기로 합의했었다.
“카날레스 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맹약자라면 얼마든지.”
드래곤들은 맹약자인 용기사에게 호의적이다.
모든 드래곤들이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만난 드래곤들이, 하필 다 ‘맹약의 드래곤’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혹시 이 쪽지를 해석할 수 있으십니까?”
나는 마법가방에서 작은 쪽지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어제.
박지환이 떠나기 바로 직전에 내게 줬던 쪽지였다.
-만약 초월자를 만나면, 이 쪽지를 건네서 물어봐라. 아마 초월자라면 충분히 해석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답을 듣게 되면, 너희도 이 단체의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거다.
박지환은 최대한 정보를 감추는 대신.
던전 공략에 성공하면 비밀을 공유하는 결정을 내렸다.
어쨌든 던전 정보를 알려줄 정도로 우리를 신뢰하지만, 자신이 쫓는 단체의 정보를 공유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이기에 이런 형식을 취한 것 같았다.
카날레스는 내가 건넨 쪽지를 받더니, 살짝 웃으며 답했다.
“가벼운 마력 봉인이 걸려 있구나.”
“마력 봉인이요?”
“음. 마력에 조예가 깊은 이들만이 만들 수 있는 장치지. 일종의 결계라고 봐도 된다.”
카날레스는 그렇게 말하곤 손 끝에 작은 불꽃을 피어올렸다.
가볍게 태워지다가, 곧 재가 되어 사라지는 쪽지.
살짝 눈을 감은 그녀의 표정을 보니, 그게 마력 봉인을 푸는 나름의 방식인 것 같았다.
그리고 카날레스가 눈을 떴을 때.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루덴아크 학파에 대해 묻고 있구나.”
“루덴…아크?”
나는 살짝 눈을 뜨며 되물었다.
루덴아크 학파.
생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
분명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룬 정보>
◎이름: 빠른 회복력
◎등급: 레어(Rare) / 격하(Downgrade)
…
…
◎세부정보
: 야만 일족, 바바리안의 대표적인 강화술 중 하나. 루덴아크 주문의 특수한 힘을 통해 대상에 인위적으로 주입 및 각인됐다. 그 과정에서 본래의 힘보다 격하된 상태로 등록됐다.
그 첫 번째는 <구름을 가린 둥지>.
A급 괴수 만티코어 중, 돌연변이를 처치하고 획득했던 룬.
그 세부정보엔 ‘바바리안’과 ‘루덴아크’라는 생소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원작 정보와 초월자의 이야기들을 종합해, 이제는 그들이 ‘이계’에 있는 특정 종족이나 단체라는 것 정돈 눈치챘지만…
정확히 그들이 뭘 하는 이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계약자 정보>
◎이름: 본드 (본 드래곤)
-계약자: 도재현
◎분류: 아룡 (특수/제작)
…
…
◎세부정보
: 루덴아크 학파의 금지된 마법을 통해 지성을 부여받은 언데드 … …
그리고 두 번째 정보.
지금은 ‘티르본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으며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지만, 처음의 본드는 분명 이런 세부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한 번 더 나왔던 ‘루덴아크’라는 이름.
본드는 원래 황동연이 부리려던 언데드였다.
이는 즉, 루덴아크의 힘이 직간접적으로 <빌런> 클랜과도 연관이 있었다는 뜻.
추가로 일종의 흑마법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학파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덴아크는 악을 모조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끔찍한 인체 실험은 물론, 금기로 여겨지던 각종 악행들을 자행했었지. 특히 과거엔 마족이나 악마를 불러온 이력도 있어서 라프리온에선 대륙의 공적으로 몰렸었다.”
카날레스가 이에 대해 다시.
매우 상세하게 언급한다.
즉,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은 루덴아크 학파에 관한 질문이었고, 박지환이 쫓는 단체가 곧 그들이었던 것.
나와도 깊이 얽히고설켰던 정보들이…
돌고 돌아 결국 내게 온 게 참 아이러니했다.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카날레스에게 물었다.
“학파라는 건… 마법을 연구하는 곳인 겁니까?”
“그렇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들었다. 우리 드래곤들에겐 불필요하지만, 인간들에겐 그런 게 있다지. 하지만 루덴아크로 대표되는 그 악의 무리들은, 아마 정식으로 인정받는 학파가 아닐 거다.”
‘학파’에 관한 정보는 이미 홀더 계에 알려진 게 있다.
<플로리안 학파>와 <아드리안 학파>.
현 마법사 계열을 대표하는 두 갈래의 ‘주문법’을 만든 이들.
정석적인 [플로리안 주문]과 변칙적인 [아드리안 주문]이 이들의 학파에서 나온 주문법이다.
이는 마찬가지로 룬의 세부정보에 적혀 있는 내용이었고, 그 구체적인 조직 관계는 드러난 게 없었다.
‘아직 나처럼 고급 정보를 다루는 이들이 많지 않으니까.’
당장 <초월자의 방>만 해도, 아직 스승님께서 공개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다.
어쨌든 <루덴아크 학파> 역시 앞선 이들과 비슷한 부류의 학파….
그리고 카날레스의 말처럼, 대륙의 인간들에게 정식으론 인정받지 못한 학파일 것이다.
“이 쪽지엔 루덴아크 학파의 주력 능력이나 행보 등을 묻고 있는데… 그에 관해선 나도 딱히 알려줄 수 있는 게 없다. 인간들의 이야기는 인간들에게 묻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카날레스가 추가로 답변했다.
박지환이 쪽지로 질문한 내용들에 명쾌한 답을 주기 힘들다는 말.
이 던전의 초월자가 어떤 존재가 나올지 몰랐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나는 이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질문 하나를 더 건넸다.
“그럼 혹시 그들 중에도 초월자가 있습니까?”
“어쩌면. 당장 그자들이 제물을 바쳐 악마만 불러와도 초월자의 힘을 낼 거고, 본 적은 없지만 학파장이라 불린 인간은 매우 위험하다고 들었으니.”
그건 정말 달갑지 않은 정보였다.
박지환이 어째서 루덴아크 학파의 뒤를 쫓는 중인지 이해가 갔다.
<빌런>보다 더 악독한 무리들이, 드래곤에 버금가는 무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만약의 경우로 현실에 도달했을 때, 그들이 홀더 계에 미칠 악영향은 상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뒤 안 가리고 모든 걸 무너뜨리려고 들 수도 있었다.
마치 대화가 통하지 않는, ‘괴수’들처럼 말이다.
“맹약자여.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카날레스가 모래시계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초월자의 방>의 공략 보상은 크게 둘.
도전자들에게 대부분 호의적인 초월자들이 건네주는 ‘정보’와 물질적 혹은 능력적인 ‘상승’의 보상.
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때문에 더 많은 공략과 효율적인 질문이 필요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주연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 던전의 공략은 어디까지나 강주연이 없었으면 불가했다.
게다가 눈앞의 레드 드래곤, 카날레스는…
강주연의 전설룬과 깊은 연관이 있는 초월자.
내 개인적인 질문을 물어보는 것보단, 아무래도 강주연이 문답을 하는 게 조금 더 전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당신과 저는 대체 무슨 관계죠?”
존칭조차 없는 강주연의 첫 번째 질문은, 시작부터 화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