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8 - 공격대 모집 (1)
문가은을 놀래켜주려 방문했다가 되려 놀라기만한 채 돌아온 일본 여행.
나는 이틀 정도 나고야에 머물다가 금세 한국으로 돌아왔다.
애초부터 잠깐의 휴식을 위해 갔었고, 가은이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려고 갔던 거니까.
이미 [전장의 발키리]를 비롯해 각종 새로운 힘들에 적응하는 그녀에게 내가 홀더적으로 도와줄 건 딱히 없었다.
그 추가적인 교육은 원래대로 아키바가 맡았다.
새로 얻은 힘의 적응과 정석적인 궁술 교육.
문가은은 그에 관한 수련을 조금 더 마친 뒤 귀국하기로 했다.
-왜애애… 조금만 더 있다 가아….
-…….
물론, 떠나는 데에 힘이 좀 들긴 했다.
한 번 눈을 뜨기 시작하자 브레이크가 사라진 문가은.
그녀를 제어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있었으면 진짜 복상사했을지도 몰라.’
그런 문가은을 겨우 떼내며, 난 먼저 한국으로 귀국했다.
아쉽지만 한국에서 준비하고 마무리할 계획이 있었다.
“오랜만이다, 회장.”
그 시작점으로서 가장 먼저 만난 건 이현호.
<안티 빌런> 써클의 부원이자, 내 2학년 동기.
대장장이 계열에선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홀더.
방학 전후를 통틀어 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우… 그것 좀 안 하면 안 되냐? 같은 동기끼리 회장이 뭐야.”
아직도 ‘회장’이라는 표현을 쓰며 딱딱하게 말하는 이현호.
그 모습에 난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현호가 워낙 고지식한 면이 있어 그런 거겠지만, 그런 호칭을 들으면 유독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자 그는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나는 이게 편하다.”
“뭔가 나도 이현호 부원, 이렇게 불러야 될 것 같잖아.”
“그것도 나쁘진 않지.”
“아오….”
답답하다는 얼굴을 했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서로를 봤다.
사실 이런 가벼운 대화가 오가는 것도 기적이었다.
처음 이현호와 대화할 땐, 정말 목석이랑 이야기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딱딱하게 일 얘기만 했었으니까.
그는 정말 복수만을 위해 써클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때문에 다른 이들과의 친분도 애써 만들지 않으려고 했겠지.
‘많이 유해졌네, 현호도.’
<빌런> 소탕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이현호도 나름대로 밝아졌다는 게 눈에 보였다.
겉으론 여전히 딱딱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지만 말이다.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문득 일전에 이현호에게 들었던 연락이 생각나 물었다.
“저번에 새로 개발했다던 빌런 포박용 아이템은 어떻게 됐어?”
“부회장에게 맡겼다.”
“주연이?”
“그래. 불의 심판 클랜에도 배포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해준다더군.”
3학년 윤지아가 졸업한 이후.
<안티 빌런> 써클의 부회장은 자연스럽게 공석이 됐다.
마땅히 역할을 수행할 경력 있는 학생도 없고, 또 여름에 해체를 선언한 써클이었기에 굳이 새로 부회장을 뽑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할게.
-어? 진짜?
-응.
하지만 강주연이 선뜻 그 자리에 나서며 공석이 채워졌다.
외부에서의 명성과 내부에서의 활약 모두 충분한 그녀의 부회장직을 반대하는 써클 부원은 없었다.
애초에 아무도 안 하려고 했으니까.
덕분에 강주연은 그동안 나를 대신해 써클 내 궂은 일을 도맡아 해줬다.
특히 <빌런> 클랜의 잔당 소탕과 관련해, 그녀의 소속 클랜이자 우리의 우호 클랜인 <불의 심판>과 연계하며 다양한 업무를 처리했다.
이번에 이현호가 개발했다던 특수 아이템도 그녀가 직접 배포해준 모양이었다.
‘나중에 보답해줘야겠네.’
여자친구라고 해서 이런 게 결코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귀찮은 일을 마다 하지 않고 날 도와준 그녀에게 꼭 보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곤 다시 이현호를 보며 본론을 꺼냈다.
“오늘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서 불렀어.”
“…소개?”
“응. 우리랑 같은 학년에, 너랑 같은 대장장이 계열인데…”
잠깐 설명하려던 도중, 이현호가 말을 잘랐다.
“여자엔 관심없다.”
“…아오, 그런 거 아니야. 하여간 누가 이현호 아니랄까 봐.”
그와중에 여자인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쓸데없는 곳에서 눈치가 빠른 이현호다.
물론, 정말 그런 의미에서 소개가 아니라, 일적인 부분을 위한 소개였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약속했던 주인공이 써클 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재현아!”
“어, 왔어?”
최유민이었다.
그녀는 나와 장비 계약을 맺으며 연이 닿았던 홀더인데, 최근 들어 나도 장비들이 모두 갖춰지면서 마땅히 그녀를 만날 일이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이쪽은 최유민. 나랑 학기 초부터 알게 된 사이로, 내 기준 대장장이 계열에서 현호 다음 가는 실력자야.”
“최유민이라고 해.”
최유민은 나중에 가면 이현호를 뛰어넘는다.
그녀가 보유한 [철혈의 야장] 룬은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그녀를 국내 최고의 대장장이로 발돋움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런 그녀의 명성은 훗날 세계로까지 뻗어간다.
다만, 그거야 어쨌든 나중의 이야기.
지금은 단지 유망한 대장장이 계열 홀더일 뿐, 그 명성이 이현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현호는 학생 신분으로 벌써 에픽급 아이템을 제작한 대장장이 계열 홀더.
