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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23)화 (223/353)

Chapter 223 - 여우를 탄 문가은 (1)

남극의 한 크레바스.

까마득한 어둠 속에 가려진 특수 동굴.

이제는 길을 외울 정도로 익숙해진 그 어둠 속으로, 황성연은 가볍게 파쿠르하며 들어갔다.

캉-

그그그-

“…….”

여긴 언제 와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같은 절벽, 같은 어둠, 같은 입구.

안으로 들어온 후의 풍경도 모두 비슷했다.

그리고….

“오셨습니까.”

이 스산한 목소리와 온몸을 가린 로브마저 똑같다.

황성연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매번 느끼지만, 늘 재미없는 인사군.”

“죄송합니다. 태생이 연구자라 유머 감각은 없습니다.” 

“방금 말은 좀 재밌었군. 너 같은 사이코도 연구자로 쳐주는 건가.”

황성연의 그런 비아냥에도, 로브의 남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클클클-

오히려 가만히 진한 웃음을 흘렸다.

마치 노인이 내는 듯한, 괴이한 웃음 소리.

평범한 이에게 사이코라고 하면 욕이 되지만, 진짜 사이코에게 그런 말은 칭찬이 된다.

게다가 로브의 남자는 사이코라는 말론 다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악의 추종자.

오랜만에 듣는 별칭에 자연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 이곳을 찾는 일이 잦으시군요.”

“그럴 일들이 자꾸 터지니까.”

탁-

그 말과 함께, 황성연이 몇 개로 접힌 신문을 로브의 남자에게 던졌다.

신문 안엔 <초월자의 방>에 대한 정보, ‘드래곤’과 SS급 괴수 논의 등 최근 홀더 학계를 뜨겁게 달군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음?”

로브의 남자는 가볍게 신문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갔다.

1분, 2분, 5분…

조용히 시간이 흘러간다.

온몸이 로브로 가려진 탓에, 겉보기엔 아무런 변화 없이 신문을 읽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만나온 황성연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약간의 동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흔들림은, 그를 만난 이후 처음 겪는 모습이었다.

“정보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공개됐군요.”

“재밌군. 그게 감상의 끝인가?”

또 한 번, 상대의 심기를 긁는 황성연의 비아냥.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먹혀든 건지…

화륵-!

문득 검은 불꽃이 나타나, 로브의 남자에게 쥐어진 신문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리곤 서늘한 빛을 내는 안광이 황성연을 향했다.

“까득- 걱정하지 마시죠. 계획엔 차질이 없으니.”

그런 말이 내뱉어졌을 때였다.

콰아앙-!

갑자기 검을 꺼내든 황성연이, 그대로 마력을 쏟아내 동굴의 왼쪽 벽면을 박살내 버렸다.

그리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앞을 바라봤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보군. 난 네 계약 상대지, 부하 같은 게 아니야. 별말없이 들어주니, 자꾸 선을 넘는데… 적당히 깝치는 게 좋을 거다.”

“…….”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로브의 남자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먼저 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너무 의외의 상황이라 제가 실수했군요. 저도 어디까지나 황성연 님을 계약 상대로 보지, 부하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

“그리고 계획에 차질이 없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인간들이 ‘초월자’의 정보를 얻었다곤 해도, 아직 ‘이탈자’에 대한 정보는 없으니까요.”

그 말엔 황성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들의 계획은 ‘이탈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초월자들처럼 일부 기억을 보존하고, 나름의 사유 공간을 부여받지만…

이계로부터 파생된 공간에 머무르지 못하고, 현세에 어색하게 융화되는 존재들.

마치, 로브의 남자처럼.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이상, 이탈자에 대해선 알아내기 힘들 겁니다.”

두 사람의 계획은 이러한 이탈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더 많은 이탈자를 양성해내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원하는 ‘특정 초월자’까지 이탈자로 만드는 것.

그게 최종적인 목표였다.

이에 관한 핵심 정보는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알려진다 하더라도, 이렇듯 복잡한 계획까지 파헤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자꾸 거슬리게 하긴 하는군요. 안 그래도 웬 정체 모를 홀더 한 명이 우리 루덴아크의 뒤를 쫓는다기에 뭔가 싶었는데….”

로브의 남자가 시선을 다시 황성연에게 향했다.

“혹시 이번 정보를 캐낸 홀더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유은설이라는 S급 홀더다. 그리고 듣기론, 도재현. 그 자도 크게 일조했다더군. 소문으론 도재현이 앞장섰고, 유은설은 거들기만 했다고도 들었다.”

“도재현… 또 그자입니까.”

도재현에 대한 정보는 로브의 남자도 이미 접한 적이 있었다.

자신들과의 협력 클랜, <빌런>을 무너뜨리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했던 홀더.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파르게 성장하며, 어느새 아카데미를 대표하게 된 홀더.

그 이름은 시도때도 없이 들려오곤 했다.

계획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자의 이름이 보였었다.

“재미있는 녀석이지.”

황성연이 그를 생각하자, 살짝 웃음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는 일’의 기준점이 꽤 높은 황성연의 세계에서… 도재현이란 존재는 나름 큰 비중을 차지하는 흥미 요소였다.

<빌런> 소탕 작전 이후로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황성연은 아직도 그날의 결투를 한 번씩 떠올리곤 했다.

“슬슬 사람을 붙여야겠군요.”

그 말에 황성연이 되물었다.

“도재현에게 말인가?”

“예.”

