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0 - 공격대 모집 (3)
-미안해요. 몇 달 전부터 잡혀 있던 해외 일정이 있어서, 아마 3월까진 귀국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도 도재현 홀더가 만든 첫 공격대에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핸드폰 화면에 문자 한 통이 떠오른다.
암살자 계열 스승님인 유은설의 문자였다.
전부터 넌지시 건넸봤던 이번 공격대 참여 여부.
그녀는 이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아깝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괜한 아쉬움을 털어냈다.
처음부터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 전부터 예약이 잡힌 해외 일정이라면 더더욱 빼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제자 된 입장에서 개인 용무로 스승님의 일정을 방해할 순 없었다.
“그럼… S급은 없을 것 같고.”
이로써 S급 홀더의 참여율은 제로가 됐다.
국내 3대 클랜의 수장인 강우현, 황건욱, 송도혁은 자신들의 위치나 클랜 업무 때문에 애초에 참여가 불가했고, 세간에 ‘류지혁’으로 알려진 S급 홀더 박지환은 지금도 어딘가의 오지에서 치열하게 루덴아크를 추적 중이었다.
5명의 공식 S급 홀더 중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게 스승님이었는데, 방금의 문자로 그마저 무산됐다.
“쩝.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상황이 절망적인 건 아니었다.
원작에서 박진우가 공략을 시도할 때도 S급 없이 진입했었고, 또 나보다 높은 등급의 홀더가 공격대원으로 있다는 게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니까.
오히려 전화위복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번 공략이 내 리더십과 지휘력을 한층 성장시킬 기회가 될 것도 같았다.
“…재현이는 잘 할 거야.”
내가 잠시 푸념하고 있자, 옆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테이블에 놓인 예쁜 손과 펜.
기다랗게 내려앉은 머리카락…
숨 막히듯 아름다운 외모.
함께 서류를 보고 있는 강주연이었다.
“…….”
그녀는 이런 위로 자체가 어색한지 살짝 부끄러운 얼굴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귀엽다.
역시 위로의 완성은 얼굴인 걸까.
강주연의 어설프지만 귀여운 위로를 들으니, 잠시나마 복잡했던 머릿속이 뚫리는 기분이다.
“고마워. 그래도 네 덕에 힘이 난다.”
“으음-.”
고맙다는 표현으로 가볍게 입을 맞추자…
강주연이 조심스럽게 날 받아들였다.
얼굴은 또 설레면서도 민망한 표정.
사귀고 난 후 몇 번이나 스킨쉽을 했는데도, 이토록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녀였다.
“마법사 계열은 어때? 괜찮은 홀더들 있어?”
“…응. 두 명 정도는 골랐어.”
“벌써? 주연이 너, 꽤 까다롭게 보는 편이잖아.”
“아무래도 이 홀더들은 검증된 사람들이라서.”
하지만 꽁냥대려고 모인 건 아니고, 우린 일을 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공격대원으로 지원한 수많은 홀더들.
이들을 최적의 조합으로 뽑아내는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던전 공략을 계획했던 ‘지하 던전 멤버’…
나, 강주연, 김채은, 문가은, 박진우.
총 5명의 고정 멤버를 제외하고, 추가 공격대원들을 뽑아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모집이 3일 전.
이례적인 창설인만큼 말도 많았고, 엄청난 화제도 끌어 모았지만 결국 마케팅 자체는 성공적으로 됐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 지원자는…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3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로 몰리고 말았다.
-역대 최고! 도재현 공격대에 총 311명의 홀더 몰려…
-국내 주요 클랜들, 클랜원들의 도재현 공격대 지원 허가.
-석양의 꽃 정현석, “합격 당연히 자신있다.”
-<달밤> 클랜, 마스터 포함 전 클랜원 공격대 지원?
충격적인 지원 현황이 이어졌다.
총 311명의 지원자.
한국에 고위 홀더가 이렇게 많다니 새삼 놀랐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무소속인 건 아니고, 클랜에 소속된 이들도 있었다.
각자 자신들의 클랜 내에서 허가받은 후 공격대에 지원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 공격대에 합격한 클랜원을 통해 자신들의 명성을 입증하려는 클랜들도 있다고 한다.
당사자 입장에선 정말 헛웃음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음… 이 홀더는 너무 간소한 정보만 적었네. 이 사람은 이력이 너무 허술하고….”
어쨌든 예상 밖을 벗어난 전개와는 별개로.
우린 들어온 지원자들을 선별하긴 해야 했다.
나는 지금 그를 위한 서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임시 공격대의 대원 선출은 클랜의 입단과 매우 유사하다.
지원서를 통해 해당 홀더의 간략한 정보를 확인하고, 가벼운 면접으로 실제 능력을 점검하며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다.
‘임시’라는 호칭치고는 꽤 까다롭지만, 이렇게 해야만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임시 공격대는 던전 공략을 주제로 이뤄지는 일종의 프로젝트성 파티.
당연히 위험도와 보수가 서로 비례하듯 높았고, 그만큼 공격대원도 신중하게 뽑아야만 했다.
“재현아, 여기 한 명 더 추가할게.”
“응.”
강주연은 이러한 공격대원 선출의 보조를 위해 와 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불의 심판> 내에서 신입 클랜원 입단을 심사한 경험도 있었고, 이런 업무에서 우리 멤버 중 가장 판단력이 뛰어나기에…
이런 역할에 누구보다 적합한 인재였다.
일하는 장소는 우리 집.
그 안의 업무용 방.
각종 논문 및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과 넓은 테이블, 커다란 침대까지 놓여 있는 곳.
마치 오피스텔의 원래 의미처럼, 일하다가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만능 공간이었다.
