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5 - 여우를 탄 문가은 (3)
“가은 님도 잘 아시겠지만, 신성 계열 홀더들의 능력은 크게 네 종류로 나뉩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아키바가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문가은은 옷차림에서 관심을 떼고 진지하게 이를 경청했다.
“첫 번재는 치유 및 방어 계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졌고, 실제로 홀더들이 가장 많이 다루는 분야입니다.”
치유와 방어는 신성 계열의 핵심이자 기초다.
동료를 괴수로부터 보호하고, 다친 동료는 치료해주는 것.
이게 던전 및 필드에서 괴수를 사냥할 때 파티원들이 기대하는 신성 계열의 가장 큰 역할이고, 또 신성 계열 홀더들이 처음 배우는 기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보편적인 룬은 [치유], 스킬은 [큐어].
관련 신인 레클리스의 힘을 빌려오는 능력들이었다.
“두 번째는 주술 계열 및 상태 이상을 다루는 능력들입니다.”
시스템은 악신의 힘을 빌리는 것도 ‘신성’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간단한 저주]나 [악귀의 저주] 등 주술과 관련된 룬의 힘 또한 신성 계열이 다루는 능력에 포함되고, 또 굳이 주술이 아니더라도 [바인드]나 [슬로우] 등 상대에게 디버프를 거는 각종 상태 이상 스킬은 마찬가지로 신성 계열 능력에 해당했다.
이런 능력을 중점적으로 키운 신성 계열 홀더들은, 주술 계열 홀더 혹은 주술사 계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세 번째가 직접 공격이었나요?”
이번엔 가만히 설명을 듣던 문가은이 물었다.
그에 아키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가장 선호되지 않는 분야죠.”
신성 계열 홀더라고 해서 전투 능력이 전무한 건 아니다.
[홀리 애로우] 같은 아주 기초적인 공격 스킬도 있고, 소문으로만 들리는 [일룸 퍼니쉬먼트] 등의 스킬은 압도적인 힘을 지닌 스킬들로 분류된다.
특히 언데드나 사령 등을 상대하는 특수 상황에선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신성 계열은 신성 계열이다.
간접 전투에 초점이 맞춰진 계열 특성상 공격 능력엔 분명한 한계가 있고, 또 여러 가지 상황이나 조건이 만족해야 큰 힘을 발휘하기에…
이 능력들은 그리 선호되지 않는 분야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보조 계열. 치유 및 방어 다음으론 가장 많은 쓰임새가 있는 분야입니다.”
동료 혹은 스스로에게 지원 능력을 활용하는 보조 계열.
일종의 버프 계열이라고 불리는 분야.
[정신보조] 룬의 [레스트]가 가장 대표적이고, [강화보조]의 [헤이스트]나 [스트렝스] 같은 스킬들도 자주 활용되는 능력들이었다.
그리고….
“가은 님과 제가 이번 교육을 통해 확인할 강신술 룬의 재능 또한, 이러한 보조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키바가 기나긴 설명을 이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강신술]은 홀더가 신성력이 담긴 아이템 혹은 특수한 능력과 감응했을 때, 해당 매개체로부터 신의 힘을 빌려 육체에 불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룬.
‘신의 힘을 빌린다!’는 문구 때문에 얼핏 들으면 신화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신의 힘이나 설화의 짜임새 자체가 매우 미약한 탓에 레어룬으로 판정받는 능력이었다.
“다른 보조 계열 능력이 자신과 동료 모두에게 쓸 수 있다면, 강신술은 오로지 사용 홀더 스스로에게만 쓸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설명에 문가은이 되물었다.
“그럼 신성 계열이 직접전투 계열이 되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가은 님께서는 혹시 몽크나 성기사와 같은 특수한 형태의 멀티 홀더들을 아십니까?”
“아, 네. 들어본 적은 있어요. 그럼 그들이…”
“맞습니다.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은 강신술을 사용하는 홀더들입니다.”
후천적 재능으로 얻어지는 힘들은 발견 자체가 어렵긴 하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해당 홀더의 강력한 자산이 된다.
[강신술] 역시 마찬가지.
이 룬의 힘 자체는 단지 신체강화 형태의 보조룬일 뿐이지만, 원래 직접전투 계열인 홀더가 이를 얻는다면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전투 무녀’로 불리는 특수 홀더들이 이런 케이스였고, 유럽으로 시선을 돌리면 ‘성기사’와 같은 이들이 여기에 속했다.
아키바는 오늘 문가은에게 이런 멀티 홀더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했다.
“이해했어요. 그럼 뭐부터 하면 되나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교육에 문가은도 나름 열의가 생겼다.
그녀의 적극적인 질문에 아키바가 테이블에 놓인 아이템들을 가리켰다.
“가은 님이 보유한 신성력을 끌어올려, 이 아이템들과의 감응을 시도할 겁니다.”
“신성 감응 말인가요?”
홀더들이 마력을 활용해 마력 감응을 사용하듯, 신성력을 사용하면 ‘신성 감응’이라는 걸 쓸 수 있다.
그 과정은 [마력제어] 룬을 활용하는 구조와 매우 비슷해서 굳이 신성 계열이 아니라도 누구나 이를 쓸 수 있는데, 이는 신성 계열 홀더들이 신성력과 마력을 둘 다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그래서인지 신성 계열 공통룬 중엔 [신성증폭] 등의 응용 계통 룬은 있지만, [신성제어]와 같은 기초 계통 룬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강신술에 재능이 있는 홀더는 이렇듯 신성 관련 아이템과의 감응만으로도 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8개의 아이템들은, 강신술에 활용되는 대표적인 아이템들. 한 아이템의 감응에 대략 30분 정도가 걸리니, 4시간이면 오늘 확인을 마칠 수 있을 겁니다.”