“아카데미엔 더 이상 사람을 붙이기 힘들 텐데. 허술했던 예전과는 다르다.”

그 허술했던 틈에 직접 몸을 담갔던 황성연은 알고 있었다.

교수진부터 학생, 운영진까지.

<빌런>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던 아카데미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 차례 홍역을 겪고 난 뒤 그들은 대변혁을 이뤘고, 그 덕에 전과는 달리 스파이를 침투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황성연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로브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틈은 만들면 되니까요.”

확신에 찬 그 말에, 황성연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브의 남자가 재수없는 면이 있긴 하지만, 실력이 없는 이탈자는 아니다.

항상 기대 이상의 결과물들을 보여주곤 했었고, 그렇기에 황성연도 망설임없이 그와 계약을 맺었었다.

아마 이번에도 분명, 그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만….

“죽이진 마라. 일부러 남겨놓은 메인 디쉬니까.”

도재현을 상대하는 즐거움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 황성연이었다.

* * *

‘선배의 인사말’을 의도했던 대로, 성공적으로 끝낸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는 중이었다.

앞으로 새 막을 열 주역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지만, 방학 동안 일정이 꽤 많아서 조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마 깜짝 놀라겠지?”

이번 계획은 일본 방문.

지금쯤 나고야에서 아키바와 함께 열심히 훈련 중일 문가은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아직 말도 안 해놔서, 서프라이즈로 그녀를 놀래킬 생각이었다.

“아아. 재현이는 너무해애-. 주연이랑 놀고 오자마자, 바로 가은이랑 놀러 가버리고.”

옆에 있던 김채은이, 내 팔을 붙잡으며 울상으로 말했다.

물론, 진심으로 삐진 건 아닐 거다.

서울로 오고 나선 계속 그녀와 함께 있었고, 어젯밤도… 같이 보냈으니까.

괜히 장난으로 투덜댄다는 걸 알기에, 나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췄다.

“또 왜 그러실까. 어제도 오늘도 같이 있었는데.”

“으음- 헤헤. 방금 키스로 화 풀렸어.”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웃으며 김채은의 머리를 쓰다듬곤 다시 짐을 쌌다.

이번 방문은 몇몇 비즈니스적인 만남을 제외하면, 정말 문가은만 보려고 가는 거라 많은 짐이 필요치는 않았다.

“아, 참. 스승님이 언제 한 번 보재.”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선영 홀더님?”

“응. 내가 스승님껜 말씀드렸거든. 그랬더니 우리랑 같이 꼭 밥 한 번 먹고 싶으시대.”

문득 정선영과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김채은의 마음을 몰라보던 시절에, 은근히 내게 눈치를 줬던 모습.

그녀는 아마 포항에서부터…

우리가 커플이 되는 걸 열렬히 응원했던 모양이다.

‘…어째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네.’

정선영도 그렇고, 저번의 성나연도 그렇고.

우리들 주변엔 유독 우리들의 연애를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 한 번 보자. 나도 선배님께 받은 게 많기도 하니까.”

그렇게 정선영과의 약속을 잡고, 나는 마저 짐을 모두 쌌다.

그리고 김채은에게 잘 갔다 오라는 키스를 한 번 더 받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나고야는 이미 한 번 와본 적이 있기에, [워프 게이트]를 타고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고야시의 아쓰타 신궁.

전에 던전 조사를 위해 왔던 이곳에 발을 디디자, 반가운 얼굴이 날 마중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재현 님.”

“와… 이게 얼마만이에요? 진짜 반가워요, 아키바 씨.”

한결같이 정돈된 자세와 트레이드 마크처럼 입고 있는 무녀복.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아키바인 걸 알 수 있었다.

“저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혹시 짐은…”

“아, 숙소에 풀고 왔어요. 다른 볼 일도 좀 있어서. 그보다 가은이 좀 먼저 볼 수 있을까요? 말을 안 하고 와서, 놀래켜 주려고 하거든요. 하하.”

아키바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지인이기에, 함께 차 한 잔 마시고 싶기도 했다.

그간 못 다 한 이야기가 많기도 하고.

하지만 시간은 많고, 일단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은 문가은을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곧장 문가은부터 찾았는데…

어쩐지 아키바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 가은 님….”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던 아키바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날 봤다.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대신,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예?”

뭘 놀라지 말라는 거지.

전에 비해 너무 강해졌다, 뭐 이런 건가?

‘훈련 기간이 짧아서 아닐 텐데.’

그러기엔 문가은이 일본에 온 시간이 너무 짧았다.

고개가 갸웃해졌지만…

어쨌든 나는 아키바를 따라 신궁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문을 거쳐 도착한 곳은 <음습한 요괴 소굴>.

일전에 조사하러 왔을 때, 공략한 경험이 있는 던전이었다.

깊게 들어가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초입부에서 얼마 가지 않아 문가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뭐야, 저게?”

놀라지 말라, 는 아키바의 말을.

안타깝게도 난 수행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홉 개의 꼬리와 반짝이는 주홍빛 갈기.

던전 안을 다 덮을 만한, 꽤 커다란 몸집.

그 주변을 모두 덮듯 넘실거리는 마력.

저번 던전 공략 땐 한 번도 본 적 없던…

거대 여우.

정확히는 구미호 한 마리가, 문가은을 직접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 재현이…?!”

뒤늦게 날 발견한 문가은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놀라 소리치고 싶은 건 이쪽이다.

활 실력 키우라고 일본에 보냈는데…

웬 구미호를 길들이고 있었다니.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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