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0 - 선배님, 팬이에요 (1)
해남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는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본가에선 사흘 정도 더 머무르다가 왔다.
박지환에게 남길 메시지도 전달했고, 그동안 못 뵀던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초월자의 방>을 공략한 후, 사흘 간은 아무 걱정없이 놀았던 것 같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찾았던 본가였기에…
룬, 괴수, 훈련 등의 머리 아픈 이야기는 잠시 뒷전으로 하고 마음껏 여행을 즐겼다.
그렇게 서울에 돌아온 오늘.
나는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을 정리했다.
그 첫 번째는 <초월자의 방: 카날레스>를 공략했던 보상들이었다.
[놀라운 업적! 그 누구도 쌓기 힘든 금자탑, 초월자의 혹독한 시련을 모두 받고 이겨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에 당신이 보유한 모든 힘이, 빠르고 눈부신 성장을 이룹니다.]
[모든 일반 및 특수 능력치를 각각 4씩, 모든 내성 능력치를 각각 2씩 획득합니다.]
[보유한 모든 룬의 레벨이 1씩 오릅니다.]
초월자의 방을 공략하면 공통적으로 얻게 되는 보상이 있다.
하나는 능력치 상승, 다른 하나는 룬 레벨 상승.
전자의 경우 홀더가 보유한 능력치에 따라 그 상승폭이 달라진다.
실제로 플러비우스 공략 때는 모든 능력치 5에 내성 능력치가 3씩 올랐었는데, 이번엔 각각 4와 2씩 올랐다.
능력치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올리기 힘들다는 걸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였다.
<홀더 정보>
◎이름: 도재현
…
◎일반 능력치
[근력: 90] [마력: 95]
[속력: 92] [신성: 60]
[내구: 65] [정신: 64]
◎내성 능력치
-속성
[불: 21] [물: 23] [땅: 14] [바람: 13] [번개: 14]
-비속성
[독: 17]
◎특수 능력치
[통솔: 40]
…
…
그럼에도 <초월자의 방> 능력치 보상이 충분히 높은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 보상 덕분에 주력 능력치(근력, 마력, 속력)들은 드디어 90을 돌파했고, 다른 능력치들도 모두 60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정도면 A급 홀더들 중에서도 중상위, [광폭화]나 [용인화] 등의 펌핑 스킬을 쓰면 최상위에 다다를 능력치였다.
게다가 [모든 룬의 레벨이 1씩 오른다]는 건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보상이라, 사실상 던전 공략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보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른 보상은… 없는 것 같고.”
<초월자의 방: 플러비우스> 땐, 위의 보상 말고도 추가적인 보상이 있었다.
예를 들어, [파상검법]과 [유수검법]을 통합해 [용맹한 영원의 물결]이 생긴다거나, 본드가 한 차례 진화하며 티르본드가 됐던 것들….
그러나 지금은 공통적인 ‘시련 보상’만이 주어진다.
아무래도 추가 보상은 해당 초월자의 방과 도전자의 연관성, 보상과 관련된 특수한 상황 등을 모두 만족해야 주어지는 보상 같았다.
“그래도 주연이가 추가 보상을 받았으니까.”
아쉽긴 해도 강주연이 강해졌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강주연은 이번 던전과 연관이 깊은 홀더다.
방의 주인이자 초월자인 카날레스의 힘을 부여받았고, 실제로 공략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게 연쇄적으로 조건들을 만족시킨 건지, 그녀는 플러비우스 때의 나처럼 추가적인 보상을 받았다.
기존의 룬들이 강화됐고, 새로운 힘도 얻었다.
강주연은 내 여자친구이면서, 파티의 마력 공격을 도맡기도 하는 든든한 동료.
그런 그녀가 강해지는 건…
앞으로의 내 전력이 올라가는 일과 다름없었다.
“레스트 룸 보상은….”
나는 손에 쥐어진 견갑 하나를 매만졌다.
다채롭고 붉은 무늬들과 곳곳의 불꽃 문양.
작은 크기의 아이템인데도, 그 화려함이 돋보였다.
초월자의 ‘레스트 룸 보석함’에서 내가 선택한 보상이었다.
<아이템 정보>
◎이름: 영험한 드래곤 숄더
◎종류: 견갑
◎등급: 전설(Legendary)
◎내구도: 정상
◎제작자: -
◎특수효과
: 내구+5, 마력+5, 불내성+5
: 착용 시 사용하는 마력에 순도가 높아져, 마력 공격의 위력이 10% 증가한다. 속성이 부여될 경우, 10%가 추가로 증가한다.
: 마력의 회복 속도가 30% 빨라진다. 이 효과는 전투 상태에서도 유지된다.
◎세부정보
: 수호의 레드 드래곤, 카날레스가 유희 시절 차고 다녔다던 견갑.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평범한 견갑으론 사용할 수 없는 놀라운 힘들을 다룰 수 있다.
마치 플리버우스 때 선택했던 [영험한 드래곤부츠]와 세트를 이루는 듯한 아이템.
전설급 아이템답게, 그 효과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마력 공격의 위력을 증가시키는 공격적인 성향의 특수 효과와 마력 회복 속도를 증진시키는 보조 효과가 곁들어져 있었다.
얼핏 내 능력들만 생각해 봐도,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특수효과 등 각종 마력 관련 능력과 큰 시너지를 보일 것 같은 효과들이었다.
“…많기도 하다.”
나는 견갑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드래곤들이 초월자인 방들을 공략하다 보니, 그들과 관련된 전설급 아이템이 벌써 두 개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초월자의 방>을 계속 공략할 텐데, 이러다가 나중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용기사 장비 세트를 맞추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음…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고.”