‘…옷은 전혀 일할 복장이 아니지만.’
내 얼굴이 살짝 민망함에 물든다.
강주연은 전에 입은 적 있는 연분홍 네글리제를 입고 있었다.
본가에서 첫날 밤을 보낼 때 입었던 옷인데…
그 추억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옷이 마음에 드는 건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저 옷을 자주 입곤 했다.
물론 옷 자체는 예쁘긴 하지만, 워낙 몸매를 부각시키고 안을 비치는 옷이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
…이건 뭐.
일하러 온 건지 날 유혹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
나는 초인적인 힘으로 강주연의 몸매에서 시선을 돌린 뒤, 그녀에게 지원서 하나를 건넸다.
“주연아, 이 사람은 어때?”
종이를 받은 강주연이 금세 내용을 훑었다.
“안젤라… 그렘빌?”
“캘리포니아 아카데미에서 교류학생으로 온 홀더라는데, 스펙으로 적은 능력들이 꽤 괜찮더라고. 뭐, 자세한 건 직접 봐야 확인이 되겠지만.”
이번 모집엔 타국의 홀더들도 꽤 많이 신청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홀더들은 물론, 최근 미국에서 교류학생으로 넘어온 홀더들 중 자격이 되는 이들이 망설임 없이 지원을 해왔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높은 보수가 용병을 이끄는 법.
타국의 홀더들도 이러한 시장 논리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웬만해선 안 뽑고 싶긴 한데.’
공격대 구성에 있어 국적의 다름은 비선호요인이 된다.
가장 기본적인 언어 문제도 그렇고, 자국이 아니기에 책임감 없이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략 도중 사망하게 되면…
해당 국가와 얽힌 그 사후 처리가 매우 복잡해진다.
룬 홀더는 해당 국가의 전투적 자산이니까.
때문에 어지간해선 타국의 홀더를 대원으로 뽑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예외가 딱 두 명 있었다.
그중 하나가 카밀라 플로레스.
다른 하나는 이 지원서에 적힌 ‘안젤라 그렘빌’이라는 인물이었다.
‘스펙이 너무 좋잖아.’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진 않았지만 주력 능력치(마력, 정신)가 70을 넘는다고 적혀 있었고, 주력룬 및공통룬 또한 15레벨 이상의 숙련도를 지니고 있다고 기록돼 있었다.
만약 이 지원서가 사실이라면, B급 마법사 계열 중에선 거의 최상에 가까운 홀더 정보를 보여준 것이었다.
B급 최상위는 A급에 거의 근접한 등급.
그리고 공격대 모집에서 A급 홀더는 거의 프리패스에 가까운 희귀 자원이다.
아무리 외국인 홀더라 해도…
이 정도 스펙은 리스크를 감안하고 충분히 통과시킬 만했다.
“…좋은 것 같아.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그치? 면접할 가치는 있는 것 같아.”
“응.”
다행히 강주연도 호의적인 태도였다.
나는 카밀라와 함께 안젤라의 지원서도 면접자 명단에 빼놨다.
카밀라는 뭐, 굳이 지원서를 볼 필요도 없었다.
캘리포니아 아카데미 교환 학생 중 탑으로 꼽히는 성적.
심지어 학기말 <간이 투기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한 실력자.
이런 홀더를 공격대에 데려가지 않는 건, 내가 오히려 손해였다.
‘아마 박진우도 좋아 죽을 거고.’
…약간의 인맥이 포함된 선발이기도 했다.
“아, 맞다. 주연아, 불의 심판에서 지원한 클랜원도 있어?”
문득 생각난 점에 그녀에게 물었다.
국내 주요 클랜의 클랜원들이 이번 우리 공격대에 지원했듯, 3대 대형 클랜에서도 어김없이 지원자가 있었다.
<용광검로>에선 각각 A급, B급인 선임 클랜원을 두 명이나 보내왔고, <로열>에선 문가은의 호위도 할 겸 A급 홀더 성나연을 보내왔다.
…이쯤 되면 성나연은 거의 문가은의 호위무사다.
하지만 <불의 심판>에선 별다른 소식이 없었던 것 같아 강주연에게 직접 물었다.
“아마… 이수미 홀더가 신청할 것 같아.”
“아.”
잠시 잊고 있었던 이름이 들리자 나는 살짝 놀랐다.
<불의 심판> 클랜원, 이수미.
완숙한 신성 계열의 힘을 보여주던 B급 홀더.
<빌런> 소탕 작전을 우리와 함께 진행했었고, 당시 지부장이었던 차수연의 동생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었다.
이후 클랜 내에서 <빌런> 내 잔당을 처치하는 임무를 전부 도맡아 했다곤 들었는데, 이렇게 의외의 곳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검증된 신성 계열이네. 좋은 대원이 들어왔어.”
“…응.”
사실상 면접을 볼 필요도 없이, 공격대원으로 합격이라는 말.
그런 내 선언에 강주연도 밝아진 기색으로 답했다.
그녀도 내색은 안 했지만, 클랜에서 방황하며 겉돌던 이수미가 내심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좀 쉬자. 우리 너무 열심히 일했다.”
탁-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서류들을 정리한다.
아직 선별이 끝나진 않았지만, 어차피 내일까지도 일을 해야 했다.
“…….”
“…주연아?”
그런데 정리를 마친 강주연이…
문득 방 한쪽에 놓인 침대로 가 앉았다.
침대 손잡이를 붙잡은 채, 무릎을 꿇듯 옆으로 앉은 자세.
분명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자세였다.
“…난 준비됐어.”
쉴 준비….
나지막이 그녀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데자뷰인가?