아키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설명을 마쳤다.
8개의 아이템 신성력 감응을 하는 것.
그게 오늘 할 교육이었다.
아마 그를 통해 재능이 있는 게 확인되면, 이후에 천천히 [강신술]을 익히는 훈련을 하겠지.
그런데 가만히 듣던 문가은이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8개가 아니라 9개 아닌가요?”
테이블에 놓인 아이템.
그 개수가 총 9개였기 때문.
저마다 빛을 내는 각종 특이 아이템들에 이어, 끝자락엔 웬 반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키바는 그에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템은 잘못 가져왔습니다. 신궁 내에서 보관하는 정체불명의 아이템인데, 후배 무녀가 아이템을 조달해오는 과정에서 실수로 같이 가져왔더군요.”
“그럼 저건 감응 안 하나요?”
“이미 해봤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신묘한 기운을 풍기긴 해도, 신성력 없는 평범한 아이템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키바가 첫 번째 영물을 꺼내들었다.
“그럼 시작하시죠, 가은 님.”
“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패였다.
문가은은 안타깝게도 [강신술]에 재능이 없었다.
4시간동안 8개로 대표되는 신성 관련 아이템들에 모두 감응을 했지만,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영물들은 없었다.
간혹 가다 이렇게 별 반응이 없어도 수업을 이어가면 [강신술] 개화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일말의 가능성만을 믿고 수련을 진행하기엔 이번 교육의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문가은도, 아키바도.
심지어 호위로 함께 온 성나연조차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는 홀더들은 아니었다.
“아쉽군요.”
아키바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문가은의 성장을 바랐었다.
존경하는 홀더이자 은인인 도재현의 부탁이기도 했고, 활을 다룬다는 점에서 동질감도 느껴졌었으니까.
하지만 그 성장에 맞춘 플랜은 아쉽게도 실패였다.
“어쩔 수 없죠. 원하는 대로 딱딱 재능이 나오면, 고위 홀더들이 넘쳐날 테니까요.”
다행히 문가은은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문가은은 <로열> 클랜 핵심 간부의 딸이다.
워낙 좋은 집안과 명성 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만큼, 그녀 또한 지금껏 재능 개화에 있어 무수히 많은 시도들을 했었다.
이번 시도는 그렇듯 스쳐간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고, 그게 마냥 성공적으로 흐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문가은은 정말, 실패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일부턴 다시 정석적인 궁술 훈련으로 가는 건가요?”
그저 다음 날 일정을 묻는 게 다였다.
그 모습에 아키바는 살짝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홀더지만, 멘탈적인 요소에선 누구보다 더 잘 단련되고 뛰어난 홀더라는 게 느껴졌다.
괜히 도재현이 맡긴 홀더가 아니었다.
“예. 다시 계획을 짜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걸로 끝.
오늘의 훈련은 종료였다.
무려 4시간 동안이나 진행된 확인 과정이었기에, 어느새 공터 밖은 캄캄한 밤이 돼 있었다.
문가은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래도 옷은 달라고 할까?’
[강신술]을 익히지 못하게 돼 큰 의미가 없어졌지만, 도재현이 아키바에게 특별 주문한 무녀복이었기에…
이대로 반납하기에도 아까웠다.
문가은은 나중에 아키바에게 말해서, 따로 이를 구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데구르르-
탁-
“…어?”
그러던 중.
그녀의 발치에 웬 물건 하나가 걸렸다.
곧장 들어 확인해 보니…
아키바의 후배 무녀가 잘못 가져왔다던 물건.
[신묘한 반지]라는 특수 아이템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테이블에 놓여 있었는데, 아키바와 문가은 모두 워낙 수련에 집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정말 별것 없는 아이템이긴 하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본 문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바의 말대로였다.
무려 전설급이라는 등급을 보유한 아이템이지만, 무언가 봉인이 됐는지 아무런 효과도 내재스킬도 없었다.
그렇다고 ‘봉인을 풀어보자!’고 하기엔…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전세계에 셀 수도 없이 많다.
봉인을 풀어야 전설급인 거지, 봉인을 못 풀면 그냥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이렇듯 해금 조건도 없고, 아이템 이름에도 ‘신묘한’ 같은 쓸데없는 수식어가 붙은 아이템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감응은 한번 해볼까?’
불쑥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 했던 확인 과정이 괜히 아까워서일까.
이 잡동사니 같은 아이템에 ‘신성 감응’을 시도하고 싶었다.
다행히 아직 신성력이 남아 있어, 재미 삼아 해보는 시도에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어?”
갑작스럽게.
문가은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정보창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격을 갖춘 이의 신성 감응이 ‘신묘한 반지’에 닿았습니다! ‘신묘한 반지’의 봉인이 모두 해금되어, ‘프레이야의 반지’라는 진명을 되찾습니다.]
[바람의 힘을 담은 무기술, 한계를 넘어선 감각, 신수에 승마한 경험. 주어진 모든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또한, 특별한 당신의 기운과 반지의 감응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프레이야의 반지’에 담긴 모든 힘을 흡수합니다.]
[지고하고 찬란했던 기억들이 당신의 어깨에 와 내려앉습니다. 거룩한 여전사의 힘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강인하게 만들 것입니다. … …]
…
…
[새로운 룬 ‘전장의 발키리’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룬 ‘발키리의 말’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룬 ‘강신술’을 얻었습니다.]
…
…
…문가은은 그날부터 신을 믿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