누가 뭐라 해도, 이 분야에서 국내 최대 기대주였으니까.
“이쪽은 이현호. 뭐, 현호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잘 알지?”
“아, 응. 당연하지.”
“반갑다. 이현호다.”
내 소개에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역시 이현호는 최유민을 모르는 눈치였다.
나름 최근 들어 레어급 아이템을 다수 제작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는 최유민인데, 아직 이현호의 눈도장에 들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하긴. 현호야 원래 그렇지.’
생각해 보니 이현호는 자신의 계열이나 아카데미에 별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빌런>과 <안티 빌런> 뿐.
써클 부원들이 아니면 달리 친구도 없는 녀석이었다.
아마 나 역시 <안티 빌런>이 아니었다면, 그와 이 정도로 친해지진 못했을 거다.
“너흴 갑자기 이렇게 부르고 소개한 건, 나랑 같이 일 하나를 해줬으면 해서야.”
“일?”
“응.”
나는 미리 준비해온 도안과 계약서를 꺼냈다.
도안엔 특수 장비에 관한 간략한 요구사항과 설명들이 적혀있었고, 계약서엔 추가로 제작해야 할 장비의 예상 수량과 계약금 등 관련 정보들이 기록돼 있었다.
탁- 타다닥-
데구르르-
그리고 테이블에 놓는 역으로 쏟는 마법 가방.
그 안에선 수십 개의 고급 마력석이 튀어나왔다.
대장장이들이 직접 마력석을 구해야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내가 미리 준비해온 것들이었다.
“기한은 오늘부터 딱 3주. 여기 적힌 특수 아이템과 장비들을 모두 제작해줬으면 해. 등급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레어급과 노멀급의 비율을 맞춰서. 혹시나 제작 도중 에픽급이 터지면 별도로 구매할게.”
내용은 간단하다.
도안과 계약서에 적힌 업무를 함께 처리해달라.
다만, 그 안에 담긴 업무량과 보상이 아득한 수준일 뿐이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석과 계약 선수금.
그리고 계약서에 기록된 어마어마한 장비 물량을 확인한 두 사람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현호조차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만도 하다.
나 역시 이번 건은 큰맘 먹고,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많이 쏟아붓는 거니까.
“인력이 부족하다면 너희가 아는 홀더나 같은 계열 내에서 추가 인원을 고용해도 좋아. 나한테 연락만 하면 조건은 모두 맞춰줄게. 대신 웬만해선 명장급 대장장이였으면 좋겠어.”
명장급 대장장이.
실제로 내포한 의미는 다르겠지만, 홀더 계에서는 ‘레어급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 계열 홀더를 일컬었다.
특수 계열 중 제작 쪽으로 빠지는 홀더들은 일반적인 홀더 등급이 큰 의미가 없기에, 이렇듯 계열 관련 별칭들이 더 큰 힘을 지닌 명함이 되곤 했다.
여기서 나아가 ‘에픽급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게 되면, ‘거장급 대장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들 어때? 괜찮겠어?”
사실 의례상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이 정도로 큰 사이즈의 계약은, 공방을 차리고 개인 사업을 하는 경력직 대장장이들도 흔쾌하 달려들 만한 단기 계약이었다.
두 사람이 굳이 이 계약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회장의 직접적인 계약 제안은 처음이군. 하지만 받아들이지. 재밌어 보이니까.”
“나도! 나도 할게!”
계획의 첫 번째 단추가 매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이후 찾아온 한국 홀더 협회.
나는 오랜만에 이지혜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 중이었다.
내가 C급 홀더로 승급할 때 심사관을 맡았던 그녀는, 그 때의 연이 닿아 아직도 협회와 관련된 내 업무들을 계속 처리해주고 있었다.
거의 내 담당관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업무량.
하지만 그만큼 성과도 많이 뽑아내며…
협회 내에서는 이례적인 수준의 고속 승진을 경험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윗선의 승인을 받았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자의적인 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꽤 높은 업무 권한을 갖고 있었다.
나 역시 매번 그녀에게 많은 일들을 의존해 왔기에, 그런 변화는 반가웠다.
“…공략권 보호 요청을 하신다고요?”
그런 이지혜가 깜짝 놀라 내게 묻고 있었다.
“네. 던전 위치랑 개요는 보고서에 미리 작성해뒀어요.”
“아니, 도재현 홀더님도 바로 못 깨는 던전이 있어요?”
그건 내가 이지혜와 일하며 처음으로, 미공략 던전의 ‘공략권 보호’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공략권 보호가 들어가면, 해당 던전이 곧바로 홀더 협회의 관할 하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른 홀더들이 이를 무단으로 공략하거나 보상을 강탈할 수 없도록 이를 감독 및 관리한다.
그동안 내가 괴물 같은 성과만을 보여왔기에, 이지혜로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이 요청이 놀랄 만도 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있죠. 짙푸른 초원 같은 최상급 던전은, 소규모 파티로 못 깨잖아요.”
<짙푸른 초원>은 최근 몇십 명의 무소속 홀더들이 대형 공격대를 결성해 공략한 던전으로, 고위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최상급 던전이기도 했다.
“짙푸른 초원이요? 그럼…”
그 던전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지혜가 눈을 빛냈다.
그녀도 나름 나와 오래 일한 직원답게 감이 온 모양.
대형 공격대가 투입됐던 고위 던전을 예시로 들었고, 그와 유사한 던전의 공략을 위해 공략권 보호를 요청했다.
그 말은 결국….
“네. 공격대, 그거 저도 한 번 결성해 보려고요.”
내가 이번에 공략할 던전.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에도>…
대형 공격대가 투입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