미뤄뒀던 정보창과 아이템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해남에서 서울까지 대략 2시간.
[워프 게이트]를 타고, 자질구레한 이동을 하느라 못 봤던 연락들.
그새를 못 참고 수십 통의 문자와 전화가 쌓여 있었다.
[채은이] 재현아 언제와..ㅠ 나 아빠랑 훈련하다가 물집잡혔어 ㅠ.ㅠ
[가은이] 으아아- 일본 음식 진짜 맛없어어ㅓㅓ
“푸흐-.”
귀여운 문자들을 보니 자연스레 웃음이 터진다.
딱 김채은과 문가은다운 문자였다.
본가 여행에 강주연만 같이 간다는 사실에 잠깐 삐지기도 했던 그녀들이지만, 나중엔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됐는지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며, 적당한 답을 보냈다.
“그나저나 다들 바쁘게 지내네.”
이번 방학에 꽤 할 게 많은 나지만, 내 여자친구들도 나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김채은은 새로 얻은 능력을 더 단단히 다지고, 아빠에게 검술도 배우며 신체를 단련 중이었고…
문가은은 파견 명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내가 추천한 아키바 미유에게 교육을 받고 있었다.
강주연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들어 더욱 바빠진 <불의 심판>이기에, 선임 클랜원인 그녀 또한 상당히 일이 많아졌다.
해남에서도 던전 공략이 끝나자, 곧장 나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왔었다.
서로가 워낙 할 일이 많고 바쁜 홀더들이다 보니, 남자친구의 빽빽한 일정에 대해서도 나름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음… 다른 건….”
나는 다시 핸드폰의 화면을 쓱쓱 내렸다.
2시간 만에 온 연락인데,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이름들도 꽤 있었다.
[이현호/안티빌런] 회장. 빌런 잔당들을 포박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이걸 부원들한테 지급하고 싶은데, 언제 한번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이지혜/홀더협회] 홀더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홀더님의 A급 홀더 등록증이 나와서 가져가시라고 연락 드렸어요! 시간 될 때 협회 한번 오세요!! 그때 제가 밥도 살게요 ㅎ.ㅎ 아 참, 인사가 늦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 한번 시간 내야겠네.”
써클, 협회, 그 외 인간관계 등…
그동안 성장에만 집중하느라 못 본 이들이 많았다.
특히 나와 장비 계약을 맺었던 최유민과도 안본 지가 거의 세 달 째다.
언제 한번 날 잡아서 그들과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탁원호 교수님/스승님] 문자 보면 전화해라.
아주 익숙한 이름에게도 문자가 와 있었다.
“딱딱한 건 여전하시네.”
또 다른 스승님인 김명현 교수와 정반대의 문자 스타일이다.
한결 같은 스승님의 말투에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계셨는지, 얼마 가지 않아 금세 통화가 연결됐다.
-탁원호입니다.
“저예요, 스승님. 또 이름 안 보고 받으셨어요?”
-음. 좀 바빠서.
한동안 바쁜 일이 끝났다고 들었는데, 신입생 입학이 다가와서인지 또 바빠지신 것 같다.
거칠게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도 들렸다.
-부탁할 게 있어 전화했다.
“부탁이요?”
-음.
스승님이 나한테 뭔가 부탁할 만한 게 있나?
그런 의문이 들 때쯤, 스승님이 뜬금없는 말을 꺼내셨다.
-도재현. 난 네가 제자인 게 자랑스럽다. 처음 볼 때만 해도 부족한 게 많은 학생이었는데, 고작 1년 만에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홀더가 되었으니.
“……?”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 정도 밑밥을 까는 거야?
스승님께서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실 분이 절대 아닌데.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학생이란 건, 곧 고학년… 즉, 선배들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또 그렇다는 건…
“아니, 스승님. 그게 다 무슨 소리세요, 대체.”
-…흠흠. 내일이 신입생 입학시험인 건 알고 있나?
스승님이 머쓱한 말투로 본론을 꺼내셨다.
신입생 입학시험.
‘서울 홀더 아카데미’에 합격한 학생들이, 능력과 등급을 측정하고 반을 선정하는 시험.
내가 처음으로 원작의 주연들과 만나고, 박진우에게서 이겨 [구도자의 땀방울]을 얻어냈던 시험이기도 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요즘 내 일에만 집중하며 지내다 보니, 그런 이벤트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스승님께 방금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군. 내일 입학시험에 있을 ‘선배들의 인사말’을, 재현이 네가 해줬으면 해서 전화했다.
“…예?”
갑작스러운 제안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선배들의 인사말.
이건 일종의 신입생 환영 연설 같은 것으로, 후배들에게 인사 및 간단한 조언들을 건네는 연설이다.
입학시험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실전 대련’의 시작 전에 하는 연설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거 원래 학생회장이 하는 거 아니에요?”
-이번엔 여러 가지 상황과 특수성을 고려해 네가 하게 됐다. 학생회장도 수락했고, 신입생들의 설문 결과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네가 나왔다.
원래라면 아카데미 학생회장이 맡아야 할 연설.
이를 내가 맡게됐다는 소식.
아무래도 최근 들어 급격히 상승한 내 인지도와 아카데미에서의 위치 등을 고려한 결정인 듯 보였다.
‘음….’
나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좋다.
재밌어 보인다.
원작에서 새 에피소드를 이끌어가던 인물들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고, 선배로서 그들을 본다면 내게도 신선한 느낌을 줄 것 같았다.
다만….
“다 좋은데, 그걸 하루 전에 말씀해주시면…”
-흠흠. 미안하다. 일이 좀 바빠서… 깜빡했다.
이래서 그렇게 밑밥을 까셨던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